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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계룡과 대전 - 2022년 마무리 도보순례

posted Mar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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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일곱째별
발행호수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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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계룡과 대전 - 2022년 마무리 도보순례

 

 

# 프롤로그 

2017년 4~6월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었다. 

 

2018년 6~8월, 영광핵발전소부터 서울 광화문까지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했다. 

(다리를 다쳐서 상반기는 매 주말 자동차로 동행, 하반기는 용인부터 서울까지 96.8km.)

2019년 2월, 삼례에서 서울까지 띄엄띄엄 79.3km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했다. 

2019년 6~8월, 부산 고리핵발전소부터 경주 월성핵발전소까지 75.2km, 청주 14.5km, 서울 6km, 도합 95.7km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했다. 그리고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는 해산했다. 

2020년 2월, 7번 국도 울진에서 삼척까지 73.2km 걸었다. 

2020년 7월, 7번 국도 삼척에서 고성까지 187.5km 걸었다. 

2020년 11월, 7번 국도 포항 월포에서 화진까지 18.5km 걸었다. 

[2018~2020년 551km]

 

2021년 2~3월, 7번 국도 울진에서 포항 화진까지 102.6km 걸었다. <7번 국도 중 총 457km> 

2021년 4월, 세월호 참사 7주기 추모 도보 순례로 18번 국도 팽목항부터 진도각까지 40km를 종단했다. 

2021년 6월, 18번 국도 해남부터 하동 거쳐 구례 지리산 화엄사까지 241.1km를 걸었다.

2021년 7월 18번 국도 곡성에서 보성까지, 구례까지 96.8km를 걸었다. 

2021년 8~10월, 해남에서 진도까지 46.7km를 걸어 18번 국도를 완주했다. 

<18번 국도(금골교차로~화엄사 277.1km) 424.6-123.4=301.2km>

2021년 10~12월, 해남 땅끝천년숲옛길과 달마고도 등 총 163.04km를 걸었다. 

[2021년 690.24km]

 

2022년 1월, 하동부터 부산 고리 핵발전소까지 196km 걸었다. 

(이중 부산 오륙도~고리 핵발전소 54km(+457=7번 국도 511km), 7번 국도(옛시청교차로~통일전망대 474.5km) 중 포항 칠포~나아리까지 80여 km 남음) 

2022년 2월, 정읍 동학농민혁명길 55.8km를 걸었다. 

2022년 3월, 남원 요천로 30km와 영광 핵발전소 부근 1km, 도합 31km를 걸었다. 

2022년 4월, 제주항부터 4.3해원방사탑, 절물자연휴양림, 4.3 평화공원과 동백동산, 조천부터 성산, 우도 들러 표선까지 90km를 걸었다. 

[2022년 4월까지 372.8km]

 

제주를 끝으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대의명분도 없었고 삶의 의욕도 잃었다. 

5~7월 담양에서는 소소한 산책을 제외하고 도보순례로 가사문학로 35km를 걸었다.

다시 걷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었다. 거기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2022년 11월 11일 금요일 엄사면~계룡역 6km

8월 말, 대전에 직장을 갖게 되어 집을 구했다. 열심히 구했다. 

가고 싶은 집은 딱 한 군데였다. 좀 멀지만 주 2회 출퇴근 정도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계약 직전에 직장에 변동 상황이 생겼고, 3주간 매일 출근해야 했다. 그래서 급하게 알아본 집이 계룡에 있었다. 첫눈에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300m 옆에 철길이 있었다. 기차 소리가 거슬릴 듯했다. 그래서 다시 답사를 가 보았다. 평소에 계시지 않던 집주인이 그날따라 김장하러 오셨다. 주인 노부부는 나를 보시더니 입주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다음 날 다시 대전으로 출근해야 했는데 자동차가 없었다. 대전에 본가가 있는 주인 내외분이 태워다 주신다고 했다. 그사이 대전 시내 호텔을 알아봤더니 너무 비쌌다. 난감해하는 내게 주인이 1층 주인댁에서 자고 가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비닐에 싸 둔 따뜻한 쌀밥을 주시며 냉장고에 있는 거 다 먹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처음 뵙는 집 주인댁에서 주인은 가시고 나만 혼자 묵게 되었다. 샤워하며 목욕탕 대청소를 했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방과 거실 걸레질을 하고 남은 밥을 먹었다. 

6시 반쯤 첫 버스가 다닌다는데 밖이 너무 어두웠다. 무서워서 나갈 수가 없었다. 

6시 50분쯤 밖이 희부윰하게 밝아지자 집을 나왔다. 

계룡역까지는 6km. 서대전 가는 기차는 8시 13분. 한 시간 10분 정도에 6km를 주파해야 했다. 보통 30분에 2km, 한 시간에 4km 걸으니 계산상 뛰는 듯 걸어야 했다. 그렇게 엄사면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길에 사람은 고사하고 차조차도 거의 없었다. 안개 속에 모르는 길을 걷다 보니 어디에서인가부터 없던 자신감이 솔솔 올라오기 시작했다. 

긴 치마에 앵클부츠 차림이었다. 얼굴에 숨이 차 마스크 안으로 방울방울 물방울이 맺혔다. 기차를 타야 한다는 목표 하나만 가지고 낙엽 깔린 길을 걷는데 마치 계룡시를 접수한 듯한 자신감이 뿜뿜 솟아났다. 일단 걸으면 그 도시는 낯설지 않다. 

 

아무런 기치도 의미도 없이 단지 출근 시간 맞춰 기차 타기 위해 걷는 시간은 단순한 걷기다. 되는대로 시간 쓰며 걷고 싶은 대로 걷는 게 아니었으며 목적이 분명했다. 그 목적은 생활을 영위하고 책임을 다함이었으니 그 어떤 대의명분보다 실제적이고 실용적이었다. 장식용 도자기보다 밥공기가 생활에 더 필요하듯 삶의 본질에 가까운 걷기였다. 

 

그렇게 반년만에 다시 걷기 시작했다. 

 

2022년 12월 11일 일요일 대전 천개동마을~절고개~계족산성~임도삼거리~장동산림욕장입구 11km

두 번째 도보순례도 좀 특이한 경우였다.

2022년 2학기 종강 다음 날, 왜가리가 <2022 정태춘·박은옥 초청 찬란하고 정의로웠던 우리들의 송년회> 콘서트를 보여주셨다. 

청주 청명도 초대되었다. 

공연 후에 청명이 다음 날 계족산 둘레를 걷자고 제안했다. 놀라웠다. 그 며칠 전에 지도를 펼치고 대전에서 제일 처음 갈만한 곳으로 계족산 둘레길을 꼽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인 일요일, 청명과 왜가리와 원도심레츠 일원인 소나무와 함께 계족산으로 향했다. 

천개동 마을에서 절고개로 올라가 계족산성까지 갔다. 청명과 나, 왜가리와 소나무가 한 팀씩 이뤄 걸었다. 

계족산성 위에 앉으니 도심은 어디로 가고 대청호수를 둘러싼 광활한 자연이 펼쳐졌다.

거기 앉아 간식을 먹었다. 감사하게도 왜가리나 소나무 모두 간식 준비성이 철저했다.

모처럼의 여유였다. 그 여유를 누리며 산성 위에 앉아 겨울 햇살을 맞으며 백제시대 그 누구들의 고역을 생각했다.

 

선두에 선 청명과 나는 절고개 쪽으로 내려와야 했는데 길을 잘못 들어 임도삼거리로 내려와서 장동산림욕장까지 갔다. 

황톳길이 편편하니 겨울산이라도 좋았다. 

다만 계족산 둘레길은 돌고 돌아도 찾는 이가 많은데 나의 돌고 도는 사고 패턴은 답답했다.

그래도 때 이른 개나리가 피어있었다.

언제 어디에서든 꽃은 꽃이다.

 

왜가리와 소나무가 차를 가지고 산을 빙 둘러 장동산림욕장까지 태우러 왔다. 

 

이어서 간 곳은 왜가리가 예약해 놓은 산디마을 캠핑장이었다. 

길가에 있는 캠핑장에 왜가리의 캠핑용품이 펼쳐졌다. 불을 피우고 대하 소금구이가 구워졌다. 나무늘보 내외와 소나무 부군도 합류했다. 왜가리가 연신 요리를 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먹고 즐겼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즐거움이 있는데 왜가리는 사람들을 먹이는 데서 기쁨을 찾는 듯하다. 덕분에 나 같은 사람이 행복해진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불을 쬐며 서서 ‘모닥불 피워놓고~’를 부르는 중년의 밤은 춥지만 잠시나마 즐거웠다. 모두가 제집을 찾아 떠나고, 나는 왜가리와 함께 집으로 가서 자정 직전까지 대학정보시스템에 입력을 해야 했다. 종강을 해도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DSC08574-대전시-계족산성_resize.jpg

계족산성

 

2022년 12월 12일 천개동마을~절고개~장동산림욕장 (반대 방향) 11km 

(계족산성 둘레길 4.3km 남음) 

 

청명은 전날 돌아가고 다음 날인 월요일 나 혼자 다시 계족산으로 향했다. 

늦게 출발한 데다 철물점에 들러 세면대 하수구 파이프를 교체하는 바람에 더 늦었다. 

 

날씨는 꾸물꾸물했다. 

평일 오후라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산을 빙 돌아 줄기차게 걸었다. 아무도 없는 산을 걷는다는 건 대체 무슨 기분일지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건 골반과 다리와 발의 움직임과 심장의 박동을 느끼는 단순 행위이다. 자동 반복 행위를 통해 칼로리를 소모하고 기운이 떨어짐과 동시에, 허기가 지고 식욕이 생기는 생리적 현상이다. 

편안한 둘레길이라도 출발지점으로 가려면 되돌아가거나 한 바퀴 돌아야 한다. 절반이 넘으면 되돌아감을 포기하고 직진하는 수밖에 없다. 산을 한 바퀴 도는 물리적 거리를 감당할 수 있는 체력밖에 믿을 게 없다.

산과 자신, 둘뿐이다.

일도 그렇다.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은 담당자인 자신뿐이다.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회피하거나 도피할만한 중독에 빠진다.

나에게 걷기는 치유일까, 도피일까, 중독일까?

아니면 모두일까?

 

네 시가 넘어가자 해가 질 기세였다. 

한 시간만 더 있었으면 완주했을 텐데 아쉽게도 하산해야 했다. 

버스를 타고 대전 시내에서 퇴근하는 왜가리와 만나 그 차를 타고 다시 천개동 마을까지 가서 차에 올랐다. 산의 어두움은 고개 돌리면 내려앉을 만할 정도로 빠르게 내려왔다. 차 두 대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하산했다.

 

그렇게 언제 다시 걸을지 모른다던 2022년에도 걸었다. 

[2022년 435.8km]

 

 

DSC08599-계족산-둘레길_resize.jpg

계족산성 둘레길

일곱째별-프로필이미지_202302.jpg

 

 

 

 

 

 

 

*브런치에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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