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연재] 김영국의 걸으며 생각하며

cac8d6

광부의 길

posted Aug 14,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맥주인문학 유럽투어 맥투더퓨처 시즌2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편' 동지들과 더블린에서 헤어졌다. 다들 돌아가고 나는 더블린 근교 국립공원을 며칠 더 걷기로 했다.

 

글렌달록(Glendalough)은 게일어로 Gleann Dá Locha이며, '두 개의 호수가 있는 계곡(Valley of the two lakes)'이라는 뜻이다. 스코틀랜드에서 많이 보았던 글렌이 들어가는 지명(글렌리벳, 글렌피딕, 글렌모렌지 등)이 게일어 Gleann에서 왔다고 한다. 위클로 산맥 국립공원(Wicklow Mountains National Park)이 글렌달록에 있다. 산을 복수로 썼으니, 산맥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위클로 산맥 국립공원에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걸으며1.png

 

걸으며2.png

납, 아연, 은을 캐내 운반하던 길이 트레킹 코스가 되었다.

 

 

 

애초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올 때 목적지는 글렌달록이 아니었다. 계획이 바뀐 건 아침에 버스를 타고 오면서다. 일주일권 방문자용 교통카드도 샀기에 버스와 트램, 교외선 전철을 이용해서 접근 가능한 더블린 근교 트레킹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아침에 탄 버스가 운행 도중 운전사를 교체한다고 기다리라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버스 안에서 검색하다 계획을 급히 수정했다. 왕복 버스비가 더 들긴 하나 두 개의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계곡으로 루트를 바꾸었다. 마침, 오가는 왕복 버스가 11시에 성 스테파노 공원 근처에서 출발한다고 하는데 멀지 않은 곳이다. 해서 공원 근처로 가는 버스로 바꿔타고 갔다. 왕복 버스는 온라인 예약이 안 되고 운전사에게 표를 직접 사야 하는 고전적 스타일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공원을 산책하면서 아일랜드의 처절한 독립운동사를 슬쩍 엿보게 되었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전환점이 되었던 무력투쟁이 성 스테파노 공원의 점거와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웃 나라가 힘이 세지면 평화롭게 지내기는 어려운 게 일반적인가 보다.

 

걸으며3.png

Upper Lake로 흘러 들어오는 계곡줄기

 

 

모든 국립공원은 마땅히 지정 이유가 있다. 국립을 아무 데나 붙일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난봄 시드니 트레킹 때도 그렇고 이번 더블린에서도 같은 느낌이다. 선행 학습하지 않고 간 것이 다행이다. 첫 번째 놀라움은 양탄자 같은 초원의 푹신함이다. 돌아와 찾아보니 이곳은 이탄(泥炭)지대라고 한다. 위클로 산맥의 고지대는 블랭킷 보그(Blanket Bog, 담요 늪지대)라고 불리는 매우 독특한 이탄습지 지형이다. 얼마나 푹신한지 담요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내 경험상 길 중에서 푹신함의 정도는 이곳이 으뜸이다. 보그는 습지에 사는 물이끼가 죽은 뒤 차갑고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강한 산성의 습기와 같은 환경 때문에 완전히 썩지 못하고 수천 년 동안 층층이 쌓이며 생긴 지형을 일컫는다. 1년에 1mm 정도 누적된다고 하고 1~2m 두께에 달하는 이탄층은 일이천 년의 시간이 누적된 결과인 것이다. 당연히 탄소 저장고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쪽 지역에 사는 아일랜드 사람들은 여름에 이탄층을 잘라 말려서 겨울에 땔감으로 썼다고 한다. 아이리시 위스키 중 강력한 스모키한 풍미의 피티드 위스키(Peated Whiskey) 역시 보리를 말릴 때 이탄을 태운 연기를 입혀서 발현된다.

 

걸으며4.png

블랭킷 보그, 습지 지형이라 광부들이 사용했던 침목으로 트레킹 루트를 만들었다.

 

 

시간이 문제다. 11시에 탑승한 버스는 글렌달록 인포메이션 센터 앞에 12시 반에 내려주었다. 운전기사는 출발이 4시 30분이라고 분명하게 강조하여 알려주었다. 늦으면 기다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트레킹 코스가 13km라고 나와 있다. 점심도 먹어야 하고 처음 가는 코스라 난이도에 대한 이해도 없고 난감하였다. 물만 보충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떠났다. 20분 걸어 아래쪽 호수 근처에서 푸드트럭을 만났다. 잽싸게 버거 하나를 포장해서 넣고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날 4시간 동안 16km를 걸었다. 광부의 길 퍼플 코스는 13km가 맞으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코스 출발지까지 1.5km는 빠진 거였다. 하여튼 16km를 4시간에 주파했다. 버거도 먹고 챙겨간 오렌지, 바나나, 쿠키도 먹고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직선 주로에선 달리기 비슷하게 걸었다. 나중에 입에서 단내가 났다.

 

걸으며5.png

 

 

이 모든 게 용서가 되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길 잘했다.

 

| 사족 |

물론 쉬운 코스도 있다. 퍼플 루트가 제일 길고 난이도가 높다. 세상사 이치가 비슷하듯 걷기 여행도 어려움과 보상은 늘 비슷하게 주어진다.

김영국.png


  1. 광부의 길

    맥주인문학 유럽투어 맥투더퓨처 시즌2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편' 동지들과 더블린에서 헤어졌다. 다들 돌아가고 나는 더블린 근교 국립공원을 며칠 더 걷기로 했다. 글렌달록(Glendalough)은 게일어로 Gleann Dá Locha이며, '...
    Date2026.08.14 By관리자 Views39
    Read More
  2. Walk until You Leave the System - Camino del Norte 7일 차 기록

    오늘 빌바오에 도착하면 이번 까미노 북쪽 길 순례는 중단한다.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위스키 인문학 투어에 합류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난다. 7일 동안 153km를 걸었다. 4713미터의 고도를 획득했다. 하루 평균 673미터를 오른 것이다. 비슷한 높이를 내려왔다...
    Date2026.07.13 By관리자 Views98
    Read More
  3. 어떤 그리움 - 냉면 단상

    속절없이 옛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냉면을 먹고 빈 그릇을 바라보다 91년 여름이 떠올랐다. 그해 여름 두 달 동안 매일 점심에 냉면을 먹었다. 도서관을 나와 냉면 먹으러 백양로를 걸어 올라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그렇게 먹고도 여전히 냉면 앞에 앉...
    Date2026.06.14 By관리자 Views168
    Read More
  4. 새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새들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Please Do Not Feed the Birds. 시편 23편 [개역개정]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
    Date2026.05.19 By관리자 Views199
    Read More
  5. 성게와 군소

    성게와 군소 — 외옹치항에서 만난 생명들 7번 국도가 나기 전, 대포에서 속초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외옹치라 불렀다. 바닷가 쪽으로 낮은 덕이 있는데 생긴 모습이 독을 닮아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나 보다. 외옹치에는 작은 어선 몇 척이 정박할 만한 ...
    Date2026.04.15 By관리자 Views236
    Read More
  6. 자라(Zahra)에 대한 기억

    둘째 어릴 때 옆집 친구의 이름이 자라였습니다. 자라는 부를 때 '아' 모음을 좀 길게 해서 불러야 합니다. 페르시아어권에서 자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보편적으로 빛나다 눈부시다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이 파티...
    Date2026.03.12 By관리자 Views195
    Read More
  7. 산다는 것

    한림항은 성산포항, 서귀포항과 함께 제주도의 주요 어업 항구다. 비양도로 향하는 도선이 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걷기 시작한 후 며칠간 바람이 거셌다. 화산섬 해안 길을 따라 걸으며 바람과 돌이 많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낀다. 한림항 초입, 걷지 않았다면 ...
    Date2026.02.12 By관리자 Views249
    Read More
  8. 가자미근이 아프다 - 제주 해변 따라 걷기

    가자미근이 아프다 제주 해변 따라 걷기 애월 해안도로 올레 15-B코스, 걷다 자유함에 찾아오다 해 뜨면 걷고 해 지면 멈춘다. 해안 따라 걸을 예정이다. 한라산 둘레길 그리고 코스별로 한라산을 오르려 한다. 추자도와 우도에 들어가 밤을 보내며 섬 안의 섬...
    Date2026.01.16 By관리자 Views256
    Read More
  9. 836미터

    매달 오르고자 한 다짐은 삼월까지 유효했다. 봄이 오고 나니 주말마다 이런저런 이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온 더위는 높은 산을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9월 어느 날은 나섰다 비 오듯 땀을 흘리고 간신히 올랐다. 다시 서늘해지자 약속...
    Date2025.12.10 By관리자 Views339
    Read More
  10. 용상에 대한 발칙한 상상

    계엄으로 절대권력을 욕망했던 자가 슬리퍼를 신고 용상(龍床)에 앉았다고 소란하다. 어좌(御座)는 왕의 공식 의례 공간인 근정전(勤政殿)에 설치되어 있다. 근정은 정사를 부지런히 수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술의 끝은 절대권력이다. 주술에 기대어 ...
    Date2025.11.18 By관리자 Views34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