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내담자들을 만나다 보면 이따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변화의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오랫동안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숨으로 말을 꺼내는 순간이라든가, 아무리 애써도 움직이지 않던 마음이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히 방향을 바꾸는 순간과 같은 '변화의 순간' 말이다. 그 변화는 거창하지 않고, 요란하지도 않지만 분명하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기도 하고,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닫혔던 입이 열리기도 한다. 그래서 침묵이 전과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되고, 보이는 세상이 새로워진다.
그런 순간에 내담자들은 크게 놀란다. 하지만 곧이어 이렇게 말한다. "좋은 변화가 왜 일어났는지 모르겠고, 꼭 상담을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닐 거예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분명히 관계 속에서 힘을 얻고 관계 속에서 변화된다. 그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담사와 내담자가 오랜 시간 함께 견뎌 온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오늘은 내가 내담자의 자리에서 경험했던 '그 순간'에 대해 써 보려고 한다.

회기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 날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저는 이럴 때 꼭 선생님이 요술을 부리시는 것 같아요." 혼자서 아무리 애쓰고 안간힘을 써도 좀처럼 변하지 않던 나였다. 여러 번 다짐하고, 책을 읽고, 백팔배를 하고, 명상을 하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 보아도 늘 같은 자리였다. 그런데 어느 날, 회기 안에서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동안 단단하게 굳어 있던 무언가가 아주 조금, 그러나 확실하게 움직인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는 꼭 선생님이 나를 향해 요술을 부린 것만 같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해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요술이란 대체 무엇일까? 동화 속 요술은 참 단순하다. 마법 지팡이를 한 번 휘두르면 '펑' 하고 변하고, 반짝이는 가루를 뿌리면 '짠' 하고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혹은 주문 한 마디만 외우면 '뿅' 하고 문제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정말 정신분석 상담은 그런 요술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 속에는 나의 시기 어린 공격이 담겨 있었다. 수십 년을 갈고닦아 온 선생님의 자기분석과 자신과의 씨름, 깊이 있는 공부, 끝없는 훈련, 그리고 수많은 내담자와 함께 지나온 오랜 시간, 그 안에 담겨 있을 땀방울과 피눈물을 나는 단숨에 '요술'이라는 말로 바꿔 버린 것이다. 그것은 감탄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선생님의 능력을 지워 버린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웃으며 "요술"이라고 말함으로써 내 마음속의 시기심을 가볍게 날려 버렸다. 너무 부럽고 너무 배가 아파서 차마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는 마음을 농담처럼 포장해 버린 것이다.
시기심도 분명히 내 마음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마음을 느끼지 않고 날려 버렸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내 마음을 외면해 버린 것이다. "좋은 변화가 왜 일어났는지 모르겠고, 꼭 상담을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닐 거예요."라고 말한 어느 내담자처럼 말이다.
그래, 이것이 시기심이다. 이제는 그 마음을 끌어안고 싶다. 요술이라는 말이 오늘은 너무 가슴 아프다. 너무 부러워서 요술 취급해 버린 사랑하는 선생님의 땀방울과 피눈물을 떠올리며, 오늘은 마음으로 용서를 빈다. 그리고 돌아보면, 그렇게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들이 내 마음속에는 참 많다. 가슴으로 울며, 여러 날 참회 기도를 해도 모자라다.
이것은 나중에 든 생각인데, 내가 선생님의 능력을 요술 취급하며 날려버리면, 선생님과 오랜 시간을 만나며 함께 관계해 온 나의 노력도 함께 날아간다. 그것만큼 슬픈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이제는 안다. 시기심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고 느껴야 하는 성장 신호라는 것을. 그리고 선생님을 요술쟁이로 만들어 버릴 만큼 부러웠던 내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 마음속에는 '닮고 싶다, 도달하고 싶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선생님이 요술을 부린 것 같다고 말했지만, 요술은 없다. 대신 긴 시간 고통을 끌어안고 철저히 통과해 온 사람의 진실한 삶이 있고, 그 삶을 부러워할 줄 아는 나의 마음이 있다. 오늘은 그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조용히 그 마음 곁에 앉아 있는 연습을 해 보고 싶다. 그 마음 또한, 나의 일부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