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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조합원 -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게 저의 장점이죠

posted Jun 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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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선영
발행호수 57

Q. 현재 하시는 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대학을 졸업한 후부터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조합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어요. 노조 활동은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관점을 바꿔주었죠. 타인과 더불어 사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세상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 주었어요.

 

30대 초반부터는 연극 심리상담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원래 대학교 입학할 대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뜻대로 안 됐고 그 대신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이제 연극을 할 일이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20대가 저물어가던 무렵, 다시 운명처럼 연극을 만나게 됐죠. 어느 연극인이 낸 공고를 봤거든요. 그렇게 해서 연극 운동 단체인 ‘생활연극 네트워크(이하 생연)’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연극은 사실 특정한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라 민중들이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생연에서는 ‘보는 연극’이 아니라 ‘하는 연극’을 만나게 되죠. 이곳에서의 활동을 통해 연극이 저의 성장을 위한 힘 있는 도구라는 것을 경험하게 됐어요. 연극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활용되기를 바라는 생연의 취지에 공감해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내가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미술치료처럼 연극치료도 있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고 연극 심리상담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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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극 심리상담이라면 일종의 사이코 드라마 같은 건가요?

 

사이코 드라마와는 개념이 달라요. 사이코 드라마는 연출자가 있고 빙의자 기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연극 심리상담은 좀 더 포괄적이죠. 놀이치료와 스토리텔링을 포괄한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더 넓은 개념이죠. 자전적인 이야기로 공연도 하고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슈로 10여 분 정도의 단막극을 무대에 올리는데요. 이게 하나의 치료행위가 될 수 있죠.

 

생연에서는 1년 과정의 기수생으로 구성된 형태를 운영 중이에요. 전 1기인데, 매주 수요일에 만나서 교육하고, 연극하고 공연도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처음엔 이론 공부부터 시작하고 매주 개인의 이야기로 대본을 쓰고 직접 연극을 하죠.

 

Q. 그 과정에서 힘든 일은 없나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오다 보니까 그 안에서 아무래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공동창작을 하다 보니 각자 의견을 어필하려 하죠. 연세가 좀 많은 분들은 지시가 익숙한 사람들이잖아요. 하지만 힘들어도 서로 맞춰가면서 해요. 다행히 지도하시는 선생님이 중심을 잘 잡아주세요. 힘든 이야기도 오픈해서 이야기하게끔 만들어주시죠.

 

예를 들어, ‘저 사람은 말을 더듬는데 무슨 연극을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면을 특화시켜서 그걸 잘할 수 있게 하죠. 그렇게 캐릭터화 시켜서 소외되거나 저평가된 사람들도 함께 어우러져서 그의 장점이 되게 이끌어주죠. 그렇게 함께 겪으며 성장해나가고 있어요.

 

Q. 내담자가 자기 이야기로 공연을 한다는 것이 큰 용기를 필요로 할 것 같은데요?

 

연극 심리상담은 일반 관객이 있는 오픈 무대가 아닙니다. 본인이 부르고 싶은 관객만 불러서 자기 얘기를 나누는 거예요. 물론 아무도 안 불러도 상관없어요. 제가 먼저 그 경험을 했을 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전 예전에 매일 밤마다 시험 보는 꿈을 꾸었어요. 시험공부를 전혀 안 하고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아는 문제가 하나도 없는 그런 꿈이었죠. 그런데 그 자전 공연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꽤 오랫동안 그런 꿈을 안 꾸었어요. 신기할 정도로 내 문제가 풀려나가는 느낌이었죠.

 

Q. 왜 그런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늘 긴장 상태가 강했고, 뭘 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했던 것 같아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강박 같은 거였죠.

 

Q. 왜 그런 강박증이 있었을까요?

 

제가 30대 중반에 인생의 방황기를 겪었어요. 집안 문제로 갈등이 있으면서 개인적으로 이 무렵이 가장 힘들었죠. 가족이 저에게 의지하는 상황이 버거웠어요. 그동안은 가족에게는 알아서 잘하는 좋은 딸이었습니다. 사춘기 때에도 가족과 갈등 없이 지냈죠. 성장기 때 엄마랑 사이가 안 좋았던 경험이 없어서 친구들이 엄마와의 관계로 힘들어한다는 걸 잘 몰랐어요. 그런데 사실은 나에게도 이런 부담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죠. 내 진로 결정 문제나 자유롭고 싶은 면에서 가족이 걸림돌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Q. 길목 심심 운영위원으로도 활동 중이시죠?

 

네, 향린에서 노조 활동가들이나 해고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면서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연결됐죠. 1년 동안 회의하고 논의하고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Q. 심리상담을 하려면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연극 심리상담을 장애인 단체, 보육원, 군부대 같은 곳에서 시작했는데 이런 분들은 연극 심리치료를 하는 게 힘들었어요. 시작할 땐 내가 이걸 잘할 줄 알았고, 누군가를 돕는 게 너무 행복했는데 하다 보니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생각만큼 잘 안되기도 했고, 장애인이나 어린이는 소통이 잘 안 돼서 더 힘든 면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이걸 잘하고 즐기고 좋아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시기에 마침 37세에 심심에서 활동하고 주변에서 일반 상담하시는 분들 보면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서울불교대학원에서 언어 상담 공부를 작년부터 시작했어요.

 

연극 상담이 집단 상담이라면 언어상 담은 개인 상담인데, 1대 1로 언어로만 상담하는 게 처음이라 좀 더 긴장이 되더군요. 하지만 하고 난 후의 만족도는 언어 상담이 더 높더라고요.

 

반면 연극 집단상담은 저보다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힘들죠. 자기 얘기를 해야 하니까요.

 

Q. 연극 상담의 주요 목적이 치유가 아닌가요?

 

치유보다는 성장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요. 연극 행위 자체가 성장을 유도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냥 연극 활동을 하다 보면 스스로 성장해나갈 수 있게 해 줘요. 공연 활동하면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게 목적이죠.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가 다른 데서 오는 갭이 있잖아요. 공연이 좋아서 하다 보면 자신을 바로 보게 되죠. 그러다 보면 뾰족했던 사람들도 둥글어지는 것을 많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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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심리상담 분야에서는 흔히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의 근원을 들어가 보면 결국 유아기까지 닿아 있다고 하죠. 이 이론에 동의하시나요? 사람이 살면서 후천적으로 겪은 환경들도 영향을 미치는 거 아닐까요?

 

제 얘기를 먼저 좀 해볼게요. 전 엄마와의 관계가 좋다고, 전혀 문제없다고 생각했다가 30대 중반쯤에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갑자기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엄마한테 처음으로 분노와 원망을 느꼈어요. 그런데 죄책감이 너무 올라오더라고요. 나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던 거죠. 그러면서 느낀 게 심리상담이란 게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이 잘못되면 상대방에게 원망을 돌릴 수도 있겠다는 걸 느꼈어요.

 

저의 내담자 중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어요. 이전에 다른 상담사가 “당신이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제대로 돌봄을 못 받아서 그런 문제가 있는 거다”라고 말했죠. 그분이 그 말을 믿고 ‘내가 부모를 잘못 만났다’는 원망이 크더군요. 금수저, 흙수저에 대한 생각이 강해요. ‘나도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식의 원망에서 못 벗어나더라고요. 현재 자신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 원인이 내가 기억도 못하는 구순기 문제인지 혹은 성장기의 문제인지는 다 섞여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현재 나에게 힘든 게 이슈가 되어야지, 과거까지 범위를 넓혀서 봉합을 못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내가 엄마와 불편해지면서 불안감도 올라오고 이게 결국 가족 문제로 가게 되는데, 그러면 엄마가 나한테 베푼 그 많은 사랑은 다 없어져 버리는 결과까지 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상담이 잘못 가면, 또 다른 기억과 해석의 왜곡이 일어날 수도 있고, 내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상담사가 내담자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도 있는데 부모의 문제로 돌려버리면 안 될 것 같아요. 나와 나, 나와 상대방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해주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말이에요.

 

Q. 요즘 인기 있는 어느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있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부족한 게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자신이 지극히 평범해서 지긋지긋하다고 하죠. 혹시 이 드라마 캐릭터에 공감하세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까요? 너무 평범해서 고민이고 사는 게 재미없다는 사람들 말이에요.

 

저 같아도 거기서 해방되고 싶을 것 같아요. 평범한 게 지긋지긋하다는 게 이해되더라고요. 어정쩡한 경계선에 사는 사람의 힘든 상황이 와닿기도 했고요. 능력은 있지만 계약직이고, 똑 부러져 보이지만 허술한 면도 있고, 그래서 그런 동경이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제 성향상 그런 자유로운 남자가 오면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라서 그를 만남으로써 내가 해방되는 느낌이 들죠. 30대에 힘들었던 이유가 자유롭고 싶어서였는데, 갈망은 있었지만 자유롭지 못한 데서 오는 갈망이 있었죠. 그게 좌절됐던 30대를 지나왔어요. 엄마가 나에게 의존증이 심해서 힘들었고 부담이었죠. 그래서 엄마를 멀리 하게 되고, 도망가고 싶고 해방되고 싶은 열망이 강했어요. 그때 만났던 남자친구가 세계 여행가였어요. 저와 결이 많이 다른데도 왠지 결이 같아 보였어요. 그와 함께 있으면서 나도 그처럼 해방되는 것처럼 보였죠. 대리만족이 강했다고 할까요.

 

한편으로는, 경계선에 사는 것, 존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어요. 상담사로서 남들은 직업으로서 살아가는데, 전 노조 활동가지 상담사는 아니니까요. 공부는 내가 더 많이 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다른 분들은 상담사로서 더 경험도 많고 더 당당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전업 상담사를 해야 하나, 내 정체성은 뭐지? 상담사인가 노조 활동가인가, 연극하는 사람인가, 그런 갈등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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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학생운동을 안 했어요. 그래서 노동운동계에서 보면 좀 부족한 사람이죠. 가끔은 어떻게 보면 민간인(?) 취급을 당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또 민간인이 보기엔 운동가 취급을 받죠. 그런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데, 어느 선배가 그렇게 말해주더군요. 그게 너의 장점이다. 경계선에 있는 게 너의 특화된 장점이라고요. 사실은 그게 저의 콤플렉스였는데, 그렇게 말해주니 저도 이젠 받아들여요. 오히려 남들보다 알고 있는 게 더 많을 수도 있죠.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의 불안함도 이해할 수 있고, 활동가의 팍팍한 삶에 민간인인 제가 가서 오히려 그분에게 위로가 되고 다른 에너지를 받고 힐링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나만 잘할 수 있는 게 있구나. 내가 남들과 같은 색깔을 굳이 안 가져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해요.

 

제가 작년에 시집을 한 권 냈어요. 그런데 시인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시인의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비어있는 공간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게 시라고 생각해요.

 

전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애썼지만 지금은 나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애정을 갖고 있는 것들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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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원’이란 필명으로 최선영 조합원이 낸 시집

 

Q. 본인의 시를 한 편 추천해주세요.

 

그냥 그대로 온전하다

 

그대, 살아있음을 증명하려 하지 마세요

 

그대의 숨소리가 삶의 음악이니

이보다 더 강한 소리는 필요치 않아요

 

그대의 미소가 삶의 풍경이니

이보다 더 과한 몸짓은 필요치 않아요

 

그대의 살내음이 삶의 향기니

이보다 더 진한 향은 필요치 않아요

 

그대, 살아있음을 증명하려 하지 마세요

 

당신이 거기 있음을

당신이 살아있음을 내가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알아요

 

 

 

[인터뷰 후기]

최선영 조합원과는 이름도 같고 관심사가 비슷한 데다 좋아하는 가수도 같아서, 인터뷰가 아닌, 그저 마음이 맞는 사람과 재미있는 수다를 떨고 온 것 같았습니다. 그 수다는 이후 카톡으로도 이어졌지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단문 선답>

 

1. 나에게 믿음(신앙)이란?

이해하는 것. 신의 말씀이 사랑과 지성의 우주적 원리라면 그것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2. 나에게 행복이란?

우리가 참으로 우리 자신이 되는 자유를 얻는 것.

 

3. 나에게 사랑이란?

무조건적으로 선을 표현하려는 욕구. 모든 것을 돌보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며, 무조건적이고 비개인적인 방식으로 선을 드러내는 것.

 

4. 나에게 나이 듦이란?

경험 속에서 의미를 찾고 연결해 나가는 탐구 과정.

 

5. 나에게 잘 산다는 것은?

본래성을 회복하여 유익한 현존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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