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목소리를 따라 공동체 트라우마 치유로 가는 길

다시 12월 3일이네요. 아직 내란은 청산되지 않았지만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아닌 밤에 놀라고 분노하며 잠 못 이루던, 거리에서 광장에서 봄을 되찾겠다고 소리치고 노래한 그 마음, 지금은 안녕하신가요? 겨울의 길목에서 안부를 묻습니다.
12.3 계엄은 실제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계엄, 내란의 기억을 건드리며 공동체 트라우마를 활성화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1년은 치유되지 못한 역사의 상흔이 더 잘 보이고 들리는 것 같아요.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이 와닿으면서 이제는 우리 사회가 공동체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준비도를 갖춰야 한다고 느낍니다.
11월 27일 선감학원 사건 피해자지원센터에서 펼친 증언 치유에 다녀왔어요. 성공한 중견기업인으로 지내다 같은 피해자인 동네 친한 친구를 관련 영상에서 보고 찾아 나선 증인은 결혼생활 32년 만에 배우자에게 선감학원 피해자라고 고백합니다. 다른 피해자도 57세 정년퇴직까지 누구에게도 선감학원 사건을 말한 적이 없다고 해요. "제 잘못이 아니잖아요, 제가 잘못한 게 아닌데 그 말을 못 하고 살았습니다" 그 말씀이 먹먹했어요. 누가 무엇이 피해자를 침묵하게 하는 것인가요?
지난 11월 7일은 국가를 상대로 처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한 5.18성폭력피해자 열일곱 분의 첫 재판이 열렸어요. "여지껏 어두운 세월은 이렇게 터널처럼 지나왔지만 (국가가) 인정했으니깐 내가 어디서라도 이제 이런 피해자였다고 말할 수 있고… 그땐 말 못 했지만…" 피해자 이남순 님의 말씀에 정신대 할머니들의 아픔이 보입니다. 그리고 올해 개봉한 4.3 다큐인 <목소리들>에서 제주 표선면 토산리 달빛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김은순(91)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어요. 언니를 잃은 그 날의 기억에 갇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삶을 앗아가는지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평생 함구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의 침묵이 피울음보다 더 크게 들렸어요. 77년이 되도록 그 침묵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우리 사회 공동체 트라우마의 그림자를 무겁게 느낍니다.
참혹한 고통과 피해를 겪고도 침묵해야 하는 사회, 그 아픔과 두려움이 오롯이 개인에게만 전가되는 사회에서 트라우마의 치유와 회복은 어렵습니다. 고통의 경험은 개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치유는 금기시하는 압박과 두려움으로 침묵하는 구조를 깨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용기 있는 증언들로 드러난 진실이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변화와 성장의 자양분이 됩니다. 어떤 경우 증언의 첫 장은 상담실이기도 하지요.
증언치유는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이야기함으로써 스스로를 서로를 사회를 치유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사회에서 고립되어 왔기에 증언 치유는 피해자들의 경험을 시민들과 공유하면서 공동체와 다시 연결되는 것을 돕습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 입은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고통을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 경청과 공감으로 연대하는 동료 시민들은 고통을 담는 넓고 깊은 컨테이너가 됩니다. 새해에는 길목에서 삶의 생생한 경험에서 공동체 트라우마의 상흔까지 서로의 삶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안전한 장이 더 펼쳐지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