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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저물녘 하늘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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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34

posted Jun 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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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크라(전차)를 탄 전사 아베스라는 외뿔 코뿔소의 가죽으로 지어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마부는 아귈라였고 황금빛 갑옷을 입은 두 여인 베흐자트와 잘레가 방패와 언월도를 들고 그의 양옆에서 호위하고 있었다.

전사 아베스라는 태연한 척 차크라의 가운데에 서서 활을 높이 들고 있었으나 정작 두려움에 그의 행동은 굼떴으며 무릎에서 힘이 빠져 있었다.

마부 아귈라는 아베스라가 두려움에 빠져 있다는 걸 알았다.

“아베스라여! 무릎과 허리를 곧게 세우고 두 눈을 크게 뜨십시오. 당신의 적은 코끼리를 탄 마구니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용기 또한 마음속에 있답니다. 그러니 두려움에 눈길을 주지 말고 용기를 향해 손을 뻗으십시오.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화살이 대각(大覺)의 문을 여는 열쇠라오.”

“아, 그러나 아귈라 현자여! 나는 두렵습니다. 나는 탁월한 전사가 아니란 걸 알기에 감히 간디바1)를 들 자격도 없으며, 지혜가 부족하기에 야크샤의 질문2)에 답하지도 못합니다.” 

아베스라는 지축을 흔들며 달려오는 코끼리에 압도되고 있었다.

“아베스라 님! 당신은 지난 두 번의 싸움에서 멋지게 승리했었죠? 그 승리의 기억을 떠올리세요. 그리고 지금은 당신 혼자가 아니랍니다. 마부 아귈라는 지혜로 그리고 나 베흐자트와 잘레는 언월도와 방패로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베흐자트가 아베스라에게 용기를 불어주려 애썼다.

“게다가 당신의 스승이 와 있는 게 보여요! 그가 코끼리 위의 마구니를 향해 활을 쏘고 있어요.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잘레도 언월도를 쥔 손을 흔들며 아베스라를 응원하고 있었다.

“자! 코끼리의 측면으로 달려갈 겁니다! 준비하세요!”

아귈라가 고삐를 늦추고 채찍질로 말들을 재촉했다. 차크라는 바람처럼 달려나갔다.

아베스라는 간디바의 줌등을 움켜쥐고 살을 절피에 꽂았다. 그리고 서서히 시위를 당겼다.

기다란 코를 흔들며 달려오는 거대한 코끼리의 등에 앉아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구니의 얼굴이 보였다.

“오, 아름다운 전사 아베스라여! 지난 두 번에 걸쳐 너는 나의 유혹을 멋지게 물리쳤도다. 오늘 마지막 일전을 통해 나는 너를 기어이 내 발아래 두고자 한다. 승패는 정해졌다. 나는 홀로 왔건만 너는 세 명의 여장(女將)을 데리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규칙을 어기는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너는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며, 규칙을 어겼다는 불명예도 안게 될 것이다. 내 눈엔 오금이 저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네 모습이 보이도다. 가련하구나, 전사 아베스라여!”

마구니는 아베스라를 조롱하고 있었다. 평상시 우레 속에 공포를 가득 담아 내지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는 아베스라의 공포를 읽고 풀잎에 사뿐사뿐 내려앉는 이슬같이 촉촉한 목소리로 어르듯 조롱하고 있었다. 

활을 쥔 아베스라의 손목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시위를 당기고 있는 어깨의 근육이 이완되고 있었다. 그의 목줄기를 타고 교교한 달빛을 담은 이슬방울 같은 마구니의 목소리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문득 요의(尿意)가 느껴졌다.

아귈라는 아베스라에게 엄습한 요의를 읽고 있었다. 그의 링가가 발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구니의 교활함에 웃음이 나왔다.

“아베스라여! 아베스라여! 마구니의 교활한 언사를 듣지 말고 당신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십시오. 당신이 진실 앞에서 맹세하였다면 그 말은 이루어질 것이요, 거짓에 현혹하여 말을 혼란하게 한다면 당신의 화살은 당신의 심장을 향할 것이오. 마구니는 발현하고 소멸하는 것이지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허상에 집착하면 진실의 신은 당신을 떠날 것입니다.”

아귈라는 오른쪽 말고삐를 당겨 전차를 마구니가 탄 코끼리의 왼쪽 옆구리를 향하게 방향을 잡았다. 전차가 방향을 잡자 고삐를 늦추고 채찍을 휘둘렀다. 

아귈라의 경고와 조언에도 아베스라의 자세가 엉거주춤하자 베흐자트가 언월도를 창꽂이에 꽂고 아베스라의 앞섶을 헤집어 발기된 그의 링가를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위해 발기했는가? 지금 사악한 마구니가 눈앞에 있고 그의 창끝이 네 목을 겨누고 있는데, 죽음이 들숨을 타고 들어가 네 심장을 찢어버릴 텐데, 네 무릎과 허리는 똑바로 서 있을 수조차 없고 활을 쥔 팔과 주먹은 꽃잎 위에 앉은 나비보다도 여리구나. 기껏 마구니가 내뱉은 몇 마디의 말에 요의를 느끼고 불현듯 발기된 네 링가는 무엇을 향하는가!”

베흐자트는 더러운 물건을 팽개치듯 손에 쥐었던 아베스라의 링가를 털어내었다. 그리고 아귈라를 향해 소릴 질렀다.

“아귈라여! 전속력으로 돌진하라. 아베스라는 요니 속에서 풀이 죽은 링가가 되었다. 사악한 마구니가 던진 몇 마디의 말에 요의를 느끼고 발기한 것은 시든 꽃잎에 앉아 수분하려고 애쓰는 등에와 다르지 않으니, 우리가 저 마구니를 지워버리자! 잘레여, 언월도를 높이 쳐들어라!”

베흐자트는 아베스라를 도발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베스라의 근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베스라여! 이건 당신의 문제예요. 아귈라와 베흐자트 그리고 내가 마구니를 없애버리더라도 당신의 승리가 될 수는 없어요. 당신의 승리가 될 수 없다면 마구니가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조력자일 뿐,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아베스라여, 이빨을 드러내고 간디바를 쥔 손에 힘을 불어넣어요. 당신의 의지가 당신의 무기랍니다!”

잘레는 안타까웠다. 지난 두 차례에 걸친 마구니와의 싸움에서 누구보다도 용맹하였던 아베스라가 어찌하여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싸움에서 힘을 잃고 무너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 아베스라여! 영예로운 전사여! 당신은 설표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졌으면서도 주저하고 있군요. 당신의 눈에 씌워진 두려움 때문에 해야 할 일을 잊었어요. 오, 가여운 사람! 라테슈타르(Rathaeshtar)3)로 태어났으나 아트라반(Athravan)4) 처럼 행동하는군요.”

낙망하는 잘레의 말이 아베스라의 심장을 꿰뚫었다. 단단한 주저의 벽이 뚫리면서 심장을 감싸고 있던 마구니의 사악한 기막(氣膜)이 파열음을 내며 갈라졌다. 

아베스라는 비로소 자기를 찾았다.

아베스라는 고개를 들어 코끼리 등에 앉아있는 마구니를 바라보았다. 그가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고 득의양양 만면에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마구니를 보자 속이 뒤틀려왔다. 발바닥에 힘이 들어가고 다리의 근육이 그 힘을 받아 분기탱천하였다. 간디바의 줌등을 쥔 손아귀가 꿈틀거렸고 시위를 당기는 어깨가 힘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사악한 그림자여, 실체도 가지지 못한 마구니여! 하늘을 보라! 너를 지탱하던 별이 빛을 잃고 사그라지는 게 보이지 않느냐?. 내가 잠시 눈이 어두워져 전사의 본분을 망각하였으나 사악한 너를 향한 가슴 속 분노의 불길을 꺼뜨린 적이 없고, 잠시 너의 감언에 마음이 흔들린 적이 있으나 진정한 자비란 악을 섬멸하는 것임을 잊지 않았도다. 이제 나의 팔뚝이 잠자고 있던 힘줄을 일으켜 간디바에 걸린 살을 당기리라. 그리하여 침묵을 견뎌내던 전사의 핏줄을 격려해 전의를 돋워 준 누이들에게 승리의 포도주를 바치리라!”

아베스라가 꼿꼿하게 몸을 세우자 그의 차크라가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고삐와 채찍을 쥔 아귈라의 손이 현란한 움직임으로 말을 몰았고, 방패와 언월도를 쥔 베흐자트와 잘레의 두 팔이 근육을 담금질하였다.

돌연 빛나는 투지를 혁혁한 전공에 빛나는 깃발처럼 내걸고 맹렬하게 달려오는 아베스라의 전차를 보자 코끼리 위에 앉아 핏빛 구슬을 어루만지며 자신에게 희생당한 상랍의 수도자들을 떠올리고 있던 마구니가 긴장했다. 아베스라의 돌변한 전의가 구슬의 표면에 미세한 금을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싸움의 규칙이 흔들리고 있구나!”

마구니는 자신의 의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당황하고 있었다. 손바닥의 구슬이 동요하고 있었다.

“아베스라여! 너는 감히 내가 정해 놓은 규칙을 깨고 나를 욕보이려는구나! 애초에 이 싸움은 너와 나의 문제였다. 그런데 아녀자들을 끌어들여 그들로서 나를 이기려 하다니 부끄럽지 않으냐?”

마구니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아베스라를 향해 소리쳤다. 

곧 아베스라의 전차가 우레와 같은 굉음을 내며 달려오자 그가 탄 코끼리가 움찔하며 멈칫거렸다. 호화로운 하우다(haudah)5)가 흔들리며 마구니의 몸이 균형을 잃었다.

“사악한 어둠이여! 규칙이란 것은 양방이 합의하여야 하는 것, 그러므로 네가 정한 규칙을 내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두 번의 싸움은 네 규칙을 내가 따랐으니, 이 싸움의 규칙은 내가 정하겠다. 나의 현명한 여인들은 조언할 뿐이다. 너를 죽이는 것은 내 손에 들린 간디바요, 내 의지이니 네 규칙에서 그리 벗어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제 너는 역청이 녹아 사라진 성벽처럼 허물어질 것인바, 네 모습은 세상에서 흔적조차 남지 않으리라! 내 심판의 화살을 받아라!”

아베스라 몸의 모든 근육이 간디바를 잡고 시위를 당기고 놓는 손목과 팔뚝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고 망설임도 없었다. 

마구니의 비명이 대기의 모서리에서 힘을 잃고 연기처럼 사라져갔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졌다. 과연 바스나(Vasna)6)의 법을 이어받을 만 하구나. 색을 멀리하는 것만으로 그 유혹에서 자유롭다고 여기는 수행자들은 정작 미미한 분내만으로도 수크라를 쏟아낸다. 색의 한가운데에서도 종지를 잃지 않는다면 과연 그것의 유혹을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너는 상랍의 수행자로서 그것에서 비롯한 권위와 아집을 내려놓고, 천하다 여겨지는 여인에게서 지혜를 구하였다. 한낱 당골의 딸이 내뱉은 말을 거두어 새겼다. 그것이 너를 구하였다. 크하하, 이런 식으로 패하고 사라져간 마기(魔氣)는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그게 나를 위로하는도다! 내가 정한 규칙이 나를 무너지게 하다니······, 생각지도 못 한 일이다. 흐하하, 아베스라여! 오늘 일을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 두려움을 마주할 일은 없으리라. 축하한다!

 

아베스라는 비록 세 여인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많은 수행자가 걸려 넘어진다는 마구니의 세 번째 유혹을 돌파했다.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기화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황당해하던 마구니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이 다만 마구니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혹에 무너지며 공력을 잃고 사그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수많은 수행자의 좌절 또한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마구니는 외부에서 찾아드는 수행의 훼방꾼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드러내는 욕망의 다른 모습이 아니겠는가. 

‘수행자가 자신이 세운 규칙에 매이거나 혹은 제 손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자만 때문이다. 상랍의 수행자가 보이지 않는 동아줄을 규율에 옭아매고 그것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선에 다가갔다는 망상을 가지게 되는 일은 흔한 일이며, 자신이 세운 율법이니 언제든지 제 손으로 허물 수 있다 여기며 자유의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마구니는 그 틈바구니에서 교만을 부추기고 하찮은 유혹으로도 그를 파멸시킬 수 있다. 공덕을 쌓는 것은 분투의 과정이지만 그것을 허무는 것은 찰나의 쾌락같이 번개가 한 번 내리치는 시간이면 족하다. 납자여! 너는 어디에 서려는가?’

스승은 수행자의 교만이야말로 마구니의 유혹을 부르는 취기(臭氣)라 말했다.    

 

아베스라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일어섰다. 그가 마구니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었던 것은 로샤낙의 격려와 조언이 아니었다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치 속에서 잠에 빠져 있노라면 결단코 나비가 될 수 없다는 따끔한 격려와 싸움의 규칙을 바꿔버리라던 일갈은 내면의 견고한 보호막에 안주하고 있던 원력(願力)을 깨웠다. 어찌 보면 터무니없다 여겨졌을 로샤낙의 말을 따라 준 베흐자트와 잘레의 도움도 가볍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베스라가 몸을 추스르자 땀에 젖은 얇은 무복이 몸에 달라붙어 몸매가 거의 드러나 있던 로샤낙과 반라로 엉켜있던 베흐자트와 잘레도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켰다. 그녀들은 힘겹게 뜬 눈을 통해 서로의 낯선 모습을 보고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베스라가 폭이 넓은 천을 가져다 세 여인에게 둘러주려 하였다.

-쪼매만 지다리시더.

로샤낙이 다급한 목소리가 아베스라를 제지하였다.

-마구니도 사라졌고, 시님의 번뇌도 사라졌지만, 한 가지 남은 게 있니더!

작은 목소리지만 단호한 로샤낙의 목소리에 모두 놀랐다. 그리고 그 한 가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마침표를 찍어야 하겠니더. 속계에 몸을 담그고 있는 우리는 맺지 않으면 미련이라는 게 자꾸 뒤통수를 잡아끈다 안 하니껴?

밑도 끝도 없는 수수께끼 같은 로샤낙의 말을 이해한 사람은 없었다. 난해한 문답에 익숙해 있던 아베스라조차 감감했다.

-그게 뭐죠?

-그래, 그기 먼데?

-우리 네 사람이 지금 이 상태로 한까분에 껴안는 기제요! 옷을 채려입기 전에 마지막으로!

로샤낙의 말에 어리둥절해 하던 아베스라는 안도했고, 베흐자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잘레는 납득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기 단가? 그러니께네 그럭하고 끝이라?

잘레는 뭐가 미련이 남은 것처럼 말끝이 길었다.

로샤낙이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확실한 마무리로 자꾸 이어질지도 모르는 망상과 허상을 떨쳐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지 자신을 잡는구마요!

옷을 갈아입으며 로샤낙이 힘들어했다. 온몸이 몽둥이찜질을 당한 것처럼 무겁고 아팠다. 굿이 끝나면 며칠씩 누워 꼼짝도 못 하던 어미가 생각났다. 그때는 그게 까닭없이 미웠었다. 목이 메어왔다.

-싱아는 천생 당골인갑소! 어릴 때 어매가 하는 걸 본 것밖에 없다더니 우예 그래 잘 하니껴?

잘레가 처음 본 사람의 경이로움을 대하듯 눈을 반짝이며 로샤낙을 바라보며 말했다.

-맞다. 싱아가 마구니를 향해 호령할 때는 카리아의 아르테미스7)가 환생한 줄 알았소! 마구니도 놀랬는지 움찔하던걸?”

베흐자트는 새삼스레 로샤낙의 얼굴을 보며 경외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아귈라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 안 해봤는가 베?

베흐자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하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당골은 타고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맹글어지는 거이시더. 신내림만 받으먼 선무당이 되는 것이고 진짜배기가 될라먼 솟을굿8)을 해야 하는 데 신과 온전히 소통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인 기라요! 

로샤낙은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시상엔 응어리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많잖은가 그 말이제요. 누군가는 그걸 풀어 줘야 하지 않겄니껴? 

베흐자트는 뭔가 아쉬운 것 같았다.

-마구쉬 님도 있고, 시님도 있고······

-그런 제도 안에 있는 분들을 찾아갈 수 없는 사람덜이 있잖니껴? 그 자신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낮은 땅의 사람들이 제도 교당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제요.

-어매는 불행을 옷처럼 걸치고 살았니더. 어매한테 왔던 사람들은 떠날 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가볍게 갔지만, 어매는 오히려 자신의 불행에 그들의 불행을 더 얹어 껴입은 것처럼 힘들어 했제요. 어린 내 눈에는 그 삶이 견디기 힘들었니더. 당골은 천형(天刑) 같더니더. 물론 어매는 그렇게 생각한 거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시더.

로샤낙의 덤덤한 말투가 베흐자트의 가슴을 무겁게 적셨다. 그녀는 공연스레 미안해져서 로샤낙을 힘주어 안았다.

로샤낙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세 분께서는 좌정하시지요.

세 여인이 평상복으로 입성을 갖추자 아베스라가 자신은 선 채로 여인들에게 앉기를 청했다. 

세 여인이 엉거주춤 앉아서 겸연쩍어하자 아베스라가 다가와 자세를 바로잡고 고개를 쳐들게 턱을 들어 고쳐주었다.

-고, 고개는 왜 이렇게 쳐들어야 하는 건지 모리겄니더.

잘레가 삐질삐질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면서도 고개를 쳐드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며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세 분이 주인공입니다.

아베스라가 세 여인 앞에 서며 말했다. 그러더니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쥐고 허리를 숙였다. 이어 세 번의 큰절을 했다.

-남사시럽구로 또 큰절이니껴!

베흐자트와 로샤낙이 손을 들어 만류하였지만, 잘레는 치켜든 턱 밑에 엄지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지는 당당하게 시님의 절을 받을라니더. 우리가 삿된 기운을 이깄다 아이니껴?

-잘레의 말이 맞습니다. 이번에 제가 마구니의 유혹을 물리친 것은 순전히 세 분의 덕이니 절을 받으셔도 마땅합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라 한 것입니다. 제가 ‘처음의 도’를 얻게 된다면 저의 스승이신 오조와 더불어 세 분의 공덕일 겁니다.

아베스라가 두 손을 바닥에 짚은 채로 세 여인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로샤낙 싱아의 수훈이 절반 이상이시더.

베흐자트가 아베스라의 동의를 구하듯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로샤낙의 조언과 아이귈의 영력이 아니었으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고, 베흐자트와 잘레의 투신이 아니었더라면 마구니가 혼돈에 빠지지 않았을 겁니다.

아베스라가 베흐자트의 견해에 동조하였다.

-그렇지 않니더. 원래 결정적인 수는 싸움의 당사자보다 훈수꾼에게 더 잘 보이는 법이 아이니껴? 그럼에도 저는 어디까지나 조력자였을 뿐이었고, 아베스라 님의 끈질긴 도력이 아니었다면 모두 허사였을 거니더. 물론 파르바르딘의 두 꽃이 마구니보다 더 요염했던 게 주효했니더. 홀리러 왔다가 홀린 게 되어 버렸으니 말이시더. 특히 잘레의 교성은 그 허깨비가 견뎌낼 수 없었을 거니더!

로샤낙의 마지막 말에 잘레는 얼굴이 빨개지며 당황해하였다.

파르바르딘의 지붕 위를 지나가던 손바닥만 한 먹구름이 흩어지며 형체를 잃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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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디바(गाण्डीव, Gandiva)는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영웅 아르주나가 사용하던 활의 이름이다.
2)  『마하바라타』에서 숲의 정령인 야크샤(Yakṣa)가 판다바의 맏형 유디슈티라에게 지혜와 윤리에 관한 질문을 한다. 이 문답은 『마하바라타』에서 중요한 철학적 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야크샤는 고대 인도에서 신격을 가진 존재였으나 후대에는 신격을 잃고 괴이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불교에서는 야차(夜叉)로 음역 되어 불리고 있다.
3) 아베스타 語로 전사계급을 가리킨다. 고대 이란 역시 인도와 같은 계급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베다의 크샤트리아와 같은 계급이다. 조로아스터의 찬가에서는 나르(nar)라 일컬어지는데 이는 남자(man) 즉 전사를 가리킨다. 고대 이란의 계급은 인도에서처럼 엄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4) 사제계급을 일컫는다. 조로아스터의 찬가에는 자오타르(Zaotar)라 나온다. 아트라반은 어원이 분명하지 않은 인도-이란어로 일반적으로 사제를 가리킨다. 
5) 코끼리 등 위에 얹어 고정한 지붕이 있는 가마 형태의 좌석.
6) 아그레(Agre)의 5祖이며 아베스라의 스승.
7) 아르테미스(Ārtemis آرتمیس)는 고대 이란 아키메네스 제국의 속주 카리아의 여성 사트라프로 흔히 아르테미시아(Artemisia)1세 여왕이라는 그리스식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살라미스 해전의 아키메네스 함대 사령관이었다.
8) 내림굿을 통해 무계에 입문한 사람이 신어미로부터 제의와 기예를 전수받고 온전히 한 사람의 당골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솟을굿을 통해야 한다.
 

오낙영 사진.jpg

오낙영(글쓴이,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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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28

    * 우덜이 아그레라고 알고 있는 한처암에 말입지, 해필 그 엄청난 빛의 폭발이 있었는지, 그렇게 생겨난 빛이 왜 그곳에 머물러 있질 않고설라므네 천지사방으로 뻗쳐나감서 광활하기 짝이 없는 흑암의 공간에 빛의 씨앗을 흩뿌리고 해허구 달을 맹글고 별을 ...
    Date2025.12.10 By관리자 Views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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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27

    Ⅲ-1 옛날에 말입지, 날개를 펼치면 아홉 자나 되는 수리 한 마리가 있었댑지. 이 수리가 날갯짓을 허믄서 날아오르자, 이를 보고 있던 조막새 한 마리가 한뼘새에게 말했습지. '우리는 이 작은 수풀 속을 날면서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먹이를 얻고 가...
    Date2025.11.18 By관리자 Views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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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26

    * 귀슈탐과 바흐아도르가 니루샤를 다녀간 후부터 니루샤와 '시간의 언덕'(니루샤 북쪽의 분지를 아오슈나르가 그렇게 불렀다)이 부쩍 분주해졌다. 잘 마른 다비목을 실은 나귀와 낙타가 '시간의 언덕'에서 짐을 부리고 나면 인부들이 니루샤...
    Date2025.10.14 By관리자 Views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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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25

    * -당신은 기어코 이야기의 창조자가 되려는 겁니까? 아베스라의 물음에 아오슈나르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아주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요. 그건 최초의 목격자들과 그들에게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람들 그리고 종국에는 얘기꾼들의 몫이지요...
    Date2025.09.18 By관리자 Views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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