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식물원을 함께 걸어볼까요?
- 가을 숲, 나무, 그리고 국화

Sue Cho, "Autumn Joy in the Park" November 2025, Digital Painting
10월 말, 한국에서 돌아온 뒤 여독을 풀고 평화롭게 걸을 수 있는 곳을 생각하다, 브롱크스에 있는 뉴욕 식물원 (New York Botanic Garden)으로 향했다. 낮 동안 햇빛을 충분히 쐬며 숲길을 걷다 보면 기운도 나고, 밤잠도 한결 편하게 올 것 같아서.
멤버십을 갱신하며 예전에 딸과 나눴던 농담이 떠올랐다. 물건을 잘 사고 오래 쓰면 "뽕에 뽕을 뺐다"라고 좋아하곤 했는데, 지금 그 느낌이 딱 들었다. 멤버십 덕분에 식물원을 더 자주 찾게 되었고, 뉴욕뿐 아니라 다른 주에 있는 연계 식물원도 무료로 방문할 수 있는 혜택도 누린다.

https://www.nybg.org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서양란 전시, 벚꽃, 진달래, 라일락, 장미로 이어지는 꽃들의 정원과 홀리데이 기차 쇼(Holiday Train Show), 데일 치훌리(Dale Chihuly),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등의 기억에 남을 특별 전시에 매료되었다. 하지만 여러 해를 거듭해 방문하다 보니 이제는 숲길을 거닐며 나무를 천천히 바라보는 시간이 이곳에서 보내는 가장 큰 즐거움이 되었다.
테인 패밀리 포레스트(Thain Family Forest)
뉴욕식물원의 오래된 테인 패밀리 포레스트(Thain Family Forest)는 봄여름도 좋지만,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낙엽이 천천히 떨어지는 지금이 가장 분위기 있다. 이곳에 오면, 뉴욕에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자연림을 마주하게 된다. 수백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을 피해 스스로 변화해 온 원시림. 식물원이 이 부지를 처음 정했을 때도, 바로 이 '자연 그대로의 숲'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니 마음이 흐뭇해졌다. 이 숲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본 것 같아서.

숲의 넓이를 가늠할 때, 나에게는 센트럴 파크가 기준이 된다. 센트럴 파크가 843에이커라면, 브롱크스 식물원은 약 250에이커 정도다. 그중 사진에서 초록색으로 보이는 '테인 패밀리 포레스트'는 약 50에이커로, 브루클린 식물원 전체 크기인 52에이커와 거의 맞먹는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밝으며 트레일을 걷는다. 떨어진 미국 풍나무(Sweet gum tree)와 튤립 트리(Tulip tree) 잎을 보고, 고개를 들어 나무를 찾아본다. 스파이스부시(Spicebush)의 향과 사사프러스(Sassafras) 가지의 루트 비어 향도 코끝으로 느껴본다. 바람결을 따라 구수한 향이 번져 온다. 한 줌 낙엽을 손에 들고 향을 맡아보니 은은하고 깊은 구수함이 느껴진다. 마치 자연이 내게 따뜻한 '낙엽차' 한 잔을 건네는 듯하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흔적인, 빙하가 남긴 돌들도 눈에 들어온다. 해와 산, 물과 구름, 그리고 바위를 십장생으로 바라보았던 우리 선조들의 통찰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앞서가던 일행이 낙엽을 한 줌 들어 올려 공중에 흩뿌리자, 나도 따라 낙엽을 던져본다. 모두가 잠시 아이처럼 웃었다. 함께 걸으니 숲을 느끼는 방식도 더욱 풍성해진다.
늘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던 숲이지만, 이렇게 멈추어 듣고, 만지고, 맡고, 던지고, 바라보는 동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흘렀다. 멀리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면 늘 어딘가 불안했지만, 이 식물원 울타리 안에서는 원시의 숲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지도에서 보듯, 이 숲의 가장자리를 따라 브롱크스 강(Bronx River)이 흐른다. 헤스터 브리지(Hester Bridge)에 이르면 물소리가 들리고, 다리 건너편으로 작은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친구들과 함께 오면 나는 늘 "여기서 사진 찍으면 거의 나이아가라 폭포 같아요."라고 농담하곤 한다. 식물원이 생기기 전에는 이 주변에 담배를 가공하던 정미소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댐을 낮추고 조경을 더해 폭포와 숲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이 되었다.

폭포 옆 계단을 오르면 벚나무가 모여 있는 작은 언덕이 나타난다. 지난봄, 나는 문득 깨달았다. 벚꽃을 보기 위해 굳이 브루클린 식물원의 긴 프롬나드를 걸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언덕의 벚나무 한 그루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가을 햇살 속, 황금빛, 주황빛, 붉은빛으로 물든 단풍나무 구역(Maple Collection)을 지나면, 놀런 온실(Nolan Greenhouses)에서는 국화전(Kiku)이 한창이다.
국화 (Kiku) 전

국화전(菊展)은 매년 11월 초부터 단 2주 정도만 열리는 짧은 행사라, 때를 맞추어 보기가 쉽지 않다. 국화를 황실의 문장으로 삼아온 일본은 국화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전통 양식 가운데 오즈쿠리(Ozukuri)는 한 줄기에서 천 송이까지 피워내는 기법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국화도 약 300송이가 한 줄기에서 피어난 작품으로, 일본에서 들여온 종자를 원예사들이 11개월 동안 매일 물 주기, 솎아내기, 지지대 세우기, 가지 묶기 등을 반복하며 완성한 것이다. 뒤편에서 보면 수많은 꽃이 하나의 줄기에서 뻗어 나왔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고, 가지가 무게를 견디며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전시장에는 전통 일본식 국화뿐 아니라 다양한 품종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꽃이 피면서 잎이 뒤로 말려 엮은 듯 보이는 독특한 국화, 신부를 떠올리게 하는 우아한 흰 국화, '팜팜'처럼 귀여운 품종 등 다채로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화려한 국화전과 11개월에 걸쳐 공을 들인 재배 과정도 놀라웠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선조들이 국화에서 찾았던 소박한 아름다움과 철학이 떠올랐다.
느리게 피고 오래 견디며 향기롭고 깨끗하다 하여 사군자로 칭송된 국화. 다산 정약용은 「국영시서(菊影詩序)」에서 국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아, 여름에는 잎을, 가을에는 꽃과 향기를, 낮에는 자태를, 밤에는 흰 벽에 비친 그림자를 즐겼다고 기록했다. "먹을 수 있어야만 실용이 아니라, 정신을 기쁘게 하고 뜻을 길러주는 것도 가치가 있다"라는 그의 말이 더욱 마음에 남는다.(성종상, 『인생정원』, pp. 68–69)
그 대목을 읽고 나니 내년에는 국화 화분 하나쯤 들여 흰 벽에 드리운 그림자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국화를 장례식의 노란·하얀 꽃으로만 떠올리며 크게 즐기지 않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국화가 사군자로 추앙받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고, 국화를 더 깊이 알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위대한 나무: 스네이크 브랜치 스프루스(Great Tree: Snake branch Spruce)

입구로 돌아가는 중에 Benenson Ornamental Conifers 근처에 Snake branch Spruce, '위대한 나무(Great Tree)'가 있다는 말이 떠올라 카트를 타고 가던 직원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물었다. 그는 이번 주에 일을 시작해 잘 모르겠다며 떠났지만, 잠시 후 돌아와 손짓을 했다. 지나가며 나무들을 살피다가 우연히 그 나무를 찾았다며 얼른 카트에 타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뜻밖의 행운처럼, 마침내 그 나무를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오늘 본 나무는 정말 독특했다. 처음 보는 생김새였는데, 가지는 아래로 길게 늘어지고 전체 형태는 얼기설기하지만, 그 자체로 묘한 끌림이 있었다. 늘어진 가지가 마치 뱀이 매달린 듯 보여 그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
Snake branch Spruce의 어린 나무는 빗자루 손잡이처럼 볼품없어 사람들이 잘 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멋지게 자란 나무도 위대하지만, 1949년 이곳에 심어 긴 세월을 기다려주고 보살펴온 식물원의 손길 또한 위대하게 느껴졌다.
해가 일찍 지는 계절이라, 가지 사이로 스며든 석양빛이 나뭇잎 위에서 황금빛으로 번지고 있었다.
Hudson Garden Grill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다. 나의 '오감을 마무리하는 공간'이다. 주말에는 예약이 거의 필수지만, 이른 저녁이면 운 좋게 자리를 얻거나 바 좌석에 앉을 수 있다.
뉴욕에서 좋아하는 식당을 다섯 곳만 고르라면 이곳은 늘 포함된다. 계절마다 메뉴가 바뀌고, 신선한 재료와 담백한 조리가 마음에 든다.
이번 가을 메뉴는 케일, 오이, 호박, 무화과, 피칸이 들어간 가을 샐러드와 풍미 가득한 버섯 사이드 디쉬가 특히 맛있었다. 전에 연어요리에 함께 나온 뇨키((gnocchi)가 쫄깃하지 않고 퍽퍽했던 기억이 나서, 이번에는 연어를 사이드로 곁들이니 딱 좋았다.
집에 돌아가 저녁을 따로 준비할 걱정도 없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다.
오늘은 푹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Sue Cho, "Autumn Stroll through Golden Foliage" November 2025, Digital Paint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