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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계기로 시작되어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알리는 연대와 저항의 걷기 행사로 자리 잡았다. 대행진은 2012년 강정마을에서 시작했다. 매번 마음만 있고 몸이 따라주지 않았으나 올해는 인연이 닿았다. 지난겨울 해안선을 따라 제주를 한 바퀴 걸은 것이 제주에 대한 애틋함으로 발전한 듯하다. 3박 4일 깃발을 들고 걸었다. 깃발에 대한 양가감정으로 저어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십 대 소녀와 소년들이 대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가운데 나의 저어함은 무용할 뿐이다. 올해 구호는 "평화야! ᄀᆞ찌글라" (제주어 '같이 가자')이다. 같이 가야 할 것이 평화뿐이랴. 어찌 보면 평화가 빠진다면 다른 모든 것들이 병행해도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다. 러우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현재진행형 분쟁만 보아도 분명하다. 그러니 평화는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일 수밖에 없다. 도청에서 출발하여 조천, 성산, 서귀포를 거쳐 강정마을까지 걸었다. 늦여름 여전한 열기로 충만한 아스팔트를 걷는 것은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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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에 도착하여 체육관에 짐을 풀었다. 그나마 무거운 짐을 실어다 준 덕분에 작은 배낭을 메고 깃발만 들어서 고된 걸음에 도움이 되었다. 실내 체육관과 객석을 갖춘 잔디 구장 겸 육상트랙은 아름답다. 읍 체육시설이 서울의 구보다 훌륭하다. 도민이 자부심을 품을 만하다. 체육관 샤워 시설로 참가자들을 감당할 수 없어 읍내 목욕탕을 이용하였다. 읍의 여러분들이 애를 써주었다는 이야기가 훈훈하게 들려왔다. 일찍 저녁을 먹고 목욕탕으로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십 대 소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탕 안은 금세 젊음의 푸르름과 싱그러움, 그리고 활기로 가득 찼다. 야외 활동 체육을 중시한 대안학교 학생들임에 분명하다. 모두들 잘 그을렸고 단단한 근육들로 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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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마치고 강정마을에서 열린 해단식은 노래와 춤, 그리고 아름다운 말들의 잔치였다. 보물섬학교, 볍씨학교, 간디학교에서 한 명씩 나와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9학년, 그러니 중학교 3학년이라 소개한 이는 걸어오며 정갈하게 정리하여 온 내용을 읽었다. 태도와 전개한 논리, 수식어 선택 어디 한 군데 흠잡을 데가 없다. 옆에 있던 분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뉘 집 딸이냐, 당장 국회로 보내자, 옳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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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모두 마치고 자리를 떠나려던 참에 대안학교에서 온 학교신문사 기자라고 자기소개를 한 친구가 인터뷰를 청한다. 마침 제주방송에서 나온 어른 기자와 오전에 함께 걸으며 장시간 인터뷰도 했으니 부담도 없고 하여 그러마 하며 자리를 잡았다. 첫 질문이 어떤 평화를 기대하고 행진에 참여하셨냐고 물어왔다. 순간 말문이 막히며 아득하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답을 하겠다고 청하였다. 그사이 "누구야" 부르는 소리, "차 떠난다 빨리 와라" 소란하더니 학생 기자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지금 가야 한다네요, 죄송합니다" 하고 총총 사라졌다. 나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서귀포 친구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생각했다. 나는 어떤 평화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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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였다. 다행인지 덕분인지 나흘 동안 무지개를 보았다. 걷다 보고 새벽녘에 보고 해 질 무렵에도 보았다. 조천읍 체육관에서 자고 난 다음 날 아침 산책하러 나왔다 운동장 너머 무지개를 발견하였다. 근처를 오가며 바라보는데 무지개가 점점 자라는 게 보였다. 이쪽 지평선에서 시작하여 저쪽 지평선까지 자라는 시간은 16분. 6시 43분에 발견하였고 타원이 완성된 건 6시 59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아름답고 부지런하구나! 나도 아름답고 부지런한 평화를 원한다고 말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