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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남도 순례길 8 - 2022년 시작을 도보순례로 1

posted Feb 0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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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일곱째별
발행호수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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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남도 순례길 8 – 2022년 시작을 도보순례로 1

 

 

# 지난 이야기 

 

2021년 2~3월, 울진 망양정~포항 화진해수욕장 7번 국도 102.6km 

4월, 팽목항~진도대교 세월호 7주기 추모 도보순례 18번 국도 40km  

6월, 해남~보성 18번 국도, 보성~하동 2번 국도, 하동~구례 19번 국도 241.1km

7월, 보성~구례 18번 국도 104.5km

8~9월과 10월 첫 주, 해남~진도, 18번 국도 36.7km

10월 둘째 주~12월, 땅끝천년숲옛길, 땅끝길, 달마고도 등 148.04km를 도보순례했다. 

 

산책까지 포함하면 수치는 훨씬 늘지만 도보순례로만 2021년에 총 672.94km를 걸었다. 

(참고로 K-map 상 서울~부산이 자동차로 396.5km, 자전거로 562.6km이다.) 

걷기와 도보순례의 구분기준은 정한 길을 위주로 몸자보나 조끼 착용 여부로 정했다. 

2017년부터 2020년 여름까지 1450km를 걸었으니 지금까지 2,122.94km를 걸었다. 

그러나 이 계수가 어찌 정확하다 할 수 있으랴. 걷다 보면 지도와 실제 길이 다르고 길치인 내가 헤매다 보면 휴대전화기 앱에는 더 길게 기록될 때도 많다. 

실례로 땅끝천년숲옛길은 지도상 52km인데 나는 그 길까지 걸어가고 가다가 헤매다 보니 93.2km나 걸었다.

더디 가고 돌아가는 건 어느덧 내 걷기의 특징이 되어가고 있다. 

 

내 인생도 그러하다. 남들은 재테크에 열을 올리고 노후대책 할 나이에 나는 아무 대책 없이 걷기만 하고 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걷고 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 외 기쁨이라면 음악 듣고 책 읽는 고요한 시간이나 가끔 만나는 좋은 사람 정도이다. 종종 무언가를 만들고 싶지만, 아직 작업실도 집필실도 없다. 그러니 마냥 걷는다. 새들도 날다가 둥지를 찾아가는데 내게는 쉴 곳이 없다. 나만의 방은 어디에 있을까. 그 방을 찾아 걷는다. 걷다 보면 어딘가에 정원이 딸린 작은 집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다. 구하면 받을 것이요 찾으면 찾아낼 것이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했다. 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길을 걷다 머물고, 머무는 곳에서 길을 걸으며, 그 길에 얽힌 역사를 알아보고, 착한 사람을 만나면 소개하고,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다면 돕고 싶다. 나는 남을 돕고 하늘은 나를 도우면 세상은 선순환할 것이다. 사는 게 별거냐. 좋아하는 일을 하며 기쁘게 살다 감사하면 그만 아니냐. 

 

2021년 12월 31일, 해남 백련재 문학의 집에서 퇴소하자 2022년 1월 1일에 길을 떴다. 

지난 6월에 해남에서 하동 거쳐 구례로 올라갔으니 이번에는 하동부터 동쪽으로 걷기로 했다. 

 

☆ 새해 첫날부터 걷다

2022년 1월 1일 토 하동버스터미널~하동군 금남면 덕천리 하삼천 : 20km

 

“일곱째별, 어디로 가면 돼?”

오전 10시 반, 하동 터미널 앞에서 청명이 물었다. 

순간 막막했다. 혼자 걸을 때와 다르게 니키와 청명, 탈핵 벗들을 믿고 별 준비를 안 한 것이었다. 지도 앱을 다시 보았지만 나는 방향치이다. 일단 직진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함께 못한 탈핵 벗 둘에게 문자로 출발을 알렸다. 곧이어 관지에게서 반가운 전화가 왔다. 

 

관지는 올 초 진도군 조도면 상하죽도 전도사로 부임하신다. 해남에서 그 소식을 들은 11월 말, 나는 이번 도보순례의 출발지를 상하죽도로 정했었다. 관지의 새 출발을 축복하며 마을 어르신들께도 젊은 새바람을 불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코로나 19 바이러스 시대에 그런 생각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순진한 발상임을 알고 곧 철회했었다. 

지난 해 4월, 세월호 7주기 추모순례이자 18번 국도 도보순례의 시작이었던 진도. 그 진도에서 배로 세 시간 거리 상하죽도로 가시는 관지. 우리는 그곳에 갈 수 없지만 관지만의 순례가 그 섬에서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모세처럼 순종함으로 주의 길과 자신의 길을 펼쳐나가시는 시인 전도사 관지를 응원한다. 

 

하지만 힘차게 가로질러 간 논은 90도 다른 방향이었다. 청명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길을 찾았다. 

화산마을과 안성·난정을 지나 고전면 이순신 백의종군로를 걸어갔다. 사막마을, 신월마을에서 갈림길이 나왔다. 돌아오는 버스를 타야 했기에 대로변 쪽으로 갔다. 시목마을과 노화마을을 지나니 하동포구가 나왔다. 지난여름 혼자 걸어 올라왔던 19번 국도 섬진강 길이었다. 한 걸음이 힘든데 걸었던 길을 또 걷다니 허탈했다. 

 

일단 점심밥으로 재첩국을 먹었다. JPIC 소속이 된 니키가 사주셨다. 니키는 그전에도 박봉 중의 박봉인 수사 급여로 우리에게 순례길 밥을 사주셨다. 밥을 먹으면서 고민해 봐도 하루 치를 20km 정도로 잡는데 갈 길이 묘연했다. 돌아갈 방법 때문이었다. 

 

우리는 계속 전진했다. 가다가 하동 터미널 가는 버스가 오면 내가 타고 가서 차를 가져오기로 했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돌아와야 했기에 출발지점을 터미널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버스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터미널이 아니었다면 출발지점이었을 신방마을까지 11km를 더 걸은 것이었다. 

전도마을, 대덕마을, 조간너리마을, 잔너리마을…, 마을 이름은 예쁘고 날씨는 화창했고 길은 편안했으며 너른 평야를 끼고 도는데도 돌아갈 걱정에 풍경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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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첫날 도보순례

 

 

오후 5시 무렵, 하삼천마을에 다다랐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버스가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때 청명이 산림감시원 차를 세웠다. 산림감시원은 업무상 그 마을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GPS 추적이 된다고. 근데 그분이 지나가는 차를 세우기 시작했다. 운전자들에게 우리 사정을 설명하며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시대에 낯선 사람 세 명을 누가 태워주나? 그런데 한 분이 타라고 했다. 

 

우리 셋은 코로나 19 백신 인증을 보여주고 마스크를 단단히 쓴 채 뒷좌석에 앉았다. 하삼천 산림감시원은 활짝 핀 미소로 우리를 배웅했다. 

운전자는 8km 더 가는 진교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거기 내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진교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다시 하동 터미널로 가려는 우리 사정을 듣더니 그분이 차를 돌렸다. 하동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시겠다는 거였다. 알고 보니 그분은 하동군 의원 부인이셨다. 

돌아가는 길에 지는 해 옆으로 무지개가 떠있었다. 해 옆에 뜬 무지개는 처음 보았다. 운전하시는 분이 우리 덕분에 새해 첫날 귀한 광경을 본다며 되려 고마워하셨다. 우리는 무사히 하동 터미널로 돌아왔다. 

 

세상에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이들이 있다면 그런 분들이리라. 하삼천의 산림감시원과 하동군 의원 부인같이 어려운 처지의 모르는 사람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을 베푸는 분들. 도보순례 첫날에 만난 귀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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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선한 사마리아 사람들

 

 

우리는 청명의 지인인 하동군 악양면의 햇볕 집에서 묵기로 했다. 

악양은 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최참판댁과 박경리 문학관이 있는 곳이다. 지난여름, 처음으로 홀로 걸었던 내게 깨달음을 주신 박경리 선생님의 자취 근처에 다시 오다니 우리의 인연이 숙명 같았다. 

최참판댁 근처에서 순두부로 저녁 식사를 했다. 집주인을 부담스럽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낯선 사람 집에서 묵는 건 나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햇볕은 지난여름 하동군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대책위원회 1인 시위에 응원차 갔다가 마침 타지에 있어서 못 만났던 분이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되나 보다. 

나는 누구에 대한 정보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선입견 없이 내 느낌으로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여름 1인 시위자에게 들은 햇볕은 내가 ‘그 집에서 묵지 않고 그냥 가면 서운해할 사람’이었다. 그 말이 서운하지 않게, 햇볕은 첫날만 신세 지려 한 우리에게 사흘이나 별채를 내어주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하루, 다음, 그다음 날마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숙소를 제공 받았다. 잠자리를 해결해 주는 건 도보순례에서 최고의 환대이다. 

그런데 나는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해서 모르는 사람 집에서 자는 건 생각지도 못했었다. 섣부르게 관계를 맺다가 단시간에 드러난 면으로만 서로를 평가하고 단점이 드러나 실망하기보다는 돈 내고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친구로 인한 경험을 통해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랫마을에 별이 내려앉은 듯한 악양의 산자락에서 순례 나눔을 했다. 

 

청명은 관념이나 습성을 벗어나 예측하지 않고 주관하지 않은 삶에서 더 많은 걸 얻는다고 했다. 니키는 앞으로 본격적으로 활동하실 JPIC의 정의, 평화, 창조보존, 소수자 연대의 삶을 꿈꾸셨다. 같이 걷지는 못했지만 햇볕도 함께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밤이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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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해와 떠오른 무지개 

 

 

☆ 경제적으로 걷다 

2022년 1월 2일 일 하삼천~하동군 진교시외버스터미널~사천시 곤양공용터미널 : 17km

 

둘째 날 아침 9시, 햇볕과 함께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기도’를 하고 셋이 길을 떠났다. 

오전 9시 50분, 니키와 청명을 하삼천 삼거리에 내려주었다. 

둘이 먼저 8km를 걷고, 나는 진교시외버스터미널에 차를 세우고 돌아오기로 했다. 그런데 진교시외버스터미널에서 다시 8.5km 더 가는 곤양공용터미널로 갔다. 거기에 차를 세우고 버스를 기다려 타고 진교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그사이 속보로 1.5km를 남긴 둘에게 가려는데 식당을 정하라는 연락이 왔다. 또 니키가 사주실 것 같아 저렴한 김밥집을 찾았다. 메뉴를 사진 찍어 전송하고, 먹고 싶다는 김밥과 떡볶이를 미리 주문했다. 헤어진 지 두 시간 만에 벗들이 도착하니 음식이 딱 맞춰 나왔다. 대도시와 다름없는 신메뉴에 깔끔하고 맛도 좋았다. 연신 밥을 사주시는 니키에게 미안해서 내가 찹쌀꽈배기를 후식으로 샀다. 동네 명품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체인점이었다. 진교는 그 정도로 번화한 곳이었다. 

 

셋이 걸었다. 8km를 걸어온 둘과 달리 내 발걸음은 나는 듯 가벼웠다. 그런데도 둘은 도보순례 전문가들이라 새로 걷는 나와 속도가 맞았다. 

사천시 서포면으로 들어섰다. 전날처럼 길이 단정했고 길가 늪지가 살아있었다. 

길가에 죽은 비둘기를 청명이 숲가에 묻어주었다. 걷다가 쉴 곳이 마땅치 않아 우리는 땅바닥에 앉아 사과와 꽈배기를 먹었다. 거지가 따로 없어 보이는데 좋다고 히죽대면서. 

 

오후 3시 반, 종착지인 곤양공용터미널에 들어서며 승용차 한 대를 향해 청명이 인사를 했다. 가던 차가 다시 돌아왔다. 차에서 내린 곤양 주민은 교회 신자셨는데 그날 교회에서 받은 떡과 귤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월성 핵발전소 이주대책위를 위해 사진도 함께 찍어주셨다. 황량했던 곤양 이미지가 확 달라졌다. 게다가 터미널에 세워진 내 차 탈핵브리드를 보니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몰랐다. 나는 반만 걸었지만, 벗들이 걸었으니 내가 다 걸은 거나 마찬가지다. 이 얼마나 편안한 생각인가. 그렇게 그날 걸은 거리를 총 18.9km에서 도보순례 17km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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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셋처럼

 

 

우리는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지난여름에 내가 만났던 하동군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대책위원회 최지한 집행위원장을 함께 만났다. 

그는 비움실천의 초절정 삶을 살고 있었다. 대나무 공예를 하다가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투쟁을 하면서 생업을 중단하고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책 외에는 소유물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소유와 비움에서 ‘물건의 수량은 중요치 않고 애착은 갖되 집착은 하지 않’았다. 

그는 최근 경제학 서적을 많이 읽었다. 사람은 끊임없이 비용 편익을 분석하는데 모든 건 선택과 관점의 문제라고 했다. 가급적 보편적 인류 가치를 추구하지만 모든 행위는 경제활동이라고 했다. 사업성 없는 지리산 산악열차를 왜 하는지 생각해 봤는데 (전쟁 아니면) 건설로 인한 시장경제체제 유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가 어느 현상을 쉽게 단정 지을 만큼 세상이 단순하지가 않아요. 나의 선택이 미치는 영향도 보잘 것 없을 것 같지만 엄청 크고, 그리고 중요한 건 산악열차를 놓으려는 저희 군수님이나 핵 마피아라고 하는 그분들도 우리 사회 공동체 구성원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 것인가. 이게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중략)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 가면서까지 무언가를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우리는 결국은 알아주지 못하는 존재를 알아달라고 생명 평화 운동을 하는 건데, 정작 나랑 조금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 존재를 부정하면 우리가 하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인지…….”

 

지난 1년 반 동안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공동체를 위해 일해 온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평화와 존중 그 자체였다. 나 역시 갈등과 싸움이 싫다. 그래서 조용히 걷는다. 그러니 그의 말에 깊이 동감했다. 그의 머리 위에 걸린, 2020년 5월에 엮다 만 대나무 바구니가 완성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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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바구니가 완성되기를 

 

 

☆ 때로는 택시도 타다

2022년 1월 3일 월 곤양공용터미널~사천공항 : 17km

 

오전 8~9시, 하동군청 앞에서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대책위와 함께 1인 시위를 했다. 

한 사람이 들던 피켓이 넷이 되었다. 

시위 후 하동 시장에서 시래깃국을 먹었다. 맛있는데도 저렴해서 내가 샀다. 

우리는 전날 종착지였던 곤양공용터미널에 주차하고 출발했다. 식사 시간과 이동 거리가 있어 벌써 11시 가까이 되어있었다. 전날처럼 내가 차를 예상 종착 지점인 사천시외버스터미널에 두고 되돌아올까 생각해 봤지만 꾀를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함께 걷고도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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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막아요 지리산 산악열차

 

 

셋이 함께 걸어 좋았다. 사흘 내내 날이 맑고 길이 한적했다. 

목단마을에서 이번 도보순례에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으낭의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잠시 멈춰 기도했다. 탈핵 벗들은 같이 걷지 못해도 늘 함께였다. 

 

서삼로 환덕마을에서 고속도로변에 설치된 태양광 전지판을 보았다. 핵발전소 대안에너지로,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태양광과 태양열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기 위한 패널을 자투리땅에 설치한 것이었다. 나는 핵발전소를 반대하지만, 임야나 농지에 태양광 발전 시설 설치 역시 찬성하지 않는다. 나무나 농작물은 그대로 자라게 놔두고 고속도로변이나 건물 지붕이나 옥상 등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곳에 설치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걷는 이유의 모범적 대안을 보았으니 힘든 걸음의 결과를 본 듯 기분이 좋았다. 

 

오후 2시 넘어 먹은 검정리 ‘그집식당’의 갈치구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니 참 맛있었고, 수곡 생막걸리는 니키와 청명을 기쁘게 해주었다. 

우리는 1002 지방도를 따라 걸었다. 사천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야 했는데 중간에 고개를 넘으면서 길이 헷갈렸다. 사천공항을 앞두고는 공단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지도 앱을 믿고 한참 걸어간 길은 막다른 길이었고 반대로 가본 길은 끝이 없었다. 

간신히 차 다니는 길로 나왔는데 계속 걸을 수가 없었다. 도보순례를 위해 휴가를 내신 니키가 수도회로 돌아가셔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동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야 그날 서울에 갈 수 있었다. 사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곤양공용터미널로 가는 4시 30분 버스를 타야, 거기 있는 내 차를 타고 하동 터미널에 갈 수 있었다. 

길에는 택시가 다니지 않았고, 청명의 휴대전화기는 꺼졌고, 니키와 내 전화기에는 택시 앱도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운 좋게 지나가던 택시를 탔다. 손님 태우고 가던 길에 우리를 보신 기사님이 돌아와 우리를 태워준 것이었다. 기사님은 우리 사정을 아시고는 속력을 내셨다. 

 

사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4시 27분. 남은 시간 3분. 

나는 매표소로 달렸다. 그런데 안내원이 차표는 살 필요 없고 버스는 길 건너에 서 있다고 했다. 뒤따라 오던 둘도 방향을 바꾼 나와 함께 뛰었다. 셋이 똑같이 민첩하게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너는 그 순간, 나는 살아있음에 희열을 느꼈다. 모두의 체력과 운동신경이 아주 잘 맞았다. 우리는 극적으로 버스에 올랐다. 4시 29분이었다. 만약 내가 차를 미리 가져다 놓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기쁨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무사히 그날의 도보순례를 마쳤다. 

 

고래식당에서 낙지볶음을 먹었다. 니키가 활동하시는 JPIC의 연대로 사흘간 근사한 밥상을 누렸다. 하동 터미널에서 아쉬움 속에 니키를 보내드렸다. 셋이 함께해서 좋았던 사흘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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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변 태양광 에너지 발전

 

 

☆ 두 번째 지인 찬스 

2022년 1월 4일 화 사천시외버스터미널~진주시 문산읍사무소 : 23km + 문산성당 

 

햇볕과 함께 하는 마지막 아침이었다. 

사흘간 햇볕은 우리에게 잠자리뿐만 아니라 누룽지와 김치와 과일과 차 등을 제공해 주었다. 청명은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대책위에 후원했고, 나는 햇볕에게 해남 특산품인 해창막걸리와 내가 농사지은 무와 배추를 주었다. 순례자를 대접하는 마음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훈훈한 나눔은 그렇게 농경사회처럼 이루어졌다. 햇볕과 청명은 그러한 공유경제의 삶을 오래 실천해 온 사람들이다. 

 

사천시외버스터미널에 차를 세우고 어디로 갈지 결정해야 했다. 

몇 달 전에 노선을 짤 때 나는 통영과 거제 쪽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햇볕이 부산에 가려면 진주와 함안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청명은 전적으로 내게 맡겼다. 나는 통영 이정표를 보면서 진주로 마음을 정했다. 남의 말을 들어보기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를 일이었지만 일단 수용 쪽으로. 그렇게 매일의 선택 속에서 더욱 대책 없는 순례가 시작되었다. 니키가 떠나고 둘이 걸으니 허전하기도 하고 단출하기도 했다. 

 

오후 1시, 사천시 사천읍 두량로에 접어들었다. 

화장실에 가야 해서 마을 분들 계신 집으로 갔다. 두량리 이장님 내외분은 우리에게 요구르트와 귤을 주시고 월성 핵발전소 이주대책위를 위해 함께 사진도 찍어주셨다. 

 

청명은 꾸준히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걸었다. 묵묵히 걷는 나와 달랐다. 대신 길을 헤매는 헛수고는 하지 않았다. 청명은 둘이 있을 때 최대한 거리를 확보해 주려고 애썼다. 이후로 혼자 걸을 나를 위해서였다. 

 

진주시로 접어들었다.

니키가 떠나니 청명이 밥을 사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돼지국밥을 먹고 또 걸었다. 

반성 터미널까지 25.2km를 걸어야 했는데 그날도 청명의 지인이 근처에 살았다. 예전 직장 동료였던 은숙이 문산읍사무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2km를 덜 걸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아했다. 보자마자 경쾌함이 뿜어나오는 은숙은 문산성당을 봐야 한다며 안내했다. 

 

소촌역 터의 진주 문산성당은 정말 일부러 가볼 만한 곳이었다. 

문산읍 소문리는 조선시대에 소촌역이 있었던 곳이다. 소촌 찰방관사는 진주를 비롯해 거제, 진해, 고성, 사천, 남해, 하동 등 주변 15개 역을 관리했다고 한다. 찰방관사로 사용되다 1885년 찰방제도가 폐지된 이후 문산성당으로 되었다는 성당 뜰 옆에는 1905년 표지석이 있었다. 성당 입구에 종으로 연결된 듯 보이는 밧줄이 드리워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하얀 옷의 예수님 형상이 특이한 문산성당은 등록문화재였다. 내가 성당을 둘러보는 사이 청명과 은숙은 수십 년의 회포를 단시간에 풀었다. 은숙이 차로 데려다 준 사천에서 우리는 육개장을 먹고 헤어졌다. 

 

청명과 나는 다음 날 종착지인 군북역에 차를 세우고 출발지인 반성역으로 가서 걷기로 했다. 그날 숙소를 정해야 했다. 그런데 군북역 근처에는 모텔뿐이었다. 나는 평소에 모텔을 이용하지 않는다. 분위기가 이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인텔에 들어가야만 했다. 곳곳에 불법 촬영 카메라가 설치돼 있을 것만 같은 공포심이 덮쳤다. 얼어붙은 나의 이상 반응에 청명이 오래도록 대화를 시도했다. 

 

그날 어디로 걸을지 확실히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늘 대책이 없었고 그걸 모험과 스릴이라고 느꼈다. 정해놓고 하는 일은 재미가 없었다. 새로운 일들이 벌어질 때 흥분되고 그게 도보순례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숙소예약도 하지 않고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도 찾아보지 않았다. 사진을 미리 보고 가면 감흥이 덜하기 때문이었다. 대충 거리만 따져서 근처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위주로 노선을 짜는 게 전부였다. 그런 나를 친구는 걱정하고 있었다. 혼자이기 때문이었다. 계획적인 청명과 즉흥적인 내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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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문산성당

 

 

☆ 모두 떠나다  

2022년 1월 5일 수 진주시 반성역~함안군 군북역 18km 

 

아침 8:13 군북역 무궁화호를 타고 8:23 반성역에 도착해서 걸었다. 

깃발 두 개를 배낭에 꽂고 내 간식까지 다 넣고 걷는 청명은 당당하고 든든했다. 

평촌교회를 지나 중도 정류장을 막 지나는데 자전거 타고 가시던 한병기 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셨다. 사진도 찍고 몸자보도 받으신 그분은 이후 월요일마다 월성 핵발전소 이주대책위 상여시위와 함께하고 계신다. 

 

군북면으로 넘어서기 직전 오르막 모퉁이 길에서 꽃 한 송이를 보았다. 꽃이 흔하기 전인 계절에, 밟히기 쉬운 아스팔트 자락에 핀 꽃의 생명력이 반갑고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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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할지라도 살아남는다. 생명 

 

 

원북마을에 들어서자 멋스런 고택과 정자가 있었다. 채미정이었다. 

그때가 12시 반쯤이었다. 군북역까지 남은 5.2km는 걸어서 한 시간 반 남짓 걸린다. 거기서 마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30여km, 차로 30여 분 걸린다. 합해서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청명은 3시 30분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럼 한 시간 안에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도 내가 놀이공원에 정신을 파는 아이처럼 발걸음을 멈추고 채미정에 관심을 갖자, 청명은 엄마처럼 여유 있게 보라고 했다. 대체 그런 여유는 어디에서 나올까? 

고건축의 아름다움만큼 청명의 배려심에 감동하며 살펴본 ‘채미정은 유림들이 생육신의 한 사람인 어계 조려(趙旅) 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1735년경 서산서원 강당 동쪽 담장 밖에 지은 정자이다.’ 

과연 조금 더 가니 서산서원이 있었다. 

 

하림마을과 대림미미골과 덕촌마을과 집집마다 태극기가 꽂혀있는 신창마을을 지나니 군북역이었다. 오후 2시, 기차로 10분 거리를 다섯 시간 반 만에 18.2km 걸었다. 

 

군북역에 주차한 자동차를 타고 마산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마산 초입부터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드디어 대도시에 들어선 것이었다. 전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저 대도시에 ‘핵발전소 없이 안전하게 살자’ 몸자보를 달고 나 혼자? 앞으로 갈 길이 막막했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버스 시각과 주차 때문에 아구찜 대신 짜장면과 교동짬뽕을 서둘러 먹고 청명을 보내야 했다. 

청명이 가기 전 그날 숙소를 정하는데, 지도 앱에서 찾아보니 마산역 근처에 모텔 가격에 호텔이 있었다. 조식도 제공되었다. 청명이 안전이 우선이라고 했다. 

 

우리는 터미널 구석에서 아주 짧은 나눔을 했다. 

닷새간의 도보순례 동안 숙소와 식사와 길 찾기와 무엇보다 100여km의 걸음을 해결해 주고 가는 청명, 그리고 돌아가서는 토요일까지 일해야 하는 청명. 그 고마움을 어찌 일일이 나열할 수 있으랴. 나는 그이를 보며 내가 얼마나 굼뜨고 답답하며 대책이 없는지 돌아보았다. 내가 여태 편히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일 못 하는 나 대신 일 잘하는 다른 사람들의 배려 덕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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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와 탈핵도보순례

 

 

친구들은 떠났고 닷새 만에 혼자가 되었다. 모든 선택에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혼자. 이제는 내게 의견을 물을 사람도 없고 누구와 의논할 수도 없다. 그렇게 나는 함안에서 부산 고리 핵발전소까지 가야 했다. 

 

청명을 보내고 호텔로 갔다. 비즈니스호텔이라 깔끔하고 편리하고 무엇보다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이번 순례에서 남의 집과 모텔과 호텔까지 섭렵하며, 도보순례 숙소에 관해 내가 정한 원칙들을 무너뜨렸다. 세상에 절대 안 되는 것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부자유할 수밖에 없다. 그 기준을 어느 선에 맞추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기준선을 낮춘다고 자유로워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마음에 불편한 지점들이 줄어들면 쓸데없는 고민과 갈등을 피할 수 있다. 

혼자였다면 가능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였기에 싫은 것도 해야 했고, 하다 보니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청명이 첫날 나눔에서 했던, 관념과 습성을 벗어나 내가 주관하지 않은 삶에서 더 많은 걸 얻는다는 말은 내게도 적용되었다.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말과 행동으로 영향을 미친다. 때론 보이지 않는 에너지 파장으로까지.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람과 있으면 자신도 그렇게 되고, 부정적이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과 있으면 그 역시 그리된다. 마치 햇빛 아래 있으면 밝아지고 그늘 아래 있으면 어두워지듯이. 그래서 누구와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한데 유유상종이라고 하지 않나. 

온종일 걸으면 누구나 지치고 짜증 나게 마련이다. 자기 상태도 안 좋은데 상대 때문에 불편이나 시련을 겪게 되면 더욱 그렇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도 돌아갈 차가 없어도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파도 남을 탓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있으면 내가 항상 즐거워서 웃고 있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란 걸 넷째 날 긴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남의 좋은 면만 보려고 애쓰듯 내게서도 좋은 것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내가 얼마나 인상 쓰고 막말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런 내 모습을 사랑으로 받아주고 귀엽다고 웃어준 너그러운 친구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이 눈앞에 보이는 데도 차를 가지러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타야 하는 나 때문에 니키와 청명이 조간너리 마을의 드넓은 논을 빙 둘러가 준 첫날의 해가 기울어가는 늦은 오후를 기억한다. 친구란 뻔히 보이는 5리를 놔두고 다리가 아파도 10리를 함께 걸어주는 존재이다. 

 

둘이 걸은 이틀간 청명은 내게 양해를 구하고 선두에 섰다. 내가 앞으로 걸을 날이 많이 남았기에 자기가 치고 나가줘야 한다며. 그 청명의 배낭에 우뚝 솟은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깃발이 신창마을의 태극기와 잘 어울렸다. 

 

우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해 걷고 있다. 

핵발전소는 위험하다. 아무리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주장해도 방사능의 위험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핵발전소를 돌리면 자동으로 발생하는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건 전 세계가 알고 있다. 에너지를 쓰기 위해 우리는 핵발전소를 이용하고 있다. 지금 내가 이 깊은 밤에 정읍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영광 한빛 핵발전소에서 전기를 공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전체 전기 사용량의 30% 정도를 핵발전소에서 공급한다고 하지만 나 역시 핵발전소를 이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가끔 길을 가다 너희는 전기 안 쓰냐고 호통치는 분들을 만난다. 전기를 덜 쓰려면 그 옛날 조선의 이덕무가 해를 따라 옮겨가며 독서 했듯이 나도 낮에만 글을 써야 한다. 이런 걸 비용 편익이라고 하겠지. 

허리가 아프다. 엉덩이도 아프다. 더 앉아있기가 힘들다. 나는 걷는다. 그리고 쉬지 않고 쓴다. 무엇을 위해? 글쎄 그걸 설명하려면 지금까지 쓴 만큼을 더 써야 할 것이다. 그건 에너지 낭비다. 

2022년이 시작되었다. 인간이 구분 지은 날짜, 시간 그런 것들의 경계를 넘어서고 싶지만 나는 범인류 기준으로 모두와 함께 한 살 더 먹었다. 아르보 패르트의 미니멀 음악 ‘거울 속의 거울’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저녁 6시대에 들었던 라디오 방송을 새벽 1시대에 재방송으로 또 듣는다. 한번 들은 걸 또 듣듯이 반복해서 말한다. 생명과 평화와 자유와 사랑. 

해가 바뀌어도 신년 초부터 온몸으로 걷고 쓰면서 외친다. 생명, 평화, 자유 그리고 사랑. 

 

끝으로 하동군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대책위원회 최지한 집행위원장이 추천해 준 동영상을 소개하며 함께 보기를 권한다. 

 

You Tube 동영상 MAN

https://youtu.be/WfGMYdalC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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