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07-07 (화)
제1화. 빗속을 뚫고 대련으로, 역사의 현장을 향해
이번 여행의 첫날 아침은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박상인은 새벽부터 들려오는 폭우 소식에 공항 가는 길을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쳤고, 최필수 역시 다가올 여정에 대한 긴장감 속에 분주한 출발 전야를 보냈다. 정현정은 유럽에 다녀온 뒤 2주 동안 밀린 일들을 폭풍처럼 해치우느라 어제 고작 한 시간도 못 자고 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최경희 역시 여느 휴양지로 향하는 여행과는 사뭇 다른 결의 설렘과 한국 근대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온 묵직한 부끄러움, 그리고 북간도 땅에 새겨진 기독교의 흔적에 대한 호기심이 머릿속을 맴돌아 결국 한두 시간 남짓 선잠을 잔 채 공항에 들어섰다.
각양각색의 감정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촘촘히 엮이는 공항 특유의 공기를 마시며, 밤새 잠 못 들어 지쳐있던 몸도 이내 맑게 깨어났다.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한 이들의 발걸음은 공항버스로 이어졌다. 김기수는 버스 창밖으로 비 내리는 한강 풍경을 바라보며 공항에 도착했고, 무사히 티켓을 손에 쥐고 나서야 안도감을 느꼈다. 연명흠이 탄 버스 역시 세찬 빗속을 뚫고 공항에 안착했다. 연명흠은 내리자마자 환전한 위안화를 찾아 주머니에 넣고 나서야 일행들이 모여 있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한예은은 3시간을 자고 온 피곤한 상태였지만, 탑승구 앞에서 차분히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여유를 보였다. 하나둘 일행들이 모여들자 대인원의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연명흠과 일행들은 본격적인 이동 전 공항에서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챙겨 먹었다. 게이트 앞에 모이자 최필수 장로님이 심부름으로 구매한 면세 담배를 가방에 나누어 담는 풍경이 펼쳐졌다. 담배 위탁을 부탁받고 공용 경비까지 챙기게 된 한예은은 문득 자신이 여러모로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는 유쾌한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편, 곽상진은 평소 그토록 벼르던 백두산 여행을 교회 길목협동조합 팀과 함께하게 되어 마음이 잔뜩 들떠 있었다. 하지만 안내된 상세 일정을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에그머니나, 일정이 이렇게 빡세단 말이야?!" 새벽에 나오느라 잠도 못 잤는데 큰일 났다 싶었지만, 일정표를 볼수록 호기심에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피곤한 몸과 설레는 마음이 따로 노는 기묘한 상황에 웃음이 났다. 정현정 역시 "백두산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를 속으로 외치며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2화. 여순감옥의 붉은 벽돌, 그리고 저마다의 애국
대련 공항을 떠난 버스는 이내 첫 목적지인 여순감옥에 닿았다. 깨끗하고 넓은 대련의 첫인상을 눈에 담으며 감옥으로 향하는 길, 유혜연은 이번 여행에 기어이 애를 써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 안에서 이어진 최필수 장로의 깊이 있는 설명을 들으니, 곧 마주할 안중근, 이회영, 신채호 등 애국열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한층 더 묵직한 의미로 다가왔다.

여순감옥은 미리 들은 대로 서대문형무소와 닮아 있었다. 일행들은 앞사람의 뒤를 이어 일렬종대로 발걸음을 옮기며 감옥과 취조실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러시아와 일본의 건축 양식이 혼재된 채 이어지는 빛바랜 벽돌 건물들은 묘한 기분을 자아냈고, 감옥 외에도 병원과 처형장 등 당시의 참상이 고스란히 남은 시설들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연명흠은 김기수 장로와 나란히 걸으며 역사의 흔적들을 꼼꼼히 살피다 일행보다 살짝 뒤처지기도 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갇혀 있던 감옥, 그리고 여전히 의기가 충만하게 살아 숨 쉬는 그의 친필 글씨들을 마주했을 때 일행들은 전율을 느꼈다. 마침내 그가 처형당한 사형실 앞에 섰을 때는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할 말을 잃었다. 가슴 깊이 박힌 그 먹먹한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 분명했다. 낯선 중국 공산당원들의 전시물들 사이를 지나 여정의 마지막 즈음 당도한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선생의 기념관에서 마주한 한글은 서글프면서도 말할 수 없이 감사한 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여순감옥에서 당당하게 최후를 맞이하신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밟으며, 조상래는 문득 집에 두고 온 아들 생각을 떠올렸다. 안중근 의사를 유독 존경하는 아들이 이 자리에 함께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의 기억은 자연스레 2017년 3월 1일의 삼일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효창공원의 삼의사 묘역과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찾았던 날. 안타까움과 애국에 대해 부자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광화문 광장은 박근혜 탄핵 반대를 외치는 태극기 부대와 촛불집회, 그리고 경찰들로 물과 기름처럼 나뉘어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세월호 추모 리본이 묶인 태극기를 들고 빗속을 헤쳐가던 부자에게, 얼굴이 붉은 태극기 부대의 한 할아버지가 "어린 녀석이 애국한다"며 장하다는 듯 우산을 기꺼이 쥐여주고 웃으며 떠나셨다. 같은 태극기 아래 서로 다른 신념이 부딪치던 어지러운 현장이었지만, 그 할아버지에게도 분명 다른 결의 애국이 존재하고 있었다. 조상래는 아들에게 진정한 애국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던 그날의 기억을 여순감옥의 하늘 위에 겹쳐보았다.
묵직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난 후, 긴장이 풀린 일행들의 허기를 채워준 것은 현지의 한 만두집이었다. 상 위로 정말 엄청난 양의 만두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다들 감탄하며 맛있게 식사를 즐겼다. 다만 옆자리의 유혜연 집사는 낯선 고수 향이 섞인 현지 음식 때문에 첫날부터 조금 고생을 해야 했다. 타국에서의 첫 식사, 낯선 향과 맛 속에서 30여 명의 여정은 비로소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고 있었다.
제3화. 여순박물관의 미라, 비워냄과 채워짐의 미학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버스는 금방 여순박물관에 닿았다. 1917년 일본 관동부가 러일전쟁 승리 후 세운 이 박물관은 본래 상품박람회용 건물이었다고 한다. 최필수 교수의 설명을 들으니 조상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일본이 이곳을 일시적인 점령지가 아니라, 항구적으로 지배하고 안주할 영토로 여겼기에 이토록 제대로 된 박물관을 건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마치 대영박물관처럼 그들이 식민 지배국들로부터 빼앗은 귀한 문화재들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건물의 양식부터 특이했다. 이오니아식 기둥에 화려한 장식이 달린 유럽식 석조건물인데, 정작 입구는 중국식 사자상이 지키고 있는 동서절충의 기묘한 모습이었다. 연명흠은 평소 궁금했던 둔황의 도보자 오타니 탐험대의 유물을 볼 생각에 기대가 컸다. 그러다 본관과 별관을 헷갈리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두 곳을 모두 관람하는 유쾌한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박물관 내부에는 동북아의 찬란한 고고학 유물들이 가득했다. 청동 악기와 술독, 시대별 도자기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유혜연은 청동 물고기가 그려진 오색 도자기와 온화하게 웃고 있는 관음상의 아름다움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조상래는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인도 팔라 왕조의 부처님상과 티베트의 보살상, 대리석 나한상의 정교함에 매료되었다. 정현정 역시 잘 전시된 오래된 유물들을 바라보며, 문득 '이 물건들을 스쳐 간 옛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아득한 상상에 잠겼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전시관 말미에 자리한 남녀 미라(신강성 미라)였다. 죽어서도 썩지 않고 수천 년간 사라지지 않은 육체를 보며 일행들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육체는 과연 축복일까, 저주일까.' 정현정과 유혜연은 감옥의 형장 뒤에 마주한 이 부부 미라의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지금, 여기' 우리가 누리는 평화로운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감사해했다. 조상래에게 미라의 존재는 앞서 본 부처님들이 말한 '육신의 공함'을 일깨워 주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영원한 육신도, 욕망도 없다 오직 비어있음의 진리만 있을 뿐, 미라가 전하는 시공간을 넘어선 따뜻한 '공(空)'의 감각 속에서 그는 원효대사의 해골물을 떠올렸다. 연명흠은 촬영 금지 구역인 줄 미처 모르고 중국 관리의 미라상을 카메라에 담는 작은 실수를 하기도 했다.
무거운 사색의 시간 뒤에는 여행자만의 소소한 일상이 이어졌다. 정현정은 박물관 1층 기념품숍에서 아들의 기타에 붙여줄 전통문양 스티커를 샀다. 이번 여행을 위해 준비한 알리페이 앱을 처음으로 결제해 본 순간이었다. 카운터에서 바코드를 찍으며 그녀는 아주 오래전, 출장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무심히 향냄새 나는 연필을 선물로 꺼내놓으시던 아련한 추억을 떠올렸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 입구 곁에 자라난 오래된 아카시나무 몇 그루가 일행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수형을 다듬지 않아 제멋대로 자유롭게 뻗어 나간 거대한 아카시나무를 보며 정현정은 나지막한 깨달음을 얻었다. 인간의 통제와 간섭 없이 온전히 방치되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저 '제멋대로의 아름다움'. 어쩌면 우리 삶 역시 억지스러운 통제보다는, 스스로 자기다워질 수 있는 자유로운 방치의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여순의 맑은 바람을 맞으며, 일행들은 두터운 역사와 개인의 기억을 가방에 채운 채 다음 여정으로 향했다.
제4화. 불 켜진 압록강변, 그리고 첫날밤의 맥주 시음회
오랜 시간 길을 달려 도착한 저녁 식사 자리는 한식과 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식탁이었다. 조상래는 중국 술을 곁들인 다양한 안주와 요리로 일행들과 흥겨운 저녁 만찬을 즐겼고, 익숙한 깻잎쌈을 마주한 일행들도 타국에서의 긴장을 풀고 반갑게 숟가락을 들었다.
식사 후 짐을 푼 숙소는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창밖으로 압록강단교와 중조친선교, 두 다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조상래는 빗물에 젖은 창문 너머로 빨간 조명이 화려하게 물든 압록강단교를 바라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호텔 방마다 비치된 망원경으로 초점을 맞추어 강 건너를 바라보던 정현정은 깜짝 놀랐다. 평소 전기가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많은 북녘 건물의 창가에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화려함 이면에는 묘한 이질감이 흐르고 있었다.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일 만큼 붉게 빛나는 북한 건물의 '일심단결' 네온사인은 닫힌 공화국이 보내는 저항의 몸짓 같아 낭만적이라기보단 묵직하게 다가왔다.
여장을 푼 일행들은 비를 맞으며 압록강변 우중 산책에 나섰다. 조상래는 아내와 함께 우비를 챙겨 입고 나와 일행들과 삼삼오오 단교 근처를 거닐며 기념사진을 남겼고, 유혜연과 정현정 역시 빗속의 압록강 둔치를 걸으며 '강만 건너면 바로 그들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산책길에 들른 현지 마켓에는 다양한 북한 제품과 술들이 신기할 정도로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압록강의 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웠던 이들은 상점에서 대동강, 평양, 룡성 맥주와 류경소주 등 북한 산 술들을 종류별로 사 들고 최필수의 방인 902호로 모여들었다. 흥미진진한 북한 맥주 시음회가 열린 것이다. 유혜연은 아쉽게도 타이밍이 맞지 않아 문이 닫힌 방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902호에 모인 이들의 품평회는 아주 뜨거웠다.
평소 맥주를 좋아하는 정미경은 세 가지 맥주를 딱 한 모금씩 맛보며 고유의 맛을 음미했다. 그녀의 미각을 통해 분석된 맥주들은 저마다 독특한 빛깔의 맛을 품고 있었다. 가장 호평을 받은 것은 대동강 맥주였다. 살짝 달짝지근하면서도 한국에서 먹던 익숙하고 시원한 맛이 나, 정미경에게는 '하늘색과 파란색'의 청량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반면 룡성 맥주는 마치 맥주에 다른 종류의 술을 섞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밋밋하여 '수채화 종이 바닥에 번진 갈색과 연주황색'을 떠올리게 했다. 가장 강렬했던 것은 평양 맥주였다. 첫맛에 쇳내가 확 풍겨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마시다 보니 그 쇳내마저 조금씩 익숙해지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정미경은 평양 맥주에서 '희끄무레한 회색과 언뜻 보이는 하얀 구름'의 이미지를 읽어냈다.
일행들이 십시일반 협찬한 룡성(25위안), 대동강(20위안), 평양맥주(15위안), 류경소주(60위안)를 나누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낯선 타국 땅, 하지만 강 너머로 동포들의 숨결이 닿을 듯 가까운 압록강가에서 30여 명의 여행자들은 그렇게 연대의 술잔을 기울이며 뜻깊은 첫날밤을 채워가고 있었다.
2026-07-08(수)
제5화. 끊어진 다리 위, 두 갈래의 노래와 서글픈 촉감
숙소 체크아웃을 마치고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압록강단교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길가에는 역시 중국답게 이른바 '배키니(런닝셔츠를 위로 걷어 올려 배를 내놓은 차림)'를 한 현지 남성들이 보여 최경희의 입가에 유쾌한 웃음이 먼저 번졌다. 정현정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소리 내어 '성 패트릭의 아침기도'를 바치고, 20분간 향심기도를 올리며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일행은 본격적으로 압록강단교 관광에 나섰다. 이곳은 한국전쟁을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돕는다'는 뜻의 항미원조(抗美援朝)라 부르는 중국인들의 애국심 고취 장소였다. 연명흠은 입에 착 달라붙는 이 네 글자를 곱씹으며, 남한이 북한을 의식할 때 중국은 체격이 비슷한 미국을 의식해 왔다는 점을 상기했다. '이 대립 구도는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역사는 늘 요동치며 흐른다는 사실이 새삼 와닿았다. 입구에는 마오쩌둥 아들의 보좌를 받으며 진군하는 팽덕회 장군과 중공군 부하들의 영웅적인 청동상이 대형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단교 위는 수많은 관광객의 각기 다른 언어와 감정으로 북적였다. 자신들의 '라떼는'을 추억하며 군가 같은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는 중국인들의 우렁찬 발걸음 사이로, 우리 일행 쪽에서는 전혀 다른 결의 잔잔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흘러나온 노랫말은 김원중의 '직녀에게'였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 서글픈 가락은 끊어진 다리 건너 손닿을 곳에 있는 동포들을 향한 그리움과 희망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최경희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섞여 끊긴 다리 위를 걷는 이 묘한 풍경 속에서, '어쩌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이 상황이 서로의 정신건강과 평화 유지를 위해 다행일지 모른다'는 엉뚱하고도 현실적인 생각을 슬쩍 해보기도 했다.
다리 중간에는 과거 이 다리가 회전식 도개교였음을 증명하는 기계 장치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조상래는 역사의 진실을 헤아려보며 눈앞의 풍경을 응시했다. 당시 미군은 중국과의 전면전을 피하고자 북한쪽 구간 상판만 B-29 정밀 폭격으로 끊어놓았고, 그 결과 지금의 단교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그 모진 폭격 속에서 바로 옆의 '조중우의교'는 건재해 있었는데, 낮에 미군이 파괴하면 밤새 수천 명의 중공군이 달라붙어 기어코 복구해낸 결과였다는 이야기가 다리를 한층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단동의 옛 이름이 '안동'이었다는 사실은 거리 간판 곳곳에 적힌 흔적들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리 끝에 서자 북녘땅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펼쳐졌다. 유혜연은 겨우 한 걸음이면 닿을 거리를 두고도 갈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졌고, 과거 철책 전방에서 근무했던 한 일행은 이렇게 가까이서 북한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큰 감동이면서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는 신세가 한스럽게 다가왔다. 망원경으로 보았던 주황색 원형 건물은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했다는데, 연명흠의 눈에는 엄숙한 역사적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테마파크 건물처럼 보여 언밸런스한 느낌을 주었다.
단교 위에서 바라본 북한의 풍경은 기이할 정도로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정현정은 강 건너 정리가 안 된 (혹은 못한) 북한의 자연 그대로의 강변을 보며 장마철 물 넘침을 걱정하다가, 이내 깔끔하게 정돈된 중국 쪽 강변과 대비됨을 느꼈다.

단교 관람을 마치고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정현정은 중국 마을의 풍경을 유심히 관찰했다. 주택살이를 하기에 건축과 자재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지붕과 담벼락을 눈여겨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집 앞에 화분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오래전 그녀의 집일을 도와주던 중국인 이모님이 한국 주택가 화분에 심긴 상추와 고추를 보며 "땅이 좁으니 이 조그만 그릇 속 흙도 땅이라고 기어이 심어 키우냐"며 코웃음 치던 기억이 스쳤다. 넓은 텃밭과 화단을 갖춘 이들에게는 화분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문득 그녀는 맨 처음 흙을 작은 그릇에 담아 무언가를 길러보겠다고 생각한 이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그는 아마 텃밭 하나 가지지 못한 자였을지 모르지만, 작은 그릇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스스로 행복을 만들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었으리라.
한국전쟁의 참혹한 흔적, 그리고 그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의 저마다 다른 애국심과 그리움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압록강 단교 위에서, 우리들의 날실과 씨실은 또 한 겹 단단하게 엮이고 있었다.
제6화. 압록강에 씻어낸 무지, 그리고 경계 너머의 몸짓
접경이다. 넘어갈 수 없는 땅이기에 그저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설렌다. 경계 너머에 펼쳐진 산천이야 새로울 것이 없건만, 저 선 너머에 우리와 닮은 또 다른 인생들이 살아가고 있기에 일행들의 눈길은 자꾸만 강 건너로 향했다.
수풍댐으로 가기 위해 하구섬 선착장에 당도했을 때, 여행길 곳곳에서 빛나는 도반들의 최고의 장점인 '섬김'이 유독 눈에 띄었다. 선착장 주변 노점에는 제철 과일의 달콤한 향기가 가득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납작복숭아와 저렴한 블루베리를 본 몇몇 이들이 지갑을 열었다. 최경희는 농약 걱정을 하는 이들을 배려해 그 귀한 과일을 흐르는 물에 정성스레 씻어와 유람선 앞뒤를 바쁘게 오가며 부지런히 나눠주던 도반들의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여행의 피로로 입맛이 까칠해진 이들에게 건네진 과일 한 조각. 그것은 십자가 곁을 끝까지 지키다 향품을 들고 예수의 빈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의 지극한 정성과 닮아 있었다. 정미경 역시 이 달콤한 납작복숭아를 이웃과 반쪽씩 나눠 먹으며 약 40명 정도가 타면 만석이 될 법한 작은 탐방선에 올랐다.
배가 나아가자 좌우로 중국과 북한의 풍경이 교차했다. 유혜연은 끝없이 이어진 북녘땅의 철조망을 바라보며 분단이라는 차가운 현실을 온몸으로 감각했다. 황톳빛 압록강 물 위로는 빗물에 쓸려 내려온 스티로폼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녔고, 배 안 역방향 좌석에는 아무 생각 없는 눈빛으로 담배를 파는 한 노인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저 노인은 이 배 위에서 몇 번이나 오가며 몇 갑의 담배를 팔아 생계를 이어갈지, 정미경은 삶의 쓸쓸한 이면을 조용히 응시했다.
일행의 온 신경은 강 건너 북한 땅으로 쏠렸다. 나무 하나 없이 헐벗은 민둥산에 억척스럽게 일군 밭떼기, 낡은 건물 군데군데 걸린 인공기와 붉은 구호들이 눈에 들어왔다. 움직이는 사람이라도 발견하면 일행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사람이 보인다!" 하고 외쳤다. 오가지 않는 철교 위에는 무심한 비둘기떼만 앉아 있었고, 공장 굴뚝이 솟은 건물들은 인적이 없어 적막하기만 했다.
그 적막을 깨트린 것은 예기치 못한 짧은 소통이었다. 강변 초소에 서 있는 북한 군인들을 향해 누군가 손을 흔들자, 배 안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초소의 군인들이 우리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어 화답해 준 것이다. 유혜연은 그 소박한 답례에 마음이 일순간 환해졌고, 정미경은 '여기서나 저기서나 누구의 아들로, 누구의 아버지로 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서 있는' 그 젊은 군인의 나이를 가만히 헤아려보았다.
조상래는 아내와 함께 그 풍경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이념과 정치가 다를지언정 사람 간의 소통은 이토록 단순한 것이었다. 따뜻한 마음으로 예를 다하면 상대도 그에 응하는 법. 복잡한 말 대신 어린아이 같은 밝은 웃음과 반가운 몸짓 하나만으로도 가슴에 압록강 같은 따뜻함이 흘러넘쳤다. 문득 그는 탐욕에 기인한 교묘한 말들이 범람하는 세상 속에서, 이해득실을 따지고 의도를 파악하느라 불필요한 걱정만 되뇌는 스스로의 뇌를 돌아보았다. "치매에 걸리더라도 이런 무지한 뇌만 파괴되면 좋겠다. 기억 따윈 없어도 따뜻한 웃음과 몸짓만으로 매 순간을 느끼며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그는 한 순간 압록강 뱃바람 속에 자신의 무지한 뇌를 꺼내 깨끗하게 씻어내며, 맑고 따뜻한 우주의 기운을 느꼈다.
배는 어느덧 종착지인 수풍댐 근처에 다다랐다.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수풍댐은 만약 문이 열려 물이 쏟아지면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배가 다시 나루터에 접안했을 때, 신기하게도 하류의 황톳물과 달리 그곳의 물살은 잔잔하고 투명하리만치 맑았다. 하선한 일행들은 시원한 압록강 물에 손을 담그고 발을 씻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정미경은 강가에서 뒹굴던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강아지풀 한 줄기를 꺾어 안경집에 소중히 담았다. 먼 훗날 오늘이 과거가 되었을 때, 집 어딘가에서 문득 발견하게 될 압록강의 기억을 박제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향한 작은 배려를 아끼지 않는 도반들, 주님을 대접하느라 분주한 이들과 뜬금없는 유머로 긴장을 풀어주는 이들이 함께하기에 우리의 섬김은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압록강 물에 손과 마음, 그리고 무지한 뇌까지 깨끗이 씻어낸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경계 없는 더 깊은 역사 속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구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오녀산성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제7화. 999계단 위에 세운 고구려의 첫 비전, 오녀산성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수풍댐에서의 출발이 지체되어 과감히 점심 식사를 건너뛰고, 고구려의 첫 심장이 고동쳤던 환인의 졸본성(오녀산성)으로 향했다. 버스에 몸을 실은 일행의 손에는 점심 대용으로 급히 준비된 삶은 옥수수 한 자루씩이 쥐어졌다. 덜 여물어 서걱거리는 옥수수는 솔직히 먹을 것이 별로 없었지만, 3시라는 입장 마감 시각에 대기 위해 다들 군말 없이 먹는둥마는둥 허기를 달랬다. 빨강, 노랑, 파랑 삼색 중앙선이 선명한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는 버스 창밖으로, 마침내 거대한 원탁 혹은 책상처럼 평평하게 솟아오른 바위 분지가 위용을 드러냈다. 삼족오 문양이 선명한 입구에 다다르자, 일행 앞에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뻗은 999개의 가파른 돌계단이 나타났다.
비에 젖어 검게 빛나는 돌계단은 단 한 번의 굽이도 없이 하늘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정미경은 숨을 고르며 자신이 사는 아파트 계단 숫자를 대입해 가파른 높이를 짐작해 보았고, 굵은 잎맥 곁으로 뻗은 잔잎맥처럼 사방으로 난 좁고 위험천만한 계단 길을 보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조상래에게 그 계단은 마치 은하철도 999가 우주를 향해 내딛는 레일처럼 아득하게 다가왔다. 설미진은 이번 여행을 오기 전 AI에게 오녀산성을 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고구려의 산성"이라는 건조한 대답에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그곳을, 그녀는 아들 이설현과 함께 강남향린교회 수건을 목에 두르고 씩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오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숫자를 거꾸로 지워가며, 혹은 거친 숨을 고르며 서로를 이끌고 도중에 간간이 쉬기를 반복한 끝에 마침내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정상에 다다랐다. 숨을 고른 평지 쉼터 위에서 일행은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분지의 산등성이를 돌며 본격적인 탐방에 나섰다.

조상래는 졸본성의 유적지를 돌아보며 이곳을 고구려라는 '벤처 스타트업'의 창업 공간으로 해석했다. 주몽의 나라 세우기는 거대한 대기업이 아닌,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스타트업이었다. 10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죽음의 계곡'을 건너기 위해 주몽이 선택한 전략이 바로 이 천혜의 요새였다. 젊은 시절 소설 삼국지의 거대한 스케일에 길들여져 드라마 <주몽> 속 소박한 병졸 수가 아쉬웠다던 조상래는, 직접 마주한 작은 왕궁터와 병사들의 온돌 공간, 식수 확보를 위한 천지를 보며 비로소 꿈과 생존이 교차했던 당시의 현실적인 스케일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최필수의 역사적 상상력은 주몽이라는 영웅의 실존을 넘어 그 계보의 틈새를 파고 들었다. '주몽은 정말 유리왕의 친아버지였을까.' 18세에 탈부여를 감행하고 요새를 세운 뒤 홀연히 떠난 영웅 주몽과 달리, 집안에 국내성을 건설하고 안정적인 왕조의 기틀을 닦은 것은 유리왕이었다. 어쩌면 부러진 칼을 맞춰 아버지를 확인했다는 진부한 설화는 역설적으로 두 사람의 혈연관계가 확실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반증일지 모른다. 즉, 주몽이 유리를 낳은 것이 아니라 유리왕이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위해 '주몽이라는 영웅'을 낳아 부친으로 끌어 올렸을지도 모른다는 최필수의 대담한 사색이 졸본성의 바람 속에 흩날렸다.
일행은 생각보다 조금 소박하고 못생긴 주몽 동상을 지나고 서낭당을 닮은 아늑한 길을 거쳐, 마침내 사방이 훤히 트인 전망대에 당도했다. 유혜연은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풍경을 마주한 순간 999개의 계단을 오르며 흘린 모든 땀방울과 수고가 단숨에 씻겨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발아래에는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품은 압록강 물줄기가 환인 댐에 갇혀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마치 두 팔을 안으로 둥글게 감싸 안은 듯한 산세가 아늑한 마을 터를 품고 있었고, 물 위에 야트막하게 솟은 섬들은 거대한 바다를 항해하는 군함처럼 보였다.
시원하고 자유로운 바람이 불어와 구름을 실어 날랐다. 정미경은 산 위에서 마치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올라탄 듯한 짜릿한 해방감을 만끽했다. 배는 고팠지만, 눈은 말할 수 없는 호강을 누리고 있었다. 설미진과 아들 이설현은 자연이 통째로 선물해 준 이 거대한 풍경화 한 폭을 마음속에 깊이 담으며, 내일 아침 종아리가 땡길 것 같은 걱정쯤은 이 멋진 선물과 기꺼이 맞바꾸기로 했다.
올라갈 때의 긴장감과 달리, 하산 길은 풍경을 만끽하느라 걷는 속도에 맞추어 여러 팀으로 자연스럽게 흩어져 내려왔다. 거친 산길을 무사히 잘 오르내려 준 다리가 대견하고 장했다. 입구 주차장에 모여 다시 한번 깎아지른 산 정상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던 도반들은, 고구려의 뜨거운 비전과 바람을 가슴에 가득 채운 채 다음 여정을 향해 하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녀산성에서 999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은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기분 좋은 피로감을 안고 버스에 올랐다. 창밖 풍경을 보며 달콤한 숙면을 취하는 사이, 버스는 마침내 고구려 제2의 수도이자 웅장한 국내성벽이 살아 숨 쉬는 땅, 집안(集安)에 도착했다.
제8화. 불고기와 밤바람, 그리고 정(情)으로 채운 집안의 밤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시장기가 극에 달한 일행은 빛의 속도로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메뉴는 모두가 간절히 기다렸던 한국식 불고기였다. 식탁 위에는 김치와 콩나물무침, 싱싱한 쌈 채소까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아는 맛'이 그대로 차려져 있었다. 중국 음식 특유의 낯선 향 때문에 남몰래 속앓이를 하던 설미진은 반짝이는 눈으로 불고기를 마주했다. 10년 전 베이징과 상하이를 여행할 때는 무엇이든 잘 먹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중국 음식이 변한 게 아니라 내 몸과 나이가 변한 것이구나'를 담담히 받아들이던 참에 만난 구원의 밥상이었다.
연명흠은 한문덕, 한선규, 정승우, 김선정, 김기수와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본격적인 포식을 시작했다. 조상래 역시 빛의 속도로 두 종류의 불고기를 구워내며 일행들의 접시를 채웠다. 여기에 박상인 선생이 팀 전체를 위해 시원한 칭따오 맥주를 기꺼이 협찬하면서 식탁의 흥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일행들은 잔을 높이 들고 "마지막까지 안전한 여행을 위하여!"를 외치며 점심을 옥수수 한 자루로 때운 설움과 갈증을 단숨에 날려 보냈다. 한편으로는 고량주처럼 독하고 화끈한 술이 곁들여졌으면 좋겠다는 애주가들의 유쾌한 아쉬움도 양념처럼 버무려졌다.
기분 좋게 포식을 마친 일행은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번지는 집안시의 압록강변으로 밤 산책을 나섰다. 낮에 보았던 강폭보다 훨씬 좁아진 물줄기를 보며 누군가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헤엄쳐 건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어둠이 짙게 깔린 강 맞은편은 불과 몇십 미터 거리로 손이 닿을 듯 가까웠지만, 불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는 완벽한 암흑의 공간이었다.
그 적막한 풍경을 바라보며 도반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레 "헤엄쳐서 저 땅 밟고 오기 내기 할까?", "이렇게 가까운데 갈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같은 애틋한 대화들이 오갔다. 최경희는 북녘에 가족이 있는 것도, 땅 한 평이 있는 것도 아닌 우리가 왜 이토록 저 땅에 가지 못해 안달인지 틈날 때마다 마음속 질문을 던졌다. 그때 박상인이 던진 대답은 명쾌하면서도 서글펐다. "중국 사람도 가고, 미국 사람도 가고, 심지어 일본 사람도 갈 수 있는데, 정작 같은 민족인 우리만 못 가니까 그러는 거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깨달음 뒤로, 언젠가 낮에 강 건너 초소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아들뻘의 북한 군인을 아무런 제약 없이 만나 안아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최경희는 마음 깊이 염원했다.
산책을 마친 일행의 발걸음은 붉은 등이 층층이 켜진 채 맛있는 구이 냄새를 풍기는 집안의 야시장으로 향했다. 배는 이미 가득 찬 상태였지만 현지의 낭만을 흘려보낼 수는 없었기에, 테이블을 길게 붙여 앉아 일종의 문화 체험을 시작했다. 새 교우인 조상래가 쏜 도수 3%짜리 연경(Yanjing) 맥주와 숯불향 가득한 양꼬치, 오징어꼬치가 테이블 위로 오르자 밤은 더욱 성령 충만하게 익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알코올 도수와 못다 한 이야기가 아쉬웠던 이들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술가게에 들러 북한산 막걸리 한 통을 샀다. 김기수와 연명흠의 호텔 방 침대 옆 바닥으로 8명의 정겨운 도반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잔에 따른 막걸리는 달고 걸쭉해서 마치 한국의 '쿨피스'를 마시는 듯해 방 안에는 유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때 조상래가 마음을 담아 멋진 건배사를 제안했다.
"이게 뭣이여? 술이여 정이여?"
"정이여!"
모두가 한목소리로 화답하며 잔을 비워냈다. 그 늦은 밤, 작은 호텔 방 바닥에 앉아 도반들이 마신 것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끈끈하게 차오르는 '정(情)'이었다. 또 다른 방에서는 시장에서 사 온 달콤한 자두와 청포도, 납작복숭아를 나누며 교회의 다정한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함께이기에 기쁨도 행복도 배가 되던 집안에서의 두 번째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다음 날 아침 6시, 벌써부터 일행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활기찬 아침 장터를 기다리며,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정 가득한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2026-07-09(목)
제9화. 새벽 시장의 활기, 그리고 왕들의 묘역을 걷다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집안(集安)에서 맞이한 세 번째 아침을 특별하게 시작했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이자 국내성 석축이 여전히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땅 위에서, 새벽부터 활기찬 장마당이 열렸기 때문이다.
새벽 6시, 호텔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장마당은 생동감 그 자체였다. 신선한 농산물, 특히 제철 과일이 좌판마다 가득했고, 축산물도 보였다. 이른 아침을 해결하려는 사람들로 시장은 북적였다. 유혜연은 새벽에 눈이 번쩍 떠져 서둘러 채비하고, 기대에 부풀어 호텔에서 만난 정현정, 조상래 부부, 신동준 집사와 함께 힘차게 장마당으로 향했다. 조상래와 그의 아내는 알람 소리에 부산하게 준비하여 6시 5분 전에 방을 나섰다. 호텔 로비를 나서자마자 시장으로 이어졌고, 길 바로 앞에는 국내성벽이 길게 뻗어 있었다.
유혜연은 어딜 다니든 사람 구경, 시장 구경, 시식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두 손 가득 체리와 블루베리를 사가지고 들어와 깨끗이 씻어 도반들과 나눠 먹었다. 조상래 부부 역시 오늘 일행과 나눠 먹을 블루베리, 납작복숭아, 오디를 "앗싸 가오리"를 외치며 손 크게, 그리고 싼 가격에 기쁘게 살 수 있었다. 이상재, 유혜연 내외는 버스에서 체리를 나눠주기도 했다. 나눔은 즉각 호텔 조식 식당으로 이어졌다. 어제 점심을 건너뛴 경험 때문인지 일행들은 아침 식사를 풍성하게 즐겼다. 정현정은 유혜연이 가르쳐준 대로 비닐봉지를 대야 삼아 과일을 씻었다. 그녀는 남의 나라 호텔 세면대에서 남편과 나란히 서서 과일을 씻는 작은 순간이 소중하다고 느꼈다.
연명흠은 아침 시장에 갔다가 신동준 내외를 만나 만두를 얻어먹고, 훈뚠도 한 그릇 먹었다. 아침 시장 한편에서는 떡메를 치고 있었고, 과일이며 막걸리며 여러 가지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오전에는 환도산성과 고분군을 둘러보는 일정이 이어졌다. 환도산성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끔이 최필수 교수는 '고구려의 역사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동북공정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었다. 환도산성은 야트막한 구릉 지대였다. 조상래는 거대한 규모의 야외 고릉 박물관을 둘러보며 고구려 성장기의 단면을 눈앞에 그렸다. 고구려 건국 당시의 졸본성 시대(BC 37~AD 3년) 40년을 마치고, 2대 국왕 유리왕이 본격적인 성장기를 준비하며 국내성으로 천도를 단행했다. 여전히 미생이었기에 성장과 생존을 동시에 도모해야 했고, 국내성과 환도산성을 쌍으로 한 계획이 바로 이해되었다. 일행은 잉어퇴병의 전설이 담긴 연못을 지나 옛 궁궐터를 둘러보고, 갖가지 양식의 여러 고분 지대를 지나다녔다.
이어 장수왕릉을 보았다. 장수왕이 잠든 이곳은 A가 5개인 최상급 국가사적지라고 한다. 간판을 본 연명흠은 장수돌침대의 '별이 다섯 개'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장군총이라고도 불리는 장수왕릉은 피라미드 형식의 무덤이었다. 유혜연은 아들 장수왕의 효심과 고구려인의 기상, 거대한 규모에 웅장함을 느끼며 뿌듯해했다. 장수왕릉 주변에는 거대한 호석이 무심한 듯 기대어 세워져 있었다. 기단은 정성들여 깎아놓았는데 호석은 자연석 그대로여서 언밸런스해 보였다.
이어서 광개토대왕 비석과 무덤에도 가보았다. 여기 표현으로는 호태왕이라고 한다.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영웅들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일행은 탁본한 비석문을 보고 최필수 교수와 한문덕 목사의 설명을 들었다. 광개토대왕릉은 기대보다는 별로였다. 허물어진 곳도 많고 의도적이지 않은 배치로 보였다. 근래에는 광개토대왕릉이 실제로는 장수왕릉이고, 장수왕릉은 평양에 있다는 학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사실 정현정은 거대 서사에 관심이 없어서 우리 집 마당에서 광개토대왕비가 나온다 해도 귀찮아서 도로 파묻었을 것 같다. 그녀는 오히려 이름을 남기지 못한 자들을 생각했다. 999개의 돌계단 없이 이 험한 산을 올랐을 자들, 거대한 돌무덤에 아들을 묻은 자들, 멀고 긴 길 위에서 돌들을 나르느라 겨울을 나고 여름을 견딘 자들, 돌칼을 만들느라 온 인생을 보낸 자들을…

이어서 간 곳은 집안박물관이었다. 크지 않은 박물관이었지만, 고구려와 관련된 유물이 있었고, 멋지게 조성된 광개토대왕상도 볼 수 있었다. 설미진 일행은 박물관 등에서 고구려 유물들을 보며, 중국 여행 3일째인 오늘 드디어 잘생긴 남자를 발견했다고 평했다. 바로 "광개토대왕"이었다. 너무 잘생겨서 광개토대왕 관련 영상을 제작한다면 누가 좋을까 이야기하다 '소지섭'으로 캐스팅을 마무리 지었다. 여행길에 나눈 소소한 대화가 즐거웠고, 강남향린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피우고 가꿔온 정이 함께하기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점심은 칡냉면이었다. 장소를 잘못 찾아서 아파트 단지 내부를 한 바퀴 돌았다. 시원한 냉면에 김치, 순대를 먹고, 백두산을 향해 가는 버스에 올랐다.
지금 이도백하로 향하는 버스 우측 창문 너머 멀리 구름 속 백두산이 (마음의 눈으로) 보인다. 주변의 용암대지 벌판이 빽빽한 숲을 이루고 곳곳에 자작나무 군락을 마주한다. 대자연이 주는 경외감에 대한 기대감과 뭔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느낌만으로도 심장이 고동치기에 충분했다. 내일 꼭 천지를 영접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제10화. 백두산 기슭의 서늘함, 그리고 훠궈 향에 피어난 이야기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도반들은 창밖으로 펼쳐진 크고 깊은 밀림 같은 숲을 유심히 관찰했다. 인위적인 조경 대신 자생력 좋은 아카시나무와 미루나무, 양버들이 제멋대로 무질서하게 얽혀 자란 숲이었다. 간혹 리기다소나무 군락지가 보이긴 했어도 익숙한 한국 소나무는 찾기 어려웠지만, 대신 북쪽 땅에서만 볼 수 있는 날씬하고 하얀 자작나무 군락이 빽빽하게 마주해 올 때마다 백두산 기슭에 닿았다는 실감에 모두의 심장이 기분 좋게 고동쳤다.
중국 도시 이름치고는 생소하게 길고 예쁜 '이도백하'에 늦지 않게 도착한 일행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매일 밤 12시쯤 잠들어 새벽 4~5시에 일어나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유혜연을 비롯한 도반들은 저마다의 설렘으로 지친 기색 없이 든든하게 여정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숙소 근처의 훠궈 식당이었다. 식탁 위에 차려진 압도적인 차림새를 본 일행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입이 쩍 벌어졌다. 커다란 그릇에 고기와 야채가 산더미처럼 쌓여 나왔고, 개인용 인덕션 냄비가 하나씩 놓여 취향껏 샤브샤브를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만찬이었다.
한문덕, 정승우, 최필수, 피경원, 한예은 등이 둘러앉은 테이블에서는 독하고 향긋한 분주(汾酒)가 한바탕 돌며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상재, 조상래, 이미혜 등이 앉은 테이블은 풍성함을 더하기 위해 요리를 추가로 주문했는데, 감사하게도 조상래가 추가 비용을 흔쾌히 모두 지불하여 훈훈함을 더했다.
한편, 설미진, 이설현, 정미경, 최경희, 배미원, 유혜연, 서형식, 신동준, 윤영순, 한정훈, 오안근 등 무려 11명이 왁자지껄하게 모여 앉은 대형 테이블에서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어디서든 두 손 가득 베푸는 달란트를 가진 유혜연이 식사 후 먹을 간식거리까지 바리바리 싸 와 상 위에 풍성하게 펼쳐놓은 덕에 만찬은 더욱 풍요로웠다. 설미진은 타인을 향해 늘 아낌없이 퍼주는 유혜연의 넉넉한 마음을 보며 깊은 귀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 평화롭고 맛있는 식사 시간 도중, 설미진에게 예기치 못한 유쾌한 시련(?)이 찾아왔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서형식이 툭 던지듯 "『십자가의 역사학』을 읽고 느낀 내용을 함께 공유해 달라"고 요청해 온 것이다. 졸지에 '서크라테스'와 겸상을 하게 된 상황에 설미진은 속으로 "이런,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는 게 아니었는데!" 하며 유쾌한 탄식을 뱉었다. 당장 내일부터 시작될 깊이 있는 역사 나눔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지만, 공협선부장 설미진은 '내일 일은 내일이 걱정하게 내버려 두라'는 성경 말씀을 방패 삼아 밀려오는 걱정을 털어내기로 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돌아온 호텔 거리에는 우리 팀 외에도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의 모습이 보였다. 간판마다 한국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풍경은, 북파를 통해 백두산을 영접하려는 이들의 뜨거운 열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방으로 돌아온 도반들은 내일의 거대한 여정을 위해 서둘러 휴식을 준비했다. 다음 날은 새벽 6시 10분부터 조식을 먹고 7시에 곧장 출발하는 초강행군이 예고되어 있었기에, 평소 같은 식후 모임도 과감히 생략한 채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들 기분 좋은 피로 속에 깊은 잠 청하러 간 늦은 밤, 연명흠은 오늘까지의 감동을 기록하고 여행기에 들어갈 지도와 사진들을 정리하느라 밤늦게까지 노트북을 펼치고 있었다. 혹여 디스플레이 불빛 때문에 옆 침대의 김기수가 숙면을 취하지 못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자판을 두드렸다. 창밖으로는 이도백하의 서늘하고 맑은 밤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내일 과연 우리는 그토록 염원하던 천지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까.' 날씨에 대한 간절한 걱정과 기대를 품은 채, 서른세 명 도반들의 백두산 전야가 깊어 가고 있었다.
2026-07-10(금)
제11화. 천지분간 없는 백두산의 심술, 그리고 정미경이 발견한 '4단의 백두산'
오래전부터 백두산 천지를 영접하길 고대했던 김기수를 비롯한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맑은 천지를 보려면 서둘러야 했기에 아침 6시에 든든히 식사를 마치고 7시 정각에 호텔 체크아웃까지 완료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 뒤편으로 웅장하게 솟은 공장 굴뚝을 뒤로한 채, 일행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북파 코스의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백두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거대한 산인 만큼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마지막엔 다시 소형 봉고차로 갈아타야 하는 대장정이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박상인의 지질학 특강이 펼쳐졌다. 흔히 백두산 분화로 인해 발해가 멸망했다고 알려진 대중적 상식이 사실이 아님을 지질학과 역사학의 근거로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그를 보며, 연명흠은 "우리 일행에는 참 박식한 분이 많다"며 감탄했다.
중국 측의 철저한 통제 속에 QR 입장권을 두 번이나 찍고, 비행기 탑승 수속을 밟듯 좌우로 굽이치는 삼엄한 검문 과정을 거쳐 드디어 해발 2,665m의 정상으로 향하는 8인승 소형 버스에 올랐다. 가드레일 곳곳이 파손되어 있을 만큼 험난하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기사들은 시속 30~40km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아침에 내리던 비가 차츰 개어가자 도반들의 마음은 "드디어 천지를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 부풀어 올랐다.

주변 사람들은 흔히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본다", "날씨 요정이 도와야 한다"라며 겁을 주곤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정미경은 천지를 보는 일을 대단한 행운처럼 여기며 미리 기대치를 낮추기로 했다. 보면 행운이고, 못 보아도 결코 불운이 아니라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 백두산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정상의 천지가 아니라, 산을 웅장하게 채우고 있는 나무들과 수줍은 야생화들이었다. 정미경의 시선 속에서 백두산은 거대한 '4단의 산'으로 차근차근 그 속살을 드러냈다.
- 1단: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원시림의 신비로움을 뿜어내는 울창한 깊은 산 속.
- 2단: 조금 더 오르니, 중간 키의 나무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의지하며 고즈넉한 초가집 담장처럼 다정하게 산을 감싸 안은 풍경.
- 3단: 수많은 야생화가 점점이 수놓인 들판이 드넓게 펼쳐지고, 간혹 허리춤까지 오는 줄기 가는 나무가 외로운 파수꾼처럼 서 있는 풍경.
- 4단: 마침내 바위가 거친 땅을 이루고, 아주 가끔 돌 틈 사이로 강인한 풀이 고개를 내미는 척박한 꼭대기. 바로 천지가 숨어 있는 곳이었다.
안개 속의 사투, "저기가 천지겠지"
정미경이 감탄한 4단의 풍경을 지나 마침내 당도한 정상. 그러나 백두산 산신령의 심술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거짓말처럼 뿌연 안개가 순식간에 사방을 집어삼켰다. 마침내 차에서 내렸을 때는 겨우 20미터 앞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짙은 곰탕 안개 정국이었다.
여기에 살을 에어내는 듯한 강한 비바람까지 휘몰아쳐 체감온도가 순식간에 20도 이상 뚝 떨어졌다. 얇은 우비 한 장에 의지한 채 몸을 달달 떨고 있던 유혜연 부부에게 한 도반이 천사처럼 나타나 파란색 롱패딩을 선뜻 빌려주었고, 또 다른 천사는 이상재에게 자신의 점퍼를 벗어 입혀주었다. 유혜연은 이 혹독한 악천후 속에서 "생명의 은인 같은 교우들과 함께여서 참 든든하다"며 차가운 비바람 속에서도 뜨거운 동역자 애를 느꼈다.
매서운 한기 속에서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짙은 안개로 인해 바로 앞사람의 실루엣만 간신히 보며 엉금엉금 A코스와 B코스를 따라 올라갔다. 김기수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한국말과 중국말의 와글거리는 소리 덕분에 '길은 잃지 않겠구나' 안도하며, 오른쪽의 거대한 흰 벽을 향해 "저기가 천지겠지" 하고 마음의 눈으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심술궂은 구름은 끝내 천지의 얼굴을 허락하지 않았고, 도반들은 아쉬움을 가득 안고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비록 안개와 바람 탓에 천지분간은 할 수 없었지만, 정미경은 해발 2,000미터가 넘는 이 척박한 고지대 돌 틈바구니에서 기어이 피어난 야생의 풀꽃들을 바라보았다. 비록 지나가는 차창 너머로 아스라히 스쳐 간 꽃이었을지라도, 모진 비바람을 견뎌낸 그 생명력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까웠다.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그 자그맣고 강인한 풀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정하게 불러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졸본성의 바람처럼 일행들의 가슴을 채웠다.
청명하게 쏟아지는 장백폭포의 위로
천지분간 안 되던 정상을 내려오자, 아쉬워하는 일행을 위로하듯 산 아래 하늘은 거짓말처럼 청명하게 개어 있었다. 꿩 대신 닭이라 했던가. 천지가 숨겨둔 백두산의 또 다른 선물, 장백폭포(비룡폭포)가 우람한 산세를 드러내며 일행을 맞이했다.
폭포로 오르는 길 주변에는 수직으로 뻗은 주상절리와 판상절리의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노천 온천수가 흘러내리는 길목에서는 알싸한 유황 냄새와 함께 바닥이 신비로운 황톳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또다시 가파른 계단을 숨차게 오르고 올라 마주한 장백폭포는 하늘에서 직접 떨어지는 듯 웅장한 물줄기 소리를 내뿜고 있었다.
도반들은 거대한 폭포 앞에 서서 이른바 '폭포멍'을 때리며 정상에서 얼어붙었던 마음을 시원하게 녹여내렸다. 이곳에서만큼은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다들 인생 사진을 건지며 아쉬움을 위안으로 바꿨다. 천지를 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산세의 장엄함을 온몸으로 누린 호사스러운 여정이었다.
다시 여러 번 차를 갈아탄 뒤 산을 완전히 내려오는 길, 이상재는 버스 안에서 백두산의 기상이 담긴 북한 노래를 우렁차게 부르며 도반들의 섭섭한 마음을 달래주었다. 비록 천지는 구름 뒤로 숨었을지언정, 서로에게 옷을 벗어주고 이끌어주며 웅장한 4단의 대자연을 함께 호흡한 서른세 명의 도반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맑고 거대한 자신들만의 '천지'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제12화. 아픈 역사의 증거, 그리고 해란강변에 흐르는 우리들의 춤사위
백두산의 장엄한 정기를 품고 달린 버스는 항일 독립운동의 뜨거운 숨결이 서린 간도, 용정(龍井)에 닿았다. 원래 예정됐던 컵라면 대신 점심은 강원도식당에서 해결했다. 식당 입구에서 산삼을 파는 이국적인 풍경을 지나며 일행은 발해 성터는 들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용정에서 먼저 들른 곳은 옛 용정일본총영사관(일본침략항일죄증관)이었다. 이곳은 과거 군경을 동원해 독립운동 세력을 잔인하게 탄압하던 비극의 현장이었다. 쿰쿰한 음지의 냄새로 가득한 전시실 내부에는 고문과 살육의 만행들이 날것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 보는 이의 숨을 턱 막히게 했다.
조상래는 15만 엔 탈취 사건과 뒤이은 무장 투쟁의 기록을 바라보며, 비록 실패와 참혹한 보복(간도참변)으로 이어졌을지언정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 선조들의 피땀과 고난의 역사 앞에 숙연해졌다. 다른 도반들 역시 깊은 감정에 젖어 들었다. 유혜연은 이곳에서 마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들을 만난 듯 가슴이 저려왔고, 복도에 늘어선 젊은 전사자들의 사진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한예은은 독립운동가들의 죽음 앞에서 밀려오는 버거운 감정을 안은 채, 지금 이 순간에도 유사한 민족 말살의 비극을 겪고 있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떠올리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김기수 역시 착 가라앉은 기분으로 관람을 마치고 나왔을 때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을 보며,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향한 씁쓸함과 향후 한중 관계에 대한 지정학적 생각을 스치듯 남겼다.
용정 호텔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최필수, 설미진, 정승우, 서형식으로 이어지는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반들은 일제시대 간도에서 양심적 기독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의 무게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어서 지휘자 이병직 선생이 노래 '선구자'에 얽힌 숨은 해설을 들려주며 버스 안은 이내 역사에 대한 고찰로 가득 찼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해란강을 건너 온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찾은 용정 시내는 도처에 걸린 한글 간판 덕분에 무척 정겹게 다가왔다. 음식은 도반들의 입맛에 아주 잘 맞았고, '된장술'이라 불리는 백주가 식탁에 오르면서 분위기가 한껏 살아났다. 김기수는 맛 좋은 음식에 반주를 곁들이며 낮 동안의 묵직했던 감정을 차츰 씻어내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선선한 밤바람을 맞으며 해란강까지 산책을 나섰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공원에서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익숙한 '달타령'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흥겨운 풍경을 마주했다. 예로부터 가무를 즐기던 한민족의 핏줄이 이 신명 나는 흥을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김기수를 비롯한 도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춤판에 뛰어들어 주민들과 덩실덩실 어우러졌다. 디제이가 센스 있게 "반갑습네다"를 틀어주는 바람에 일행은 고구려 무용총 벽화 속 무용수들처럼 한참을 더 자연스럽게 춤 속으로 빠져들었다. 신나는 트로트와 장구 소리 속에 낮 동안 느꼈던 역사의 암울함은 단숨에 날아갔다. 조상래는 이러한 한민족 특유의 신명과 해학이야말로 삶의 깊은 한(恨)을 승화시키고, 모진 역사의 현실을 이겨내게 한 진짜 원동력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여흥은 호텔 앞 별빛 아래로 이어져 캔맥주와 남은 된장술을 나누는 대화로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그사이 연명흠과 강성윤은 세탁기를 빌려 밀린 빨래를 시원하게 해결하기도 했다. 암울함과 신명이 극적으로 교차했던, 간도 조선인으로서의 뜨거웠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갔다.
2026-07-11(토)
제13화. 명동촌의 빗속에서 청년 윤동주를 마주하다
백두산의 거대한 기운을 뒤로하고,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의 요람이자 시인 윤동주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북간도 명동촌(明東村)으로 향했다. 이날 아침 출발 시간은 8시 반으로, 이전의 빡빡했던 강행군에 비하면 한층 여유로운 시작이었다. 그러나 일정을 대하는 도반들의 마음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고 설렜다.
빼앗긴 이름, 그러나 잊을 수 없는 청년의 부끄러움
용정의 들판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한문덕 목사가 던진 화두는 무척 흥미로웠다. 한국의 주류 기독교가 기독교와 무속신앙의 결합이라면, 명동촌의 기독교는 기독교와 유교적 전통이 결합한 독특한 형태일 수 있다는 고찰이었다. 명동촌은 규암 김약연 선생이 중심이 되어 세운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의 산실이었고,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들과의 헌신적인 협력 덕분에 기독교가 북간도 민족운동의 든든한 구심점으로 자리 잡았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김약연은 은진중학교를 설립하고 늦은 나이에 목사가 되어 명동교회에 부임하며 민족의 지성을 기르고 복음을 전파했던 인물이었다.

마침내 도착한 윤동주 생가터 주차장에는 학사모를 쓴 윤동주의 이미지가 그려진 '명동커피' 점이 일행을 맞이했다. 그러나 생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김기수를 비롯한 도반들은 커다란 충격과 마주해야 했다. 안내판에 윤동주 시인이 '중국 조선족 유명 시인'으로 뚜렷하게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원 안의 비석에는 심지어 한문으로 번역된 '서시'가 한글 서시보다 더 윗자리에 새겨져 있었다.
유혜연은 윤동주 시인이 현재 중국 영토인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그 지역이 오늘날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속한다는 지리적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일제강점기 조국의 아픔을 우리말로 노래하며 민족의 양심을 지킨 시인을 '중국 조선족'이라는 틀에 가두려는 현실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적잖은 아쉬움과 불편함을 느꼈다. 김기수 역시 우리의 소중한 정신을 통째로 빼앗긴 듯한 비참함과 충격을 지우지 못했다. 암울한 시절, 고결한 언어로 시를 쓰던 청년이 해방을 고작 6개월 앞두고 일제의 잔혹한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차가운 감옥에서 스러져 가야 했던 비극이 기념관의 기록 위로 겹쳐지며 일행의 마음은 깊은 슬픔으로 젖어 들었다.
그럼에도 7월의 명동촌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노란 나리꽃이 피어나고 버드나무 가지가 여유롭게 늘어져 한적하고 편안한 골목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조상래는 멀리 굽이치는 산들을 배경으로 한복의 선처럼 부드럽게 이어진 낮은 집담을 걸으며, 윤동주의 시에 등장하는 별, 구름, 바람, 달빛, 햇살, 그리고 굴뚝의 연기가 시인의 마음이 되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다. 구름 사이로 잠깐씩 비치는 햇살마저 시인이 생전에 가졌던 맑은 '부끄러움'처럼 고가를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명동학교 칠판에 남긴 100년의 우정
일행의 발걸음은 윤동주와 송몽규가 어린 시절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갔을 등굣길을 따라 명동학교로 이어졌다. 기와지붕에 성곽 모양의 장식을 얹은 독특한 혼합 양식의 건물 안으로 들어선 도반들은 잠시 무거운 역사의 짐을 내려놓고 유쾌한 교실 놀이를 시작했다.
"정미경! 설미진! 오안근!..."
서형식 권사가 엄격한 선생님처럼 교단에 서서 출석을 부르는 동안, 문 뒤에서 눈치를 보던 지각생 도반들이 한 명씩 웃으며 교실로 뛰어들어왔고 낡은 교실 안은 금세 웃음꽃으로 가득 찼다. 교실 맨 앞줄에는 덩그러니 복원된 윤동주의 동상이 앉아 있었다. 일행은 100년이라는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교실 속 청년 윤동주와 마치 한 반 동급생 친구가 된 것처럼 칠판에 다정하게 낙서를 하며 살아 숨 쉬는 동질감을 만끽했다. 과거 강남향린교회 나들이 장소로 윤동주문학관을 기획하며 "어떻게 자신을 버리고 나라를 생각할 수 있었을까" 고뇌했던 설미진은, 외로운 청년의 곁을 여행 도반들이 시끌벅적하게 채워준 이 짧은 수업 시간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다만 아쉬움도 남았다. 한문덕은 이 일대에 분명히 존재했던 문익환 목사의 생가 안내 표지가 지금은 깔끔히 사라진 현실을 안타까워했고, 관광안내도에 표시된 송몽규 생가터 역시 실제 위치에는 아무런 표지석조차 없었다. 대신 학교 앞 넓은 공터에는 중국공산당의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이 적힌 대형 문구와 기념탑들이 들어서 있었다. 광장에 심어진 석류나무를 보며 최필수는 "석류알처럼 수많은 소수민족이 중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를 이루자는 철저한 당-국가의 통제적 메시지"라고 설명해 주었다. 연명흠은 10년 전 방문했을 때보다 한층 더 상업화되고, 동시에 고도화되고 치밀해진 중국의 사상적 통제를 피부로 실감하며 씁쓸함을 삼켰다.
동심의 선율을 싣고 달리는 버스
점심 식사하러 가는 길, 일행은 명동촌 입구의 위대한 랜드마크이자 과거 명동학교 학생들이 봄소풍과 수학여행으로 자주 찾았다던 '선바위' 앞에 멈춰 섰다. 우뚝 솟은 선바위를 배경으로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어렵사리 한 컷의 단체 사진을 남기며 김약연, 윤동주, 송몽규, 문익환, 안병무로 이어지는 거인들의 발자취를 기억하겠노라 다짐했다. 이어진 순이식당의 냉면은 양이 엄청나게 많고 자극적이었지만, 냉면 전에 나온 풍성한 중국 요리들과 곁들여 다들 대만족의 식사를 마쳤다.
돌아오는 버스 안, 평소 학생들과 동시 수업을 하며 윤동주의 맑은 언어를 가르치던 정미경의 제안으로 윤동주 시인이 살금살금 다가와 우리 마음속에 심어놓은 동심을 꺼내어 시를 읽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되었다.
이어, 이병직의 제안으로 전원이 '동요 이어 부르기'에 도전했다. <나뭇잎배>, <고향의 봄>, <모두 다 꽃이야>, <반달>, <섬집 아기>, <오빠 생각>부터 <등대지기>, <얼굴>, <노을>, <멋쟁이 토마토>까지... 도반들이 돌아가며 부르는 맑은 노랫말과 익숙한 오선보 선율이 버스 안을 가득 채웠다. 윤영순은 고운 목소리로 <과수원길>을 불러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동요를 흥얼거리는 순간만큼은 수십 년을 살아온 어른들이 아니라,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명동학교의 순수한 아이들로 돌아간 듯했다. 시이면서 노래이자 곧 우리 모두의 추억이 된 동요 소리는 빗줄기를 뚫고 간도 벌판으로 다정하게 울려 퍼졌다.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순수한 동심과 양심을 끝까지 붙잡았던 청년 윤동주와 서른세 명 도반들의 마음이 비 내리는 북간도의 하늘 아래서 그렇게 아주 따뜻하게 연결되고 있었다.
제14화. 두만강 너머의 침묵, 그리고 빗속에서 나눈 형제 교회의 온기
명동촌을 떠난 버스는 만주어 '투먼'에서 유래한 국경 도시, 도문(图们)에 들어섰다. 도문은 북한의 남양시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어 북녘땅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다.
도문에 도착한 최경희와 김기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뜻밖에도 '성수동 커피 행운 집합소'라고 큼직하게 적힌 간판과 그림이었다. 중국 땅 한복판에서 한국의 핫플레이스 지명을 그대로 사용한 카페를 마주하니, 국경마저 가볍게 넘나드는 상업의 거대한 힘이 새삼 실감 났다. 마케터인 최경희는 우리 근대사를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는 도반들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성수동 스타일'이 이 먼 변방까지 스며들었다는 사실에 본능적으로 마음이 끌려 그 공간을 유심히 기웃거렸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그러나 차가운 침묵의 땅
일행은 북한 땅이 더 잘 보인다는 일광산 전망대로 향했다. 성곽처럼 꾸며진 나지막한 첫 번째 장소를 지나, 일행은 더 높은 곳에 진짜 전망대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오녀산성을 오르던 기운을 되살려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역시 풍경은 높은 곳에서 봐야 제맛이었다.
전망대 아래로 둥글게 굽이쳐 흐르는 두만강이 보였고, 그 강물에 포근히 감싸 안긴 북한 남양시의 전경이 지척으로 펼쳐졌다. 산기슭에서부터 강변까지 길게 이어진 평지는 얼핏 보기에 참 양지바르고 아늑한 동네였다. 맨 앞줄에 늘어선 연립주택과 허름한 아파트를 보며 도반들 사이에서는 "전시용 주택이다", "아니다, 진짜 사람이 사는 곳이다"라며 가벼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경희가 카메라 렌즈를 20배 줌으로 한껏 당겨 혹시나 우리를 향해 정겹게 손을 흔들어줄 북녘 동포가 없을까 부지런히 화면을 움직여 보았지만, 지척에 놓인 마을은 너무나 조용하고 한산했다. 화면에 걸려드는 것은 오직 붉고 차가운 선전 문구들뿐이었다.
그럼에도 꼼꼼히 살펴보니 띄엄띄엄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염소 떼, 그리고 경계를 서는 군인의 모습이 렌즈에 포착되었다. 연명흠은 처음에는 평범한 기차역 역사인 줄 알았던 남양역사를 폰카로 최대한 확대해 보았다. 그곳에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대형 초상화와 주체사상 선전 문구, 그리고 김정은 시대를 강조하는 글귀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그 풍경을 보며 '향후 김주애가 권력을 승계하게 되면 저 자리에 김정은 사진이 걸리겠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스쳤다.
김기수는 좁디좁은 두만강의 강폭을 바라보며 배를 타지 않고도 얼마든지 걸어서 건너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비현실적인 거리감에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연명흠은 과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이 더 잘살아 중국의 조선족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이 강을 넘어 북한으로 건너갔다던 가이드의 옛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오래전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 지금은 북한의 남루함과 중국의 화려함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한정훈이 전망대에 모인 모든 도반에게 시원한 아이스바를 하나씩 돌려 그것을 베어 물며 북녘땅을 바라보던 중,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이 내렸던 일행은 꼼꼼히 전망대 근처 기념품숍으로 피신해 발이 묶였다. 도반들은 그곳에서 북한산 들쭉술과 비누, 러시아산 초콜릿 등을 사며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연명흠은 10년 전 이곳에 왔을 때 녹슬어 있던 철길 중간의 조중 국경선까지 걸어가 유쾌하게 '국경 놀이'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외국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는 철통같은 분위기를 보며 변해버린 정세를 실감했다.
처마 밑의 빗소리, 그리고 신앙의 핏줄이 만든 소용돌이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지자 일행은 버스를 타고 도문강 광장으로 이동했다. 널널하게 주어진 자유 시간 동안 도반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을 찍거나 커피를 마셨다. 광장 한켠에는 대형 LED 미디어월과 금속 조형물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곳에도 어김없이 중국의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과 입당 선서문이 위압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하나의 중국(One China)'과 당 주도의 중화주의를 온 땅에 심으려는 시진핑 시대의 삼엄한 통제 방식이 여행 내내 피부로 와닿았다. 연명흠과 김기수는 두만강변을 따라 조용히 걷다가 한족, 조선족, 만족, 묘족 등 소수민족의 거주 성(省)을 나타낸 중국 지도에서 남중국해의 난사군도까지 꼼꼼히 그려 넣은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박상인, 오안근 등과 함께 조중국경선 철교 부근까지 바짝 가보려 했으나, 20위안의 입장료는 둘째 치고 '외국인 입장 불가'라는 차가운 안내판을 보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아쉬운 대로 돌아오는 길에 도반들은 연명흠이 산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카페에서 비 내리는 바깥 경치를 즐겼다. 한편 그 비 내리는 두만강 카페 처마 밑에서, 최경희는 평소 포토제닉한 분위기로 눈길을 끌던 장명숙 권사와 마주 앉아 처음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향린교회와 강남향린교회가 수십 년간 다져온 유독 끈끈한 유대감 덕분인지, 두 사람의 대화는 오랜 단짝처럼 서먹함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두 사람은 이번 통일학당 여정에 함께하지 못한 들꽃향린교회와 섬돌향린교회의 근황을 따뜻하게 주고받았다. 그리고 "만약 우리 네 교회가 다시 하나로 뭉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아름다운 모습일까?" 하는 유쾌하고 창의적인 상상을 공유하며 처마 끝에 맺히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비록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울지라도 꿈꾸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미래였다. 최경희는 비를 배경으로 장명숙 권사의 멋진 인생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이번 여행의 표면적인 목적은 거칠고 묵직한 역사의 현장을 탐방하는 것이었지만, 두 교회의 도반들이 빗속에서 나눈 신앙의 핏줄과 친밀한 교류라는 따뜻한 소용돌이는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제15화. 합리적인 취소, 훈춘의 밤, 뜨거운 팔씨름대회와 국경을 넘은 신명
집합 장소에 모인 일행은 남은 일정을 두고 긴급 회의를 거쳐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도문에서 더 이상 시간을 보낼 만한 의미 있는 콘텐츠가 없었기에, 이미 예약해 둔 도문에서의 저녁 식사를 과감히 취소하고 곧장 다음 목적지인 훈춘으로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식당 위약금을 일부 물어야 했지만, 소중한 여행의 시간을 벌기 위한 매우 합리적이고 현명한 결단이었다.
방천으로 가는 교두보이자 러시아, 중국, 북한의 접경 도시인 훈춘에 도착했다. 호텔 입구에서부터 마주친 러시아인들의 모습에서 이 도시가 가진 지리적 특징이 온몸으로 확 느껴졌다. 저녁 식사 전까지 한 시간 반 남짓 시간 여유가 생기자 도반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숨을 골랐다. 일부는 부근 슈퍼에서 쇼핑을 즐겼고, 연명흠은 짬을 내어 여행기에 넣을 지도와 사진을 편집했다. 김기수는 일찍 도착한 덕에 샤워를 마치고 한결 상쾌해진 기분으로 일행을 기다리기 위해 호텔 로비로 나섰다.
갑작스레 찾은 저녁 식당은 식당과 클럽의 중간쯤 되는 기묘한 분위기였다. 천장에는 공연용 스포트라이트가 쉴 새 없이 돌고 있었고, 테이블은 하나로 길게 이어 붙여져 있었다. 웅장한 분위기와 달리 러시아 레스토랑의 음식은 배려 없이 너무 짜고 양도 부족했다. 도반들은 그저 러시아 음식을 경험해 본 것에 의미를 두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음식의 아쉬움은 이내 뜨거운 흥으로 채워졌다. 방금 전 시장에서 산 들쭉술을 이상재와 조상래가 가져오면서 식당 안의 공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벨루가 보드카와 시원한 맥주까지 가세하자 다들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유쾌한 대화를 이어갔다.
진짜 축제는 호텔로 돌아온 후에 시작되었다. 밤에 마실 가벼운 음료를 사려던 참에, 이설현이 낮에 명동촌 교실 칠판에 적어두었던 공약인 "팔씨름하며 저랑 놀아요"를 성취하겠다며 도전장을 내밀었다. 로비 원탁에 둘러앉아 본격적인 힘자랑 시간이 펼쳐졌다.
상쾌한 기분으로 로비에 앉아 있던 김기수가 먼저 나섰으나, 이설현의 묵직한 힘과 현란한 손목 스킬에 밀려 그만 지고 말았다. 이설현은 승부욕을 불태우며 강성윤, 한예은, 연명흠 등 쟁쟁한 도반들을 상대로 이기거나 비기며 기세를 올렸다. 곁에서 지켜보던 설미진 일행은 설현이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팔을 내어주는 도반들의 모습에서 '이런 게 바로 하나님 나라가 아닐까' 하는 따뜻함을 느꼈다.
열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낯선 러시아인 가족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김기수와 이설현이 슬쩍 팔씨름을 제안하자, 거구의 러시아 아저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순식간에 그의 가족들이 모두 주변으로 모여들어 아빠를 연호하며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팽팽한 접전 끝에 러시아 근육맨은 이기려 들지 않고 묵묵히 버텨주며 훈훈한 무승부로 대회를 마무리 지었다. 비록 무승부였지만 이 거구의 사내를 상대로 버텨낸 이설현이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 판이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공식 일과는 끝났지만,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일행 몇몇은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필수, 한예은, 강성윤, 김기수, 연명흠, 한문덕, 한선규, 신동준, 전수진, 이상재, 유혜연 등은 좁은 원탁에 옹기종기 낑겨 앉아 다양한 맥주를 마시며 밤늦도록 담소를 나눴다. 목소리가 커진 탓에 옆 테이블 중국인으로부터 시끄럽다는 항의를 받는 소동도 있었지만, 그 덕에 그동안 다소 서먹했던 도반들과 한층 더 끈끈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국경 도시의 낯선 공기 속에서 팔씨름 하나로 국적과 벽을 허물어뜨린, 훈춘에서의 뜨거운 밤이 그렇게 저물어갔다.
2026-07-12(일)
제16화. 국경 앞의 좌절과 버스 안의 성소, 그리고 훈춘에서의 숨 고르기
백두산과 도문을 거쳐 온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북한, 중국, 러시아 삼국의 국경이 맞닿은 두만강 하류의 상징적인 공간, 방천(防川)으로 향하기 위해 여느 때처럼 호텔 조식을 마치고 체크아웃을 서둘렀다. 호텔 엘리베이터가 다소 좁았던 탓에 성미 급한 일부 도반들은 짐을 들고 계단으로 분주히 오르내리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달리는 버스, 가장 낮고 뜨거운 성소가 되다
가녀린 빗줄기가 차창을 두드리는 길이었지만, 마침 주일을 맞이한 도반들의 마음은 경건함으로 가득 찼다. 국경으로 달리는 버스는 이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움직이는 성소(聖所)로 변모했다.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었기에 약식으로 주일예배가 시작되었다. 버스 안에서 모두가 한목소리로 찬송을 불렀고, 피경원 장로가 도반들의 안전과 영성을 위해 간절한 대표 기도를 올렸다. 성서를 함께 읽은 후에는 특정 설교자를 두는 대신, 도반들이 돌아가며 저마다의 깊은 신앙적 소감을 나누는 감동적인 릴레이 나눔이 이어졌다. 정승우, 서형식, 김명선, 김기수, 한문덕, 정선영 등이 차례로 마이크를 잡고 이번 여정 속에서 느낀 역사적 아픔과 신앙의 고뇌를 고백했다. 특히 김명선 장로는 특유의 가락으로 '농부가'를 구수하게 불러 젖히며 버스 안의 분위기를 한층 더 풍성하고 은혜롭게 돋우어 주었다.
철통같은 검문소, "외국인 출입 금지!"
그러나 찬송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 차가 방천에 가까워져 검문소에 다다랐을 때 돌연 버스가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유턴을 해야만 했다. 무장한 중국 공안들이 길을 막아서며 "방천 일대에 군사 훈련이 있어 외국인은 절대 출입할 수 없다"고 통보해 온 것이다. 오래전부터 방천행을 고대했던 김기수를 비롯한 일행의 마음에 깊은 허탈감이 밀려왔지만, 서슬 퍼런 국경지대의 통제 앞에서는 별수가 없었다.
이끔이 최필수 교수는 아쉬워하는 도반들을 위해 이곳의 지리적 배경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북·중·러 삼국 국경지대인 방천 개발을 위해 이미 1991년부터 국제 개발 기구가 만들어졌으나 한동안 유명무실했는데, 최근 들어 다시 이 일대의 국제 개발(비록 북·중·러 삼국 중심이지만)에 착수한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는 전문가적 진단이었다.
연명흠은 10년 전 방천에 들렀을 때 삼국의 국기 옆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던 기억을 이번에 도반들과 다시 확인하고자 했으나 무산되어 못내 섭섭해했다. 당시 조선족 가이드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설명하며 "중국이 이곳 방천을 통해 동해로 나가는 바닷길을 완전히 열었더라면, 동해와 남중국해를 동시에 차지해 한반도가 자연스레 중국 품에 안기는 거대한 지정학적 격변이 일어났을 것"이라 속삭였던 섬뜩한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바닷길을 열지 못한 중국의 빗장 걸어 잠그기는, 역설적으로 외국인 전면 통제라는 치밀하고 삼엄한 불통의 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백화점에서의 시간 죽이기, 그리고 찾아온 평화
결국 차를 돌려 출발지였던 훈춘 시내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실망할 법도 한 상황에서 한예은은 "역시 단체 관광의 마지막 대미는 쇼핑이죠!" 하고 재치 있는 농담을 던져 가라앉은 좌중의 폭소를 자아냈다.
일행은 훈춘의 한 백화점에 가볍게 내려졌다. 하지만 막상 들어선 백화점은 내부를 오가는 사람도 적고 진열된 상품도 그리 많지 않아 썰렁했다. 도반들은 "여기 뭐 볼 게 있나?" 하고 기웃거리다가 이내 한마디로 "없구나~" 결론을 내리고는 각자 개성 넘치는 '시간 죽이기'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현정 내외를 비롯한 몇몇 도반들은 지하에서 뜻밖에 커다란 슈퍼마켓을 발견하고는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배미연 내외와 연명흠 등은 아예 현지인 주민이라도 된 것처럼 카트에 식료품을 잔뜩 담아 쇼핑의 재미를 만끽했다. 서형식 일행은 백화점 주변에 자리한 현지 사찰을 조용히 둘러보며 이국적인 풍경을 눈에 담았고, 대다수의 도반은 인근 카페에 모여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모처럼 찾아온 여유를 누렸다.
여행 첫날과 둘째 날에는 하루에 기본 2만 보 이상을 걷고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고된 강행군이었지만, 여행의 말미에 이르러 예기치 않은 공안의 통제를 마주하자 오히려 일정은 한없이 느긋하고 한가로워졌다.
어느덧 시계는 다시 점심시간을 가리켰다. 오전에 딱히 한 일이라고는 버스를 타고 백화점을 구경한 것뿐이라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지만, 차려진 중국 요리들은 생각 외로 도반들의 입맛에 꽤 잘 맞았다. 정승우를 비롯한 몇몇 도반들은 식당의 방석 대신 친근한 목욕탕 의자에 옹기종기 쪼그려 앉아, 서로에게 맛깔진 미주(米酒)를 한 잔씩 걸치며 아쉬움을 유쾌한 웃음으로 승화시켰다.
예기치 못한 차단과 유턴 속에서도 예배와 찬양, 그리고 소소한 웃음으로 서로를 위로한 서른세 명의 도반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친 일행은 다시 버스에 올라, 이번 조중 접경 지역 여정의 찬란한 종착지가 될 마지막 도시, 연길(延吉)을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제17화. 박물관에 박제된 조선족의 춤사위, 그리고 불 꺼진 캠퍼스 너머의 불야성
버스는 마침내 이번 여정의 종착지이자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심장, 연길(延吉)에 진입했다. 몰라보게 정비되고 세련되게 발전한 도시 풍경을 바라보며 연명흠은 깊은 감회에 젖어 들었다.
'여성화'된 소수민족, 그리고 국가의 철저한 기획
점심 식사를 마친 서른세 명의 도반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연변박물관이었다. 박물관 입장에 앞서 길잡이이자 이끔이인 최필수 교수는 도반들에게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을 다룰 때 '여성화(女性化)'하여 대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매우 날카로운 화두를 던졌다. 한족이 중심이 되어 국가를 이끌고 소수민족은 그 뒤를 다소곳하게 따르는 보조적 존재로 대상화한다는 뜻이었다. 고유의 언어와 문학을 지켜왔고, 혹독한 항일투쟁의 주역이었으며, 척박한 북방 땅에 최초로 쌀농사의 한계선을 개척해 낸 주체적인 조선족의 역사가 한낱 국가 홍보용으로 박제되는 현실에 최필수는 짙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 설명은 박물관 외관에서부터 곧바로 증명되었다. 거대한 박물관 건물 좌우에 걸린 대형 부조에는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와 함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의 부드러운 춤사위가 대조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박물관은 총 5개의 전시관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 1층 1호실 (중화문명 동강서광): 구석기 시대부터 명나라 말기까지의 통사.
- 2층 2호실 (창관월강 공건가원): 청나라 시기부터 일제 침략 직전까지의 이주 역사.
- 3층 3호실 (욕혈분전 공동항적): 간도 지역 조선족과 한족의 공동 항일투쟁, 그리고 미제에 대항했다는 명목의 6·25 전쟁(항미원조) 기록.
- 2층 4호실 (민속문화 공방이채): 조선족의 정겨운 음식, 복식, 주거 등 생활 풍속.
- 1층 5호실 (일심향당 영속휘황): 오직 공산당을 향한 충성과 미래 비전 제시.
모든 전시실은 입구의 '서언'으로 시작해 출구의 '맺음말'로 끝을 맺으며, 국가 이데올로기를 관람객에게 일방적이고 강력하게 주입하고 있었다. 소수민족을 중국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 통합하려는 국가적 의도가 역력히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이 와중에 연명흠은 3호실에서 '돈황의 수호자'이자 주요 공산당원이었던 화가 한낙연의 전시물을 무척 인상 깊게 눈여겨보았다. 그런데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박상인이 한낙연의 생애와 예술 세계에 대해 막힘없이 유창한 해설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며, 다시 한번 "우리 일행에는 참으로 식견과 학람이 높은 분들이 많다"며 속으로 감탄했다.
철문 굳게 닫힌 대학 정문, 그리고 간판의 소음
호텔에 무사히 체크인을 마친 후 저녁 식사 전까지 제법 긴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다수의 도반은 지역 명물인 서시장으로 향했고, 김선정, 김기수, 이미혜, 서형식, 정미경, 연명흠 등 일부 일행은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연변대학 탐방에 나섰다.
큰 기대를 품고 당도한 연변대학이었지만, 아쉽게도 정문 교문에서부터 보안요원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도반들은 연변대학 기념품점에 들러 대학 굿즈를 아기자기하게 고르고 정문 앞에서 다 함께 인증 사진 한 장을 남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대학 캠퍼스는 고요히 닫혀 있었지만, 정문 앞 세상은 그야말로 불야성이자 거대한 시장이었다. 대학가 건물마다 수많은 한글과 중국어 간판이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의 번화가 골목을 연상케 했다. 온갖 간판들이 저마다 화려한 불빛을 뽐내며 "나를 좀 봐달라"고 소리치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야시장의 불빛 속에서 피어난 소소한 낭만
길가에는 다채로운 먹거리를 파는 노점상들이 끝도 없이 늘어선 야시장이 펼쳐져 있었다. "대학을 보러 왔다가 거대한 시장을 구경하게 됐다"며 도반들은 유쾌하게 웃었다. 김명선 등 일부 일행은 낯익은 로고의 '카페베네' 매장을 발견하고 들어가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다리를 쉬었다.
이 와중에 연명흠은 야시장 노점에서 갓 구워낸 따끈하고 매콤한 굴구이를 사서 김기수에게 건넸다. 김기수는 혹시나 타지에서 배탈이 나 일정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면서도, 길가에서 나누어 먹는 굴구이의 매력에 이내 매료되었다. 굴구이를 기분 좋게 해치운 연명흠과 김기수는 남은 시간 동안 지치지도 않는지 빠른 걸음으로 인근 연변공원까지 산책을 다녀오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거대한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 장벽과 삼엄한 통제 속에서도,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닫힌 교문 앞 야시장의 활기찬 불빛 속에서 저마다의 소소한 재미와 위안을 찾으며 연길에서의 첫날밤을 은은하게 물들여 갔다.
제18화. 이야기는 남아 역사가 된다
연길에서의 마지막 저녁, 우리가 찾은 식당은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곳으로 이번 여행 중 가장 세련된 공간 중 하나였다. 이곳은 알고 보니 도올 김용옥 선생이 연길에 올 때마다 즐겨 찾는다는 유명 중식당 '화전'이었다.
한예은, 오안근, 서형식, 신동준 등이 함께 앉은 테이블은 어찌나 웅장하고 큰지, 팔을 뻗어도 건너편에 놓인 음식에는 도무지 손이 닿지 않을 정도였다. 테이블의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하는 것도 잠시, 오안근이 연길서시장에서 귀하게 구해온 60도짜리 독한 백주와 강성윤이 집에서부터 소중히 챙겨온 조지아산 와인이 차례로 봉인 해제되었다. 도반들은 코끝을 찌르는 백주의 향과 묵직한 와인을 곁들여 정갈하고 맛있는 요리들을 마음껏 즐겼다.
식사를 마치며 도반들은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넘겨받아 이번 기행에 대한 소감을 나누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거친 국경지대를 누비며 보았던 것, 들었던 것, 가슴 깊이 느낀 것,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해야 할 일들과 앞으로 또 함께 도모하고 싶은 꿈들을 저마다 담담하게 고백했다. 아쉬움 섞인 목소리들이 식탁 위를 따뜻하게 채워갔다.
철석거리는 강변 데크 위, 마지막 밤의 이야기꽃
만찬을 끝내고 호텔로 무사히 돌아왔지만, 서른세 명의 도반 중 그 누구도 이 중국 기행의 마지막 밤을 이대로 푹 자며 허투루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통했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맥주와 간단한 주전부리, 그리고 낮에 시장에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사 둔 두리안과 망고를 품에 안고 밤공기가 선선한 강변 공원으로 쏟아져 나왔다.
여름철 강변의 바람은 기분 좋게 눅눅했고, 흐르는 강물은 마치 깊은 바닷가처럼 철석거리며 데크 위로 정겨운 물소리를 실어 보냈다. 도반들은 그 강변 데크 위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한낮의 뜨거웠던 열기를 식히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연변대학 앞 기프트숍에서 사서 가방에 달아둔 빨간 브로콜리 키링이 밤바람에 작게 흔들리는 가운데,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모태가 된 교회 이야기부터 고단하지만 치열한 각자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지나온 며칠간의 여정 이야기까지...
"이야기는 남으면 추억이 되고, 기록이 되면 역사가 된다."
누군가 나직하게 읊조린 이 말처럼, 중국 기행의 마지막 밤을 장식한 우리의 이야기꽃은 저마다의 가슴속에 소중한 씨앗이 되어 흩뿌려지고 있었다. 향린의 이름으로 묶인 신앙인으로서 피워낸 '신앙꽃', 이 짧은 여정 동안 서로의 영혼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 '사람꽃', 여행을 끝내고 다시 치열한 일상을 살아갈 소시민으로서의 '소시민꽃',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발자취를 글로 꾹꾹 눌러 담아 남겨질 여행기의 '이야기꽃밭'까지.
길고도 짧았던 조중 접경 지역 통일학당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각자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따뜻하고 아름다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아로새기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고구려의 옛 성터도, 비바람에 가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했던 백두산 천지도, 빗속의 명동촌과 두만강의 침묵도, 이 밤 나누었던 도반들의 목소리를 통해 마침내 온전한 우리의 '역사'가 되었다.

2026-07-13(월)
제19화(최종화). 화창한 하늘 아래, 일상이라는 새로운 여정을 향해
드디어 다가온 출국일 아침. 며칠 내내 내리던 빗줄기와 침침했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연길의 하늘은 질투가 날 만큼 눈부시고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연명흠은 전날 마지막 밤의 아쉬움으로 나눈 과음 탓에 묵직해진 몸을 이끌고, 약속 시간에 겨우 맞춰 아슬아슬하게 아침 식사와 호텔 체크아웃을 마쳤다. 오후 5시 비행기라는 다소 늦은 출국 일정 때문에 서형식, 신동준을 비롯한 적지 않은 일행은 남은 시간 동안 무거운 여행 가방을 어디에 맡겨두고 움직여야 할지 잠시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간 우리의 든든한 다리가 되어 연변 구석구석을 누볐던 버스는 마침내 연변조양천공항에 일행을 내려주었고, 뜨거운 마중을 뒤로한 채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돌아갔다.
국경 도시의 공항답게 삼엄하고 꼼꼼한 보안검색을 거치고 나서야 도반들은 마침내 탑승구 앞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대기 시간, 연명흠은 사무원 모드로 인천에 도착하기 전 여행기를 일차적으로 마무리 짓기 위해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펼쳐 들었다.
서른세 명의 도반들은 국경지대에서 마주했던 묵직한 역사의 숨결, 북녘땅을 바라보며 삼켰던 씁쓸함, 그리고 매일 밤 뜨겁게 나누었던 신앙과 삶의 이야기들을 소중히 가슴에 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일행은 마침내 고국으로 향하는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접경 지역의 거친 길은 여기서 끝나지만, 100년 전 청년들이 고뇌했던 그 정신을 일상에서 살아내야 하는 도반들의 '진짜 여정'은 화창한 하늘 위에서 이제 막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by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