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혹 내가 이미 본 영화라고 착각했지만 실제로는 보지 않았던 영화가 있다. <그린 파파야 향기>(1993)가 바로 그런 예다. 누군가 이 영화에 대해 언뜻 이야기를 꺼냈을 때 명확한 잔상이 없기에 다시 찾아보았으나, 사실 나는 이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 자자한 명성만을 익히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 영화를 온전한 의미의 '베트남 영화'라 부르기는 어렵다. 베트남 전쟁 말기인 1975년 13세의 나이에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 트란 안 훙은 철저히 프랑스에서 영화를 접하고 공부했다. 그의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아마도 유복했던 집안 환경과 결합된 아련한 노스탤지어에 머문다. 그의 데뷔작이 거둔 성공은 역설적으로 자신에게 남겨진 유년 시절의 '인상'에 순수하게 침잠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넘쳐나는 베트남의 역사적 텍스트를 몰랐을 리 없겠지만, 그는 자신의 경험 너머를 섣불리 건드리지 않았다. 이 점이 그의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동시에 비판의 표적으로 남게 했다.

<그린 파파야 향기>는 프랑스의 자본으로, 파리 근교의 스튜디오 세트장에서 100% 만들어졌다. 서사와 언어만이 베트남의 여유 있는 가옥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 영화를 보며 왕가위 감독, 특히 <화양연화>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두 영화 모두 감각적인 미장센과 절묘한 음향·음악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트란 안 훙이 통제된 공간과 빛, 자연의 물성을 통해 '물질적 세계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그 이면의 생명력'을 관조하는 화가라면, 왕가위는 흘러가는 시간과 스쳐 지나가는 인연의 덧없음을 '빛의 잔상과 감각적인 리듬'으로 기록하는 음유시인에 가깝다.
그러나 트란 안 훙에게 역사성은 철저히 탈색되어 있는 반면, 왕가위의 영상 밑바닥에는 그 역사성이 줄곧 꿈틀거린다. 트란 감독의 초기 베트남 3부작은 잃어버린 조국(남베트남)의 감각적 기억을 스크린 위에 다시 건축한 것이다. 특히 <그린 파파야 향기>는 이상화된 유년의 순수성, 훼손되지 않은 자연과 전통적 삶의 온기를 프레임 안에 안전하게 가둔다. 반면 왕가위의 작품, 특히 <아비정전>과 <화양연화>는 1997년 홍콩 반환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시한폭탄 앞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 찰나의 불안을 품고 있다.

트란 감독은 서사의 단순한 전달을 넘어 빛과 색채, 질감, 침묵과 여백을 통해 정서를 조직하는 독창적인 영화 언어를 구축했다. 그는 "문학적 줄거리를 전달하는 것은 영화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카메라의 프레이밍과 이동 속도, 피사체 간의 거리감을 통해 관객이 장면의 감각을 직관적으로 호흡하게 만든다. 자연광의 흐름, 물과 땀의 반사, 식물의 녹색, 음식의 온기 등 물리적인 질감을 극대화하여 공간의 공기마저 포착해 낸다. 특히 카메라는 인물을 정면에서 집요하게 응시하기보다, 열린 창문이나 문틀, 기둥 너머에서 부드러운 트래킹 숏으로 훑고 지나간다. 이 영화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이 유려한 움직임은 기억의 아득함과 관조적 거리감을 동시에 직조한다.

영화는 10세의 무이를 응시하는 전반부와 20세의 무이를 담은 후반부가 마치 두 편의 서로 다른 작품인 듯 단절되어 있다. 전반부에는 묵묵히 노동하는 여성들과 무책임하게 가산을 탕진하는 가부장의 태만을 대비시키며 일견 사회적 긴장을 담아내는 듯하지만, 후반부로 넘어가면 이러한 사회성은 탈색되고 순수함에 내재한 생명력이라는 관념적 이상에 집중한다.

대사가 극도로 절제된 이 영화에서 전반부의 여백을 채우는 것은 풀벌레 소리, 빗소리, 파파야를 썰 때 나는 칼날의 마찰음, 기름이 튀는 소리 같은 섬세한 앰비언스 사운드다. 반면 후반부에서는 집주인 쿠엔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청각의 중심을 이룬다. 드뷔시 스타일의 인상주의 피아노 선율은 서구적 교양을 상징하는 동시에, 영화가 지닌 감각적 인상주의의 풍미를 한층 고조시킨다.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이 영화는 상당한 불편함을 남긴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51년과 1961년의 거대한 사회적 격랑—프랑스 식민 통치의 말기적 파탄과 미국의 본격적인 군사 개입—은 화면 그 어디에서도 포착되지 않는다. 분명 트란 감독은 역사의 모순을 정면으로 길어 올리는 연출가는 아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의 미학적 한계를 설정하고, 그 경계를 섣불리 넘어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한계의 안쪽에서 자기 자신의 감각적 기억에 오롯이 충실했기에, 이 영화는 특유의 서정적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