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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샤낙의 제안으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간단한 의식을 치렀음에도 파르바르딘은 약간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분명 아베스라를 도와 마구니와 대결을 펼치던 때의 이전 모습은 아니었다. 까닭 모를 자부가 감춰진 정원의 높은 담을 넘어와 파르바르딘 전체에 깔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사고가 날까 두렵니더!
로샤낙이 먼저 분위기를 알아챘다. 그녀는 베흐자트에게 눈치를 주었다.
베흐자트도 당황하고 있었다. 그 자신조차 알 수 없는 기운에 휩싸여 격앙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려고 감춰진 정원에서 무술 수련으로 부지런히 몸을 혹사하고 있었다. 흐르는 땀에 젖은 옷자락이 몸을 잡아챌 정도로 창을 들고 혹은 맨손으로 초식을 거듭거듭 수련하였다.
그러나 잘레만은 그날의 여운을 길게 늘여가며 즐기고 있었다. 그날의 감각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올리브 기름을 전신에 바르고 바람결을 맞이하기도 했으며, 그도 성에 차지 않으면 마찬가지로 기름을 듬뿍 바른 손을 펴 가슴을 쓰다듬었다. 그런 잘레를 눈여겨본 로샤낙이 호통을 쳤지만, 그녀는 여전히 야릇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로샤낙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내는 참으로 오랜만에 파르쉬드(Farshid)1)의 손길을 느꼈니더.
잘레의 말에 로샤낙의 가슴이 시려왔다. 그러나 언제까지 허상에 매달려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 로샤낙은 잘레를 매몰차게 질책하고 나섰다.
-그라믄 됐다. 그걸 가심에 담고 인자 현실로 나와야 안 되겄나!
로샤낙의 질책에도 잘레는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마구니와의 야릇한 대결이 잊고 있던 파르쉬드의 손길을 그녀의 피부에 새겨넣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르쉬드를 느끼는 감도가 무뎌지기는 했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안타까운 집착은 강고해지고 있었다.
-걱정이시더!
베흐자트에게 내뱉은 로샤낙의 짧은 탄식 속에는 잘레에게 드리워진 안타까운 그늘과 그녀에 대한 걱정이 교직 되어 있었다.
-하필 마구니와 싸울 때 색감이 되살아 난 것 같니더. 그때 감각(感刻)한 파르쉬드의 영흔(靈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니더. 저러다 몸 상할까 걱정이시더. 저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낀데, 다른 사람 얘기는 씨알도 안 멕히니더. 혹시 아베스라 시님이 법문을 통해서 어떤 실마리를 줄 수 있으먼 좋지 않겠니껴? 어차피 법석 자리를 마련할 건데 서두르는 기 좋겠니더.
로샤낙의 말이 아니더라도 아베스라의 말씀 자리를 펼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베흐자트가 아베스라에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법상(法床)에 앉은 아베스라가 대중들을 둘러보았다.
성주가 마련한 자리였으나 일정을 촉박하게 서두른 탓도 있었겠지만, 일개 행각승의 검증되지 않은 법문을 듣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은 거개가 베흐자트의 도움을 받는 아녀자들과 성내 민병조직의 지도자들뿐이었다.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대중들의 앞자리에서 베흐자트와 잘레 그리고 로샤낙이 다소 긴장한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베스라는 심호흡을 감추려 서둘러 합장을 하여 대중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옛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다 다리가 아파 잠시 쉬기로 하였습니다. 그가 물가의 나무 밑에 앉아 쉬는데, 물속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발견했어요. 너무 신기해 다가가 보니 수초 사이에 찬란하게 빛나는 금괴 하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갑자기 평정심을 잃었어요. 금빛에 눈이 먼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물속으로 들어가 수초 사이를 헤집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바닥을 파헤치고 수초 사이를 뒤져도 금괴는 찾을 수 없었고, 온통 흙탕물만 가득했지요. 그는 잔뜩 실망한 채 나무 밑으로 돌아와 앉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흙탕물은 가라앉고 다시 물이 맑아졌어요. 그러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찬연한 금빛이 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탐심이 솟구쳐 물속으로 달려가 바닥을 샅샅이 헤집었지만, 금덩어리는 어디에도 없었고, 흙탕물만 그를 비웃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나그네가 지나가며 말했지요. '어라? 누가 나뭇가지에 금괴를 매달아 놓았지?' 그러더니 과일을 따듯 덥석 낚아채고는 가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정작 금덩이는 나무에 걸려 있었던 거고, 그게 물에 비쳐 빛이 반사되었던 겁니다.
이 이야기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허상에 매달리면 눈이 먼다는 것이지요. 물에 비친 금괴에서 내뿜는 광채에 사로잡힌 이 사람은 일각의 여유도 가질 수 없을 만큼 다급해져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잠시 물러서서 바라볼 수만 있었더라도, 아니 첫 번째 실수 후에라도 자신과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가졌더라면 나뭇가지에 걸린 금괴를 볼 수 있었을 테지요. 또 다른 하나는 허상이 가진 광채는 실상의 것보다 훨씬 강력해서 자기를 잃은 사람은 그것에 현혹되기 쉽다는 겁니다. 그것은 거짓이 진실보다 그럴듯해서 속기 쉬운 것과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실제로 허상의 빛이 더 아름다운 걸까요?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속아 넘어갑니다. 그건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이 그걸 보고 있는 나보다 더 나아 보이는 것과 같은 겁니다. 허상이란 그걸 보고 있는 사람에게 그가 원하는 그림, 이걸 가짜 욕망이라고 하지요, 그 가짜 욕망을 겹쳐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진짜배기가 아닌 겁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나를 잊고 혹은 잃고 주인의 자리를 다른 것에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그 다른 것은 사람일 수도 어떤 물건일 수도 있어요. 그것들은 다만 내가 욕망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바를 덧씌운 허상인데 그것에 홀려 정작 눈을 뜨고도 실상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를 찾는 방법을 알아야겠지요? 먼저 발심을 해야 합니다. 뜻을 세우는 것이고 첫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아주 중요한 과정이지요.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방문을 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 방안에 제아무리 진귀한 것들이 그득하더라도 방문을 열지 않고 그것을 볼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죠? 방문을 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이죠? 그게 발심입니다. 방 안에 있는 진귀한 보물이 바로 내 마음이고요!
방에 들어갔는데 도무지 캄캄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을 때가 있지요? 그럼 무얼 해야 하나요? 등잔에 불을 붙여야겠지요? 그럼 먼저 불쏘시개를 찾는 게 순서겠습니다. 불쏘시개에 불을 옮겨 붙이는 게 첫 번째 할 일입니다. 발심이지요.
발심하면 그 일의 절반쯤 한 겁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얘기로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절반을 했다면 거의 다 한 건데, 절반은 얼마만큼을 가리킵니까?
옛날에 큰 뜻을 품은 군주가 있었습니다. 천하가 일곱 나라로 나뉘어 싸우고 경쟁하면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져만 가는 걸 본 그는 천하를 하나의 나라로 통일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겠다는 뜻을 세웠지요. 그래서 인재를 널리 구하고 제도를 개선하여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마침내 통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워낙 잘 훈련된 군대와 보급체계를 갖춰서 상대가 될만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다섯 나라를 쳐서 통합하고 나자 그 군주에게 약간의 나태가 찾아왔어요. 숨 고르기라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했지요.
어느 날 한 노인이 군주를 만나야겠다며 찾아왔습니다.
'노인장은 어디서 오시는 길이시오?' 군주가 노인을 맞아 물었지요.
'백 리 밖 마을에서 오는 길입니다. 구십 리를 오는데 열흘이 걸렸고, 나머지 십 리를 오는데 또 열흘이 걸렸습니다.' 노인이 자초지종을 아뢰었지요.
'아니, 처음 구십 리를 열흘 걸려 왔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그런데 어찌 나머지 십 리를 오는데도 열흘이나 걸렸단 말이오?' 군주가 껄껄 웃으며 노인의 말이 이상하지 않으냐며 물었지요.
'처음에는 작심한 바가 있으니 열심히 걸어 구십 리를 열흘 만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십 리가 남자 마음이 나태해져 좀 쉬었더니, 몸이 무거워진 데다 마음이란 놈이 자꾸 발뒤꿈치를 잡아채는 통에 전처럼 걸을 수가 없었습죠. 무진 애를 써서 걸었지만 열흘씩이나 걸려서야 도성에 도착했습니다.'
노인은 '이제 거의 다 왔구나'하는 마음이 나머지 십리 길을 더디게 하였다며, '백 리를 가는 사람에게 절반은 구십 리'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영민한 군주는 노인이 자신을 질책하려고 찾아왔다는 걸 깨달았죠. 그는 곧바로 자신의 나태를 뉘우치고 마지막까지 열심을 내어 마침내는 천하를 통일했습니다.
우리네 마음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굳은 결심도 시간이 흐르면서 무뎌지고 나태해지는 게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첫 마음을 끝까지 가질 수 있느냐가 그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게 되는 거죠.
자, 그럼 오늘의 이야기를 정리해 봅시다.
눈이 밝은 분들은 서로 다른 세 개의 이야기가 결국은 하나의 귀결점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겁니다. 물속에 비친 금덩이와 같은 허상에 현혹되어 심령을 혹사하지 않으려면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의 첫걸음은 자신의 진면목이 가득 들어있는 방에 들어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을 결심을 하는 것이죠. 발심하는 것만으로도 물속에 비친 금덩이의 그림자가 아니라 나뭇가지에 걸린 진짜 금덩이를 볼 수 있게 될 것인데, 정작 문 앞에 서서도 먼지 낀 거울을 무색하게 하는 휘황한 잡념에 정신을 잃습니다. 발심하는 것도 그 마음을 유지하는 것도 천국의 문을 열기 위한 것인데, 백 리를 가는 사람이 구십 리에 이르러 나태해집니다. 그게 우리의 마음이죠. 더 가야 할 십 리 길을 잘 가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단박에 무얼 이루겠다는 조급함을 버려야 합니다. 하루에 한 걸음씩만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렇게 가다 보면 축지(縮地)의 경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문득 깨닫는 경지'에 이르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원래 자신에게 주어졌던 보화를 보게 될 것이고 광명의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아후라 마즈다 님이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여러분 모두 배 안으로 스며든 물을 퍼내고 저쪽 언덕에 이르러 자유롭게 되시길 빕니다.
법문을 마친 아베스라가 법상에서 내려와 대중들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했다.
질문은 없었다.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아베스라의 말에도, 베흐자트의 재촉에도 대중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겸연쩍어했고 난처한 얼굴이었다.
그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다과가 시작되고서였다. 대여섯 명씩 둘러앉아 로샤낙이 준비한 밀과자를 먹고 노랑찔레차를 마시며, 대개는 지나간 일들을 쑤석거리며 끄집어내었고 더러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대화라는 것은 밑도 끝도 없는 것이기 십상이어서 말을 하는 사람은 누가 듣거나 말거나 내뱉는 것이었고, 듣는 사람도 허공중을 떠도는 얘기에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식경쯤 지났을 때, 쿠샤의 먼 숙항(叔行)이라는 반백의 수염이 턱을 감싼 초로의 늙은이 구다르즈(Goudarz)가 헛기침을 두어 번 시늉처럼 내뱉으며 말을 꺼냈다.
-저, 지난 분 우리 얌나르에 홀연히 나타났던 용사 부리(Bori)가 그러더니더. 싸움을 잘하는 데는 힘과 담력만 필요로 허는 기 아니고, 상대방의 눈빛을 잘 읽을 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헛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이시더. 그래, 싸움에서 헛것이라는 게 뭐니껴? 하고 물었니더. 부리가 그러는데 거짓이라는 기라요. 상대의 눈 속에 어른거리는 거짓을 보지 못하면 그자의 손에 들린 칼끝이 내 심장을 향하게 된다는 거시더. 그걸 기만술이라고 하믄서리, 그걸 잘 읽어 내려면 내 마음이 맑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기라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늘 시님 말씀을 듣고 보이 쪼끔 알겠니더.
구다르즈(Goudarz)는 겸연쩍은 시선을 코끝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는 깨달은 자로군요. 비록 무자(武者)로 세상을 떠도는 사람이지만 그런 경지를 가졌다면 분명 깨달은 자입니다. 깨달음이란 게 그렇습니다. 하나를 깨닫게 되면 다른 것과도 통하게 되지요. 그래서 처음 하나를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그 처음 하나의 이치를 통해 다른 모든 것의 본질에 다다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처음 깨달음에 이르러서 궁극의 면모를 본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거지요.
-그렇다면 단 한 번에 그 궁극의 면모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이니껴?
노인은 꼴깍하고 침 삼키는 소리를 내며 물었다.
-그건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있다고 말씀드릴 수도 없지만,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지요. 분명한 것은 밭을 갈지 않고는 곡물을 경작할 수 없듯이, 깨달음이라는 것도 수행 없이 돌연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간혹 '문득 깨달았다'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한 것일 뿐 그것을 얻기 위해 마음 밭을 갈아엎고, 씨 뿌리고, 물을 주는 과정을 생략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아베스라의 말에 노인은 당혹해하고 있었다. 역시 깨달음은 수도자들의 일인가 하는 생각이 그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덧 사람들의 말소리는 잦아들고 아베스라의 말만 허공을 채우고 있었고, 시선이 아베스라와 노인에게로 모아지고 있었다.
-수행이라는 것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베스라가 노인의 얼굴에 스치는 절망을 읽었다. 그걸 해소해줄 필요가 있었다.
-무엇이든 마음을 모으는 행위가 곧 수행입니다. 농부가 밭에 나가 작물을 대할 때 그의 마음이 그것에 모이지요? 목부가 양떼를 데리고 풀밭에 나가면 그의 마음은 온통 양떼들에게 가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무자 부리가 칼끝에 마음을 모으고 상대의 눈을 바라볼 때 마음이 흐트러지겠습니까? 집중하게 되겠지요? 그 집중의 찰나를 무시로 불러올 수 있다면, 바늘 가는 데 실이 따르듯이 깨달음이 찾아오게 되는 겁니다.
-그걸 우리 겉은 펭범한 사램들도 할 수 있겠니껴?
노인의 의구심은 여전하였다.
-아이고, 그걸 우예 하겠니껴? 맨날천날 일하구로 똥 누고 머가 나왔는 동 돌아볼 시간도 없는 데. 우리는 그냥 마구쉬 님이 던져주는 말이나 받아 먹으먼 안 되겠니껴?
역시 머리가 허연 노파가 구다르즈에게 핀잔하듯 던진 말에 여기저기에서 참지 못하고 삐질삐질 삐져나온 웃음소리가 하품이 전염되듯 연이어 터져 나왔다.
-임자나 그리 사소!
구다르즈가 버럭 소릴 질렀다. 그의 눈빛이 노파를 경멸하고 있었다.
-연습을 해서 습관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 몸집이 불어나면 거추장스러운 기름기는 빼버립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처음엔 마음을 모으는 데만 집중을 합니다. 그런데 순일한 마음만 모아지는 게 아니라 잡다한 생각까지 더불어 모아든다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개의치 말고 마음을 모으는 일에 열중하다 보면, 어느덧 그 일이 수월해지는 순간을 맞게 되지요. 그건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딸려 들어온 잡생각을 걷어내는 일을 같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순일한 마음, 그러니까 진정한 도를 얻기 위한 마음 근육만 남겨놓고 기름기는 빼 버리는 겁니다. 어떤 이는 이 과정이 더 힘들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러나 그동안의 연습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으므로 간절한 마음을 가진다면 못할 게 없습니다. 그렇게 자유자재로 마음을 모을 수 있게 되면 길을 찾은 겁니다. 그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거지요.
아베스라가 노인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마쳤다. 자신이 하는 말에서 그가 결정체를 찾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안갯속에 뭣인가 어떤 모냥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니더!
노인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아베스라가 보기엔 씨앗 하나가 괜찮은 곳에 잘 떨어진 것 같았다. 싹을 틔우는 것은 순전히 그의 몫이 될 것이다. 그가 품는 절실함만이 그 씨앗에 때를 맞춰 내리는 비가 될 것이다.
-지도 헛빛에 마음을 빼앗긴 걸까요? 거짓인 줄도 모르고······, 마구니와 싸울 때, 분명 파르쉬드를 느꼈는데······, 그게 가짜였을까요?
대중들이 모두 돌아간 자리에 남아 골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잘레가 망연한 눈빛으로 아베스라를 바라보았다.
아베스라가 잘레의 두 손을 잡았다.
-잘레가 느낀 것을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파르쉬드에 대한 잘레의 사랑이 그를 불러온 겁니다.
아베스라의 말에 잘레가 몸을 떨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를 영원히 이곳에 잡아둘 수 없어요. 그는 영혼의 집에 있어야 하고, 잘레는 세상에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죽으면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거지요? 영혼의 집에······.
잘레의 얼굴에 그늘빛이 스쳐 가고 있었다. 평소의 속없는 사람처럼 해맑고 구김 없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언색(言色)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요, 잘레. 그건 사랑이 아니거든요. 그는 잘레를 사랑하기 때문에 숨결을 보내올 수 있어요. 그런데 그가 사랑하는 방식을 깨버리면 숨결의 길을 막는 겁니다. 그러면 그의 혼은 흩어지게 돼요. 그가 머무는 영혼의 집은 잘레가 그를, 그가 잘레를 사랑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거예요. 그러니 그 사랑의 방식을 인정하고 자유롭게 해줘야 해요.
-자유롭게요?
-그는 잘레와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언제든지 이어질 수 있는데도 그의 영혼을 잘레의 가슴에 가두어 두려고만 하면 흩어져버릴 겁니다. 영혼은 기의 응고태라서 기류를 따라 자유롭게 흐를 수 없다면 인력과 응력을 잃고 흩어져요.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겁니다. 그건 잘레가 원하는 게 아니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단 말이니껴? 아무것도?
잘레는 부르르 떨었다. 두려움이 그녀의 몸을 덮어버렸다.
곁에 있던 베흐자트가 그녀를 꼬옥 안았다.
-사랑은 묶거나 묶이는 게 아니라 감통하는 겁니다. 잘레가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며 저세상의 파르쉬드를 위해 기도하지요? 영혼의 집에서는 파르쉬드가 그런 잘레를 느끼고 기뻐하고 기도합니다. 또 그리움에 사무치면 잘레의 마음을 위로하러 곁으로 오지요. 그게 감통입니다. 묶는 게 아니라 잇는 겁니다. 떨어져 있는 존재가 사랑하고 하나 되는 방법이지요.
그날 저녁, 아직 푸른 기운이 남아있는 하늘에 달이 흐르고 있었다. 초승달을 지나 반달이 채 못된 달이었다.
잘레는 텅 비어있던 하늘에 홀쭉한 조각배 모양으로 나타나 몸집을 키우고 있는 달의 모습에서 차오르는 시간을 읽어 냈다. 그렇게 차오르는 시간도 보름달을 지나면 다시 비어 갈 것이고 끝내는 그믐달이었다가는 모습조차 감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 달 뒤편에 파르쉬드가 머무는 영혼의 집이 있니더. 그가 지금 내를 보고 기운 내서 잘 살아내라고 하니더. 거뭇거뭇한 그림 속에 그이 말이 적혀져 있는 거제요. 저 달이 보름의 시간을 견디며 차고 기울기를 거듭하지만, 끝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이도 그렇게 늘 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제요!
잘레가 그녀 특유의 높은 목소리로 말하며 맑게 웃었다.
-니, 시인이 될라는 기가?
베흐자트가 눈을 흘기며 조금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와요! 내는 시인이 되만 안되니껴? 이래 봬도 처녀 적엔 순회교사로부터 말을 잘 짓는다는 소릴 듣기도 했니더.
잘레가 입술을 삐쭉거리며 베흐자트의 어깨 위에 턱을 얹었다.
-맞다! 로샤낙 언냐, 그 달의 노래 좀 불러주소! 내는 언냐의 그 노래를 듣고 있으마 맘이 펜안해 집디더.
-내도 그렇다! 싱아, 오늘 한 분 불러주소. 달빛도 맞춤이구마요!
잘레와 베흐자트가 로샤낙의 소매를 잡아끌고 있었다.
로샤낙의 거친 목소리로 불리는 달의 노래가 듣는 이의 가슴을 후비며 청량한 바람결을 따라 감춰진 정원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직 반달이 되지 못한 달이 빠르게 흘러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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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낙영(글쓴이,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