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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금강 순례길 1 - 연산에서 서천까지 성지 순례

posted Mar 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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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일곱째별
발행호수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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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금강 순례길 1 – 연산에서 서천까지 성지 순례

 

 

2023년 1월 7일 토요일 연산역~논산역 12.8km+논산천변 산책 6.4km 19.2km

2022년 2학기부터 대전의 모 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특강이 아닌 정규 강의는 처음이라 혼신의 에너지를 다 쏟았다. 그리고 겨울 계절학기 수업까지 다 마쳤다. 

드디어 마음 놓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계절학기 때 지낸 왜가리 아파트에서 나서는 데 오전이 다 지나갔다. 

날이 매우 추웠다. 

혼자 하는 순례에는 대중교통편이 연결돼야 짐을 가지고 이동할 수 있다. 이번에는 금강 따라 기차역을 기점으로 순례하기로 했다. 계룡역 다음은 연산역이었다.

지난번에 계룡시 엄사면부터 계룡역까지 걸었으니, 옆 마을인 논산시 연산면부터 금강 하구 쪽으로 걸을 계획이었다.

종착 예정지는 충남 서천군 홍원항 서천화력발전소 송전탑 피해주민 마을이었다.

 

시작 지점은 연산역이었다. 

연산역 앞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논산까지 걸어가 기차를 타고 돌아올 계획이었다. 

주차하고 근처를 둘러보다 첨성대처럼 생긴 커다란 탑이 특이해서 가까이 가 보았더니 급수탑이었다.

등록문화재 제48호인 연산역 급수탑은 ‘호남선 개통과 함께 증가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11년 12월 30일에 설치하여 1970년대까지 약 60여 년간 사용되었다. 

높이 16.2m, 바닥 면적 16.6m², 총 용량은 30t인 급수탑은 물탱크를 장치한 탑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세종실록에 기록된 첨성대의 높이는 19척 5촌으로 5.91m이다. 그런데 현재의 첨성대는 9.1m이니 그 차이의 요인이 궁금하다. 여하튼 급수탑은 첨성대보다 7m 가량 더 컸다.) 

일제 강점기에 전국 각지에 철도망을 부설할 당시 주요 역마다 기관차 급수시설을 설치하였는데, 충남에는 서대전과 강경역에 있었으나, 약 30년 전에 철거되고 연산역에만 남아 있다고 한다. 

 

 

DSC08905연산역-급수탑_resize.jpg

연산역 급수탑

 

살얼음이 얹힌 연산천을 따라 걷노라니 한 학기 동안 적체되고 경직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학기 내내 고민은 강의 준비 스트레스보다 잃어버린 내 모습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어렵게 어렵게 회복해 놓은, 천천히 느리게 살고자 하던 자연인으로의 모습을 잃는 건 순식간이었다. 약육강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자생존을 위해 사회에서 필요한 기술과 소양을 가르치는 동안 순간순간 나의 옛 모습이 튀어나와 내가 너그러운 줄 알았던 학생들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출강 두 달 만에 전공 관련 공모전에서 출품작 중 75% 수상이라는 혁혁한 공로를 세웠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으로 미미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과도한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리곤 한 학기 만에 탈진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힘 조절 못함이 대인관계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문제점임을 알면서도 항상 그래왔다. 

첫눈에 반하고, 있는 걸 다 내주고, 속을 다 까발려 보이고. 그래서 기대 이하의 반응이 나오면 번번이 실망하면서도 나는 그걸 순수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당분간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니 편안해졌다. 혼자 걷고 있음이 그 자체로 자유롭고 기뻤다. 

 

부황1리 마을회관 앞에서 처음으로 앉아서 쉬었다. 

해남의 나무가 인도 스승님으로부터 받은 가르침. 

‘물은 반드시 앉아서 마셔라.’

혼자 걷다가 방석 깔고 앉아서 물을 마시는 건 쉽지 않다. 가방 내리고 방석 펴고 앉았다 일어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여유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서서 마시기가 일쑤다. 하지만 앉아서 등산화 끈을 헐겁게 해 통풍을 시켜 발의 피로를 풀어주고, 간식도 먹어서 몸의 열량을 채우면 다음 걸음이 수월해진다. 그렇게 전해 들은 가르침을 실천해 보았다.       

 

자이구루~

 

길을 잃지 않고 예상 거리 절반 이상 걸었을 때였다.

논을 가로질러 덕은감리교회를 막 지나자마자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손목 토시 한 짝이 사라진 걸 알아챈 것이었다.

남은 시간 줄기차게 가도 기차를 겨우 탈 수 있을까 말까 했다. 계속 전진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 몸이 방향을 틀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곁에서 누가 날 좀 말려줬으면 했다. 그렇게 마구 뛰어가면서 2년 전과 최근에 두 번 읽은 책의 한 페이지가 떠올랐다.

 

‘보통 오랜 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면 외부에 위험에 곧바로 대처하기 위해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고 한다. 

나르시시즘 관계에서는 상대가 자주 분노를 터트리고, 모든 일의 책임을 떠넘기며 협박하는 등 위협을 느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여성은 항상 경계 태세를 갖추고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스스로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도의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나르시시즘 관계를 지속하는 여성이 비관적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여성의 신체가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수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찾는 것이다.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떨어지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지속적인 자극을 쫓아다닌다.’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배르벨 바르델츠키, p. 194) 

 

분명 스트레스를 찾는 증세였다.

어쨌든 나는 500여m 가까이 되돌아갔다가 토시를 찾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헛수고를 했다. 그러면서 토시에게 덜 미안하고 내 상황에 최선을 다한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뛰었다. 길도 몰라 헤매면서도 걷고 뜀을 반복했다. 

논산역에 다다랐을 때 4시가 막 넘어있었고 계단을 오를 때 플랫폼으로 연산행 기차가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4시 9분이 아닌 5분이었다. 나는 1km를 더 걷고도 4분을 단축한 것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한 상태로 무궁화호 의자에 몸을 던졌다. 나는 극도의 긴장을 즐기고 있었고 그 아슬아슬한 성취는 타는 목구멍만큼 짜릿했다. 어쩌면 막판까지 몰고 가도 기차를 탈 수 있으리라는 무의식이 계산된 극한 상황이라면 나는 결국 살긴 하겠구나 싶었다.

 

햇님쉼터한의원으로 갔다. 

원장님과 감꽃과 정성 가득한 굴떡국을 먹고 산책을 했다. 원장님은 산책을 자주 하신다고 하셨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산책하는 게 제 로망이에요.”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그 말을 시작으로 학기 중 엄근진(엄숙·근엄·진지)했던 내가 벗겨지고 발랄한 내가 드러났다. 가만히 두면 자꾸만 가라앉는 나는 주변에 공기를 들썩여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감각적인 감꽃과의 대화는 연신 웃음이 나게 했다. 

 

훤히 뚫린 둑길 위로 덩그러니 떠 있는 보름 다음 날 달은 수태할만한 정기를 품어냈다. 

한참을 걷다가 낮의 일을 말씀드렸다. 말도 안 되는 도박같은 걸음과 읽었던 책의 기억나는 문장 중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 수치.

그러자 원장님이 답변하셨다.

 

“치료를 받아야 돼요.”

 

원장님은 구십 노모의 자애로운 미소 사진을 보여주시며 그런 사랑을 한 번만 받아보면 된다고 하셨다. 

누구에게서? 그게 내 의지로 되나? 

 

 

DSC08909충남-논산시-연산면_resize.jpg

충남 논산시 연산면

 

2023년 1월 8일 일요일 논산역~강경 성지성당 13km

햇님쉼터한의원 황토방에서 눈을 뜨니 민망하게도 오전 11시 가까이 되어 있었다. 

전날 와인 마시고 한 시쯤 잠들었는데 한 학기 동안 쌓인 피로감이 풀린 모양이었다. 

전날 저녁에 먹은 굴떡국을 먹고 순례를 나섰다. 

 

강경역 근처에 차를 세우고 논산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강경까지 걸어오는 방법을 택했다. 도착지에 자동차가 있으면 마음에 여유가 한껏 생긴다.

강경에 들어서자 ‘스승의 날’이 시작되었다는 강경고등학교 맞은 편에 초등학교가 있는데 중앙강당이 근대건축물이었다. 길에 강경성당 이정표가 있어서 골목으로 800m 들어가 보았다. 

 

 

DSC08976-강경-중앙초등학교-강당_resize.jpg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

 

아이보리색 건물에 적벽돌색 높고 뾰족한 지붕의 대성당보다 곡선인듯한 직선의 지붕 선과 아치형 문이 어우러진 간결하고도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이 먼저 눈에 띄었다. 김대건 기념관이었다. 

 

 

DSC08982-강경성당-김대건-기념관_resize.jpg

강경 성당 김대건 기념관

 

강경 성당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10월 12일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 일행과 함께 라파엘호로 강경 황산포 부근에 도착하여 감격스러운 첫 미사를 봉헌하고 한달 정도 구순오 집에 머물면서 성사를 집전하며 교우들을 돌본 한국 천주교회 첫 사목지이다.’

1961년에 건립된 강경성당은 높은 탑 건축구조형식으로 건축 및 종교사적 가치가 높아 등록문화재 65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지난해에 성지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높은 첨탑의 대성전과 독특한 양식의 기념관이 아닌, 평범한 김대건 교육관에서 나를 잡아끈 것이 있었다. 게시판에 붙여진 2022년 8월 21일 주일 자 가톨릭신문 한 장이었다. 

 

‘서천 지역 신자들 믿음터이자 페롱 신부 사목 거점’ 산막골 성지. 

원주 토지문화관에 입주할 당시에 가 보았던 배론성지에서 알게 된 최양업 신부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는 프랑스 페론 신부의 사목 거점 산막골이 서천에 있었다. 

1827년 생 페롱 신부는 1850년 12월 21일 사제품을 받고 1856년 1월 23일 조선에 도착해 경상도 서북부지방을 맡아 전도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도착한지 2년 후인 1858년 9월 등에 산막골에서 6통의 편지를 작성했다고 한다. 

그동안 산막골은 경북 상주시 모동면 신흥1리로 알려졌는데, 페롱 신부의 집 주인이자 복사였던 황기원, 황천일의 거주지가 서천 산막동이었던 점으로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가 확실하다는 게 2010년 호남교회사연구소 서종태 박사 <박해기 서천지역 천주교회사에 대한 연구> 자료집을 통해 밝혀졌다. 

(이 무렵 페롱 신부는 최양업 신부와 친하게 지냈지만 1866년 병인박해로 잠시 조선을 떠났다. 이후 1868년 5월에 재입국해 독일 상인 오페르트 일행과 동조해 남연군의 묘를 파헤치는 덕산 굴총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서천 산막골 성지. 즉흥적으로 못 말리는 궁금증이 유발됐다. 

 

차를 세워둔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두 해 전 새우젓을 산 곳이 있었다. 젓갈로 유명한 강경에서도 제일 유명하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왔던 곳이었다. 추억이 솟아올라 들어가 보았다. 그때도 이번에도 할머니는 보이지 않으셨다. 

잠자리를 제공해 주신 햇님쉼터한의원에 드릴 젓갈 두 종류를 사면서 성당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번에 왔을 때는 강경성당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 몰랐어요.”

“작년에 성지가 되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성전 건축하는 데 개인으로는 헌금을 가장 많이 하셨을 거예요. 그래서 공로패도 받으셨어요.”

 

상점 입구 쪽에 공로패가 있었다. 독실한 신앙심이 성업을 이루었을까? 무엇에든 열심히 하는 성품이 장사든 신앙생활이든 훌륭히 해내셨을까? 하나님의 은혜로 부자가 되셨을까? 두 번이나 갔던 곳이 여전히 잘 되고 있고 내가 팔아준 돈도 그토록 아름다운 성당을 짓는 데 쓰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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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시 강경읍 강경성지성당

 

2023년 1월 9일 월요일 강경 성지성당~강경포구~나바위 성지~성당포구 15.3km

아침에 강경 성지성당으로 갔다.

기념관 옆 크리스마스 장식을 막 걷고 있었다. 전날 초저녁에 동방박사들과 요셉과 마리아와 우리나라 이불을 덮은 아기 예수님을 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기도로 순례를 시작했다. 차를 그곳에 세우고 출발했다. 

 

강경포구로 가니 금강 자전거길이 양쪽으로 나 있었다. 한쪽은 대청호, 다른 한쪽은 금강하구둑 쪽이었다. 하구둑으로 향했다. 

 

하구둑 자전거 길을 가다가 길에서 벗어나 나바위 성지로 향했다. 

치유의 경당이 보였다.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치유와 위안을 주는 장소’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숨을 들이켜고 손잡이를 잡아 돌려 보았다. 문이 잠겨 있었다. 

성전도 마찬가지였다. 월요일이라 그랬는지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 

 

동산 위에 성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뒤로 망금정(望錦亭)이 있었다. 

‘나바위성당이 설립된 이후 초대 대구 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답고 조용한 분위기를 감탄하셨고, 1912년부터 해마다 5, 6월이면 화산 정상인 이곳에서 금강을 굽어보며 피정을 하셨다. 1915년 주임신부인 요셉 베르모렐(장약실) 신부는 피정하시는 주교님을 위해 “아름다움을 바란다”는 뜻으로 망금정을 지었다.’

그럴만했다. 정자에 앉아 금강을 굽어보며 있노라니 더 걷고 싶은 생각도 사라질 만큼 세상이 정지된 듯 하염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런데 흥미로운 게 있었다. 

망금정의 반석이 된 거대한 바위를 돌아보니 정자 아래 거대한 돌에 ‘만선(滿船)과 무사 안녕을 기원하던’ 마애삼존불이 새겨져 있었다. 불상 위에서 피정하신 신부님이라니, 과연 영적인 장소에는 온갖 기운이 모여드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모든 인간은 신을 찾게 되는 것일까. 

 

 

DSC09042-익산시-나바위-성지_resize.jpg

전북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 성지

 

나바위 성지에서 나와 금강 종주 자전거길을 계속 걸었다. 

3.2km 지점에 김대건 신부 일행 진입로에도 커다란 십자가 예수상과 성단이 있었다. 

 

용안과 용두 갈림길에서 빙 돌아가야 했다. 

다시 자전거길이 나오고 갈대수피아도 지나쳤다. 

 

드디어 그날의 목적지인 성당포구에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은 자전거 길일뿐 대중교통 수단이 다니는 곳이 아니었다. 온종일 사람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차를 어떻게 타나. 

그때 강경 쪽에서 흰색 승용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손을 들어 차를 세웠다. 노부부가 타고 계셨다. 

 

“강경으로 가려는데 어떻게 가야 돼요?”

“일단 타요.”

 

노부부는 그곳에선 아무것도 탈 수 없으니 함열까지 태워다 주실 작정이셨다. 그런데 교차로에서 택시가 한 대 나오는 것이었다. 그 차를 잡으라고 하셨다. 나는 차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 강경성당에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기사님이 “만오천 원”을 불렀다.

다시 흰 차로 가서 감사 인사를 하고 택시에 올랐다. 낚시하러 나오신 길에 얼떨결에 손님 태운 택시였다. 차에 올라서도 노부부께 감사 여운이 진하게 남았다. 

 

“방금 탔던 차의 노부부가 정말 고마우시네요.” 

“아마 남자 혼자였으면 안 태워줬을 거예요.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니까요. 예쁜 여자분이니까 태워줬지요.”

“모자에 마스크에 눈만 보이는데 어떻게 예쁜지 아세요?”

“눈이 예뻐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가끔 여자라서 이로울 때가 있다면 히치하이크할 경우가 아닌가 싶다. 

 

“혼자 다니면 위험 상황에서 위험하지 않나요?”

“그래서 안전하게 다니는 편이에요.”

 

그래서 해지기 전에 숙소에 돌아가야 한다. 무사히 강경성당 앞에 와서 내렸다. 

차에 오르자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두워졌다. 그때부터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다행히 며칠째 숙소가 지정돼 있고, 특히 이날은 도착지에 자동차가 있어서 안전한 날이었다. 그렇게 강경에서 논산 햇님쉼터한의원으로 돌아왔다. 

 

2023년 1월 10일 화요일 성당포구~웅포 곰개나루~나포 십자들 17.5km

성당포구에 자동차를 세우고 둑길을 걸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길을 잘못 들뻔했는데 그곳에서 아주 커다란 나무를 만났다. 높이 18m, 가슴 높이 둘레 약 8.5m의 은행나무였다.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은행나무는 단순한 보호수가 아닌 당산제를 지내는 나무였는데 수령이 4~500년이나 되었다. 

 

‘성당포구는 조선 현종 3년(1662년)에 조세로 바친 곡식을 보관하고 배로 운송하기 위한 조운창(고려~조선시대에 세곡과 수송과 보관을 위해 강가나 바닷가에 지어 놓은 곳집)으로 성당창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이때부터 조운선의 무사 항해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성포 별신제’를 순풍당이라는 신당에서 지냈다고 한다. 고종 32년(1895년)에 성당창이 폐지되고 순풍당이 무너지자, 마을 공터에 있는 이 은행나무와 옆 느티나무에서 당산제(마을 대표가 주관하여 마을 수호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지냈다. 한국전쟁 이후 명맥이 끊겼으나, 마을 사람들의 구전을 바탕으로 재현하여 1997년부터 다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은행나무가 민간신앙에 쓰인 것은 보기 드문 사례여서 민속적인 가치가 높다.’ 

 

뒤쪽에 대나무로 둘러싸인 은행나무를 한 바퀴 돌았다. 길을 찾아 나오다 보니 그 앞에 느티나무도 있었다. 한 마을에 보호수가 두 종이나 되니 얼마나 든든한 마을인가. 

 

강둑 자전거길을 걸었다. 일직선 길을 온종일 걷는 일은 재미는 없지만, 굴곡이 없어 힘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길 잃을 염려가 없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 얼마나 신이 날까, 실은 그 길은 언젠가 커플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싶은 길이었다. 

그 길에는 일정 거리마다 정자를 하나씩 지어 놓았는데 그 외에 그늘이라곤 없다. 게다가 공중화장실이 없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선 카페가 한참 없는 길 건물 뒤 곳곳에 휴지가 널린 곳이 있다. 화장실 대용이 되어 버린 장소였다. 하구둑 길에선 그럴 정도로 몸을 숨길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익산에서 군산으로 행정구역이 바뀌고 웅포면 곰개나루에서야 비로소 공중화장실이 있었다. 진포대첩지였다. 

 

용왕사 터 앞에서 간식을 먹고 금강정에 올랐다. 

강바람 타고 탁 트인 시야가 시원했다. 가뿐해진 몸으로 재출발했다. 

곧이어 나포면으로 들어섰다. 

 

오전부터 혼자 걷는 내내 노래가 떠올랐다. 

‘우리 손 잡을까요? 지난날은 다 잊어버리고.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우효의 민들레. 

 

‘우리 동네에 가요. 편한 미소를 지어주세요. 노란 꽃잎처럼 내 맘에 사뿐히 내려앉도록.’

 

내게는 함께 가자고 할 우리 동네가 없었다. 하지만 걷는 내내 누군가 옆에 와서 나란히 걸어주기를 기원했다. 그 상상은 맨 처음 홀로 남도 순례를 할 때부터 시작됐다. 걷고 있으면 누군가 날 찾아와 나란히 걸어주기를 바랐다. 기적이 있다면 그렇게 로맨틱하기를 소원했다. 그렇게 도반에서 동반자로 함께할 사람을 운명처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텔레파시는 드라마에서만 통하나 보다. 고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철새 탐조회랑을 지나 나포십자들까지 왔다. 하구둑까지 6km 남은 곳이었다. 

17.5km 걸어오던 종일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있었다. 일몰 시각에 맞춰 철새 촬영을 위해 수십 명이 모여든 것이었다. 강 위에서 고요히 웅크리고 있던 새떼는 사람들의 소음에 신경이 곤두서 있을 게 뻔했다. 게다가 잠시 후 있을 셔터 소리라면? 아마 새들에겐 엄청난 굉음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전화해야 했다. 망설임 끝에 남원에서 만났던 군산 사람 바다별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당연히 갑작스러운 전화에 나올 수 없었다. 민폐 끼치지 않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전날 탔던 택시의 기사님 명함을 찾아 전화했다. 20분 내로 도착하셨다.

 

“식사는 하셨어요?”

“간식으로 대충 때웠어요.”

“낚시하러 가서 먹으라고 각시가 고구마를 쪄줬어요. 세 개 있는데 한 개 드릴게요.”

사양하다 받아서 먹었다. 기사님은 부인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나와도 연결시켜 주셨다. 기사님과 부인은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그려 보이며 서로 사랑을 표현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돈도 안 드는데 그걸 왜 못 해요?”

사랑한다는 말을 밥 먹자는 말보다 더 많이 하시는 기사님은 보기 드물게 참 현명한 남편이었다. 그 현명함은 칠십 대 나이에서 오는 것일까?

 

 

DSC09199-군산시-나포십자들_resize.jpg

군산시 나포십자들

 

2023년 1월 11일 수요일 서천성당~산막골 성지 15km <총 80km> 

논산에서 출발해서 군산 하구둑으로 갔다. 어디쯤부터 걸을까 하다 다리를 건넜다. 주차와 돌아올 일을 생각해 서천성당으로 향했다. 마지막 날이라 노선을 짧게 잡아야 했다. 

 

서천성당에서 기도하고 사무실로 내려갔다. 사무장 프란치스코가 계셨다. 내가 산막골 성지까지 걸어갈 거라고 했더니 놀라셨다. 

“거긴 차로 가기도 힘든 데예요.”

그런 질문엔 대수롭지 않게 반응할 수 있다. 벌써 2000km 넘게 걸어온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성지에 바로 전날 사목하실 담당 신부님이 배정되셨다고 하셨다. 새로운 성지 개척 순례라니 흥미와 의미가 더했다. 

 

“돌아오실 땐 어떻게 하실 건데요?”

“하느님이 도와주시겠죠.”

 

그리곤 ‘INRI(유대인) 예수’ 십자가 목각상을 하나 샀다. 그 십자가를 손에 쥐고 걷기 시작했다. 겨우내 낀 검정 여름 장갑의 엄지와 중지에 구멍이 나 있었다. 

 

화금리, 두왕리, 태월리, 화성리, 석촌리, 등고리, 흥림리 지나 금덕리부터 산으로 들어갔다. 만덕리에서부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산길이었다. 해는 기울기 시작하고 마음은 급했다. 차 한 대 간신히 다닐만한 좁은 오르막길을 계속 갔다.

 

마침내 산막골 성지가 나타났다. 고도가 높은데도 아늑했다. 

십자가 예수님과 그 옆 성 황석두 루카께 인사를 하고 성지를 둘러보았다.

산골짜기에 우물과 집과 그네와 굴삭기와 1톤 트럭. 원하던 것들이 다 있었다. 그런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꽃과 채소와 곡식을 가꾸며 알콩달콩 살고 싶었다. 故 박경리 선생님의 꿈처럼.

낡은 그네에 앉아 엽서를 썼다. 부치지 못할 엽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눈물이 흘렀다. 눈물 따라 무엇이 흘러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2023년 첫 도보순례를 연산역 급수탑에서 시작해서 서천 산막골 성지에서 마쳤다. 

 

오후 네 시가 넘어 해가 지기 직전이었다. 2층집 1층에 가서 사람을 찾았다. 굴삭기를 모시던 아저씨가 실내로 들어오셨다. 승용차들이 있는 걸로 보아 성지순례자가 아닌가 해서 혹시 서천 시내로 나가는 차가 있는지 여쭤보았다. 

 

“성당에서부터 걸어왔어요? 성당에서 전화 받았어요.”

 

서천성당 프란치스코와 통화를 하다 내가 올 테니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받으셨단다. 그분은 개인 사유지이면서 종교유적지인 산막골 성지를 일구신 분이셨다. 그분은 춥고 외로운 내게 드립 커피를 주셨다. 역시 순례자에겐 천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내외분 차를 타고 4시간 걸려 걸어온 길의 출발지 서천성당으로 갔다. 

 

그렇게 2023년 1월 도보순례는 금강 따라 성지순례가 되었다. 의도한 적 없었다. 강 따라 걸어 화력발전소 피해주민에게 가려고 했었는데 강경성당에서 신문기사를 통해 만난 산막골 성지로 오게 되었다. 중간에 나바위 성지도 들렀으니 완벽한 성지순례였다. 

 

나의 순례는 점점 자유로워 지고 있다. 내 마음은 이제 언제든지 원하는 곳으로 길을 바꾸어 갈 수 있다. 길의 주제도 마찬가지다. 탈핵이든 명상이든 성지순례든 이름이 무에 중요하랴. 웃으며 시작해 울며 끝나도, 눈물로 시작해 웃음으로 끝나도 내 걸음엔 시작과 끝이 있다. 중간이 경로를 바꾸어 순례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순례 때보다 완벽한 종착지였다. 

 

아직 이름이 나지 않은 작은 성지, 오래전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따라온 걸음. 복음과 선교의 사명은 이제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날의 슬픔이 곧 다가올 기쁨보다 결코 그 가치가 덜하지 않다. 물살에 가라앉는 사금파리 같은 내 슬픔을 모아 반짝이고 빛나는 관(冠)을 만들리라. 언젠가 날개를 달고 날아올라 미운 오리 새끼들의 희망이 되리라. 나는, 우리는 원래 백조였다고.

 

종강과 더불어 시작한 도보 순례의 기록을 개강 전날 완성한다.

무엇이 내 쓰기를 지연시켰는지는 모르겠다. 

 

그 사이, 올해 첫 도보순례에 나흘간 잠자리를 제공해 주신 논산 햇님쉼터한의원에 다녀왔다.

"별님에겐 순수함이 있어요. (절대) 타협하지 않는 순수함."

그리고 처음으로 손목의 맥을 짚어보시더니 하신 기쁜 진단,

"점점 긍정적으로 좋아지고 있어요. 아마 별님 말대로 2막 지나고 3막이 시작된 것 같아요."

 

기나긴 겨울이었다. 

그러나 봄이 온다. 

아니 왔다. 

나는 피어날 것이다. 

 

 

DSC09276-(2)-충남-서천군-판교면-산막골-성지_resize.jpg

충남 서천군 판교면 산막골 성지

 

일곱째별-프로필이미지_202302.jpg

 

 

 

 

 

 

 

*브런치에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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