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갯벌 큰뒷부리도요 환영식
2026년 4월 4일 토요일 아침. 비가 그쳐 하늘이 청량하게 갰다.
오전 11시, 수라갯벌 큰뒷부리도요 환영식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수라갯벌에서 남북2지하차도 건너 바다 쪽 8공구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말인데도 중장비 차량이 시커먼 뻘을 세차게 뿜어 올리며 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무지함이 죄악이라면 그들은 중죄를 저지르고 있다. 용역을 받아 일당으로 생계를 꾸리는 굴착기 기사는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30년 동안 8천 년 생명의 터전을 파괴하고 또 파괴하는 새만금 개발업자와 결탁 정치인과 개발 설계도를 그리는 국토부와 보고서 담당 학자는 정말 모를까? 진정 세계적인 보고(寶庫) 새만금 갯벌이 지닌 가치를 모를 정도의 수준일까? 만약 만의 하나, 알고도 뭇 생명을 죽이는 그런 짓을 한다면 그들은 숨이 붙어있을 때 그 벌을 받을 수 있을까?
그 무자비함 너머 미군기지 앞쪽 수라갯벌의 평화로움은 다가올 질식의 공포 속에서 대조적으로 위태로워 보였다. 바람만이 경계 없이 자유로운 그 막혀가는 공간, 심지어 국제라는 허울을 달고 살상(殺傷)이 숨은 쓸모인 공항을 또 짓겠다고 해서 소송이 진행 중인 수라갯벌. 그곳에 내일이 종말이라도 오늘 사랑하려는 검은머리물떼새 세 마리는 서로를 배회하고 있고 한가로운 생물 중 유독 그곳에 모인 사람들만 밝게 웃고 있었다. 그중 뉴질랜드까지 가서 큰뒷부리도요 환송식을 하고 돌아온 딸기, 인디, 무밍, 고사리, 정희정 박사도 있었다. (토니와 토리는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그들이 환송식을 하러 남반구로 간 사이, 3월 25일부터 북반구 한국의 그곳에서는 매일 아침 백 배를 하고 캠핑 등으로 큰뒷부리도요새떼를 맞이할 준비를 계속했다. 그 사이 평화바람과 친구들이 일주일 동안 푸른 망에 한 땀 한 땀 작업한 큰뒷부리도요와 새를 맞는 사람 모형이 세워져 창공에 나는 듯 보였다.
먼저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상략) 큰뒷부리도요는 수라갯벌, 유부도, 금강 하구에서 찾을 수 있어요. 내초도 앞이 40년 전에는 물이 통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전 세계적으로도 금강, 만경강, 동진강이 하나로 뭉친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방수제와 방조제로 막혀있지만 언젠가는 이곳에 다시 칠게들이 나타나서 큰뒷부리도요, 알락꼬리마도요가 다 오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뉴질랜드에 다녀온 8명 대표로 딸기가 보고했다.
"작년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을 위한 새,사람행진 때 큰뒷부리도요(모형)를 모시고 행진했는데, 뉴질랜드 황하누이 강이 법인격으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공교롭게도 '쿠아카'라고 불리는 큰뒷부리도요 환송식을 하는 동네가 황하누이 강변 마을이었습니다. 겸사겸사 배우러 '푸코로코로'라는 미란다 도요새 센터(Pūkorokoro Miranda Shorebird Centre)와 황하누이 센터에 다녀왔습니다.
오클랜드 공항에 내리자마자 갯벌 메워서 만든 곳이란 걸 느꼈어요. 갯벌과 물새들을 보면서 내렸어요. 뉴질랜드라면 완벽한 천혜의 경관을 생각하며 갔는데, 거기엔 마오리족이 아닌 유럽에서 건너온 정착민들이 목축업을 주요 사업으로 하면서 오랜 시간 갯벌을 간척하고 소들을 방목해서 키우는 개발이 진행되었어요. 푸코로코로센터는 로버트 펀들랜드라는 농민이 자기 농장을 보존지역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땅을 내놓고, 이후 50년간 시민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땅을 사서 미란다 도요새 센터를 지어서 보존해 왔답니다. 그곳에 갔을 때 개발되다가 만 새만금 수라갯벌, 거전갯벌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광활한 갯벌을 생각하고 갔는데 협소한 공간에 검은머리물떼새 7,000, 큰뒷부리도요새가 10,000마리 정도 관찰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갔을 때는 큰 그룹이 이미 두 번에 걸쳐서 여행을 출발했지만 그래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18년 전인 2008년에 인식표를 달아준 AJD라는 큰뒷부리도요새가 있는데 (그 새를 포함한 큰뒷부리도요새떼가) 3월 25일 오후 다섯 시경에 항상 출발한대요. 그래서 매해 그 시간에 마을에서 환송식을 한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안 가는 거예요. 최종적으로는 31일에 떠났어요. 저희가 돌아올 때 기류가 안 좋았고, 천둥 치고 바람 불고 비가 왔어요. 3월 25일 저녁부터 비가 와서 26일에 큰 폭우가 있었어요. (새들이) 가장 좋은 기류를 기다렸다가 떠난 것 같더라고요.
큰뒷부리도요는 만 킬로미터를 날아서 이곳까지 와요. 그리고 알래스카까지 가서 번식합니다. 일주일 동안 자지도 먹지도 않고 여행을 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날아가면서 중력을 느끼면서 고도를 느낀대요. 별자리를 보면서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구의 자기장을 느끼면서 길을 잃지 않고 최적의 경로를 찾아서 여행하고 있다고 해요. 알래스카에 도착해서는 가능한 한 첫 번째 만난 짝을 찾아서 번식한다고 합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자신들의 조상이자 먼 길을 떠나서 돌아오는, 인생의 스승으로서 큰뒷부리도요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희 갔을 때 알래스카에서 오신 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고향인 알래스카에서 첫 번째 부화한 어린 새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희망을 느끼셨다고 했어요. 우리도 힘든 일이 있지만, 저 새들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가는데 우리도 그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보면서 큰뒷부리도요를 만났다고 합니다.
큰뒷부리도요는 뉴질랜드에서는 쿠아카, 알래스카에서는 츄헤르팍이라고 합니다. 그분이 한국에서는 큰뒷부리도요가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셨어요. 돌아와서 큰뒷부리도요와 수라갯벌은 많은 사람을 연결해 주는 연결지점이 아닌가,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의 끊어진 연결을 회복해 주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어 뉴질랜드 방문자 네 명이 마오리어로 쿠아카의 노래를 불렀고 해당화의 '쫑쨍이러닝클럽' 보고와 모두 함께 부르는 수라풀타령이 있었다.
새만금과 금강 유역 탐조 행사
13시 수라갯벌에서 출발하여 금강 유역과 새만금 지역 탐조 행사를 시작했다.
나는 오동필 단장이 인도하는 금강 유역 팀으로 갔다. 이날 탐조 포인트는 세 군데였다. 군산시 금암동 리투스 카페와 채만식 문학관과 김인전 공원.
먼저 군산 금암동 리투스 카페 앞에서 오동필 단장이 설명을 해주었다.
"새만금 해수호 6미터 수심을 15미터까지 파서 준설하고 있어요. 물은 흐름이 약해지면 정체돼서 썩어요. 새로운 매립지는 결국 또 다른 바다를 훼손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매립은 또 다른 바다를 망가뜨리는 거예요.
지금 수라갯벌에 민물도요 2천 개체 이상이 있어요. 여기는 재갈매기, 괭이갈매기, 붉은부리갈매기, 검은머리갈매기가 있어요. 저기 민물도요가 있어요. (새들을 위해서) 마르지 않는 갯벌이 필요합니다."
금강하구둑이 열리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한다.
오동필 단장은 어린이와 함께 민물도요와 흰물떼새 흉내를 냈다. 민물도요처럼 조개를 먹는 새들은 제 자리에서 먹고, 살아있는 유기물을 먹는 흰물떼새 같은 새들은 쪼로로록 걸어 다니며 먹는다. 새들은 번식기가 되면 화려해졌다가 번식기가 지나면 천적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수수해진다고 한다. 지금은 번식기여서 민물도요 배가 까맣다고 한다. 알락꼬리마도요는 갯벌에 숨어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부리가 휘었다. 머리 부분으로 구분하는 괭이갈매기와 검은머리갈매기 중 새우깡을 먹으러 오는 괭이갈매기만 사람들 가까이 날아들었다.
그다음은 채만식 문학관 옆 금강 하구둑 아래였다. 멀찍이 새들이 시커먼 물가에 앉았는데 발구지 세 마리가 낮게 스쳐 날아가는 걸 보았다.
거기서 팽팽문화제를 준비하러 일찍 출발하는 인디와 설해 감독을 따라갔다.
하제마을 환영 잔치
16시 하제마을 팽나무 앞에서 환영 행사를 했다.
문정현 신부님의 아코디언과 나무의 건반 앙상블로 <오빠 생각>과 영화 <미션 The Mission (1986)>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OST <가브리엘의 오보 Gabriel's Oboe> 등을 들었다. 문정현 신부님은 1958년 대신학교(6년 과정)에 입학 후 철학과 1학년 때부터 이문근 신부로부터 5년간 오르간 레슨을 받고 학교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셨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도 어느 수녀님이 주고 가신 아코디언을 연주하셨다. 2019년 10월, 제주제2공항반대투쟁 때 처음 뵈었던 문정현 신부님. 그해 11월 10일, 청와대 앞 9일 기도 중 8일째 평양에서 만들어진 아코디언으로 부부가 신부님의 신청곡 <미션>을 연주할 때 옆에서 마이크를 드셨던 문정현 신부님.
이제 군산에서도 신부님이 아코디언을 안으셨다. 바람으로 가락을 뿜어내는 아코디언은 평화바람에 음악바람을 몰고 왔다. 신부님의 가슴에서 바람이 나온다. 평화, 평화, 평화.
고등학생 때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영화 <미션>을 본 나는 문정현 신부님의 연주를 들으며 생각한다. 18세기 남아메리카의 과라니족과 21세기 대한민국 군산의 수라갯벌과 팽나무. 그리고 가브리엘 신부(제러미 아이언스 분)처럼 기도로 저항하며 비폭력 평화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로드리고 신부(로버트 드 니로 분)처럼 총을 들고 싸울 것인가. 평화에 주의가 붙어도 된다면 평화주의자는 펜을 든다. 구태의연하지만 펜은 칼보다 강하다. 이것은 작은 진리이다.
탐조 행사에 다녀온 참가자 대표들의 소감을 들었다.
"수라갯벌과 금강 하구 쪽에서 검은머리물떼새, 혹부리오리, 흰목물떼새, 민물도요, 민물가마우지, 뒷부리장다리물떼새, 넓적부리오리를 보았는데요."
"금강 하구 쪽을 돌아봤는데요. 수라 갯벌 뒤쪽 포클레인 파고 있는 데서는 세가락도요, 검은머리갈매기를 봤고, 금강 하구 카페 앞에서는 붉은부리갈매기(부산갈매기)-4월 되면 번식하러 캄차카반도까지 가죠. 큰뒷부리도요, 마도요, 알락꼬리마도요, 괭이갈매기, 가마우지, 혹부리오리를 봤습니다.
채만식문학관에서는 넓적부리와 쇠오리가 섞여 놀고 있는 걸 봤고, 장관은 서천갯벌에서 수백 마리, 천 마리가 넘는 큰뒷부리도요와 붉은어깨도요가 군무를 이루어 흩어졌다 모였다, 둥근 원과 리본을 그렸다가 하는 변화무쌍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저어새들이 바람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도 오랜만에 봤습니다. 갯벌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탐조지에서 군무를 보았다고 하니 내심 아쉬웠다.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김나희 홍보국장이 발언했다.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판결 소송이 5월 13일에 2심 재판이 있습니다. 1심에서 (우리가) 내용 면으로 압도적인 승리를 했습니다. 국토부가 입지선정 과정 누락, 운영과 신규 공항 모델 변경, 넓이 누락 축소, 운영 중인 다른 공항인 무안공항과 가름한다, 생물 다양성 등등 한 10가지 되는 쟁점을 이기기 어려우니까 원고 세 명 부적격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원고를 늘려야 해서, 인간 새만금 갯벌이라고 할 수 있는 오동필을 원고로 밀고 있습니다. 2심이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국토부는 2심에서 법인을 세 개나 계약했습니다. 예산이 없었을 텐데 이 부분도 파헤쳐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도 변호사 열다섯 분이 합류하고 있습니다. 수라갯벌을 영구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활동을 하려고 합니다. 많은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김남주 시 낭송과 성미산 학교 율동 공연으로 큰뒷부리도요 환영식 모든 순서를 마쳤다.
그날 밤 평화바람 집에서 함께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일요일 오후에 군산 평화박물관 지킴이를 했다. 일본 오키나와 평화활동가 아하곤 쇼코 특별전이었다. 일요일이지만 몇 분의 관람객이 있었다. 그중 평화에 관한 사진전을 보러 왔다가 '한 면만 보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관객이 있었다. 그날 또 평화바람 집에 머물게 되었다. 이틀을 잔 건 처음이었다.
날다! 날다!! 도요물떼새
4월 6일 월요일 아침 8시에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은파호숫가에서 파란 점퍼 입은 백발의 할아버지 한 분을 스쳤다. 전날 평화박물관에서 뵌 관객이었다. 인사하며 아는 척을 하자 그분은 내 눈썰미에 놀라셨다. 전날 그분의 의견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어서 재차 여쭤보았다. 말씀을 들어보니 그분은 미국에 호의적인 분이셨다. 현재 미국-이란 전쟁은 미국이 잘못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대한 미군은 옹호하셨다. 막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에 그분은 내게 우산을 주려 하셨다. 거절했지만 마음은 고마웠다. 군산은 일본군과 미군이 번갈아 주둔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곳에서 토박이로 살면서도 외국 전쟁 세력에 우호적인 현 주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이 씁쓸했다. 곧이어 벚꽃 아래로 비가 쏟아졌다.
군산시 금암동 리투스 카페 앞에 다시 가보았다. 비가 거셌다. 물 빠진 갯벌에 날지 않는 알락꼬리마도요와 갈매기들이 보였다. 채만식 문학관 옆 금강하구둑 아래에도 가보았다. 새들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전날 탐조 때 알려준 번호를 찾아 오동필 단장에게 전화로 어디로 가면 새를 볼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10시 50분. 장항 송림으로 갔다. 멀리서 자잘한 은방울 소리 같은 귀여운 새소리만 들리고 너른 갯벌에서 한두 마리 먹이 먹는 새가 보였다. 서천갯벌 표지석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왔다. 모래 위를 걷는 내 앞으로 작은 새 한 마리도 종종 걸었다.
정오가 막 지나 발길 닿는 대로 서천 희리산 치유의 숲으로 갔다. 동백꽃 한 송이가 떨어져 있었다. 다시 통화가 되었다. 오동필 단장은 새들은 만조 직전에 군무를 춘다고, 물때 시간표를 보고 두 시간 전에 그 장소에 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친절하게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었다.
오후 한 시 즈음, 서둘러 산막골성지로 갔다. 그곳은 3년 전 성지 도보순례로 연산부터 80킬로미터를 걸어간 종착지였다. 그때 내게 드립 커피를 주고 서천성당까지 태워다 주신 분의 집은 철거 중이었다. 우물도 그네도 사라졌다. 대신 성당과 24시간 쉼터가 생겼다. 놀랍게도 쉼터에 있는 모든 게 무료였다. 주스를 마시고 컵우동을 먹고 캡슐 커피도 내렸다. 그리고는 <낮고 느린 걸음으로> 책에 서명해서 헌금 봉투 앞에 세워두었다. 고마움의 표시로 비치된 손수건을 한 장 샀다. (손수건을 선물하면 이별한다는 설이 있지만, 그 손수건을 산 이후 날마다 그것을 눈물로 적실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오동필 단장이 알려준 송석항으로 갔다. 오후 3시 13분. 주차장에서 알락꼬리마도요를 가까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발길을 재촉해 다음 지점으로 이동했다.
오후 3시 30분. 서천군 장항읍 송림리 704-7 송림항 갯골에 도착했다. 외딴 카페 옆에 넓은 주차장이 있었다. 차를 세우고 나가보았더니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굉장히 거셌다. 서쪽을 향해 주차하고 창을 내리니 바람이 스쳐 가며 차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다. 오른쪽 옆으로 갯벌을 한참 보았다. 새들이 앉아있었다. 갯골과 갯벌이 만나는 물가까지 다가온 알락꼬리마도요 한 마리가 쉬지 않고 먹이를 먹는다. 그날 만조는 오후 5시라고 했다.
한 시간을 꼼짝 않고 고개를 90도 오른쪽으로 돌린 채 기다렸다. 마침내 뭔가가 움직였다. 별 가루처럼 반짝 반짝이는 것들이 떼로 날아올랐다. 새들이었다. 그들이 떼를 지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날아올랐다 갯벌을 스쳤다 다시 날아올라서 바다 쪽으로 갔다가 육지 쪽으로 돌아왔다가 리본처럼 돌았다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순환했다가 그렇게 한 차례 춤을 추고는 갯벌에 내려앉았다가 잠시 후 또 날아올랐다. 마지막 군무는 오후 4시 39분이었다. 갯벌과 창공이 그들의 무대였다면 주차장인 객석의 사람 관객은 나 한 명뿐이었다. 그들이 나를 위해 춤을 춘 건 아니지만 나는 그날 그들의 군무를 그 넓은 주차장에서 오롯이 혼자 감상할 수 있었다. 한바탕 춤을 춘 새들은 갯벌에 내려앉아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깨달음이 왔다. 새들은 떼 지어 날 때도 홀로 날고 서 있을 때도 따로따로 서 있었다. 어느 새도 날개나 몸이 닿아 있지 않았다. 함께 있는 듯하나 홀로인 새. 손잡고 안고 싶은 욕망은 그것이 결코 오래갈 수 없음을, 고작 찰나에 불과함을 진즉에 알고 있었어야 했다.
새들과 함께 내려앉은 고요함 너머에서 벅찬 감격에 겨워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리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차 앞으로 쭉 줄을 섰다. 도요물떼새 탐조단이었다. 그중 단장으로 보이는 이가 내게 말했다.
"차를 좀 뒤로 빼주세요. 주차장에 대는 게 예의죠."
"아, 네. 아무도 없어서요."
예의 운운하지 않아도 이동했을 테지만 얼른 자동차를 움직여 몇 미터 뒤 하얀 네모 칸에 넣었다. 열여섯 명쯤 되는 탐조단은 옷이나 카메라가 전문가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포만 한 카메라들 앞에서 새들은 더 날지 않았다. 4시 50분이었다. 스르르 그곳을 떠났다. 무언가를 확실하게 얻고 싶으면 충분히 미리 준비해야 한다. 만조가 되는 다섯 시까지도 갯골 건너편에서 바라본 새들은 그날의 마지막 햇빛을 맞으며 웅크린 채 다시 날지 않았다. 바람과 바닷물 때를 맞춰 날 때와 쉴 때를 아는 새들을 보며 어느 때는 바삐 활동하고, 어느 때는 잠잠히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함을, 그리고 밀착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모여 살아야 함을 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