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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저물녘 하늘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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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27

posted Nov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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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1

 

옛날에 말입지, 날개를 펼치면 아홉 자나 되는 수리 한 마리가 있었댑지. 이 수리가 날갯짓을 허믄서 날아오르자, 이를 보고 있던 조막새 한 마리가 한뼘새에게 말했습지. '우리는 이 작은 수풀 속을 날면서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먹이를 얻고 가지에 앉아 쉬곤 하지. 저 수리란 녀석은 불쌍하기도 하지. 큰 몸집에 걸맞은 먹이를 찾느라 저렇게 높은 곳까지 힘들게 날아올라야 하고 또 멀리 날아가야 하니 그 수고가 자못 크지 아니한가?' 펭생 작은 수풀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작은 새가 창공의 수리가 내려다보는 광활한 시상의 아름다움을 어찌 알겠습뎌. 우리가 허는 공부란 것도 그러합지. 높고 넓은 시야를 개지지 못허믄설라므네 한갓 조막새의 꼴을 못 면헌다 그게라?

 

스승은 아베스라에게 수리의 눈과 날개를 주문했다. 그것은 본질을 보라는 것이고 안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베스라는 멀리 설산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생각해보니 '자신의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이룬 사람의 가르침이나 본은 자신이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긴요한 참고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나다움'의 부재 속으로 미끄러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세상에 드러나 있는 도의 본질은 서로 다른 이름표를 달고 있는 하나가 아닌가 여겨지는 지점에서 혼란이 생긴다. 햇살을 받은 설산의 모습을 담고 있는 둠벙의 물그림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오슈나르가 자신의 리듬을 그가 믿는 절대자의 리듬에 얹어 불변의 차원으로 떠난 후, 아베스라는 의식이 진공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사유는 무력화되었고 육신은 무기력했다. 니루샤를 둘러싼 황무지에 내리꽂히는 무지막지한 햇살이 숨통을 조여왔다. 어쩌면 거대한 서사를 마주한 뒤에 일어나는 인식의 재구조화가 느릿한 리듬을 타고 세포 하나하나를 통해 일어나고 있었던지 모른다. 아베스라는 니루샤를 떠났다. 오로지 두 발로 디뎌 걸으며 광막한 공간을 헤치고 싶었다.

관용의 제국이라 불리는 거대한 땅 북서 끝에서 남동으로 끝없이 이어진다는 험준한 자그로스 산줄기의 어디쯤에 몸 하나 뉠 만한 토굴이 있지 않을까 여겼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어떤 날은 아오슈나르의 마지막 날이 머릿속을 짓눌러 시야를 가렸고, 또 어떤 날은 낯선 풍광에 어리둥절해서 분별이 흐려졌다. 그러다 잠시 상쾌한 기분이 들면 비로소 스승님의 벼락같은 질문이 생각나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그렁저렁 걷다 보니 며칠을 걸었는지 셈조차 되지 않았다. 대략 스무날은 넘게 걸었다고 여기며 지쳐갈 때쯤에 산자락에 나 있는 토굴 하나를 발견했다. 풍화되어 거친 표면을 가진 암산이었다. 토굴 주변이 황량하기는 지평선과 완만한 사구가 보이던 니루샤의 풍경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곳은 경사가 급한 사면의 능선이 겹쳐졌고 군데군데 키 작은 관목들과 얼핏얼핏 작은 초지가 흩뿌려진 녹색 보자기처럼 보였다.

멀리 보이는 설산의 앞쪽으로 여러 겹으로 포개져 펼쳐진 산줄기들이 햇살을 받으면 황금빛으로 빛났고, 고도가 차츰 낮아지면서 제법 널따란 초지 위에 점점이 양 같은 짐승들이 보였다. 산줄기 사면이 완만해지는 틈을 따라서 혹은 계곡을 따라서 아무렇게나 풀려 펼쳐진 실타래 같은 길이 끝 모를 곳으로 이어지다 돌연 사라지고 있었다. 출발 전 바흐만 사제로부터 여러 겹으로 얽히고설키며 가로지르는 자그로스의 험로를 혼자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니 좀 멀더라도 해안을 끼고 돌아가는 길을 고려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바에야, 유행하는 수행자가 일부러 편한 길을 찾아 걷는 것도 꼴사나운 일이라 여겼다. 아베스라가 돌아가는 길을 내켜 하지 않자, 친절한 바흐만은 숙식만큼은 꼭 케르반 사라이에서 하도록 신신당부를 하며 은화를 챙겨 주었다.

-아이고, 이건 가당치 않습니다. 탁발하는 수행자가 은화를 지니다니요?

아베스라가 웃으며 손사래를 치자,

-바랑 깊숙이 감추어 두면 반드시 쓰이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지요.

라며 바흐만은 말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구?' 아베스라는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들이대는 바흐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은화를 소리 나지 않게 감싸 담은 작은 주머니를 아베스라의 바랑 깊숙한 곳에 묶어 고정하고 있었다. 바랑은 우샤가 정성스럽게 구운 난으로 채워졌고, 바하락이 정갈하게 소독한 양가죽 물주머니가 작은 것은 오른쪽 허리춤에 좀 큰 것은 어깨를 가로 걸쳐 메는 것이었다. 귀슈탐은 잘 마른 삼나무 가지를 손질한 네 아르사니가 조금 못 미치는 목장(木杖)을 준비해 주었다.

그렇게 니루샤를 떠나 목적지 없는 유행을 시작했다. 다만 전에는 사막의 현자를 찾아 헤맨 길이였다면, 이번엔 육신 어디엔가 숨어있을 자아와 섭리가 작동하는 우주의 내력을 찾아볼 요량으로 몸을 깃들여볼 만한 곳을 얻으러 가는 길이었다. 아베스라는 알지도 못하는 현자를 찾아 가르침을 전해 받으려 한 짓이 다만 초원이나 사막의 평평한 길을 걷는 행위 같은 것이었다면, 험하고 좁은 산길이나 계곡을 따라 걷는 것은 단단한 향나무에 톱질하고 끌질을 해서 자기를 새겨 넣는 작업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결과물을 보장할 수 없다. 나무에 생채기를 내고 톱과 끌만 무디게 만드는 일일 수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남이 해주는 얘기에 내 몸을 욱여넣는 짓을 계속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은 아오슈나르의 마지막을 보면서 자신에게 되새겨 넣은 것이었다.

 

본래면목을 볼 줄 모른다면 금강석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휘황한 황금빛에 현혹하여 손에 쥔 금강석을 버리는 것과 같으니, 내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하면 남의 그림자를 손에 쥐려고 발버둥 치다 어느덧 늙어지고 눈앞에 죽음이 보이는 게라! 항차 그 몸뚱아리를 어디에 쓸고!

 

스승의 오랜 도반 간다르바는 수행자들이 저마다 다른 근기를 가졌음에도 옛사람의 방편만을 쫓는 풍조를 개탄하며 주장자를 휘둘렀다. 오랫동안 강가(Ganga)1)의 땅에 머무르다 돌아온 그는 초원에서 나간 도가 신두의 동쪽에 이르러 크게 융성하고 있다며 분발을 촉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탐색과 탐구의 향방이 자신과 궁극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모색과 분투가 있어야 하며, 그럴 때마다 무엇인가 들여다보고 흉내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노사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에서 그치고 아류에 만족하면서 도인을 자처하는 얼치기가 되지 말라는 경계였음을 아는 데에도 시간은 필요하였다.

 

아베스라는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고 가부좌를 틀었다. 아직은 부드러운 햇살이 그의 눈을 간지럽히고 코끝에 떨어졌다. 간밤에 그의 꿈을 어지럽힌 불새는 저 태양의 찬란함 속에서 날개를 접고 앉아 대지의 신산함을 반추하고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세상을 선과 악의 쟁투로 보는 '마즈다야스나'는 사람들에게 선의 편에 설 것을 강제하지는 않았다. 인간의 의지에 맡기는 대담한 길을 열었는데, 순전한 의지로 선을 선택함으로써 악에 맞서는 궁극의 존재인 아후라 마즈다와 연합하여 다시 올 '프라쇼게레티(Frashokereti)'2)를 꿈꾸게 하였다. 그 꿈을 가지고 '이 세상'을 견디게 하는 힘을 쌓아 가라고 그들은 말한다.

'아오슈나르는 꿈을 이루었을까?'

 

···스승 쿠루쉬의 절망을 보았을 때,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아오슈나르는 회한에 찬 목소리로 스승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분은 엄격한 의례와 탁월한 지혜로 동도들과 교단과 지역의 지도자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으니까요. 제자들에게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알보르즈 산정의 철목 같은 모습으로만 보였으니까요. 우리에게는 한없이 두려운 존재였어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후광이 그분과 함께했었죠.

 

'똑바로 보아라, 이게 내 모습이다.'

쿠루쉬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자신의 고통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달관한 사람에게서나 보일법한 배광의 광휘 따위는 사라지고 늙고 초라한 노인의 몸부림만 보였다.

아오슈나르는 충격에 빠졌고 두려움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스승의 모습은 등불에 흔들리는 괴이하고 불안정한 그림자로 벽에 모사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알겠느냐?'

쿠루쉬는 애써 흐트러진 매무새를 다잡으며 서서히 평상심을 찾는 듯했다.

'우리는 절대자이신 아후라 마즈다와 대스승 자라투쉬트라의 가르침을 전하고 전례를 거행하고 사제이지만, 동시에 아샤의 본질과 섭리를 찾아가는 수행자로서의 본분도 잊지 말고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쿠루쉬는 눈을 감았다. 감긴 눈꺼풀 너머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듯했다. 그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치열하게 수행하던 친구 사제가 있었다. 나오자드(Naozad). 그는 별의 운행을 통해 우리가 신의 시간 어디쯤에 서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믿었지. 그 시간을 알 수 있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분명해진다고 했어. 그렇게 되면 세상은 다에바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고 믿었지. 그는 성실하고 엄격했어. 세속 사제로 사는 것에도 투철했고 수도 사제로서도 훌륭한 본을 보였다네. 그런 그가 돌연 종적을 감췄다네.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옮겨 간 것 같이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질 않았어. 누구도 그의 행방을 아는 자가 없었어.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후에 거짓말같이 그의 소식이 들려왔다네. 돌연 노래의 주인공으로······'

 

빛이란 빛 모도 흑암에 잠겨

그리메도 생기잖는 세월

문득 산정에 홀로 서

형형한 눈동자에

별빛 모두어 담는 이가 있었다네

암운은 날로 짙어 하늘을 덮고

험악은 인간세에 범람하니

문득 산정의 별빛 담는 이

두 손 가득 빛을 담아

나비가 춤을 추듯 사위를 그리난다

한 발 들어 허공중을 사뿐히 즈려밟고

땅에 디딘 발일랑 지그시 눌러

허공엔 빛을 뿌려 빛우물 그려 넣고

흑암일랑 깊은 땅속에 봉인하네

아으 어이하랴

아으 어이하리

님은 그예 몸을 흩어

오색 향기 짙은 빛으로 하늘로 돌아가네

어이 덩더둥셩 어이 덩더듕셩

서녘 하늘 또렷이 새 별이 떴구나.

아으 어이하랴

아으 어이하리

님 잃은 세상 사람 어이하리

하릴없이 하늘만 치어다 보며 탄식했다네

등장 가세 등장 가세

자비하신 지혜의 신3)께 등장가세

나오자드 님 돌려달라

창조주께 등장가세

부질없다 부질없다

주의 영광 드높인 일

다만 기뻐 찬양할 뿐이라네

등장일랑 그만두고

기뻐 노래 하리로세

 

'저자에는 어느새 나오자드를 기리는 노래가 골목마다 들렸다네. 아이들로부터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그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기이한 일이었지. 그렇게 순식간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어. 나는 노래가 처음 불린 곳을 찾아보려 했지.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어. 처음 노래를 지어 부른 사람을 찾는다면 나오자드의 행적을 알 수 있으려니 했는데 도무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오리무중이었어. 수십 개의 샘이 저마다 강의 시원지라 여겨지는 상황이었지. 어떤 지역에서는 '찬(讚)나오자드가'라 불리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사(思)나오자드가'라 불렸는데, 따로 제목도 없이 그냥 '나오자드 노래', '나오자드의 노래'라고 불리는 곳이 더 많았어. 민간가요라는 게 원래 그렇지. 무지렁이 백성들의 가슴에서 나와 불리다 혹은 그대로 전해지기도 하고 혹은 샤먼들을 통해 다듬어져 전해지다가 가객이나 문자를 아는 촌노들에게서 정리되어 전해지기도 하는 거지. 그것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고 개천이 모여 강을 이루듯 하나로 엮여 불리기도 하는 게야. 그러니 처음 노래를 지어 부른 사람을 찾기란 애당초 불가능했던 거지. 그래서 유독 일상적으로 그 노래가 불리는 마을을 찾아다니며 노래의 배경을 찾기 시작했어. 그러다 카르케흐 협곡 산중의 작은 마을에서 한 촌노로부터 어느 탁발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필시 나오자드의 얘기였지.'

 

그러니께 한 십여 년 전쯤 되었으까나? 저 위 콜랑 산꼭대기에 현자가 나타났다고 인근 마을에 무신 전설처럼 야그가 돌았는디, 그 사램이 탁발을 하고 댕김서 심든 사램들 야그도 들어주고 아픈 사램은 고쳐두 주고 했다는 것이제잉. 헌디 그 산꼭대기까정 갈라먼 질든 사램도 중간에 한 번은 밤을 지내야 허는디, 그이는 단박에 오르락내리락했다는 거 아니겄소. 그래 궁금증이 나먼 참덜 못 허는 발 빠른 젊은 것 하나가 몰래 뒤를 쫓아 나섰다 안 허요. 근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더라는 겨. 이눔두 엔간히 질긴 눔이라서 아주 작정하고 산속에서 잠을 자먼서꺼정 그이가 세 번인가 탁발을 댕겨올 때마다 뒤쫓아서 겔국 거처를 알아냈다 그것이제. 그눔이 지켜보니 낮에는 너럭바위에 앉아 해를 안고 기도허고 멩상을 허고, 밤엔 아주 느린 동작으루 밤하늘을 향해 무신 체조인지 춤인지 모를 몸짓을 허더랍디다. 헌디 밤이 깊어지자 참말로 기이헌 일이 생기더라는 게요. 그이의 몸이 한 질쯤 떠오르더니 허공을 딛고 선 모습으루 두 팔을 벌리니께 하늘에서 눈을 못 뜰 정도로 강한 빛이 쏟아져 그이의 몸 속으루 빨려 들어가더라는 거이요. 그 모습이 너무 황홀해서 숨도 쉴 수 없었다 안 허요. 마을로 돌아온 갸는 넋이 빠져 사나흘은 끙끙 앓았는디, 그라고 나서는 사램이 완전히 달라져서 심들고 어려운 이웃들 챚어 댕김서 도와주고 그랬다는 겨. 마을 사램덜이 모다 놀랬제. 그 현자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녀 알믄서도 모른 척 한 게 틀림없다는 게 마실 사램덜 중론이었지만서두, 암시랑토 않게 탁발을 댕기고 아픈 사램 낫어주고 가심 답답헌 사람 야기 들어주고 그랬제요. 그렇게 그이는 마을에서 먹을 것을 구허고, 마을 사램덜은 그이가 허는 야기를 들음서 위안을 받고, 거 멋이랑가 이 시상을 잘 사는 법이라는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실을 해야 허는 이유도 배우고 그랬제. 기도 험서 맘 다스리는 것도 배우고 시상 끝에 있다는 새 시상에 대해서도 배웠다요. 쪼매만한 마실이지만 마실이 달라졌는 게라요. 그이는 여그가 천국이라고 했당께? 그렇게 펭화롭게 지냈는디, 사달이 났제. 오래전에 마을을 떠나 행방도 알 수 없던 조학이라는 눔이 얼골에 칼자국을 달고 나타난 겝니다. 그눔이 마을에 들어오고 얼마 안 있다가 쩌그 웃말 처자가 겁간을 당허는 사건이 있었소. 처음 겪는 일에 마을 인심이 갑자기 흉흉해졌지요. 그눔이 두 번째로 젊은 아짐씨를 강제허는 걸 발견한 서방이 몽둥이를 휘둘렀으나, 험한 세월에 단련된 데다 칼까지 휘두르는 데는 이겨낼 수 없었다우. 마실 청년들이 둘러싸고 대들었지만 포악한 칼질에 주춤하고 있었지라. 그때 마참 그 마구쉬 님이 오셨능게라. 늘 그랬듯이 탁발을 허러 오신 겐디 그 난리를 봐분 것이요. 아, 그 현자님 춤사위 겉은 무공으로 단박에 그눔의 칼을 빼앗고 제압해버렸는디, 그래서 다 끝난 줄 알었는디, 그눔이 갑재기 품에서 단도를 꺼내 돌아서 가는 마구쉬 님의 등에 꽂아부렀소. 놈이 얼핏 사악한 미소를 드러내는디, 아, 그렇게 끔찍한 장면은 본 적이 없소. 우리는 모두 기함을 했제. 을매나 놀랬겄소. 그란디 그 현자, 마구쉬 님 말이요, 칼이 꽂힌 채로 몸을 돌려 손바닥으로 놈의 가슴을 쳐 불더만. 아니, 손바닥에서 강한 빛이 쏟아짐서 놈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던 것이요. 그눔이 몸을 돌리며 쓰러지는 디, 얼골이 반은 일그러지먼서 흑색으로 변해불고 반은 편안한 모냥으루 밝아지던 게라요. 그렇게 조학이란 눔은 죽어뻔졌소. 그란디 우리 눈앞에선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 거이요. 등에 꽂힌 칼이 앞 가심까지 나와버린 마구쉬 님이 선채로 두 팔을 허공중에 벌려 뻗으니, 난 펭생 그런 빛은 보덜 못했소, 두 팔을 공중에 벌려 뻗응께 무신 꽃가루가 쏟아지듯기 마구쉬 님 몸 위루 빛이 뿌려지는디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었능게라. 나는 무식혀서 사물의 이치를 잘 알던 못 허지만, 빛이란 것이 고런 식으루다 느리게 화분(花粉)이 쏟아지듯 헌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소. 순식간에 번쩍허구 지나가 버린다고 알고 있었지. 어쨌거나 화분 같은 빛가루를 홈뻑 받은 마구쉬 님의 몸에서도 우덜이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루 강한 빛이 뿜어졌소. 그러더니 그이의 몸은 사라져뿔고 그 자리엔 채운(彩雲)만 뭉게뭉게 피어 있더라는 게고. 마실 사람덜은 정신을 채릴 수 없었다요. 뭐이헌티 홀린 거 같았당께. 그란디 누군가 소리칩디다. '워매, 저거이 웬 해골이다요!'. 아, 조학의 그 악마 겉은 몸뚱아리가 살뎅이는 녹아뻔졌는지 읎어지고 거무튀튀헌 뻬들만 남아있습디다.

 

'내 친구 나오자드는 별이 왜 같은 궤적을 그리며 하늘을 가르는지 알아냈을 것이다. 그 뜻이 어디서 나왔으며 그게 세상에서 어떻게 읽혀야 하는지도. 사제의 가문에서 태어나 세속 사제로만 머물 수 없었던 그를 이해하는 데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는 게 믿을 수 없어. 그게 내 한계지. 신의 뜻을 이해하는 것과 신의 뜻을 살아 내는 것은 서로 다른 세상을 갖는 것이다. 작동하는 방식이나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다른 세상이지. 나오자드는 그 둘을 다 성취했다. 나는 이해하고 펼치는 데서 수레바퀴가 멈추었으므로, 고통의 근원은 찾았으나 그걸 소멸하는 방도를 찾지는 못한 것이다. 아오슈나르여! 나는 네가 나와 다르길 바란다. 나오자드를 정면교사로 삼아라.'

 

···내 스승 쿠루쉬는 아베스타와 가타에 정통한 석학으로 추앙받는 분이었소. 사제들이 모호한 언어를 만나면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였고 그의 해석을 표준 삼았소. 언제나 표준이라는 권위를 상징하는 분이었기에 스승이 그런 고뇌를 안고 살았는지 알지 못했다오. 당신의 지식을 전하는 데엔 엄격하였으나, 제자들이 그것을 수용하고 펼치는 것에는 제한을 두지 않으셨지요. 아마 수도자의 덕목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소. 끈질긴 그리고 깊은 탐색을 위해서는 사유의 제한이 없어야 한다고 여기신 게지요. 누구라도 남다른 사유를 펼쳐 보이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소. 세속 사제의 본분을 상기시켜주시는 것으로 터무니없는 길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셨을 뿐이었지. 내가 전도 사제의 길을 선택했을 때, 스승은 아주 기뻐하셨소. 수도자로서의 여지가 넓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오. 나는 그렇게 존재할 수 있었던 거요.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내 친구 사제 소흐랍이 나오자드 사제의 제자였다는 것이오.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었던, 시간의 리듬을 찾아 고뇌하던 신학교 교수 말이오. 나는 그들이 애써 가꾼 나무의 좋은 열매를 따 먹은 것이오. 내 몸속엔 그들의 사유가 요동치며 흐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내 살과 피가 거기서 만들어져요. 그러니 내가 꿈꾸는 일은 반드시 일어날 예정된 사건일 뿐이오.

 

아베스라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갈증은 입안만을 헤집는 것이 아니었다. 가슴이 타들어 가고 머릿속엔 사막의 모래바람이 거칠게 회오리를 만들고 있었다. 코끝에 떨어지던 햇살은 어느덧 정수리에 꽂히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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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갠지스강을 의인화한 여신. 원래 비슈누의 아내였으나 뒤에 시바 신과 결혼하였다.

2) 최종 갱신. 세계를 초기 상태로 완벽하게 되돌리는 것을 의미.

3) 아후라 마즈다를 가리킨다.

오낙영 사진.jpg

오낙영(글쓴이,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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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20

    굴바하르가 돌아오고 열흘쯤 뒤였을 것이다. 행정관 카마란이 말을 달려왔다. 그는 읍내를 떠도는 유녀 십여 명을 니루샤에서 받아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만약 그렇게 해준다면 읍청으로서는 니루샤가 정기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정중하고도 간...
    Date2025.04.08 By관리자 Views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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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19

    *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을 등불로 삼아 스스로에 의지하며 살아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 진리에 의지하라. 아베스라는 동방의 성자 고타마로부터 전해져 온다는 경구를 읊조렸다. -아오슈나르여! 거기서 도를 보았소이다 그...
    Date2025.03.14 By관리자 Views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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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18

    굴바하르는 충격이 좀 컸는지 며칠을 자신의 숙소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종일 우두 멍하니 누워 뚫린 천정의 빛우물을 쳐다보다, 우샤가 보리를 불려 끊여낸 죽을 들고 들어가면 겨우 일어나 바싹 구워진 난을 뜯어 그것을 떠먹었다. 다행히 그녀의 식욕은 여...
    Date2025.02.08 By관리자 Views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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