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심심엔]

ddaeed

엄마

posted Sep 17, 202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심심엔-엄마.jpg

 

 

이번 심심엔 글은 엄마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마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주위에서 부모님을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마음은 복잡했다.

 

아직 부모님이 곁에 계신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지만, 점점 쇠약해지고 건강이 나빠지시고 때론 치매로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참혹한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일종의 안도감 비슷한 마음도 올라온다. 그래도 압도적인 생각은 엄마가 살아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옆에 있다면 내가 얼마나 엄마를 오해하고 왜곡했는지, 얼마나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참회할 시간이 빨리 찾아오지 않았을까?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그때 못한 사랑 고백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엄마는 쉰세 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사실 스물세 살은 이미 성인이라 엄마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엄마가 우리를 두고 떠난 것에 대해 슬픔과 그리움도 있었지만, 원망과 미움이 더 컸다. 특히 결혼할 때, 아이를 낳을 때 친정엄마의 빈자리는 상상 이상으로 크게 느껴졌다. 살아 보니 인생 어느 순간에도 엄마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즐거울 때도, 슬플 때도, 특히 아플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엄마였다. 그러나 그리울수록 더 밉고, 더 원망스러웠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해주셨다.

 

어렸을 때 몸이 약했던 나를 위해 늘 한약을 달여주셨고, 몸에 좋은 음식을 정성껏 해주셨다. 엄마는 지방에서 자란 나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고 싶으셔서, 고2 여름방학 때 대학 캠퍼스 두세 곳을 직접 보여주셨다. 대학 입학하고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이불이며, 잠옷이며 필요한 물건들을 알뜰히 챙겨주신 기억은 아직도 너무나 선명하다. 이렇게 좋은 기억과 좋은 경험이 분명하고 선명한데도, 난 그저 나에게 엄마가 없다는 상처에만 집착했다.

 

상담받으면서 엄마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원망을 쏟아냈다. 그러면 내 상담자는 "그래도 엄마는 참 좋은 분인 것 같으세요"라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곧바로 "선생님은 우리 엄마를 몰라요"라며 엄마를 있는 그대로 보려 하지 않았다. 난 유학을 온 게 아니라 유배당한 거라며 억지를 부렸다. 집에서 정갈한 모습으로 계셨던 기억도 있지만, 어쩌다 한여름 아버지의 목이 늘어난 런닝을 입고 있던 그 모습만 붙잡고 있었다. 엄마에게도 약한 모습도 있고,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좋은 분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려고 했다. 아마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절망감이 두려워서, 오랫동안 일부러 그 마음을 외면한 것 같다. 그리움이 상처가 되고, 상처가 분노와 원망으로 뒤바뀌는 과정을 거듭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엄마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약점이나 아쉬운 부분만을 붙들고 늘어지느라, 좋은 내적 대상을 충분히 내면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붙들었던 엄마는 실제의 엄마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낸 왜곡된 엄마였다. 그 결과 나 역시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자랑스럽지 않았다. 분명 나를 위해 헌신한 엄마를 기억하는 내가 있는데, 삐뚤어진 마음을 갖고 있는 내가 떳떳하지 않았다.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엄마, 약한 모습도 있었지만 동시에 좋은 모습을 간직한 엄마. 그런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이 길었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 엄마에게 좋은 모습도 있고 약한 모습, 아쉬운 모습을 함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내 안에서 통합을 이루고 나 자신도 회복하고 통합하는 길로 가고 싶다.

이재경-프로필.jpg


  1. 엄마

    이번 심심엔 글은 엄마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마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주위에서 부모님을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마음은 복잡했다. 아직 ...
    Date2025.09.17 Views48
    Read More
  2. 내면의 목소리

    우리는 사람이고, 사람은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나 실패나 좌절을 경험한다. 문제는 그 자체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런 순간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느냐다. 어떤 사람을 실패했을 때, '내가 그러면 그렇지 뭐. 역시 나는 안되는 사람이...
    Date2025.08.16 Views79
    Read More
  3. 사각지대

    요즘 출판계에서는 전국에서 하루에 책이 3~500부 팔리면 베스트셀러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출판 관계인은 아니지만, e-book이나 전자 문서보다는 종이책에 익숙한 개인으로서 상당히 아쉬운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런 지면을 통해서 책 한 권 소개하...
    Date2025.07.09 Views77
    Read More
  4. 내 마음을 모를 때

    요즘 사람들이 '몸이 기억한다'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이 말은 나 또한 자주 사용한다. 최근의 연구들도 이 말의 과학적 근거들을 자주 소개하는 것으로 안다. 가령, 머리로는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옛길을 잘도 찾았던 경험들! 나에게...
    Date2025.05.14 Views134
    Read More
  5. 바둑이 대화법

    저희 집 강아지는 덥수룩한 흰털을 깎아내면 숨어있던 콩알만 한 검은 점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바둑이입니다. 처음 식구로 맞은 건 19년 가을입니다. 수의사선생님은 이빨을 살펴보시곤 2-3살 정도 되었을 거라 하셨습니다. '아기 강아지였네'라고 생...
    Date2025.04.08 Views239
    Read More
  6. 다 잃어버리고, 더 잃어버린 마음 이야기

    © jrkorpa, 출처 Unsplash "꿈을 꿨어요. 꿈에서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 연예인 이O민 씨가 내 옆에서 나를 도와주었어요. 그 마음이 참 든든하고 고마웠어요... 근데... 이O민 씨가 왜 꿈에 나왔을까 생각을 해봤는데요. 그분을 떠올리면 '...
    Date2025.03.14 Views224
    Read More
  7.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 우리 안의 '분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우리 안의 '분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얼마 전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하 스포일러 많아요) 예술영화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라는 것은 여기저기서 읽어...
    Date2025.02.08 Views238
    Read More
  8. 신의 선물

    올해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이맘때가 되면 한 해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떠올리며 정리를 하게 된다. 2024년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책이나 영화에서만 접했던 계엄령이라는 것을 실제로 경험 하게 된 '뜻'깊은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
    Date2025.01.13 Views221
    Read More
  9. 6월 24일이라는 시간에 사는 사람들

    아리셀 공장 앞 불이 난 지 이틀이 지난 6월 26일 아리셀 공장 앞에서 처음 만났다. 메케한 내음이 목으로 밀고 들어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공장 지붕은 폭발에 뻥 뚫렸고 샌드위치 패널은 녹아내려 옆구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23명의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
    Date2024.12.08 Views210
    Read More
  10. 이태원참사 2주기에 부쳐 - 사회적 애도의 길, 진실만이 치유

    사회적 애도의 길, 진실만이 치유할 수 있다 -이태원참사 2주기에 부쳐 지난 26일(토) 시청광장에서 이태원참사 2주기 추모대회가 있었어요. 1주기에 이어 가수 하림 씨가 노래로 위로를 전하는데 특별히 '별에게'를 불렀어요. 최정주(최유진 희생자 ...
    Date2024.11.05 Views20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