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걸
사랑받는 그 순간보다 흐뭇한 걸 없을걸..."
다들 처음 껴본 손가락 반짝이 불에 신기해했다. 이내 손뼉 치며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휠체어를 탄 채 천천히 들어오는 노경선 선생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이 켜지고 산타 모자를 쓴 20여 명의 환한 얼굴이 드러난다. 심심의 길잡이 역할을 해 주시는 선생님께서 수술 이후 재활 중에도 함께하셨다. 다들 울컥하기도 하고 글썽이기도 한 상기된 표정들이다. 열렬한 환영에 선생님이 놀라지나 않았을까 조금 걱정이 될 정도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잘하고 있어요" 하는 마음과 "선생님, 얼른 회복하고 함께해주셔야죠." 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그런 마음을 담아 다른 해와 달리 목소리를 한껏 높여 합창했다.

심심이 '일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기 위해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다. 심심의 여행엔 상담사도 있고, 내담자도 있다. 치유 활동가도 있고, 마음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을 연결하는 연결자도 있다. 심심의 활동을 지탱해 주는 사회적협동조합 길목 조합원과 후원 회원도 있다.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있다.
2025년도엔 47명이 심심 상담을 신청했다. 한 사람의 내담자는 기본적으로 20회기 상담을 할 수 있다. 내담자는 노조·시민단체 활동가가 36%를 차지하고 청년·소수자·해고자·장애인·지원 대상 가족 등이다. 35세까지 청년이 66%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30~40대다. 50대 이후는 극히 드물다. 이들은 어떻게 심심 상담실 문을 두드렸을까? 주변의 소개와 심심 상담을 한 경험자의 권유가 80%를 차지했다. 심심의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이 신뢰와 안정감을 얻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 염두에 둔 노동운동이나 시민사회 운동을 하다 지친 활동가들은 여전히 멀리 있다. 찾아가고 연결하는 역할이 더 필요하다.
코로나 이후 끊겼던 집단프로그램이 Death Cafe로 다시 시작하게 되어 뜻깊다. 무엇보다 명동 세입자 철거 대책 투쟁 현장, 세종호텔 농성장에 도시락을 싸들고 찾아가는 활동도 여러 손길이 모여 이어지고 있어 감사하다.

심심의 지속 가능한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나는 격주 한 번씩 하는 공부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내담자들을 만나는 상담사나 치유활동가도 활동을 이어 나갈 에너지가 필요하다. 공부 모임을 통해 서로 배우고 나눈다. 그 길에 노경선 선생님께서 처음부터 길잡이 역할을 해 주셨다. 해학과 깊은 통찰력으로 나를 관계를 보게 했다. 선생님은 공부할 때 칠판에 삼각형을 자주 그렸다. 인간의 삼각형이기도 하고 갈등의 삼각형이기도 했다.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갈등과 불안이 방어로, 증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쉽게 설명해 주셨다. 삶의 과정에서 생긴 상처가 더해지면서 버릇이 되고 문제를 일으키는지도. 피하고 도망가는지도.
쉽게 얘기하고 끄덕여주고 나도 사람이라는 것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다.
2025년 심심의 종강식 너무도 따뜻했지만 속상하고 아쉽다. 싱긋 미소 띠며 "조갑제 선생, 아니 조귀제 선생!" 하며 폭소를 터트려 주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은 작게 들려서다. 모두에게 깨달음과 웃음을 던지며 찰나의 기쁨을 주었던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듣고 싶어서다.

각자 한 해를 보낸 소감과 자기 자랑도 하면서 가지고 온 선물도 나누었다. 집에서 키운 새싹을 화분에 곱게 심어 오기도 하고, 소중하게 모은 굿즈를 건네기도 하면서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종강식의 마지막은 향기 나는 밥상이다. 수저를 챙겨 오라고 해서 '김밥은 손가락으로 집어 먹어도 되는데'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흰 쌀밥과 현미밥, 계란 두붓국과 소고기 무국, 김치통을 통째로 옮겨온 듯한 다양한 김치, 노란 알배추 나물과 도토리묵, 전, 과일 등등. 그득한 음식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이 부끄러웠다. 이 감동을 안겨준 분들의 수고에 고개 숙여 감사하며 배가 불러도 자꾸 음식 앞으로 다가가는 나를 발견했다.

심심엔 향기가 난다. 따뜻하게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의 향기가 난다. 앞으로도 어렵고 힘든 누군가에게 마음 포개며 살아 나가는 향기를 더 퍼트려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