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연재]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d1d9d2

내가 꿈꾸던 작은 도서관

posted Sep 15,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If you have a garden and a library, you have everything you need."

— Marcus Tullius Cicero

 

뉴욕스토리LFL-2 복사.jpg

Sue Cho, "Where friendship begins", 2026, August, Acrylic 36x36

 

 

참 이상하지?

원하던 것들이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곳에 떡하니 나타날 때가 있다.

시카고에 사는 딸의 동네에 가면 집 앞에 작은 집 모양의 서가를 만들어 놓은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Little Free Library)가 곳곳에 눈에 띈다. 그럴 때마다 나도 집이 있다면 집 앞에 예쁜 작은 도서관 하나를 만들어 책을 꽂아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네 사람들이 오가며 책을 가져가기도 하고, 또 누군가 어떤 책을 놓고 갔을까 궁금해하며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뉴욕에서 나는 마당이 있는 집이 아니라 아파트에 산다. 우리 아파트 지하 빨래방에는 사람들이 읽고 난 책이나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을 가져다 놓는 벤치가 있다. 나도 그곳에서 흥미로운 책들을 몇 권씩 집어오곤 한다. 그러다 보니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집에 점점 쌓여갔다.

 

문득 이런 생각도 했다.

'아파트 지하실에 예쁜 LFL 하나를 만들어 볼까?'

하지만 벤치에 쌓인 책들이 너무 많고, 말뚝을 박을 수도 없다. 누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 결국 그저 생각으로 끝났다.

 

뉴욕.jpg

Little Free Library at LaGuardia Corner Garden with Kiran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가장 가까운 커뮤니티 가든인 라과디아 코너 가든(LaGuardia Corner Garden) 앞에 새로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가 설치된 것을 발견했다.

'이럴 수가!'

내가 만들고 싶었던 작은 도서관이 집 가까이에 생긴 것이다. 문을 열어 보니 책은 두세 권뿐이고 거의 비어 있었다.

'아, 집에 쌓여 있는 책들을 여기에 가져다 놓아야겠다.'

어느 날 책을 처음 놓아두었는데 한 꼬마 아이가 LFL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름이 Kiran인데 너무 귀여워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뉴욕스토리3.jpg

Little Free Libraries at Tudor City Greens & Madison Square Park

 

 

희한하게도 내가 즐겨 찾는 맨해튼의 작은 공원들에는 LFL이 하나씩 있다. 제일 좋아하는 매디슨 스퀘어 파크(Madison Square Park)에도, 두 번째로 좋아하는 스타이브센트 스퀘어 파크(Stuyvesant Square Park)에도, 병원에 갔다가 들르곤 하는 튜더 시티 그린즈(Tudor City Greens)에도 있다. 그러고 보니 코네티컷 아들 집에 가는 길에 잠시 쉬어 가는 스탬퍼드의 바틀렛 수목원(Bartlett Arboretum & Gardens)에도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가 있다. 정말 신기하다.

 

뉴욕스토리.jpg

Little Free Libraries at Bartlett Arboretum & Gardens

 

 

공원 벤치에 앉아 책 한 권을 꺼내 읽다가 마음에 들면 가져가도 된다. 꼭 빌린 곳에 다시 돌려놓을 필요도 없다. 책이 한 사람의 손에서 또 다른 사람의 손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다만 마지막 한 권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다음 사람을 위해 남겨두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특히 튜더 시티 그린즈 LFL에 가면 관리자(Steward)가 상담가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갈 때마다 중독, 육아, 심리 상담에 관한 흥미로운 책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 책을 여러 권 빚지고 있다.

'다음에는 책을 가져다 놓아야지.'

생각해 보면, 내가 꿈꾸던 집은 없지만 집에서 꿈꾸었던 것들은 이미 내 곁에 와 있었다.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정원과 도서관이 있다면, 당신은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

나는 이제 라과디아 코너 가든의 나무와 꽃들, 그 앞의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 그리고 덤으로 래비린스까지 가지고 있지 않은가.

소유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바라던 것들이 이미 내 곁에 있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Little Free Library (LFL)

 

뉴욕스토리4.jpg

https://littlefreelibrary.org

 

 

Little Free Library의 시작에는 토드 볼(Todd Bol)의 어머니 준 볼(June Bol)이 있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가르치던 어머니는 어린 시절 난독증을 겪었던 토드에게 늘 용기를 주었고, 그 마음은 훗날 그의 꿈이 되었다.

 

2009년, 위스콘신주 허드슨에 살던 토드는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오래된 차고 문으로 작은 집 모양의 책장을 만들어 집 앞에 세워 두었다. 누구나 책을 가져가고 다른 책을 놓아둘 수 있도록 한 이 작은 책장은 이웃들이 책을 나누고 만나는 공간이 되었다.

 

토드는 친구 릭 브룩스(Rick Brooks)와 함께 이 아이디어를 널리 퍼뜨렸다. 처음에는 자신의 돈으로 책장을 만들어 매디슨, 시카고, 미니애폴리스 등에 세웠고,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알려지면서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2011년에는 비영리단체로 발전했고, 2018년에는 88개국에 75,000개가 넘는 Little Free Library가 등록될 만큼 성장했다. 한국에도 있다고 한다.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가 수많은 공공도서관을 세웠다면, 토드와 릭은 누구나 자신의 동네에 세울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이 글은 Miranda Paul의 『From Little Libraries, Big Heroes』(illustrated by John Parra)를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

PS

LFL을 직접 만들어 공식 등록하고 싶다면, Little Free Library 웹사이트에 자세한 안내가 나와 있다. 웹사이트의 지도를 통해 등록된 LFL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다.

홍영혜_프로필.png


  1. 내가 꿈꾸던 작은 도서관

    "If you have a garden and a library, you have everything you need." — Marcus Tullius Cicero Sue Cho, "Where friendship begins", 2026, August, Acrylic 36x36 참 이상하지? 원하던 것들이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곳에 떡하니 나타날 때가 있다....
    Date2026.09.15 Views26 file
    Read More
  2. 죽음의 계곡에서 만난 삶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 욥기 14:7-9 Sue Cho, "Miracle flowers in the desert 1", May...
    Date2026.07.13 Views225 file
    Read More
  3. 함께 판화를 만들어볼까요?

    함께 판화를 만들어볼까요? — The Renee and Chaim Gross Foundation Sue Cho, "The Cat and Money Tree", July 2025, Digital Painting 조카가 뉴욕에서 몇 해를 살다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며 키우던 Money Tree(머니 트리)를 내게 맡기고 갔다. 조카의 ...
    Date2026.04.15 Views295 file
    Read More
  4. 물과 같은 삶: 아버지를 생각하며

    Sue Cho, "Where Grace Flows", 2026, Feb., Digital Painting 1월 달 크리스티(Christie's)에서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미국 대통령의 그림과 그가 직접 만든 가구들을 전시, 경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록펠러 센터 근처 전시장을 찾았다. 카터 대통...
    Date2026.02.12 Views383 file
    Read More
  5. 설날에 띄우는 연하장 - 까치, 소나무, 해

    설날에 띄우는 연하장 까치, 소나무, 해 Sue Cho, "The Watcher", 2025, Dec., Digital Painting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
    Date2026.01.16 Views338 file
    Read More
  6. 뉴욕 식물원을 함께 걸어볼까요? - 가을 숲, 나무, 그리고 국화

    뉴욕 식물원을 함께 걸어볼까요? - 가을 숲, 나무, 그리고 국화 Sue Cho, "Autumn Joy in the Park" November 2025, Digital Painting 10월 말, 한국에서 돌아온 뒤 여독을 풀고 평화롭게 걸을 수 있는 곳을 생각하다, 브롱크스에 있는 뉴욕 식물원 (New York ...
    Date2025.12.10 Views398 file
    Read More
  7. 래버린스(Labyrinth)를 걸어볼까요?

    래버린스(Labyrinth)를 걸어볼까요? "Stand at the crossroads and look; ask for the ancient paths, ask where the good way is and walk in i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 Jeremiah 6:16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
    Date2025.08.16 Views692 file
    Read More
  8. 위대한 그 나무를 만나다 6 - 리즈 크리스티 정원의 돈 레드우드

    위대한 그 나무를 만나다 6 리즈 크리스티 정원의 돈 레드우드 (Dawn Redwood in Liz Christy Garden) Sue Cho, "Dawn Redwood Forest Golden Sunlight" 2025, Digital Painting 3년 전 책방에서 우연히 사게 된 "Great Trees of New York Map"(뉴욕시의 위대...
    Date2025.05.14 Views719 file
    Read More
  9. 눈 오는 날, 센트럴 파크

    Sue Cho, "Winter in the Cental Park, New York City", 2024, Nov. Digital Painting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코비드로, 연말에는 식중독인지 스토마크 플루(Stomach Flu)인지 알 수 없는 구토와 복통으로 2024년을 맥없이 흘려보내고, 2025년을 맞이했다. Sue ...
    Date2025.01.23 Views926 file
    Read More
  10. 라과디아와 오헤어 공항 사이 -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Sue Cho, "My ritual of helping the fear of flying", 2024, Sept. Digital Painting 시카고에서 돌아와 다시 뉴욕의 평범한 아침을 맞이하니 좋다. 달걀을 8분 삶고 오트밀을 12분에 끓여, 우유를 듬뿍 넣어 베리와 넛트를 얹어 먹는다. 편안한 긴 숨이 나...
    Date2024.11.05 Views850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