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불행히도 그건 '생각'일 뿐. 그래서 사람들이 허무해하고 불안해하고 죄책감과 무력감에 빠지는 것 아닌가. 마찬가지로, 곧 나이 60을 바라보는 나도 여전히 '나는 내 삶을 살고 있나?' 문득문득 자신에게 물어보게 된다.
이 글의 제목은 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중 나의 마음에 계속 남았던 장면에서 따왔다. 그즈음에 나는 삶에 지쳐있었고, 잘 울지 못하는 나에게 울 곳과 울 이유가 필요했는지 모른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울었다.
두 명의 이모들과 사는 주인공 폴은 30대의 청년이다. 그는 태어난 지 두 해 만에 부모를 동시에 잃었다. 그에 대해 영화의 앞부분은, 그의 실어증과 그것이 아주 어린 시절 그 부모의 죽음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 그리고 단조로이 쳇바퀴 도는 일상 외에 말하지 않는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아파트 아래층 마담 푸르스트라는 여인을 만나면서 그의 삶에 변화가 싹튼다. 마담 푸르스트는 "네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아"라는 메시지를 시작으로 그의 개인사 탐색을 돕는다. 그녀의 도움으로 과거 기억을 하나둘씩 기억해내 고통스러워하는 폴에 대해 마담 푸르스트는 "부모의 죽음을 죄다 잊었다고? 나는 그런 얘기 안 믿어. 죽음이 그 애를 못 살게 하는 게 아니라, 쳇바퀴 도는 삶이 문제지"라고 말한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억압'이라고 했던가. 나는 여기에서부터 이 영화의 과정이 내가 경험한 정신분석적 심리치료의 과정과 너무도 비슷하게 다가왔다. 현실에 직면하여 상실을 인정하고, 고통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기억을 재조직하고, 새로운 삶으로 회복해 나아가는 과정 말이다. 연약한 자아는 자신의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이나 분노, 죄책감 등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감정들을 의식의 아래 깊숙한 곳으로 억압시켜 눌러놓는다. 눌러놓았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 감정이 평온해 보이지만, 크게 슬플 것도 기쁠 것도 화가 날 것도 좋을 것도 없다. 방어기제라는 것은 우리의 고통과 불안을 달래기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이루어야 할 인간으로의 통합과 성장의 삶은 방해한다.
자신에 관해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할수록, 비로소 우리의 잃어버린 조각조각 멀리 흩어져 버린 기억들이 수면 위로 하나둘 떠오른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은 서로 관계가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마담 푸르스트는 남겨진 폴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편지를 남기고 떠난다,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 아래 가라앉게 해. 네게 바라는 건 그게 다야.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네 몫이란다". 말했듯이 나는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상담의 과정을 떠올렸지만, 만일 우리에게 상담가라는 대상이 없더라도 자신을 대하는 마음만은 늘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 태도로 노력하면 좋겠다.
어린 시절의 상처나 좌절에서 자유로운 이는 하나도 없다. 살면서 누구나 작든 크든 상실을 경험한다. 우리 기억 저편에 묻어둔 기억들- 좋은 기억들은 감사히, 나쁜 기억들은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영화의 마지막 마담 푸르스트의 편지에서처럼, 수도꼭지를 트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또 최선의 일이 아닐까.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삶을 찾아가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