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르포]

efe38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Sometimes I feel so happy

posted Jun 14,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Sometimes I feel so happy

-2026년 5월 23~24일 토~일요일 제65회 팽팽문화제 캠핑

 

 

짐을 챙겼다. 이틀 전 해남 나무에게서 온 메시지, 이번 주 캠핑에 야전 장비가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는, 그리고 '길'의 이야기 한 대목 청해 들어도 좋겠다는 내용에 맞춰.

<낮고 느린 걸음으로> 출간 후 군산 평화바람에서 감동적인 출간기념미사 후 북토크 코너가 캠핑에 추가되는 듯했다. 그러니까 이번 제65회 팽팽문화제 예술 총감독은 나무인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주말부터 5·18민주화운동 제46주년 다큐멘터리 막바지 제작으로 밤낮없이 서울과 대전을 왕복하던 중이었다. 원래 방송 일정이었다면 팽팽문화제 기간에 대본을 쓰고 있었을 터였지만 갑작스럽게 납기일이 닷새 앞당겨지면서 밤샘 최종 편집과 자막 및 대본 작업을 하면서 특강과 수업까지 겹쳐 무쇠 같은 정신력으로 버티던 중이었다. 공교롭게도 금요일 밤에는 대전 독립서점에서 북토크가 있어서 짐을 챙기는 건 토요일 오전에나 가능했다. 몸살이 나지 않으면 다행인 육신에 비타민제를 털어 넣고 군산으로 떠났다.

 

일부러 군산시 옥서면 옥봉리 비석거리를 지나갔다. 휘영청 능수버들을 오른쪽으로 지나치니 옥봉생태평화센터 골조가 벌써 2층까지 올라가 있는 게 보였다. 봄부터 시작한 공사가 순탄하게 진행 중으로 보여 안심이었다. 장마 전에 콘크리트 양생 작업이 끝나야 할 텐데 아마 더덕이 공사감독을 잘하고 있나 보다. 옥봉생태평화센터 '새사람''미 공군기지와 새만금 난개발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겪어 온 군산에 생태와 평화, 새와 사람, 현장과 시민, 배움과 행동을 잇는 거점'이 될 것이다. 올 8월 말이면 군산에 평화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연대의 작당소, 활동가와 연대자의 휴식처, 관찰과 기록 저장소, 직접 배우고 행동하는 현장 배움터'로 문을 열 계획이다. 그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을 위해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181-3 공간풀숲에서 5월 26일부터 6월 7일까지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특별전 <평화여, 멀구나>를 한다. 팽팽문화제 이틀 후. 그러니 평화바람 식구들과 친구들은 서울과 군산으로 동분서주하느라 정신이 없을 터.

 

평화바람 활동에 거의 매주 연대하던 2024년 7월 22일부터 2025년 연말까지가 흐르고, 뜻하지 않은 일들로 운동과 삶에 대해 자연스레 정리하는 시간을 갖던 올 초 몇 개월이 훌쩍 지났다. 짧지만 가까이서 본 평화바람은 20년 넘게 활동해 올 수 있던 동력인 동지들이 떠나면 또 새로 채워져 늘 사람이 부족하지 않았다. 나와 그들의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일단 SNS를 사용하지 않는 나는 그들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지 못한다. 하루 자면 다음 날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그들의 속도에 나는 뒤처져도 한참 뒤처진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따로 챙겨주지 않는 이상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2023년 11월부터 참석했지만, 주최자가 아닌 참가자로 참석하는 팽팽문화제에는 그들의 노고에 얹혀 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미군기지를 지나갔다. 지난달 문정현 신부님을 모시고 그 길을 가던 때 "저것들만 보면 등에서 쇠꼬챙이가 올라오는 것 같이 화가 나." 하시던 신부님. 몇십 년이 지나도 희석되지 않는 분노와 적의는 팍스 아메리카가 Pax America에서 Fox America로, 겉으로는 평화를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이익만 챙기는 약탈성 패권을 꿰뚫어 보는 혜안과 몸소 투쟁하시다 제주 강정에서 흰 수염이 뽑히고 테트라포드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면서 겪으신 뼈와 피에 새겨진 체험에서 나오는 듯하다.

 

1부. Sometimes I feel so happy

-The Velvet Underground 'Pale Blue Eyes' 중

 

팽나무로 가는 길 양옆에는 금계국이 한창이었고 5월을 맞은 팽나무는 마치 이제야 완연한 봄이라는 듯 싱그럽게 무성했다. 오후 2시 30분. 팽나무 앞에는 연갈색 업라이트 피아노가 앞판을 연 채 조율되고 있었다.

서둘러 차양 아래 텐트를 쳤다. 야영 준비물을 공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티와 더덕이 도와주어 후다닥 텐트를 치고 그 옆에 등산화와 고무신과 책과 엽서와 배지를 조로록 놓았다. 낮고 느린 걸음으로 전국을 휘돈 나와 함께했던 이들과 그 결산이다.

 

오후 세 시가 되자 동그랗게 밀어놓은 의자 안에서 팽수가 풍물로 길놀이를 했다. 그들이 돌면서 풍물을 치자 사이사이 대나무 이파리를 들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앉은 이들 중에는 2년 전 10월 팽팽문화제 때 팽나무 할머니가 아기를 점지해주었다던 국제부부가 작년 8월에 태어난 팽둥이를 안고 있었다. 팽나무는 사랑이자 생명이었다.

이어 나무가 오월의 노래와 시작 인사를 했다.

 

CKC03942_ 해남의 나무.JPG

 

 

내 순서도 있었다. 작가는 글로 말하는 사람이기에 <낮고 느린 걸음으로>의 두 대목을 읽었다. 하나는 2022년 3월 평화바람과 함께한 봄바람 순례를, 또 하나는 그 한 달 전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걷는지 쓴 대목이었다.

 

땅의 기운을 발로 밟으며 온몸을 움직여

하늘 향해 뻗어 올리는 기도

개미나 나무처럼 미세하게 움직이지만

온 우주와 소통하는 숨결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내 걸음 하나하나에

선한 의미를 담게 하소서

평화롭고 자유롭게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낮고 느린 걸음으로> p. 268

 

낭독 후 사람들이 텐트 옆으로 책을 사러 왔다. 소장하던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 마지막 한 권과 <굴뚝새와 떠나는 정원 일기>와 <낮고 느린 걸음으로> 각 두 권씩 총 다섯 권이 금세 평화바람 후원으로 팔려나갔다.

 

기다란 소나무 줄기를 다섯 명이 어깨에 메고 왔다. 소복을 입은 여인 바리가 이 솟대를 모시기 위한 춤을 추었다. 흰 천을 가르고 여인과 무운과 솟대가 지나갔다. 그 뒤로 풍물패와 사람들도 따랐다.

 

CKC03910_ 솟대모심 1.JPG

 

 

그때 해초가 등장했다.

팔레스타인 구호를 위해 54개국에서 70여 척의 배를 타고 지중해로 나간 500여 명 중 한 명으로 이스라엘 영해에서 나포되어 고초 끝에 석방된 해초. 나포와 석방 사이 구타 기사와 애타는 기다림이 있었다. 지난 수요일이던 5월 20일에 광주 5·18민주화운동 다큐멘터리 대본을 쓰다가 해초가 2026년 21회 들불상 평화운동가로 선정된 사실을 알고 화들짝 기뻤는데, 곧이어 납치 소식을 전해 듣고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 해초가 사흘 후인 23일, 광주에서 들불상을 수상하고 곧바로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로 온 것이었다. 들불 7열사 중 윤상원·박관현·김영철 열사 등에 대해 글을 쓰던 나는 바로 그 역사의 현장 광주가 현재 팔레스타인의 고립을 46년 전 광주와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고, 그래서 오월 정신이 국제 평화 연대 확장의 필요성으로 이어짐을 평화운동가 해초의 들불상 선정을 통해 인정했다고 느꼈다. 이에 광주의 딸 나무의 기쁨은 무척 컸다. 어느새 완두가 금계국으로 화관을 만들어 해초 머리에 씌워주었다.

 

CKC03939 돌아온 해초.JPG

 

 

나무의 건반과 무운의 대금 연주 후 선재아빠의 기타 연주와 노래가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앞판 없는 피아노에 로겜이 앉았다.

에릭 사티 Erik Satie의 '짐노페디 Gymnopédies' 제1번에서 로겜의 연주곡으로 이어지는 곡이 첫 번째 곡이었다. 이어 반달을 기다리는 드뷔시의 '달빛'에 이어 (왼손으로) A(라) 음이 500번이나 반복된다는 에릭 사티 Erik Satie의 그노시엔 Gnossiennes 1번이 즉흥곡으로 이어져 울릴 때 새의 지저귐은 물론 주변에 말뚝처럼 박아놓은 야생동물 퇴치기 음도 내가 절대음감이라면 그 음을 맞출 수 있을 악기 음처럼 들렸다. 세월호를 모티브로 한 세이렌, 미친 바람과 아주 오래된 이야기 'A year ago', '봄날은 간다'와 빌 에반스 Bill Evans의 'Peace Piece'를 '평화 한 줌'으로 해석해 두 화성을 반복하고, 더 벨벳 언더그라운드 The Velvet Underground의 창백한 푸른 눈 'Pale Blue Eyes'를 칼 세이건의 지구를 가리키는 창백한 푸른 점 Pale Blue Dot으로 해석한 곡까지 열 곡을 듣는 동안 잔디밭에 앉은 우리는 배고픔을 잊고 초저녁 음악 서리에 온몸과 마음을 적셨다. 어렴풋이 로겜이 러시아에서 피아노 공부를 하고 온 사람이라고 들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도 전라북도 군산시, 거기서도 맨 끝 바닷가 하제마을 미군기지 앞 팽나무 아래에서 피아노 연주를 들었다. 그날 우리는 'Sometimes I feel so sad'(가끔 슬픔)는 건너뛴 'Sometimes I feel so happy'(가끔 행복함)였다. 그렇게 푸른 지구에서 하얀 반달을 바라보았다.

 

Linger on your pale blue eyes.

당신의 창백한 푸른 눈동자가 맴돌아요.

Linger on you(r) pale blue eyes(earth or moon).

당신 창백한 푸른 지구와 달에 연연해요.

 

CKC03967 로겜의 피아노 연주.JPG

 

 

2부. 불역낙호(不亦樂乎) 아라-공자

 

한 시간 반이나 연주를 듣고도 다음 날 새벽 공연을 기대로 남겨놓고 아쉬움에 다가간 공룡 영길의 만찬은 디너쇼를 방불케 하는 호화 메뉴였다. 들깨 수제비와 연잎밥과 부대찌개와 채식 카레와 파스타 크림과 올리브 샐러드와 열무김치……. 대체 왜 이렇게 많은 메뉴가 한 끼에 올라와야 하는지 송구한 의문이 들었다. 구성의 의미를 넘어선 영길의 허다한 배려와 세심함이 식판 위에 한상 차려졌다. 그 귀한 음식을 혀끝에서 맛을 충분히 느낄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폭풍 흡입하며 밥을 먹는데 앞에 앉은 로겜의 헝겊 운동화 위 발목에 건반 문신이 보였다. 피아노를 얼마나 사랑하면 피부에까지 새길까.

 

초호화 식사를 마치자 선재아빠가 다시 기타 연주와 노래를 했다. 연주와 연주 사이 공백이 생겨 급히 내가 낮에 미처 못 한 낭송을 마저 했다. 이번에는 해남에서 나무를 만난 이야기였다.

 

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제22회 미황사 괘불재 산사음악회가 있던 날 저녁, 해남 북일면 흥촌리 두륜산 주봉인 투구봉 아래 에루화헌에서 만난 신비로운 여인. 내 이름을 듣자마자 초롱초롱한 내 글을 읽었다며 나를 꼬옥 안고 한참을 무언가 가슴으로 말하던 나무.

서울을 떠나 있던 1년 넘게, 바랄 수 없던 예술에 대한 목마름을 푹 적셔준 한 시간 반의 시와 노래와 연주와 춤으로 가득하던 시간. (같은 책 p. 178~179)

 

그 후 3년 뒤인 2024년 3월 말에 나무는 내게 찾아와 부여 신동엽 문학관에 가자고 했다.

 

'유붕이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 하니 불역낙호(不亦樂乎) 이라'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렇게 문자를 남기고 간 나무.

 

한 해 지난 작년 3월 말 같은 날에 또다시 방문하여 담소하던 중 다음 목적지가 부안이라길래 내가 2024년 7월부터 매주 부안 해창갯벌에 가서 드리던 새만금 상시 해수유통과 생태계 복원 기원 월요 미사가 전북도청과 전주 전북지방환경청 앞으로 옮겨져 또 매주 간다고 했었다. 그랬더니 며칠 후 전주 전북환경청 앞에 나타난 나무. 그로부터 천막 붙박이가 되어 평화바람과 식구처럼 지내게 된 나무는 내가 두 해째 연대하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구미 공장에도 6월에 가서 박정혜가 내려올 때까지 근 넉 달을 살았다. 그리곤 무안공항 참사가 일어나고 몇 주 후 내가 혼자 조문하고 온 무안공항에 10개월 후 평화바람과 함께 매주 가서 두 달 동안 추모 미사에 연대했다.

 

우리는 둘 다 삶과 운동을 분리할 줄 모르는 사람이지만 내가 글과 사진 기록자로서 현장과 적정 거리를 두는 편이라면 나무는 그곳에 푹 빠져 음악으로 뿌리를 내렸다. 음악은 직관적이다. 글은 문맹이 아닌 사람이 읽고 이해해야 하지만, 음악은 청력만 정상이라면 들리는 족족 피부와 세포 속으로 파고든다. 즉흥시가 아닌 이상 글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지만 음악은 즉석에서 발현할 수 있다.

 

이번 5월 팽팽문화제의 나무는 지난해 10월 팽팽문화제 때 몇 곡 연주하며 노래하던 초청 가수가 아니었다. 등단도 힘겨웠고 그 후에도 오래 책 한 권 못 낸 무명작가였던 내가 암담하기 짝이 없는 인고의 집필 시절이었던 5년 전에 해남 문화계의 대모처럼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문화제 사회를 보고 연주와 노래를 하던 그 나무에 가까웠다. 나무는 제 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 반경은 광주에서 해남으로, 해남에서 군산과 세계로 더욱 넓어졌다.

 

CKC03993 해남 나무 공연.JPG

 

 

둔치와 다영 부부의 전자음악과 김반장의 드럼과 타잔로카의 호주 민속악기 디저리두와 현욱 등의 전자 기타와 랩으로 한 시간 이상의 연주가 이어졌다. 한국전통음악 장단과 신개념 포스트 록과 레게가 울려 퍼지는 동안 중간중간에 정전이 됐지만, 관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었다. 낮부터 계속되던 미군기지의 사이렌 소리는 우리 소리에 묻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문득 해남 백련재 문학의 집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나중에 책을 내면 출판기념회에서 다 함께 춤을 추고 싶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세 권의 책을 내고서야 그 소망을 이루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적막할 밤의 숲에 미칠 소란에 마음이 쓰였다. 밤 10시가 되자 공연을 멈추고 더덕이 구워준 바비큐를 먹었다. 다래가 준비해 온 무알코올 맥주가 맛있었다.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하나둘 잠자리로 흩어지고 자정이 되자 김반장은 팽나무 턱밑으로 가서 언플러그드 연주를 시작했다. 오밤중 도깨비처럼 팽나무에게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는 쉬이 그치지 않았다.

 

CKC04002 김반장과 타잔로카.JPG

 

 

3부. 아름다운 오월에 Im wunderschönen Monat mai-슈만 Schumann

 

숲은 이미 깨어난 새벽 6시에 로겜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첫 곡은 바흐의 프렐류드였다. 내가 유일하게 연주할 줄 아는 곡, 2014년 독립 다큐멘터리에 싣고 세월호 유족에게 들려주었던 그 곡. 두 번째는 슈만이 클라라를 사랑해서 만든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 중 첫 곡 <아름다운 오월에>였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는 누구나 사랑을 꿈꾸는가. 구구 구구구 산비둘기 소리가 '누구 없어서'로 들린다는 로겜. 다음 곡도 역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였다. 다음 곡은 즉흥곡이었고, 다섯 번째 곡은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로 가던 길 우연히 아랑훼즈에서 내려서 여행 기간 한 달을 다 쓰고 왔다며 로드리고의 '아랑훼즈'를 연주했다. 그다음부터는 우리나라 곡이었다. '엄마야 누나야', '고향의 봄' 그리고 전날 연주했던 빌 에반스의 'Peace Piece' 마지막으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앙코르곡이 열 번째 곡으로 연주되자 나는 소스라쳤다. 그 곡은 내게 아련한 사연의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지난달 팽팽문화제 때 수선화를 제일 좋아한다던 로겜은 이유야 다르겠지만 여간해선 맞추기 힘든 내 깊고 깊은 사연의 노래를 알고 있었다. 그렇게 전날부터 좋지 않은 건강 상태로 타악기인 피아노의 중노동인 연주를 이틀간 두 시간 반이나 해낸 로겜에게 박수를.

 

CKC04005 아침을 여는 피아노.JPG

 

 

 

 

이어 나무의 화답 연주가 이어졌다. '오월의 노래'였다. 피아노 연주에는 들리지 않지만, 라르고 largo(느리게)로 흐르는 멜로디 따라 마음속에 가사가 떠올랐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 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산 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투쟁 없이 어떻게 헤쳐 나가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대머리야 쪽바리야 양키놈 솟은 콧대야

물러가라 우리 역사 우리가 보듬고 나간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피 피

 

1980년 이후 마흔여섯 번째 맞는 오월의 팽팽문화제 팽나무 앞 피아노 연주회는 그렇게 나무와 통곡과 해바라기와 내 눈물 속에서 끝났다.

 

2026년 5월 제65회 팽팽문화제 마지막 순서로 나무가 앞장서 풍물을 시작하고 무운의 지휘로 오방색 끈 동여맨 큰뒷부리도요 닮은 솟대를 모셨다. 팽나무에서부터 지기地氣 따라 일직선 위치에 전날 오후 파놓은 구덩이에 솟대를 넣어 세우고 소금 한 포대를 부은 후 모인 이들이 흙 한 줌씩을 손과 삽으로 넣고 구덩이를 메웠다. 포실포실한 흙이 촉촉하고 포근해 그 땅의 생명력이 절로 느껴졌다. 돌아가며 막걸리를 올리고 절을 하고 예식을 마쳤다.

 

CKC04043 솟대 모심 2.JPG

 

 

뉴질랜드에서부터 만 킬로미터를 날아와 새만금 수라갯벌 등지에서 쉬고 알래스카까지 7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는 큰뒷부리도요. 그들을 지키겠다고 작년 8, 9월에 전주에서부터 서울까지 260킬로미터를 걸어 새,사람행진을 했다. 그리하여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에서 1심 승소했으나, 현재 진행 중인 2심은 만만치 않다. 한국에서 뉴질랜드까지 몇 명이 가서 환송식을 하고 돌아와 다시 수라갯벌에서 여럿이 모여 환영식을 한 큰뒷부리도요는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 제 모양을 한 솟대가 심긴 걸 알까. 해창갯벌엔 수많은 장승들이 세워져 있지만 2년 전 10월 살살페스티발에서는 '살아있는 동안' 장승을 또 세웠다. 작년 8월 새,사람행진 때도 수라갯벌가에 장승을 세웠다. 지난 5월 3일에는 긴 세월 내초도에 쓰러져 있던 숭어장승을 수라갯벌에 다시 세웠다. 인간들은 나무를 베어 모셔 와 솟대를 만들어 표식을 세운다. 그리고 꼭대기에 나무로 새를 만들어 하늘에 평화와 안녕을 빈다.

 

하제마을은 원래 섬이었다. 조선 시대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미군기지가 되는 동안 섬은 육지와 붙어버렸고 그 간척사업은 백 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보면 새만금 간척 개발 30여 년과 신공항 건설 배후에 있는 정경유착과 패권주의의 살생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다만 그 모든 걸 지켜보는 팽나무는 600년 동안 그곳에 있다. 나무는 인간보다 오래 살아 그 모든 걸 지켜본다.

 

팽나무여, 부디 천수千壽 하소서. 만수萬壽 하소서

 

7SB02829_ 하제마을 600년 팽나무.JPG

 

일곱째별-프로필이미지_202302.jpg


  1. Sometimes I feel so happy

    Sometimes I feel so happy -2026년 5월 23~24일 토~일요일 제65회 팽팽문화제 캠핑 짐을 챙겼다. 이틀 전 해남 나무에게서 온 메시지, 이번 주 캠핑에 야전 장비가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는, 그리고 '길'의 이야기 한 대목 청해 들어도 좋겠다는 내용...
    Date2026.06.14 Views119
    Read More
  2. 날다! 날다!! 도요물떼새

    수라갯벌 큰뒷부리도요 환영식 2026년 4월 4일 토요일 아침. 비가 그쳐 하늘이 청량하게 갰다. 오전 11시, 수라갯벌 큰뒷부리도요 환영식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수라갯벌에서 남북2지하차도 건너 바다 쪽 8공구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말인데도...
    Date2026.05.19 Views98
    Read More
  3. 2026년 봄, 남도 순례길 완주

    2026년 봄, 남도 순례길 완주 개와 집착 2026년 3월 2일 월요일 제암산 휴양림~보성버스터미널 12km 2월 마지막 날 새벽 4시에 마지막 교정 본 <낮고 느린 걸음으로> 원고를 송고했다.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 길을 떠났다. 3·1민주구국선언 50주년을 ...
    Date2026.04.15 Views139
    Read More
  4. 막을 수 있었다·살릴 수 있었다·밝힐 수 있었다

    막을 수 있었다·살릴 수 있었다·밝힐 수 있었다 2025년 12월 29일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 반짝반짝 2025년 12월 21일 주일 오후 3시 2025년 11월 2일 모든 죽은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부터 매 주일 오후 3시에 거행한 무안공항 ...
    Date2026.01.16 Views229
    Read More
  5. 2025년 11월의 추모

    2025년 11월의 추모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와 故 강태완 산업재해사망 1주기 11월 2일은 천주교 위령 주일이었다. 평화바람이 무안공항에 간다기에 오전 11시 30분까지 군산으로 갔다. 무안공항은 작년 12월 29일에 참사가 나고 3주 후인 1월 19일에 혼자 조...
    Date2025.12.10 Views308
    Read More
  6. 팽나무 아래에서 잠드는 밤

    팽나무 아래에서 잠드는 밤 20251025 제58회 팽팽문화제 매달 세 번째 일요일이 지나고 돌아오는 토요일에 민가는 간데없고 미군기지만 가득한 군산 하제마을에 있는 팽나무에게 간다. 내 반려 자동차 탈핵브리드 트렁크에는 언제나 초록색 접이식 자전거 뷔나...
    Date2025.11.18 Views340
    Read More
  7. 일곱째별의 새,사람행진 II

    일곱째별의 새,사람행진 4 20250902 화요일 바지락의 날 진위역~병점성당 12.3km (누적거리 206.6km) 9월이 되고 서울이 가까워지자 출발 시각을 9시로 늦추었다. 도심 출근 시간의 혼잡을 피해 주기 위해서였다. 평택시 진위역 맞은편 진위파출소 앞에서 40여...
    Date2025.10.14 Views512
    Read More
  8. 일곱째별의 새,사람행진

    일곱째별의 새,사람행진 1 20250812 화요일 큰뒷부리도요의 날 전북지방환경청~한국전력공사 전북건설지사~만경강 삼례교 8km 2025년 8월 12일 화요일 오전 9시 30분, 전주 전북지방환경청 앞에는 백여 명이 모여 있었다. 그중 새들도 있었다. 큰뒷부리도요새,...
    Date2025.09.18 Views600
    Read More
  9. 2025년 천막의 여름 - 새만금신공항 취소 촉구

    신부님의 손 2025년 7월 8일 화요일 천막 농성 1249일 정오가 막 지난 전주 전북지방환경청 앞 새만금 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촉구 천막 농성장. 완두와 가지와 샘이 땡볕 아래 피켓을 들고 점심 선전전 중이었고, 문정현 신부님은 무더위 푹 절인 상태이...
    Date2025.08.15 Views671
    Read More
  10. 2025년 만춘초하(晩春初夏) 천막농성

    2025년 만춘초하(晩春初夏) 천막농성 -사진으로 보는 새만금 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촉구 2025년 4월 11일 금요일 천막농성 1,161일째 오후 5시 전북지방환경청(전북 전주시 덕진구 안전로 120) 앞 새만금신공항백지화행동 농성장에서는 새만금 신공항 중...
    Date2025.07.08 Views61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Next
/ 10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