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로. 절대로. 이 영화를 보려는 사람은 어떠한 사전 정보도 가지지 말 것을 권한다. 그래야 전율을 경험할 수가 있다.
도대체 어떤 서사를 향해 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은 채, 영화의 전반부를 기꺼이 헤매야 한다. 자연과 긴밀히 결합된 마녀에 대한 재해석인가? 남자들은 기어코 다가갈 수가 없는 절대적인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인가? 이렇게 좌충우돌하면서 영화를 봐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가슴을 벅차게 울리는 죽음과 운명, 그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삶, 그 모든 것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그리고 다시 예술을 통해 정화되는 인간애의 고결함을 만날 수가 있다.
<내 형제가 가르쳐 준 노래>(2015), <로데오 카우보이>(2017)를 통해 비범한 재능을 선보인 클로이 자오 감독은 <노매드랜드>(2020)로 일약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데 <노매드랜드>로 오스카상, 골든글로브상,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휩쓴 지 1년 후에 발표된 B급 SF이며 슈퍼히어로 영화인 <이터널스>(2021)를 접하고는 클로이 자오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조차 찾아보고 싶지가 않아서 아직도 모른다. 그렇게 거장의 재능이 소진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던 차에 <햄닛>을 만났다. 이 영화에 대한 어떠한 사전정보도 없이.
3월 15일에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데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아마도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휩쓸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햄닛>이 작품상을 수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연출은 할리우드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지만 플롯을 끌고 나가는 힘이 대단하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만든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네치아)에서 모두 감독상을 휩쓴 유일무이한 감독이며 아카데미 후보에도 10번 넘게 올랐으나, 유독 오스카와는 인연이 없기로 유명하다. 그가 이번에도 오스카와 인연을 맺지 못할 가능성에 못내 마음이 쓰이나, 작품의 격만을 놓고 본다면 <햄닛>이 거둔 성취는 실로 독보적이다. 냉정하게 평하자면, <원 배틀...>의 완숙미보다는 <햄닛>이 보여주는 생경하고도 압도적인 생명력에 더 높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아울러 나는 특정한 영화배우에 대해서 팬이 되는 경우가 없다. 아마도 유일한 경우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에 자주 나오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유일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 배우로는 마리옹 꼬띠아르와 레아 세이두 정도이다. 여기에 이제 <햄닛>의 여주인공 제시 버클리를 추가해야겠다. 그녀는 이미 <로스트 도터>(2021)와 찰리 카우프만 감독의 포스트모던 시네마 <이제 그만 끝낼까 해>(2020)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특히 그녀의 저음의 목소리는 정말 매력적이다. 이번에는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글에는 영화 <햄닛>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가 전혀 없다. 영화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볼 것을 권하기 때문이다. 딱 하나만 슬쩍 공개하자면 위대한 이름 뒤에 가려졌던 한 여인의 고통과 숭고함을 복원해낸 페미니즘 영화라고 평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규성(길목 조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