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병오년이다. 21세기의 사반세기가 지나갔고 암중모색의 시간을 지나 21세기의 윤곽이 차차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세기의 20년대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미래를 향한 국제질서의 그림을 그렸고 이상적인 사회질서의 실험들과 문화운동이 풍성한 시대였으나 20년대 말의 대공황으로 시작되는 비극적인 시대에 자리를 넘겨주었다.
새해 벽두에 베네수엘라에서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은 앞으로의 시간들이 지난 세기에 못지않은 격동의 시간들이 되지 않을까 하는 비관적인 예감을 들게 한다. 시대의 길목에서 우리는 점을 치는 대신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알게 되고 깨닫게 되었던 것들을 다시 되새김질하는 장을 열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는 게 낫다고 본다. 미래의 비전이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반동분자나 하는 일이라고 맑스가 그랬다는 것인데 정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여러 종교의 경전들을 다시 들춰 보고 싶은 의욕이 공감을 일으키고 편집기획의 목록에 오른 것이나 그 외에 책 읽기가 계속되는 것도,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곳을 찾아 여행과 여행담의 나눔이 계속되는 것도 불안한 시간을 버티어내려는 필요에서 본다면 당연하다.
1860년 입춘절에 쓴 수운의 시: 도기장존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 세간중인부동귀(世間衆人不同歸) "도의 기운을 길이 보존하면 사특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고, 세상의 일반 사람들과는 함께 돌아가지 않으리"를 다시 읊어본다. 이 시에 역사의 봄, 눈이 새로 떠지는 봄을 맞는 수운의 결연한 의지와 다른 길이 암시되어 있다면, 병오년 봄의 문턱에서 우리는 시간의 길목에서 어떤 뜻을 잉태하고 싹틔울 것인지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