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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1주기 추모 섬진강 자전거 순례

posted May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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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SA07189_ 눈 덮인 노고단.JPG

2025년 4월 14일 월요일 섬진강댐~곡성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전거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비가 세차게 내렸다. 두 시간 후인 두 시 반쯤 섬진강댐 인증센터에 다다랐다.

 

오전 열 시부터 기다리신 니키를 만났다. 그 비에 자전거를 타면 사고 위험이 있다고 하셨다. 혼자라면 작년 영산강 종주 때처럼 강행했겠지만 함께는 그럴 수 없었다.

 

니키의 무거운 전동 자전거를 접어 자동차 뒷좌석에 실었다. 곡성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석곡 이정표가 보였다. 석곡은 동글의 새 거처가 있는 곳이라고 공룡에게 들은 말이 기억났다. 갓길에 정차하고 공룡에게 전화했다. 공룡은 바로 동글에게 연락해 놓겠다고 하고는 주소를 알려 주었다. 24분 후 석곡 동글 집에 도착했다.

 

잠시 동글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2021년 7월 곡성 강빛마을에서 한 달 살이 하던 때 도보 순례하던 나를 발견하고는 밥을 사주고 집으로 초대했던 전 곡성농민회장이다. 800평 너른 밭을 멀칭 비닐도 없이 모종 아닌 씨앗으로 농사짓던 농부. 내게 씨앗으로 쓸 콩을 먹으라고 준 이. 나는 그 콩이 아까워서 다 먹지 못하고 아직도 가지고 있다. 콩을 볼 때마다 그이가 떠올랐다.

 

지난해 <굴뚝새와 떠나는 정원 일기>를 출간하고 등장인물들에게 책을 보내던 중 연락되지 않던 동글의 소식을 공룡을 통해 들었다. 그이는 작년 4월에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과 재활 치료를 하고 최근에 집으로 돌아왔다. 밭 옆의 그 집은 아니고 조금 번화한 곳으로 옮긴 집으로.

 

오후 네 시 반쯤, 깔끔하게 개보수한 집 대문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와있던 공룡이 맞아주었다. 동글은 안방에서 태극권 선생님의 재활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따스한 공기가 차 있는 거실엔 구석구석 동글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책과 소품들이 있었다. 건너 주방에는 하루 7시간씩 도와주는 도우미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잠시 후 치료가 끝나고 동글이 나왔다. 휠체어를 직접 운전해서. 치렁치렁 흑단 같던 머리는 반백의 짧은 커트 머리로 바뀌어 있었고, 마비된 오른팔은 깁스용 붕대에 끼워져 있었고, 오른 다리도 마비 상태였다. 왼쪽 머리를 다쳐 오른쪽 편마비가 온 것이었다. 하마터면 울 뻔했다. 울음을 꾹 참고 있는데 동글이 해맑게 웃었다. 말도 또박또박했다. 그리곤 내 손을 잡았다. 그 손이 따뜻했다. 기적이었다. 그이의 의식이 돌아온 것도, 움직일 수 있는 것도, 말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기적이었다. 동글의 강인한 의지와 그이를 사랑하는 친구들의 극진한 보살핌이 이뤄낸 기적이었다. 그럼에도 동글은 아직 글을 읽기는 어려워 내 책을 공룡에게 읽어달라고 했단다.

 

한 시간 정도 담소를 하고는 일어섰다. 동글은 힘찬 노래로 우리를 배웅했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아직 순례 일정을 시작도 못 한 상태였다. 어쩌면 동글 병문안이 순례의 시작이었다.

 

오후 여섯 시, 곡성 성당 옥터 성지에 도착했다. 니키의 순례인 성지 순례 인증을 하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니키가 가르쳐주시는 대로 순례를 떠나면서 바치는 기도와 순례를 마치면서 바치는 기도를 했다.

 

7SA07132_ 곡성 성당.JPG

 

 

두 달 전에 예약해 놓은 한옥 펜션으로 갔다. 나는 이번 세월호 참사 11주기 자전거 순례를 미리미리 계획했다. 무작정 순례하던 예전 습성을 버리고, 노선을 짜고 첫날 숙소를 예약해 놓았다. 일찌감치 준비하면 좋은 숙소를 할인가에 예약할 수 있었다. 그동안 즉흥적으로 움직이던 내 순례 방식은 점점 안정성을 띠어갔다. 이제는 나와 함께하는 누구에게라도 최상의 조건을 제공하고 싶었다. 그건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해도 날씨는 통제할 수 없다.

 

짐을 풀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식사를 하러 나갔다. 곡성역 근처 청국장집에서 깔끔하고 맛있는 저녁밥을 먹었다.

 

식사 후 밤 여덟 시, 다시 섬진강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공방을 찾아서. 그곳은 곡성에 머물 당시 달팽이 그려진 벽조목 안경테를 내게 선물하신 분이 운영하는, 목각·석각·금속공예와 도자기 등 다양한 공예작품을 제작 판매하는 곳이었다.

 

4년 만에 다시 찾은 공방은 새롭게 변해 있었다. 원래 공방이 아닌 옆 부지에 두 배 정도 큰 반듯하고 밝은 공간이 건축돼 있었다. 작품도 달라져 있었다. 나무 국자와 쟁반은 예전 디자인에서 상향되었다면, 아홉 마디 대나무에 인두로 시를 쓴 자루에 화선지 위 그림 그린 부채로 만든 개인전 작품들은 새로운 창작물이었다. 돌에 글씨를 새긴 찻잔 받침과 주석 포크는 그대로였지만 연꽃 전등 빛에 비친 커피 맛은 밤인데도 좋았다. 비로 인해 못한 순례와 병문안 그리고 과거와의 조우로 인해 다소 복잡하던 마음이 차분하게 풀렸다.

 

"이 안에선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여행이 제일 좋다고 하는데, 저는 창작이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같아요."

 

공방 주인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 사이 그 공방의 이름은 사라졌다. 그 이름은 시내 다른 카페에 양도했고, 그래서 지금 그곳은 이름이 없다. 다른 이름으로 시작할 때라고 했다. 마치 '정원 일기'를 쓴 내가 다시 정원을 찾아 헤매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듯이.

 

<굴뚝새와 떠나는 정원 일기>를 출간하고 그 책에 등장하는 분들에게 일일이 책을 보내 드리면서, 혹시나 그분들이 조촐하게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열어주면 한달음에 달려가 그 시절 이야기를 도란도란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곡성에서 동글과 공룡과 공방 주인을 만나며 과거가 현재와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불의의 사고를 이겨내고 밝은 기운으로 살아내는 생의 기운, 새롭게 정비하고 말끔히 정돈한 활력, 오래 묵어 낡고 녹슬고 먼지 끼고 눅눅한 것을 떠나 하나하나 채워가는 신생의 명징함이 상쾌했다. 그 느낌은 이전 공방에 잠시 들렀다 나오면서 훨씬 명확해졌다.

 

모든 정체되고 구질구질한 것들은 가라,

새로운 정신은 빛을 띠며 나아가리라.

 

 

2025년 4월 15일 화요일 곡성 횡탄정~광양 배알도 수변공원 85km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챙겨간 죽과 누룽지 끓인 것으로 식사했다.

이른 아침에 문자가 왔다. 공룡이었다.

 

전날 동글이네 찾아줘서 고맙다고. 깊은 병은 몸이 불편한 것보다도 선택하지 않은 외로움이라고 생각한다고. 오랜만에 동글이 우리 보고 행복했다고. 비가 와서 좋다고 했다고.

 

그 정도로 좋아했을 줄은 몰랐다. 전날도 어렴풋이 느꼈지만, 비가 와서 자전거를 타진 못했어도 동글을 방문한 게 순례의 의미나 가치에는 더 맞았다.

 

횡탄정~사성암 28km

일곱 시 반쯤 짐을 챙겨 차를 타고 횡탄정으로 이동했다. 곡성 횡탄정부터 광양 배알도 수변공원까지는 85km. 8시 반부터 여섯 시간 반 안인 오후 세 시에 도착해야 한다. 거기서 중마터미널까지 9km 정도를 더 가서 오후 네 시 버스를 타야 그날 진도에 갈 수 있다. 하루 두 대 있는 버스 중 그 버스가 막차였다.

 

우리는 20km 정도마다 있는 인증센터에서만 휴식하기로 하고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사성암까지 28km를 가는 동안 채 떨어지지 않은 벚꽃 가로수가 길 양옆으로 가득했지만, 인도도 갓길도 없는 1차선이라 쉬지 못하고 달렸다. 섬진강물 위 바위에 흑조 한 마리가 고혹적으로 서 있었다. 그 장면은 찍고 싶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았다. 오른쪽으로 커브를 트는데 왼쪽으로 구례 가는 길이 보였다.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입니다'

무지막지하게 밟던 페달을 나도 모르게 멈추고 브레이크를 잡았다. 그 길로 가면 화엄사에 갈 수 있다. 2021년 진도 거쳐 해남부터 걸어온 18번 국도 순례의 종착점이었던 곳, 2023년 지리산 화대종주의 출발점이었던 곳. 지난 길 위의 외로움과 고독과 갈등과 고통이 몰려오는 듯했다. 그것들이 나를 삼키기 전에 페달을 밟았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언젠가 그곳에 다시 가서 풀 날이 있으리라.

 

10시 30분, 구례구역에 도착했다. 18번 국도의 마지막 7월 도보순례를 함께한 세실을 데려다주며 그 앞에서 해남 백련재 문학의 집에 입주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아 기뻐하던 곳. 지리산 갈 때 내렸던 곳이었다.

 

오전 11시, 사성암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30여 km에 두 시간 반 걸린 셈. 인증센터 앞 오섬뜰 농촌체험센터에서 해물 순두부로 이른 점심식사를 했다. 들깨를 넣은 맛이 순하고 부드러웠다.

 

사성암~남도대교 19km

11시 50분. 다시 출발. 강을 왼쪽으로 끼고 오른쪽으로 크게 도는데 저 멀리 흰 눈 덮인 지리산 노고단이 보였다. 4월 중순에 눈이라니, 진달래를 보러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지리산이 말하는 듯했다.

 

7SA07189_ 눈 덮인 노고단.JPG

 

 

오후 한 시, 남도대교 앞에 도착했다. 담양에서 만난 릴리가 광양에서 사준 불고기가 종종 생각난다. 순례 중 오랜만에 안부를 전했다.

 

남도대교~매화마을 18km

매화마을까지 가는 길에는 유채밭이 샛노랗게 펼쳐있었다. 어느 순간 코너를 돌면서 절벽 위에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그것도 정말 사진 찍고 싶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가 멈추면 뒷사람도 멈출 테고 그건 민폐였다. 물론 뒷사람은 내가 멈추고 사진 찍는다고 절대로 뭐라고 할 분이 아니었지만. 페달 밟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점점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중간에 계속 어긋나는 전화 때문에 풀밭에서 멈췄다가 출발하느라 비척거리다 맥없이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쓰러진 탓인지도 몰랐다. 마음이 급하니 불필요하게 자꾸 부딪혀 아프게 멍이 들고 있었다.

 

더는 내 감정을 그대로 널뛰게 두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과감히 정차했다. 그리고 중류를 찍지 못하고 지나온 섬진강 하류를 찍었다. 잠시나마 강물처럼 평화로웠다. 욕구는 해소해야 한다. 그대로 놔두면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생긴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상황에서 의식적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7SA07192_ 유채꽃 섬진강.JPG

 

7SA07197_ 섬진강.JPG

 

 

2시 22분. 매화마을 도착. 20km 더 가야 있는 배알도 수변공원에 세 시까지 도착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매화마을~배알도 수변공원 20km

망덕포구 높이 쌓은 축대에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시구가 보였다.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 근처였다. 몇 년 전 공사 중이던 가옥은 새 단장을 하고 해설사도 있었다. 그런데 벌써 오후 세 시가 넘어있었다. 배알도 수변 공원까지 가서 인증하고 중마터미널까지 8.4km를 가서 네 시 버스를 타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도 정병욱 가옥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그곳은 윤동주 시인의 친구 아버님이 아들 친구의 시집을 감춰두셨던 곳.

 

7SA07202_ 정병욱 가옥.JPG

 

 

배알도 수변공원 인증센터는 유인에서 무인으로 바뀌면서 찾기가 어려웠다.

4시 20분에 가까스로 인증. 마침내 광주 현 갤러리에서 세월호 참사 11년 사진전 중이던 꿈터갤러리 관장님과 통화가 됐다. 나는 중마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진도가 아닌 목포로 가겠다고 했다. 거기서 만나자고. 그런데 관장님이 그러면 너무 늦는다고 태우러 오신다고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누군가 도와주러 오시는데 감사한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목표치를 완벽하게 달성하지 못한 부끄러움에 결국은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는 미안함이 겹쳐져 마음이 계속 가라앉았다.

 

오후 여섯 시, 한 시간 반만에 광주에서 광양까지 달려온 검은 차에서 관장님이 내렸다. 두 대의 자전거를 실은 차는 지는 해를 정면으로 보며 서쪽으로 안정감 있게 달렸다.

 

밤 여덟 시 반에 진도군에서 감자탕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그즈음 내 무릎은 빠개질 듯 통증이 심했다. 휴식 없이 무리해서 페달을 밟은 후유증이었다.

대체 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4월만 되면 도대체 왜?

그곳에 가야 한다는, 그런데 쉽고 편하게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올해도 팽목항 가는 길을 험난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관지의 하얀 집이 있다. 그곳에 가면 마음 놓고 쉴 수 있었다. 값비싼 펜션보다 관지의 하얀 집에서 방문 걸어 잠그고 푹 숙면할 수 있었다. 안심이 최고다.

 

 

2025년 4월 16일 수요일 진도항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

 

모처럼 여유 있는 아침 시간. 새 쌀밥을 짓고 전날 관장님이 감자탕 식사 후 포장해 온 김치찌개를 끓이고 달걀프라이를 해서 풍성한 아침밥을 먹었다. 커피와 과일도 먹으며 하얀 집을 찾아오는 고양이에게 남은 밥도 주었다. 손걸레질을 싹 하고 짐을 챙겨 떠났다.

 

기억의 숲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숲에는 동백꽃이 아직 남아 있었고, 김관홍 잠수사 동상은 변함이 없었지만, 의자는 녹이 슬었고 은행나무는 몇 그루 잘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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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부터 혼자 자전거를 탔다. 4.16km 달려 등대로 갔다. 올해는 흰 국화가 놓여 있었다. 조마조마 다가가 본 노란 헝겊 리본 사이에 내 황동 리본도 5년째 걸려 있었다.

원불교 교무님이 내 자전거 앞 '핵발전소 없이 안전하게 살자' 몸자보를 보시곤 말을 거셨다. 오후 두 시부터 위령재를 지낸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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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커피 부스에 작년처럼 사랑 씨와 아버지와 그 후배가 와 있었다. 사랑 씨와 나는 서로 기다렸으므로 매우 반가웠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천막이 날아갈 듯했다. 우리 인생에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몰아쳐도 굳건히 살아서 내년에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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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에서 예년처럼 푸드트럭이 와서 떡볶이와 어묵을 나눠주었다. 커피 차량도 있었다. 몇 년째 해마다 이 날이면 만나는 박근서 광주전남지부 사회연대위원장도 반가웠다. 해를 거듭할수록 최장기 해고자일 텐데 15년째일 3M 복직 소식은 차마 묻지 못했다.

 

오후 두 시, 팽목 성당에서 참사 4018일 미사를 봉헌했다. 작년과 달리 인파가 가득했다. 여러 신부님 중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셨던 김성용 신부님도 계셨다. 미사 후 달걀 담은 닭 모양 수세미와 백설기와 두유와 노란 실 묵주를 나눠주셨다. 부활절 맞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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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 전, 기억식을 시작했다. 작년보다 더 썰렁했다. 지난 정권을 성토하던 이장님과 침묵하던 유족들과 여러 곡을 부르는 가수가 있었다. 그곳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안산이나 목포로 갔을까?

 

지난 2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희망 뚜벅이 때 임경빈 엄마는 4월이 되면 여기저기서 유족들을 초청하는데, 아이 건진 날 어디 가고 싶겠냐고 했다. 그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미안함이 강하게 남아 이젠 4월에 노란 옷 입은 유족들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분들은 행사에 참석하기보다 집에서 조용히 아이 추모하기를 원하실 것이다.

 

노래가 길어질 무렵, 다시 등대 쪽으로 갔다. 사랑 씨는 쉬러 갔고 부친만 계셨다. 11년 전 세월호 참사 다음 날 진도 체육관으로 가서 세면대 청소를 도맡았던 부친.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힘이 들어 해마다 팽목항에 와서 커피와 음료를 무료로 나눠주는 분. 그렇게 열한 번 중 삼 년 전부터는 딸과 함께 나오는 분. 딸이 좋은 어머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팽목항에 동행하는 분.

 

작년에는 자리를 피하던 분이 생생하게 당시를 회고할 때 나는 와보지 못했던 11년 전의 상황을 그려본다. 전국에서 달려와 내 일처럼 팔 걷어붙이고 도왔던 사람들. 그중엔 천안함 사건 유족도 있었다. 자식 잃은 같은 마음에 달려왔던 분들. 시간이 지나며 그 순수했던 마음들은 왜곡과 오해로 반목하게 되었다.

 

누가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이라 하는가. 가족의 참사 앞에서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각자의 아픔이 세월호 참사와 맞물려 애도와 추모를 이어간다 한들 그 슬픔을 누가 뭐라 할 수 있는가. 기다림 중 가장 애통한 기다림은 아무리 기다려도 만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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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억식으로 돌아갔다.

오후 4시 16분, 사이렌이 울렸다.

묵념으로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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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일곱 시 넘어 광주 현 갤러리에 도착해서 김정용 작가(꿈터 갤러리 관장)의 세월호 참사 11년 사진들을 포장해 상자에 넣어 실었다. 갤러리 측에서 준비해 주신 고급 초밥을 먹은 후 니키는 수도회로 돌아가셨고 나와 관장님만 출발했다. 나는 다음날 이틀 전 비 때문에 못 한 섬진강댐~곡성 횡탄정 구간을 순례할 계획이었다. 그런 내게 관장님은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그만 철수하는 게 어떻냐고 하셨다. 실은 나도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많았다.

 

밤 아홉 시, 깜깜한 횡탄정은 혼자서는 못 갈 만큼 무서웠다. 그 어둠 속에서 내 자동차 탈핵브리드가 묵묵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관장님 차에 있던 자전거 뷔나를 옮겨 실었다. 그 앞에 흐르고 있을 검은 강과 그 위에 어른거리는 불빛을 한 컷 찍고는 관장님 차를 따라 출발했다. 다시 언제 올지 모른 채 섬진강을 떠나는 심정이 아쉽기보다는 어서 자리를 뜨고 싶기만 했다. 어둠은 사람을 움츠리게 한다. 꽤 길게 고불고불 국도를 지나 고속도로를 탔다가 다시 어두운 국도를 한참 달렸다. 먼 길 떠났던 섬진강 자전거 순례는 그만큼 멀리 돌아와야 했다. 일 년에 한 번 진도 가는 길이 참 멀고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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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4일 목요일 임실 섬진강댐~곡성 횡탄정 68km+곡성역 7km=75km

 

일주일이 지난 아침 여덟 시대 자전거를 접어 싣고 임실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이른 아침에 온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해남의 나무가 전달해 준 글이었다.

 

<입보리행론 2차 강독 323-제8선정품(禪定品) 55>

'밤에는 꽃이 보이지 않는다.'

 

화요일에 비가 와서 피케팅 할 사람 없을까 봐 초저녁에 달려간 전주 전북지방환경청에서 만난 나무가 내 자전거 순례 때 곡성에서 임실까지 픽업해 줄, 곡성 사는 친구를 연결해 주었다. 하지만 하루 지나 정중히 거절했다. 거리가 너무 멀어 순례 중에 남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다고. 나무는 내 낯가림 때문인 줄 알고 친구의 나와 다른 남과 함께 더불어 살자는 아침 명상 글을 보냈을 터. 나는 다만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하는 탈핵 혹은 생명 평화 자전거 순례에서 자동차로 장거리 오가는 연료 소비와 그에 따른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 발생이 상충하는 지점에서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9시 50분, 임실역에 내렸다. 역 앞 트럭 운전석 여자분께 임실터미널 방향을 여쭈었더니 알려주셨다. 내가 막 웃자 왜 웃느냐고 물으셨다. 길치라서 반대로 갈 뻔했다고 답했다. 짧은 대화가 호쾌했다. 가는 도중에도 카센터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분에게도 터미널을 물었는데 환하게 알려주는 품에 임실에 대한 인상이 무척 좋았다.

 

열 시에 임실공용터미널 도착. 매표구에서 강진면으로 가는 버스를 찾자 막 출발하려는 버스라며 천 원을 현금으로 내라고 했다. 서둘러 버스에 자전거를 접어서 실었다. 허둥대는 나 때문에 버스 출발이 지연돼 거듭 사과하며 자리에 앉았다. 조용한 관찰만 있는 시골 버스 안 분위기는 어쩐지 자전거 복장에 고글 낀 나를 어색하게 대하지 않았다. 아마 임실에서 강진으로 가는 자전거 객이 자주 있는 듯했다.

 

강진공용버스터미널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기사님이 내리지 말라고 하셨다. 인증센터까지 간다고. 우와~ 이런 행운이 있다니, 출발부터 술술 잘 풀리는 게 기분이 좋았다. 잠깐 스쳤지만, 임실군 인심이 참 좋다.

 

10시 20분, 섬진강댐 인증센터에 내렸다. 막 문자가 와있었다. 곡성 공룡이 보낸 사진 한 장. <굴뚝새와 떠나는 정원 일기>를 읽고 있는 동글이었다. 세상에나. 글 읽는 게 얼마나 힘들 텐데 내 책을 읽으려고 애를 쓰다니. 반사적으로 전화를 했다. 방금 섬진강댐에 도착했는데 농번기라 바쁘실까 봐 연락하지 않았다고. 곡성역에서 오후 세 시나 일곱 시 이후 기차를 탈 예정이라고. 공룡도 마침 볼 일이 있어서 서로 진행하면서 시간을 맞춰보기로 했다.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인연. 내가 참 좋아하는 순간이다. 얼굴도 모르는 남의 차 안에서 한 시간가량 함께할 자신이 없었는데 그 약속을 취소하니 흔쾌한 일이 생겼다.

 

섬진강댐~ 순창군 장군목 14km

10시 43분, 밝은 날씨 속에서 신나게 출발. 진도 기억의 숲에서부터 핸들에 묶은 노란 리본이 나풀거렸다.

 

11시 5분, 잠시 후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한 김용택의 작은 학교를 지났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 뒤에 교사가 주택들이 있었고, 앞 강에는 가물막이와 공사현장이 즐비했다.

 

나는 진득하니 주행하지 못하고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신록에 둘러싸인 강물과 바위와 새들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섬진강 자전거 길은 다리 지나 강 건너기를 자주 했다. 기다란 철교를 지나며 기암들이 강에 있고 주변 산세가 장군대좌형(將軍大坐形)이라는 장군목이 나왔다. 임실군에서 순창군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열두 시 즈음 용궐산 맞은편에 생태관광지에서 처음으로 쉬었다. 초코파이와 과일주스로 간단한 요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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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목~유풍교~향가유원지 25km

십 분 후쯤 출발하자마자 유럽 건축 양식에서 볼 수 있는 닭 모형이 보였다. 자전거를 세워 후진했다. 'BOOK DEMI 숲 작은도서관'이라는 팻말이 시선을 끌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아래 쓰인 글이 나를 세웠다.

 

북대미 숲 작은도서관

아니온 듯 다녀가소서

 

자전거를 세워놓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 열어본 도서관은 두세 평쯤 되는 컨테이너인데 한 면에 책이 가득하고 맞은편으론 통창이 되어 있어서 경관을 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었다. 높은 책상 위에는 누군가 얼마 전에 다녀간 듯 책 한 권이 펼쳐 엎어져 있었다. 운동기구도 있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서점 겸 도서관을 하나 꾸미게 된다면 그렇게 관리하는 사람 없이 아니온 듯 다녀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CCTV로 감시하지 않아도 서로의 인격을 믿으며 책 읽는 사람이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공간, 하루에 한두 명 정도 들러 별말 없이 미소 짓다 가는 그런 고요한 공간이 생기면 좋겠다.

 

7SA07533_ 북대미숲도서관.JPG

 

 

십 분쯤 갔을까. 또 서지 않을 수 없는 공간이 나타났다. 구암정(龜巖亭)이었다. 문이 열려있었다. 잡초가 무성한 바닥으로 보아 관리는 하고 있지 않지만, 건축물은 조선 시대의 단정한 자태를 간직하고 있었다. 구암정은 조선 성종 대 순창 출신 학자 구암 양배(龜巖 楊培)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01년에 지은 정자이다. 편액을 보며 사면을 빙 둘러 다시 앞쪽에서 섬진강 쪽을 보니 오~ 배롱나무가 줄이어 있었다. 분홍색 배롱나무꽃이 활짝 필 8월에 다시 와보고 싶었다. 120년 사이 지형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낚시를 즐기던 자리에 정자를 지었다는데 섬진강은 저 아래 있었다. 강 따라 채 얼마 내려가지 않은 그 강에 지난번 찍고 싶었던 흑조가 앉아있었다. 지난 순례 때 안달이 무색했다. 결국 이렇게 채워지는 걸.

 

7SA07544_ 구암정.JPG

 

 

그리고 십 분 후 또 다른 정자 어은정(漁隱亭)을 보았다. 그 옛날에도 섬진강엔 물고기가 많았는지 낚시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던 삶을 '어은'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선조 21년 1588년에 과거에 급제해 군자감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 25년에 물러난 양사형의 호가 어은이다. 양사형은 명종 22년 1567년에 혼인한 뒤 분가하여 이 정자를 짓고 영하정이라 하였는데 후손들이 어은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은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친 공으로 병조정랑, 예조정랑을 거쳐 영광군수로 재임하다 세상을 떴다고 한다. 어은정은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7SA07559_ 어은정.JPG

 

 

일행이 없기에 망정이지 십 분에 한 번씩 서서 구경하니 이러다가 언제 종주를 할 것인가.

30분쯤 달렸을까. 희한한 풍경이 나타났다. 구불구불한 거대 소나무에 집을 얹어 만든 트리하우스였다. 2층 높이의 한 평 남짓한 나무집을 위해 소나무를 목재로 칭칭 감아 놓은 모양새를 보고 톰 소여의 모험이 낭만이었는지 떠올리며 난감했다.

 

유풍교를 지나니 광양 배알도 향가유원지는 좌측 영산강 종주 자전거길은 우측인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갔다. 3km 가서 예전 기차 터널로 보이는 향가 터널을 지나자 향가유원지 인증센터가 나왔다. 오후 두 시였다.

 

그렇게 자주 경관을 보면서 쉴 거 다 시고 세 시간 반에 39km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30여 km 남았으니 오후 세 시 곡성역 기차는 못 탄다. 향가 무인공방 화장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땡볕 아래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서 캔커피와 에너지바를 먹으며 잠시 쉬었다. 부쩍 여유가 생겼다. 그래봤자 십여 분. 그걸 확보하고 못 하고가 순례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향가유원지~곡성 횡탄정 25+4=29km

오후 2시 25분 출발, 강폭이 넓어지며 누런 풀이 옆으로 물결처럼 누워있었다. 그런데 강 건너편에 거대 공단이 있었다. 금호타이어 공장이었다. 섬진강댐에서 50km 온 지점에는 밭을 메운 태양광 패널들이 있었다. 농사지을 밭에 있는 태양광 패널은 대안 에너지를 주장하는 내 눈에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 백색 도로가 강변으로 나있었다. 콘크리트 축대 위에도 돌탑을 쌓아놓은 정성이 소박했다. 이번 섬진강 종주는 하류를 먼저 타고 상류를 타서 그런지 작년 영산강 자전거길과 비교했을 때 훨씬 폭이 좁고 아담해서 내 성향과 더 잘 맞고 아름다웠다. 남의 이목이 없으니 맘 편히 쉬고 그야말로 자유로웠고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없으니 경쾌했다. 봄바람으로 남풍이 맞바람 불어도 좋았다.

 

7SA07600_.JPG

 

 

그런데 수해 때문에 군데군데 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걸 노리고 4대강 사업을 했다는 설이 있다. 횡탄정을 2km 앞에 두고는 도로 복구로 새길이 깔려 길가 파란 선이 사라졌다. 데이터가 많지 않은 내 휴대전화기는 외부에선 지도를 보여주지 못한다. 지나가는 할아버지께 횡탄정을 여쭤봤지만 모르셨다. 드디어 헤매는 건가. 느낌상 오른쪽일 듯한데 파란 선 따라 왼쪽으로 갔다. 2km쯤 가니 향가유원지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되돌아왔다.

 

오후 네 시 횡탄정에 도착했다. 마침내 세월호 참사 11주기 섬진강 자전거 순례를 마쳤다.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에 이어 나흘째, 총 열흘 걸린 순례였다. 마침 공룡도 일을 마쳤다기에 곡성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숨을 고르고 횡탄정 앞에 섰다. 지난 4월 16일 진도에서 올라와 마주 보았던 어둠은 걷히고 밝은 햇빛 아래 산과 강둑과 강물이 보였다.

 

'밤에는 꽃이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해남의 나무가 전달해 준 문자의 뜻을 되새겨보았다. 강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던 나와 밝음 속에서 안도하는 내 마음이 다를 뿐이다. 같은 사안도 마음 상태에 따라 좌절할 수도 극복할 수도 있다. 같은 사람도 마음에 따라 싫기도 좋기도 하다. 어둠 속의 존재와 밝음 속의 존재를 모두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7SA07638_.JPG

 

 

네 시 반에 출발해, 강 따라가다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지 않고 한참을 더 내려가다 철로 된 퐁퐁다리를 건너 7km를 빙 돌아 곡성역으로 갔다.

 

오후 다섯 시. 곡성역에 도착하자마자 공룡의 트럭도 도착했다. 수고한 자전거 뷔나를 접었다. 공룡이 내 자전거를 트럭에 실었다. 우리는 동글네로 갔다. 집 근처에서 훈제 오리고기 두 팩을 샀다.

 

2021년 7월 곡성에서 탈핵도보순례하던 나를 지나치며 보고는 우체국 앞에서 만나서 집에 찾아오라며 연락처를 준 동글. 그 동글이 처음으로 사줬던 오리철판구이를 기억하며 이번에는 내가 오리고기를 사주고 싶었다. 혼자 길을 걷던 나를 발견하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밥을 사주고 초대한 동글 덕에 지금의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30분 후 석곡 동글의 집에 도착했다. 공룡과 태극권 선생님이 오리훈제고기 요리를 하며 나는 동글과 이야기하라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난주 처음 왔을 때도 눈에 들어왔던 <삶의 열두 가지 기둥> 임길진 시 액자의 출처를 물었다. 그러다 작년 10월 동글의 임길진 환경상 수상을 알게 되었다. 아픈 동글을 추천한 친구들도 '한국의 환경운동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도록 한결같이 헌신한 동글의 노력에 감사드리며 생명의 마음을 담아'그 상을 주신 임길진환경상 위원회도 대단했다. 제일 대단한 건 800평 밭을 맨손으로 씨앗 농사짓던 전 곡성농민회장 동글, 뇌출혈을 이기고 놀랍게 재활을 해내고 있는 동글이었다.

 

잠시 후 양파와 마늘로 맛깔나게 구워진 오리고기와 고사리나물, 갓장아찌 등 밑반찬과 무김치가 차려졌다.

 

오후 여섯 시. 동글의 친구들 셋이 매주 목요일 불교 공부를 하러 더 모였다. 정말 친한 사람에게만 준다는 제철 옻순나물과 생 더덕이 식탁 위에 올랐다. 용기 내어 옻순을 먹어 보았다. 새콤달콤 진한 봄의 맛이 간에 다다랐다. 이때가 먹을 게 많다고 거기 모인 농부들이 좋아했다. 정말 봄이었다. 고개 들어 올려 본 시계 아래 글귀가 있었다.

 

'등불 하나로 천년 어둠을 지우다'

 

내 안에 등불 하나 켜있다면 천년 어둠을 지울 수 있다. 태양이 떠있는 시간에만 밝지 않고 늘 밝을 수 있다면 자신은 물론 주변도 밝게 해 줄 수 있다. 거기 모인 농부들은 따사롭고 느리고 편안했다. 하지만 다음날 강의가 있어서 계속 함께할 순 없었다. 먹은 밥그릇을 후다닥 설거지하고 공룡의 트럭에 올랐다.

 

밤 여덟 시, 곡성역까지 데려다준 공룡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스스로 시작하여 남과 함께 끝냈으나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했던 섬진강 자전거 순례. 게다가 이번 종주는 특별히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추모하기 위한 순례였으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동글과 함께한 근사한 시간이 더 잘 어울렸다.

 

 

7SA07650_ 곡성역.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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