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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남도 순례길 11 – 남원에서 봄바람 따라

posted Apr 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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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일곱째별
발행호수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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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남도 순례길 11 – 남원에서 봄바람 따라 

 

 

# 지난 이야기 

2022년 1월, 열흘간 하동에서 부산 고리핵발전소까지 200여km를 걸었다.

2월, 전라북도 정읍시 동학농민혁명 샘솟길 등 60여km를 걸었다. 

3월, 전라북도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귀정사로 왔다.

 

미리 알려드린다. 이번 글은 남원 귀정사에서 유유자적 걸은 내 이야기와 봄바람 순례단과 사흘간 함께한 길 위의 뜨거운 이야기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번째 이야기만 궁금하신 분은 쭉 내려가 중반부터 보시길 권한다. 내 이야기보다 훨씬 중요한 모두의 이야기가 그곳에 있다. 

 

☆ 홀로 정상 등정-만행산 천황봉 1

2022년 3월 2일 수 만행산 천황봉(909.6m) 왕복 5km

 

3월 첫날, 남원시 산동면 대상리 귀정사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에 왔다. 

다음 날 점심밥을 먹고 산책 삼아 나섰다. 등산화를 신었을 뿐 긴 니트 자락에 헝겊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멘 채 별 준비 없이 출발했다. 

아름드리 서어나무 세 그루를 지나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두 시간쯤 오르니 만행산 정상이 나타났다. 볕이 따뜻했고 사방으로 산이 펼쳐졌다. 가끔 산에 오르지만 어림없는 정복욕 따위는 없다.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고 우월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차피 내려가야 할 터이니 그저 중간 지점에 왔다고 생각한다. 

 

뭐든 그렇다.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즐겁지, 무언가를 이루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늘 새로운 도전과 그걸 이루면서 겪는 변화가 신이 나지, 다 이룬다고 그게 업적이 되나? 그 자리는 두고 나는 내 길을 찾아 또 떠나야 한다. 이 세상에 영원한 소유는 없다. 천년만년 살지도 못하는 세상 함께 나누며 잘 살다 가야 한다. 

하산길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다음 날 다른 방 입주자에게 들어보니, 내 뒤로 멧돼지 떼가 지나가서 그분은 되돌아 내려가셨다고 했다. 하도 겁이 없으니 산도 나를 보호해 주시나 보다. 

 

 

DSC00892만행산-천황봉_resize.jpg

만행산 천황봉

 

 

☆ 귀정사에 온 이유   

2022년 3월 3일 목 귀정사~승련사 5km

 

다음 날 아침 8시. ‘공양깐’ 앞으로 갔다. 

쉼터 입주자들이 함께 등산로를 ‘개척’한다기에 나서보았다. 모르는 사람들과 단체행동이라니 평소 나답지 않았지만, 새로운 길을 간다기에 마음이 동했다. 

계곡 아래는 얼음이 얼었고 산등성이는 초봄이라 겨우 갈 수 있는 숲길이었다. 

귀정사에 상주하시는 지행 님은 초반에 팔짱 끼고 산길을 오르는 모습에서 고수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놀라운 건 큰 배낭에 톱과 조선낫을 챙겨오셔서, 만행산 능선을 타면서 길이 좁아지자 관목을 베면서 길을 내셨다. 시에서 벌목 용역비를 쳐주지도 않고, 벤 나무를 가져다 땔감으로 쓰는 것도 아닌데 그저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한 길을 내어주는 배려심이야말로 좀 더 나은 사람답게 사는 미덕이 아닐까. 한데 나는 그가 아니라 그가 쓰는 무쇠 조선낫을 보자마자 반했다. 내가 호기심에 반색하자 그는 대장간 이름과 가격을 알려주는 친절을 발휘했다. 

 

길을 걷다가는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내 옆방 먼방지기의 사연을 듣게 되었다. 그는 나보다 스무 살 젊은 청년이다. 작년 하반기에 내가 살던 해남에서 태어나, 완도에서 자라, 포항에 있는 공업제철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대기업 등에서 작년까지 쉬지않고 일하던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작년인 2021년 8월까지는 그랬다. 기능올림픽에 출전하던 고등학교 때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던 그가 요즘 처음으로 쉬어본다고 했다. 

이유는 작년 8월에 코로나 19 백신 화이자 접종 후 폐암 환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180cm 가까운 신장에 체중 80kg이 넘고 10개월 전에 받았던 종합검진에서도 건강했는데, 백신 접종 이후 가슴 통증이 있어 곧장 병원에 갔더니 폐암 3기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가족력도 없다. 병원에서는 급성 심근염과 심낭염이 아니므로 백신과 폐암의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린 먼방지기.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내가 왜 귀정사에 왔는지 알게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1월 도보 순례를 마치고 2월에 귀정사에 왔다가 3월에 제주로 가서 4.3항쟁 루트를 개척하며 답사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귀정사 쉼터에 방이 없어서 갑자기 정읍으로 갔고, 2월을 만영재에서 지내고 3월에 귀정사로 왔다. 그런데 먼방지기는 지난달에 다른 방에 있다가 내가 오기 하루 전에 내 옆 방으로 왔다고 한다. 우리는 만날 인연이었다. 

첫인상이 순하고 맑고 언행도 조심성 있어 옆방지기로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에게 그렇게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니, 의협심이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봄 새싹처럼 솟아올랐다. 

 

녹색평론을 21년 구독한 나도 백신 접종에 반대 입장이었다. 신종 바이러스 출현 1년 만에 개발해서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은 백신을 맞아야 하는데, 부작용이 불안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내 주변 사람 대부분은 백신을 맞으면 바이러스로부터 온전히 지켜진다는 안심이나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보다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싫어도 맞았다. 

나 역시 공공의료연대 시위를 보고는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신청 마지막 날 접수해서 접종했다. 그나마 좀 더 공신력 있는 화이자를 맞고 싶었는데 연령대 제한으로 모더나 밖에 안 된다고 해서, 1차를 모더나로 맞았다. 그런데 2차 접종 시기에 모더나가 부작용이 많아 철수했으니 남은 분량으로 특정한 날에만 맞아야 한다고 했다. 

두 번 다 접종하고는 해남의 집필실에서 근육통, 발열, 오한, 두통으로 혼자 끙끙 앓았다. 오랜 세월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몸이 심하게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mRNA 유전자 백신으로 같은 종류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백신과 암 사이에 아무 상관성이 없다고 한다.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지금, 신종 백신에 대해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수치는 거대한 자본의 흐름뿐일 지도 모른다.

 

여하튼 시기상 백신을 맞고 암을 발견한 먼방지기는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다가, 전이 됐다면서도 수술을 권유하는 의사에게 실망해 양방치료를 중단했다. 그리고 체질에 맞는 한약과 섭식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다. 자연치유를 위해 귀정사에 왔다. 

 

먼방지기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눈으로 시선이 간다. 맑고 깨끗한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이렇게 착한 젊은이도 있나 싶다.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성실하고 착실하게 학교와 직장에서 공부하고 일했으나 중대 질병에 걸린 후에야 쉴 수 있게 되었다는 그는 지금도 여전히 인터넷 강의로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내년에는 수능도 치고 싶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 등록금만 있었어도 유명 공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 대신 취업을 선택해야 했었고, 군대에서 전역하는 날 대기업 입사시험을 쳐서 합격한 그는 야간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로 사내에서도 지원은 커녕 불이익과 차별을 당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미활동도 하고, 운동도 해서 빨래판 같은 복근을 만들었던 그였다. 발병 이후 13kg 감량했다는데 겉으로 보이는 병색이 없어 나는 그가 환자임을 종종 잊는다. 그건 그의 밝은 성격 덕분이기도 하다. 멀쩡한 몸으로도 종종 우울한 나보다 그의 정신상태가 더 건강해 보인다. 

 

맑고 밝은 먼방지기의 모습에서 태안화력발전소 故 김용균과 구의역 故 김 군이 겹쳐진다. 가정과 사회에서 원하는 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하고 갓 취업한 아직 어린 젊은이들이 자본 위주의 사회안전망 부재로 속절없이 죽는 사회.  그리고 병에라도 걸려야 그제야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이 땅의 가난한 젊은이들. 그런 취업의 문마저 좀체 열리지 않는 2030. 그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고 교과서 읊듯 말할 수 있는지.

 

설상가상 먼방지기는 2차 백신을 접종하고도 오미크론에 감염되어 자가 격리해야만 했다. 세 시간 걸려 보건소에서 PCR 검사받은 후, 나흘간 체온이 39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기저 질환자이면서도 50세(최근엔 60세) 미만이라 집중관리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앞으로 더욱 새롭고 다양하게 위험한 바이러스가 출몰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World Health Organization)와 K-방역은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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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정사~승련사

 

 

☆ 천황봉에서 본 천왕봉-만행산 천황봉 2

2022년 3월 5일 토 천황봉(909.6m) 왕복 5km

 

경칩을 맞아 바람이 세고 하늘은 청명했다. 

점심 식사 후 지리산 천왕봉이 보일 것 같다는 귀정사 정분(방이름)지기의 말에 따라 먼방지기와 함께 만행산 천황봉에 두 번째로 올랐다. 

 

올라가는 내내 정분지기로부터 두 인생사를 들었다. 사랑 이야기였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승부에도 연연하지 않고 말로만 부럽다고 했다. 사랑이야말로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 내 인생에 사랑은 없는 셈 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가 생활형 인간이 아니듯 다른 차원을 꿈꾸는 건 이승에선 어렵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다. 

나처럼 높고 먼 구름을 밟는 듯한 인간형을 어디서 만나겠으며, 그런 사람을 만난다 해도 같이 걸어다니면 생활은 누가 하고, 실컷 날아다니다가 가끔 품에 안기는 사람을 누가 기다려주겠는가. 그런 터무니없는 바람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지 않는 게 양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황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향했을 때 선명하게 보이는 천왕봉과 그 봉우리까지 길게 펼쳐진 지리산 자락을 보자 약속이 하나 떠올랐다. 그 약속을 하자마자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출현했고, 바이러스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2년 전부터 꿈꾸던 지리산 종주를 아직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거부하던 백신 접종도 공공의료연대 파업 외에 지리산 대피소 출입 때문에 했었다. 언젠가 폐쇄된 대피소가 개방되면 백신 패스는 필수일 거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리산 길은 아직 열리지 않았고 내 숙원인 첫 종주는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해남 출신 고정희 시인이 조난 당한 지리산, 그 6월은 다가오고 있는데 어쩌자고 지리산 가까이에 왔을까. 그 밤에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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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봉에서 본 천왕봉

 

 

☆ 길에서 본 소들-요천로 1

2022년 3월 7일 월 요천로 2코스 중 월석교~등구교 왕복 5km

 

귀정사 오는 길에 본 ‘요천 100리 숲길’ 나무 표지판을 찾아 헤맸다. 장수군까지 갔다가 돌아와 임시투표소였던 산동면행정복지센터까지 갔다가 겨우 찾았다. 그 근처에 차를 세우고 걸었다. 강 따라 난 가로수 길은 봄이 완연하면 진가를 발휘할 듯해 보였다. 잘 다져진 길에 버스만 가끔 다닐 뿐 사람이 없어 좋았다. 

 

남도에서 눈에 띄는 건 소들을 비교적 쾌적하게 사육한다는 점이다. 햇볕 잘 드는 우리에 한가로이 앉고 선 소들을 보면 적어도 도살장에 가기 전까지는 편하게 살고 있음에 안심이 된다. 동물에게도 존중받을 생명권이 있다. 더럽고 비좁은 우리에 갇힌 채 유전자조작이나 제 동족을 갈아 만든 사료를 먹지 않을 권리, 강제 임신과 출산 후 강제 분리와 강제 유착을 겪지 않을 권리, 무분별하게 도살당하지 않을 권리 등. 

남도 도보 순례를 하면서 소들과 많이 마주쳤다. 소들은 예민해서 내가 쳐다보고 있으면 피하기가 쉬운데 가끔 호기심에 다가오는 소들도 있다. 그들도 나를 쳐다본다. 그들의 눈을 쳐다보면 소고기를 먹는 자신이 불편하다. 개를 키우면서 보신탕을 먹지 못하게 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래서 윤리적 축산을 통한 고기를 최소한으로 먹고자 한다. 공생하는 생명체에 대한 감사함으로 먹되 존중하고 싶다. 존중한다는 건 뭘까? ‘높이어 중하게 여김’까진 아니더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어떻게든 연결돼 있다. 소도 나도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땅을 밟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행복해야 우리도 행복하다. 스트레스가 많은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화’가 먹는 인간에게도 쌓인다는 게 틱낫한 스님이 <화>에서 말씀하신 요지다. 그것이 곧 ‘연기(緣起)’이자 ‘온 생명’이다. 

 

등구마을까지 걸어갔다 되돌아 왔다. 12시 점심시간까지 귀정사로 돌아와야 해서 더 많이 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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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천 100리 숲길

 

 

☆ 산동이 산책-요천로 2

2022년 3월 14일 월 요천로 2코스 중 등구교~산동교 왕복 5km

 

귀정사를 벗어나는 길에 산동이를 보았다. 산동이는 집행위원장인 쉼터지기 님이 키우시는 개로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금륜이와 같은 종인 웰시코기다. 금륜이는 지난해 말 포토청 단체사진전 <위로>에 출품한 개다. 그 금륜이와 닮았지만 언제 목욕했는지 알 수 없이 냄새나는 산동이를 차에 태웠다. 산동이는 계속 짖었다. 

 

요천로 평선마을에 주차하고 산동이를 차에서 내렸다. 그새 차 안이 산동이 털과 발자국으로 엉망이 되었다. 어차피 걷는 거 겸사겸사 산동이 산책도 시키자고 데리고 나왔는데 개 속도에 맞추니 세월아 네월아 온갖 냄새 맡기를 기다려야 했다. 걸음이 너무 더뎌지자, 도보 순례에 왜 개를 데리고 나왔을까 싶었다. 얼마나 걷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걷는 게 중요한가 자신에게 질문했다.

 

귀정사에서 몇 년간 목줄 없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니던 산동이는 1~2년 전 아랫마을 개에게 목이 물려 죽다 살아났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온종일 묶여 있는 산동이를 멀리멀리 산책시켜주는 게 혼자 많이 걷는 것보다 의미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살리자고 걷는 탈핵도보순례 아닌가. 

 

지난주에 이어 이날도 거리 확보는 포기. 다음 다리인 산동교까지 걷고는 갔던 길을 되돌아 왔다. 왕복 5km를 걷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산동이는 짖지 않고 지친 듯 뒷좌석에 엎드려있었다. 집에 돌아온 산동이가 시원하게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주차하고 더러워진 차 내부 꼴을 보니 역시 내 오지랖은 대책이 없구나 싶었다. 며칠 후 산동이를 목욕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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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이 산책

 

 

☆ 음악이 있는 산-만행산 천황봉 3

2022년 3월 16일 수 천황봉(909.6m) 왕복 5km

 

세 번째 천황봉에 올랐다. 쉼터 세 분과 함께. 

단체행동이 버거워 빠지려고 했는데 혼자 속도를 내도 좋다고 해서 막판에 참여하기로 했다. 실은 멀리서라도 지리산 천왕봉과 그 능선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올라가는 도중 동행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듣다 보니 하게도 됐다. 그럴까 봐 안 가려고 했었다. 솔직함이 무기이던 나는 요즘 말수가 줄었다. 감정 조절 못 해 하수구처럼 쏟아내던 말들이 후회스럽기 때문이다. 듣는 누군가는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야 했었다. 반복되는 내용이 한두 번 넘으면 다들 지친다. 그리고 멀어진다. 사람들은 듣기보다는 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말의 농도가 진하고 비약도 심해 자연스러운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이젠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웬만해선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나이 탓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귀정사에 오면서 마음의 벽을 쳤는지도 모른다. 더는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자 까만 독수리 두 마리가 머리 위를 선회했다. 처음 혼자 왔을 때 본 까마귀 한 쌍보다 멋진 건 몸집이 커서보다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아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러면서도 대화가 잘 되는 사람이 있다. 이제 얘기를 들어줄 사람도, 하고 싶은 사람도 없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뿐이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글을. 

 

둘씩 시간 차이를 두고 정상에 다 모였다. 준비해 준 간식을 먹으며 쉴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이 누그러졌나 보다. 울진에서 삼척까지 애타던 강원도 산불을 끈 비가 내리던 날 발견한 노래인 Honne의 <la la la that’s how it goes>를 휴대전화기로 틀었다. 나지막하니 라~라~라~ 노랫소리 들리는 그 순간이 좋았다. 사는 게 뭐 있어. 이렇게 산에 오르고 간식 먹고 음악 들으면 그만이지 싶었다. 멜로디도 훈훈했지만 어쩌면 노래를 듣는 동안은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좋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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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한 쌍

 

 

☆ 영광과 순천에 부는 봄바람 

2022년 3월 28일 월 영광군청 / 영광한빛핵발전소 / 순천 현대제철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현장

 

귀정사 퇴소 예정일 사흘 전에 떠났다. 

입주작가로 전국을 떠도는 중에 퇴소일 전에 떠남은 처음이었다.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봄바람 순례단과 길동무가 함께하는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 순례>에 연대하기 위해서였다. 

이틀간 짐을 싸고는 마침내 출발하려는데, 차량 계기판에 EPB 경고등이 뜨며 방전이 돼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4년을 함께 해 온 길동무 탈핵브리드가 이런 적은 없었다. 

고장신고접수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산동이를 산책시켰다. 잠시 마음을 진정하며 이건 무슨 뜻일까 생각해보았다. 차가 제대로 움직였다면 나는 아마 산동이를 몇 번 쓰다듬거나 멀리서 손을 흔들고는 후다닥 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탈핵브리드가 주저앉음으로 산동이와 충분히 작별의 정을 나눌 수 있었다. ‘작별’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이다. 헤어짐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석하니 불안이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영광으로 가는 길에 개나리가 피어 있었다. 바야흐로 봄이었다. 내가 만날 ‘봄바람’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집회 시간인 10시 30분에서 10분 늦었다. 영광군청 앞에는 꽤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영광핵발전소 영구 폐쇄를 위한 행동에 서울에서 집회현장을 지키던 주요한 이들이 보였다. 카메라도 많았다. 반갑고 든든했지만, 순간 굳이 나까지 올 필요가 있었나 하는 마음이 살짝 들었다. 그러나 미약한 나라도 한 걸음 보탤 역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기다려 보기로 했다. 문정현 신부님께서 걸으신다고 하니 무조건 달려 나왔는데, 봄바람 순례단이 외치는 구호에는 지금 시대에 절실한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지금 당장 기후정의! 

차별을 끊고 평등으로! 

전쟁 연습 말고 평화 연습! 

일하다 죽지 않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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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한빛핵발전소 1호기 영구폐쇄 D-1366일 

 

 

이어서 홍농서초등학교에서부터 영광한빛핵발전소까지 1km 정도 도보 순례를 했다. 걷는 거야 자신 있었다. 순례단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문정현 신부님의 걸음은 평소의 호령처럼 씩씩하지는 못했다. 신부님은 80대이시다. 그런데도 다른 세상을 만나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길로 나오셨다. 어찌 그 뒤를 살아 있는 우리가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분의 몸자보 뒷면에 써있는 글씨,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봄바람도 사랑이다. 동토를 녹이고 언 마음을 녹이는 사랑이다. 그 봄바람이 영광한빛핵발전소를 향해 불어가고 있었다. 

 

2018년부터 몇 번이나 왔던 핵발전소였다. ‘핵발전소 없이 안전하게 살자’고 전국을 걸어 다니는 나로서는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걸어서 영광핵발전소에 오다니 여간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러할진대 농사꾼에게 더없이 중요한 파종도 미루고 모여든 영광, 고창 등 지역주민들은 얼마나 고맙고 든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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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한빛핵발전소 향해 걸어가시는 문정현 신부님

 

 

그러나 소외된 사람과 안타까운 현장으로 불어가는 봄바람의 일정은 여유롭지 못했다. 한 시쯤 영광 끝에서 집회가 끝나고 세 시까지 순천 현대제철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현장에 가야 했다. 일행들은 모두 점심 식사를 거른 채 차로 이동을 했다. 

급한 길에도 에너지가 없으면 이동할 수 없으니 주유를 해야 했다. 천정부지로 오른 휘발유 가격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실감했다. 한국의 산골에 살던 나야 기름값 과다지출에 불과한 영향이지만 전쟁통인 그 땅의 사람들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상황이다. ‘전쟁 말고 평화’, 대체 이 정의보다 더 중요한 국가의 이익이나 외교가 있을까.

 

오후 세 시에 겨우 맞춰 농성장에 도착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 투쟁은 2005년 6월부터 현대하이스코(현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 설립 이후 비정규직 철폐와 정규직 전환 요구를 17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2011년 7월 19일에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 근로자지위확인(불법파견)소송을 제기해 4년 7개월 지난 2016년 2월 18일에 “지휘명령권이 현대제철에 있고 공정이 아닌 도급관계가 아니고 불법파견 공정이며, 1차자 157명이 불법파견이고 현대제철 직원이다”라고 승소했다. 이에 현대제철은 항소했으나 3년 7개월 만인 2019년 9월 20일 광주고등법원에서 비정규직 조합원이 다시 승소했다. 그러나 사측이 거듭 불복하여 이 소송은 아직도 계류 중이다. 

회사는 법원판결과 고용노동부 시정지시를 무시하고, 2021년 9월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현대 ITC 자회사를 설립하고 32개 업체 중 15개 업체 2천 명에게 계약해지 통보, 자회사 직원 채용,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회유와 협박으로 노조 탄압을 하고 있다. 노동부에서 119억 8천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자 행정소송을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더는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전면전으로 정규직전환 투쟁하기로 했다. 상반기 정규직전환 합의를 위한 직접 교섭이다. 

4월에 상경 투쟁, 5월에 무기한 총파업까지 가기 전에 사측에서 현명한 결단을 통한 상생을 선택하기 바란다. 노동자가 잘살아야 기업도 발전한다는 당연하고도 단순한 이치를 어서 알았으면 좋겠다. 

 

연대한 이들이 돌아가고 남은 이들이 간 숙소는 전남 담양군 고서면에 있는 5.18민족통일학교였다. ‘고故 오종렬 이사장이 민주화운동으로 받은 보상금 및 전국의 노동자 농민 시민들의 성금과 기능기부(설계와 건축공사 기능소유자)로 건립되었다.’는 그곳에서 봄바람 순례단은 이틀간 유할 수 있었다. 순례에서 숙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故 오종렬 선생님과 유족과 사단법인 관계자들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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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 광주와 장성에 부는 봄바람 

2022년 3월 29일 화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 / 광주YMCA / 장성 금속노조 대양판지지회 

 

오전 열 시,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 도착했다.

인근에서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오셔서 함께 의전을 행했다.

2018년 5월 말 한국방송작가협회 광주 기획 답사 때 5.18민주묘역에 온 적이 있다. 그때도 그 의전을 행했기에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곳에 수차례 오셨을 신부님이 그런 의전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봄바람 순례단이란 이름이 주는 무게였을까, 아니면 시대가 달라져 신부님을 예우할 줄 알게 된 것일까? 진즉에 그랬어야 했다. 이 시대의 어르신이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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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다 

 

 

4년 전에는 신 묘역만 보고 돌아갔었는데 이번에는 구묘역에 갈 수 있었다. 흔히 망월동묘역이라고 불리는, 시대의 아픔이 묻힌 현장이었다. 

구 묘역 입구에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묻혀 있다. 근처 민박마을에 있던 것을 떼어와, 밟고 지나가느냐 마느냐로 진보와 보수 사이에 논란이 이는 이 표지석을 신부님은 자근자근 밟고 지나가셨다. 

 

문정현 신부님이 맨 처음 참배하신 곳은 조성만(요셉) 열사의 묘지였다. 영정사진을 보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내가 귀정사 공양간에 있는 책 중 유일하게 다 읽은 책이 요셉 조성만 평전 <사랑 때문이다>였기 때문이었다. 책에서 읽은 조성만 열사와 문 신부님의 인연을 바로 그달에 목도할 줄이야 꿈에나 생각했겠나. 문 신부님이 요셉의 비석을 쓰다듬는 순간에 1988년에 산화한 역사와 2022년의 살아있는 역사가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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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을 쓰다듬는 문 신부님

 

 

백남기 농민의 묘역에 참배하고 노동운동 열사들과 동백나무를 지나 신부님이 가장 보고 싶어하신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님의 묘역으로 향했다. 

작년 가을, 문정현 신부님이 서각하신 ‘호남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현판을 가지러 배은심 어머니가 평화바람 집에 오셨단다. 그때 두 분이 올봄엔 힘들고 아픈 곳에 함께 다니시자고 했었는데 그 봄이 오기 전에 어머니는 먼저 가셨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아니면 아무것도 예정할 수 없다. 신부님의 글씨로 새겨진 비석 뒤에는 어머니의 절절한 마음이 친필로 새겨져 있었다. 

‘그래도 그립다 보고싶다 내 아들, 이한열.’ 

사람은 간 데 없고 글씨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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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씨 (그래도 그립다 보고싶다 내 아들, 이한열과 배은심의 묘)

 

 

호남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대접해 주신 풍성한 점심식사를 광주전남추모연대 천막 아래에서 했다. 여느 식당보다 솜씨가 뛰어난 음식에 모두 즐거웠다. 

 

오후 두 시, 광주 YMCA에서 광주 시민사회 이야기 마당이 있었다. 

길 위의 신부님 말씀을 시작으로, 봄바람 순례단의 네 가지 주제에 맞춰 광주 기후행동, 시민의 참여로부터, 한미연합전쟁연습의 문제점과 광주지역 실천계획, 광주의 노동현실 안녕하십니까?, 퀴어가 여기에 있다, 선택이 아닌 생존문제 페미니즘의 발제 및 질문 시간이 있었다. 네 가지 사안을 한자리에서 다룰 수 있었음만으로도 의미가 있었고, 특히 ‘차별을 끊고 평등으로’ 마당에 퀴어와 페미니즘 두 가지를 다룬 것은 괄목할만했다. 

 

우리는 서둘러 대양판지(주) 장성공장으로 향했다. 

회사 밖 컨테이너가 노동조합사무실인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노동자들을 만났다. 대양판지(주) 회사 측은 금속노조가 생기자 어용노조를 만들고, 화장실 가는 시간과 흡연시간 등 분 단위로 임금 삭감하는 등 차별대우하고 중대 사고가 발생해도 사람 먼저 챙기지 않는 비인권적 처사를 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에도 영산강유역환경청에 의해 적발된 영산강 유역에 폐수 무단방류 1건, 미신고 대기배출시설 설치․조업 1건, 미신고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조업 1건 등 총 3건의 몹쓸 짓을 하고 있었다. 직원보다 더 많은 93대의 CCTV가 돌아가는 회사에서 생존권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금속노조 조합원들. 회사는 이들을 상대로 3월 17일부로 야간 근무조 직장폐쇄를 실시했다. 다치고 병들면서 노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는 민주노조원들에게 승리의 봄바람이 불어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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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폐쇄 철회하고 금속노조 인정하라

 

 

☆ 진도와 목포에 부는 봄바람 

2022년 3월 30일 수 진도 팽목항과 기억의 숲 / 목포 신항 세월호 

 

봄바람 순례단의 아침 식사는 소박하면서도 품위 있다. 커피와 빵과 (전쟁을 끝내)잼과 치즈와 사과. 그리고 비타민 C와 오춘상 원장의 삼대한의원 쌍화탕. 이 정도면 웬만한 호텔 조식 부럽지 않다. 제주와 군산에서 질 좋은 먹을거리를 공수해 주는 덕분이다. 멀리서도 하는 연대의 끈은 건강했다. 

 

이른 아침 7시에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우리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 옛날 대추리 투쟁 당시를 회고하는 오두둑의 천진한 웃음과 그 모습을 창 너머 맞은 편에서 바라보시는 문정현 신부님의 자애로운 미소가 퍼지는 아침은 내게는 마지막 날이라 더욱 아련했다. 

 

우리는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다시 올 목포신항를 지났다. 목포대교를 건너며 저 멀리 보일 때부터 가슴에 통증이 오는 그 배는 이제 시뻘겋게 녹슨 모습을 하고 서 있었다. 

팽목항에 가면 빨간 등대와 가건물인 세월호 팽목 기억관에 가는 게 보통 순서이다. 빨간 등대로 가는 방파제에서 사고 현장 어디쯤을 쳐다본다. 마침 우리가 방파제에 있을 때 제주로 가는 여객선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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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 불어오는 봄바람

 

 

허름한 세월호 기억관에 들어갈 때마다 슬픔과 우울이 겹쳤다. 언젠가 번듯한 기억관이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양수산부에서 인근 서망항에 개관한다는 ‘국민해양안전관’은 팽목항을 찾는 사람들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현재 운영비를 놓고 기획재정부와 진도군이 갈등을 빚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추모 시민들이 찾아오는 지금의 기억관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진도군은 오는 5월 제주~진도 여객선 취항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유족에게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시정명령 공문을 보냈고, 임시시설물 4동 철거 이행강제금 53만6천 원을 부과했다. 

참사 8주기가 있는 4월에 철거한다는 기억관. 지난 8년간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장을 없앤다고 슬픔이 무마될까. 그런다고 기억마저 철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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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백이 활짝 핀 기억의 숲으로 갔다. 

300그루 은행나무와 기억의 벽 쪽은 벌초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진도군에서 예산 문제로 아래쪽만 했단다. 동네 담쌓기도 아니고 한 동산에서 치사한 차별을 보다니. 돈은 인간을 그렇게 염치도 체면도 없이 만드는지 진도군에 묻고 싶다. 

 

지나온 목포신항으로 다시 갔다.

지난여름, 나는 세월호를 촬영하고 근처에서 밤을 맞았었다. 세월호가 보이는 철책 가까이에 있고 싶었으나 보안상 이유로 쫓겨났었다. 그런데 해양수산부에 인적사항을 미리 전한 이날은 안전모를 쓰고 세월호 바로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선체 앞에는 뻘과 부서진 기물들과 당시 선적된 차량들이 구겨진 채 쌓여있었다. 가라앉은 지 3년 만에 올려져 5년 동안 뭍에 세워져 있는 세월호는 고개를 90도로 들어야 하늘이 보이는 높은 배였다. 부딪힌 흔적이 있었고 선체 인양 작업이 처음이었다는 중국 상하이 셀비지의 오판으로 선수 쪽이 일부 절단되었다. 세월호 침몰 원인은 규명이 복잡하다 하더라도 승객을 제대로 구하지 않았음은 온 국민이 다 알지 않는가. 그런 비참한 사고 혹은 사건인 참사의 최대 증거물 앞에서 눈물만 비 오듯 하니 설명은 잘 들리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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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문정현 신부님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세월호를 돌아보았다. 

구름 세 송이가 머리 위에 있는 세월호가 하늘을 나는 고래처럼 보였다. 

날아라~ 날아올라라~ 세월호야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싣고 하늘로 날아오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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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세월호 

 

 

거기서 봄바람 순례단과 헤어져야 했다. 

나는 이틀 후 제주도에 들어가야 했고, 남은 하루 동안 사흘간의 뜨거운 현장을 기록해야만 했다. 광주 군공항 무안 이전도 반대해야 했고, 올해 1월 1일부터 열흘간 했던 하동~부산 첫 도보 순례의 시작점이었던 하동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농성장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내가 할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막판에 수행할 일이 하나 맡겨졌다. 고故 이한빛 어머니를 목포역까지 모시는 일이었다. 25년간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니 방송 판이 어떤지 알만큼 안다. 그러니 그분과의 만남 역시 각별했다. 새벽부터 먼길 오신 어머니는 이렇게 연대하시면서 힘을 얻는다고 하셨다. 

 

 

백발신부와 일곱 길동무

제주로 가기 위해 해남으로 오는 길,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가 떠올랐다. 

하느님 오른팔 문정현 신부님과 멋스런 오두둑, 친절한 딸기, 섬세한 오이, 선명한 세실, 따뜻한 프코, 재밌는 어쭈, 그리고 꼬맹이 일곱째별. 이렇게 백발신부와 일곱 길동무로 함께한 사흘이, 이런 말 참 식상하지만 영광스러웠다. 

사흘간 가까이서 본 문정현 신부님은 인자한 신세대 할아버지처럼 소탈하고 겸손을 두루마기 삼은 데다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는 평등함과 젊은 감각과 위트를 가진 분이셨다. 누구에게나 먼저 다가가 손 내미시는 사랑과 대접을 바라지 않는 낮아짐이 몸에 밴 그분 뒤에서 걸으며 이 걸음이야말로 역사를 만드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처받고 소외되었으나 스스로 일어서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길 위의 신부가 길을 만든다. 

 

봄바람 순례단은 4월 30일 서울까지 이어진다. 

한반도 평화, 평등, 생태를 위한 40일 순례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에게 다가온 차별과 불평등, 기후위기와 전쟁 위험을 직시하고 다른 세상을 향해 투쟁하는 사람들, 우리의 삶이 지닌 가능성과 힘을 스스로 실천하며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며,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이자. 

모여서 함께 걷자. 백발신부와 일곱 길동무가 아니라 칠백, 칠천, 칠만 길동무가 되어보자. 

 

우리가 피어야 봄이다. 

우리가 퍼져야 바람이다. 

불어보자, 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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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순례단 구글 독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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