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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한강 읽기'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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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가라>(2010)을 읽고 -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하여

posted Aug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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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내 뒤를 따라다녔다. 때로 앞서서 걸어가기도 했다. 잠을 잘 수 없는 밤, (…) 어둠 속에 누워 있다가 그것을 느낄 때가 있었다.”(26쪽)

 

이 작품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 다시 말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냉혹하고 현실적인 남성들로 인해 삶이 피폐해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며, 서로 긴밀하게 그리고 복잡 미묘하게 이어진 사람들의 관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자를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실존적인 고립과 소외에 대한 이야기이다.

 

독자는 화자(이정희)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화자라는 특별한 지위 때문에 우리는 정희가 자신의 감정을 진실되게 말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강석원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없고, 류인섭의 편지 내용을 모두 믿을 수는 없는 것처럼 독자는 화자인 정희의 이야기를 모두 믿어서는 안 된다. 결국 정희는 어떤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인주의 죽임이 자살인지 사고인지 살해인지, 인주는 왜 삼촌의 그림을 따라 그렸으며(왜 흰 별이 아니라 더욱 차가운 푸른 별이었는지), 왜 미시령에 기어이 가고자 했는지, 왜 자신에게 동행하자고 했는지? 알아낸 것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였다고 생각한 인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는 사실뿐이다.

 

정희의 의식 속에 밖으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은 작품 속에 서술되어 있지 않다. 우선 삼촌의 죽음은 3년 동안 서인주를 히키코모리로 만들었고(하지만 실제로 서인주는 밤 길을 배회하며 이정희의 집 근처에 와서 창문을 보았다), 정희 스스로 “난 이제 네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야. 더 이상 아프거나 토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만큼 고통을 주었지만, 삼촌이 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아무 설명이 없다. 삼촌의 죽음으로 서인주가 이정희에게 어떤 감정 상태를 가지게 되었는지도 제대로 서술되어 있지 않다. 서로 간의 애틋한 감정의 표현이 여러 곳에 서술되어 있지만, 서인주의 노트에 쓰인 “믿을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그 여자(어머니를 말함)만큼이나 부서진 정희의 얼굴,”이라는 뜻밖의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다.

 

그래서 화자인 정희가 의식의 수면 위로 차마 끌어올리지 못하는 내용을 유추해 봐야 한다. (이것은 하나의 가설이다.) 삼촌과 정희의 점차 뜨거워져 갔던 ‘마지막’ 열흘(아래 본문 인용 참조)과 삼촌의 죽음은 무관할까? “알고 있었어. 두 사람…… 다 알고 있었어.”(24쪽, 75쪽)라고 말하며 삼촌이 무엇을 느꼈으며, (두 사람의 관계 혹은 삼촌의 죽음을) 이해하고 싶어서 정희에게 입맞춤하는 인주의 감정 상태는 어떤 것일까?

 

“얼마나 어렵고 더딘 시작이었는지. 마지막 열흘 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워했고, 얼마나 서슴없었는지. 서로의 몸에서 가장 부드러운 곳을 찾아 새들이 가슴털을 비비듯이, 불꽃이 당겨질 때까지 떨리는 손으로 성냥을 긋듯이, 어두운 방 가운데에서 어깨를 웅크린 채 수없이 입술을 포개었는지.”(75쪽)

 

“그는 서른일곱 살 난 소년이었다. (…) 그의 떨리는 손을 무작정 끌어 내 스웨터 안에 넣었을 때,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112-113쪽)

 

 

작품 전편에 걸쳐 인주가 얼마나 용의도주하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때로는 거꾸로 표출하는 성격임을 보여주고 있다. 인주가 “살아내려고, 어떻게든 존재하려고 필사적으로 그렸던 모든 것들이, 다 가짜”(324쪽)라면서 삼촌의 그림으로 돌아간(죽음과 가까이 간) 인주의 마지막 일 년 동안, 정희를 제외한 모든 사람과 관계를 끊고서 그림을 그려나갈 때 “나에게 자주 찾아왔던 마지막 일 년 동안 인주의 일인 광대극은 점점 노련해지고 눈부셔”졌다는 사실에서 인주의 표리부동은 극대화된다.

 

정희에 대한 인주의 애틋하고 긴밀한 관계 깊숙이에는 (삼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원망과 ‘저주’가 섞여 있는 것이 아닐까? 정희와 인주의 미묘한 ‘애증’은 작품 전편을 지배하지만 마치 흔한 우정 정도라는 듯 가면을 쓴 채로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명료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이 이 작품의 위력이다.

 

정희와 인주의 미묘한 애증 관계가 표현된 부분을 정리해 보자.

 

“네 입술, 기억해. 부드러웠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사실은, 삼촌의 입술보다 더.”(24쪽)

“너를 지나쳐서 나는 걷는다. 눈을 닫고 걷는다. 입을 닥치고 걷는다.”(58쪽)

“인주의 사진에 뺨을 대본다.”(68쪽)

“인주가 스스럼없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면, 살가우면서도 어쩐지 부끄러워 나는 몸을 움츠렸다.”(96쪽)

“나는 주인(삼촌) 없는 반지하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던 무렵이었다. 어쩌다 마당에서 두 사람이 마주치면 말없이 얼굴을 피했다.”(73쪽)

“너를 부르지 않았어. 불 꺼진 현관문을 두드리지 않았어. 어두운 문 안쪽을 보고 싶지 않았어. 너를 보고 싶지 않았어.”(97쪽)

(인주가 처음 그린 그림을 보고)“처음 그려본 거라고 믿어지지 않는 섬세한 채색의 붓꽃 아래, 장난스러운 먹선으로 이마를 과장해 그린 내 옆얼굴이 만화 속 여자아이처럼 웃고 있었다.”(105쪽)

(2년 만에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인주의 손이 내 뺨을 쓸었다. 무심할 만큼 짧게, 거의 순식간에. 마치 시간을 거슬러 안 보이는 눈물을 닦아내듯, 정확하게 눈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123쪽)

“오랫동안 인주를 이해하지 못했다./ 용서하지 못했다./ 삼촌의 피붙이가 아닌 나를, 그 순간 인주가 굳이 부르지 않아도 되었던 나를 용서하지 못했다.”(132쪽)

“정희야,/ 하고 인주는 나를 불렀다./ 민서야,/ 하고 부를 떼와 다르지 않은 다정함으로.”(150쪽)

“인주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이따금 나는 눈을 감고 음조를 따라가보았다. D음계의 도와 낮은 라 사이를 또렷하고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음성.”(153쪽)

“말랑말랑한 살결, 갓 쑨 풀 같은 몸 냄새. 두근두근 귓속으로 파고들던 심장 소리. 희고 종종한 앞니가 드러나는 웃음. 다가가서 손을 뻗어 닦아주고 싶었던, 관자놀이로 흘러내리던 땀방울을 기억한다.”(156쪽)

(정희가 K를 죽이겠다고 한 날) “한 번, 꼭 한 번이었다. 인주와 내가 그렇게 깊게 포옹한 것은. 짧게 자른 인주의 머리카락에서 희미한 박하 냄새가 났다.”(158쪽)

“터질 듯 심장이 뛰거나, 얼굴이 붉어지거나, 몰래 불빛을 품은 듯 가슴이 환하거나, 무심코 삼촌의 손이 닿았던 내 손을 들여다보거나, 은밀히 인주를 질투하거나, 은밀히 그들의 피붙이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거나, (…)”(170쪽)

“나는 손을 뻗었다. 인주의 입술에 들어간 잔머리를 꺼내 귀 뒤로 넘겨주었다. 문득 견딜 수 없는 간절함으로, 그 기미투성이의 뺨에 내 뺨을 문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369쪽)

 

이 작품에는 우리가 흔히 ‘사랑’이라고 명사화하는 관계가 많이 등장한다. 정희-삼촌, 인주-삼촌, 정희-인주, 류인섭-이동선(인주의 어머니), 진수-이동선, 강석원-인주. 그런데 실제로 이 작품에 ‘사랑’이라는 명사가 사용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 드문 경우도 대부분 강석원과 류인섭의 말과 글에만 등장한다. 흔한 삼각관계라고는 전혀 말하기 힘든 완전히 하나로 결합한 정희-삼촌, 인주-삼촌, 정희-인주의 관계에 그 명사는 끼어들지 못한다. 어떤 행위, 느낌, 고통 등이 그 명사를 덮어버린다.

 

“누군가 나(인주)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52-53쪽)     

 

이 작품은 모름에서 출발하여 모름으로 끝을 맺는다. 전체 내용은 ‘앎’을 향한 집착으로 채워져 있다. 결국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모순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타인은 내가 만든 이미지에 가둔 것이며, 실제와는 전혀 다른 어떤 형상일 뿐이다. 타인을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적이 된다. 강석원은 인주를 안다고 생각했고, 민서 아버지 정선규는 인주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확신했고, 정희의 전 남편 K는 정희를 자기 마음대로 규정했다. 이 모든 것은 냉혹한 결말을 낳는다.     

 

독자는 결코 인주에 대해, 정희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들에 대해 ‘아, 그렇군!’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강이 이 작품을 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주와 정희는 조리 있게 파악하기 어려운 성격과 품성이 뒤섞여 있고, 이 두 명 사이에는 이질감과 동일성이 공존한다.

 

“나는 인주를 몰랐다./ 인주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240쪽, 작품에서 3번 이상 반복됨)

“너를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아./ 나에겐 그럴 권리가 없으니까./ 나는 너를 몰랐으니까/ 네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254쪽)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내 당신의 머릿속에서 합한다 해도, 결국은 순수한 추측으로 메워야 하는 빈 곳(…)”(261쪽)

“닥쳐. 도취하지 마. 앞지르지 마. 그녀들(이동선과 서인주)은 당신이 원한 것만큼 약하지 않았어.”(317쪽)

“내가 아픈 곳은 달의 뒷면 같은 데예요. 피 흘리는 곳도, 아무는 곳도, 짓무르고 덧나는 곳, 썩어가는 곳도 거기예요. 당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아요.”(219쪽)

“함부로 요약하지 마라. 함부로 지껄이지 마. 그 빌어먹을 사랑으로 떨리는 입술을 닥쳐.”(41쪽, 정희가 인주와 삼촌에 대한 글을 쓴다는 생각 앞에서)    

 

정희는 왜 그토록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말에 격렬하게 저항하는가? 화자인 정희는 민서 때문이라고 반복적으로 되풀이한다. 과연 그게 진실일까? 정희의 의식 밑바닥에 감춰진 것은 무엇일까? “칼을 가져왔어야 했다. 유리컵이라도 주머니에 넣어 왔어야 했다.”(34쪽) 강석원을 처음 만날 때부터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은 평범하게 이해될 수가 없다. 정희의 무의식에는 삼촌과 더불어 인주의 죽음에도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깔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인주는 절대 자살하지 않았다고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아닐까?

 

작품 속 거의 모든 여성의 심리상태는 간유리 건너편의 존재처럼 흐릿하다(정희, 인주, 인주 엄마 이동선 등). 하지만 등장인물 중 남자들은 대부분 투명하고 명료하고 단순하다(강석원, 류인섭, 진수, 정희의 전 남편 K, 인주의 전 남편 정선규). 이러한 젠더 구분은 삼촌이라는 중성적 인물(아래 인용문 참조)에게는 예외가 된다. 삼촌은 삶 속에서 이미 죽음을 사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누가 보아도 여자의 것이라고 생각할 서체”(91쪽)

“그는 조금 이상했다. 도무지 남자 같지 않았다.”(93쪽)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사색. 이것이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축이다.[“죽음은 내 뒤를 따라다녔다. 때로 앞서서 걸어가기도 했다. 잠을 잘 수 없는 밤, (…) 어둠 속에 누워 있다가 그것을 느낄 때가 있었다.”(26쪽)] 여기에는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개입한다. 작품 초반부에 등장하는 7~8cm의 검은 거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 두 상태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생각. 결국 삶과 죽음은 위태로운 얇은 막이며 어쩌면 중첩상태일 수 있다는 생각. 삶은 고통이고 그로부터 해방되어 죽음의 사태에 이르고 싶지만 “푸른 빛의 조약돌”처럼 생명으로 끌어당기는 미지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상태. 작가는 이것을 끈적끈적하게 집요하게 밀고 나간다.(다른 작품에서도)

 

“거미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기그릇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는다. 팔을 뻗어 그릇을 뒤집는다.”(거미가 어떻게 되었는지 서술되어 있지 않다.)(20-21쪽)

“투명하게 사라져버린 새를 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제부터 내가 쓰려는 (것)” “이 이야기를 다 쓰고 나면 나는 (…) 차갑고 텅 빈 공기가 될까?”(7쪽)

“둘 다일 수는 없다.//한 사람이, 자살한 동시에 자살하지 않은 것일 수는 없다.”(256쪽)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으며, 죽음으로부터 삶을 응시하는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로지 삶의 버거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출구로서의 죽음이다. 그러면 다음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왜 삶이 버거울 수밖에 없는가? 이미 살아있기 때문에 계속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실존적 상태,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이끌림이라는 유혹, 결코 타자를 알 수 없는 데도 알려고 하는(사랑하려고 하는, 지배하려고 하는) 집착과 욕망이 빚어내는 우울증.

 

이러한 멜랑콜리는 세상을 보는 정희의 시각으로 표출된다. “거대한 납골당 같은 아파트 건물들. 소리 지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들.”(38쪽) “450킬로미터의 납작한 두께 안에 삶이 펼쳐져 있다. 납작함 속에서 치열하게, 납작함 속에서 안이하게, 납작함 속에서 웃고 말하고 병들고 춤춘다. (…) (죽음 뒤에는) 시선과 생각들, 의식들만이 이상한 생명처럼, 혼령처럼 성운 사이의 텅 빈 어둠 속을 헤엄쳐 다닌다.”(39쪽)

 

우주의 탄생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죽음과 뒤섞인 상태를 담은 삼촌의 빛 그림은 이동선이 듣고 부르는 노래 Urlicht(처음의 빛)로 교차된다. “인간은 거대한 고통 속에 있네./차라리 나는 천국에 사서 머물고 싶네.//아. 안 돼./나를 (고통스러운 삶으로) 돌려보내지 말아줘.” 이러한 삶과 죽음의 공존, 빛으로(죽음으로) 돌아가려는 본능은 삼촌, 인주, 이동선, 정희에게까지 모두 전염되어 있다.

 

그러나 이정희는 결국 살아낸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381쪽)

 

죽음 바로 직전에서 인주의 아이덴티티와 정희의 아이덴티티가 뒤섞인다.(385쪽)

 

그리고

 

“누군가가 부풀어 오른 팔로 물속에서 파란 돌을 올린다. 누군가가 무릎이 짓이겨진 채 뜨거운 배로 바닥을 밀고 간다.”(387쪽, 작품의 마지막 문장)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삼촌의 말처럼(343-344쪽) 파란 돌을 정희가 ‘손을 뻗어 줍는’ 것이 아니라, “부풀어 오른 팔”(이미 죽은 사람?)이 파란 돌을 (위로) “올린다”는 점이다. 여기서 삼촌과 인주의 죽음은 정희의 삶과 뒤섞이며 공존한다.

 

이 작품은 한강의 다른 작품에 비해 ‘재미’있다. 탐정소설의 요소가 있고(이정희는 거짓말과 추론에 능한 ‘탐정급’ 인물이다), 서스펜스 스릴러 요소가 있고(상대방의 장소를 무단 침입하여 거기서 벌어지는 긴박한 사건), 갑작스러운 반전적 요소가 있다(류인섭이란 인물의 등장과 인주의 죽음 현장에 강석원의 등장). 이런 요소를 강화시켜 주는 (영화로 치면 짧은 컷과 같은 효과를 일으키는) 병렬적 서술이 작품 중반부에서부터 갑자기 많이 등장하여 템포와 긴장감을 높인다는 점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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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길목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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