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 해석 모임에 참여해 본 건 처음이었어요.
조금 늦은 시각, 쌀쌀한 날씨였는데 강좌 장소에 들어서니 원형으로 둘러진 책상과 책상 위에 하나하나 밝혀진 따뜻한 불빛이 일상의 자리가 아님을 느끼게 했습니다.
포스터에 적힌 대로 꿈 해석이 '무의식과 나누는 깊은 대화'라면
각자의 꿈을 소개하고 나누는 자리는, 나, 그리고 간간이 얼굴만 스치던 사람, 생면부지의 타인이 곧장 무의식을 보이고 또 알아보기도 하는 자리였던 것 같아요.
타인 앞에서 무의식을 드러내는 일이 민망하거나 경계가 풀리는 위험이 있지 않을까? 얼핏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마치 대중목욕탕 안의 자기 개방(?)이 일상에서와는 다르게 일어나듯 그곳에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길지 않았던 것이 단 하나의 아쉬움이었고, 그래서 제 꿈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몇몇 분들의 꿈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것들을 보고 느꼈습니다.
자신의 무의식, 꿈을 이야기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습관적인 미소와 친절, 사회적 예의 등을 시원스레 벗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전해지는 꿈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참 솔직하게 아프고, 무섭고, 바라고, 욕망하고 있구나.
제 경우는 사실 AI를 통해 꿈 해석을 많이 받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엔터키와 동시에 쏟아지는 해석 글들에 익숙해지다 보면, 꿈의 이미지가 남긴 잔여의 느낌들을 찬찬히 음미하고 스스로 질문해 나가는 시간이 사라지게 되고, 나의 개인적이고 고유한 경험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해석으로 덮이는 느낌을 받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은경 선생님의 강좌는 그러한 일방적인 해석이 아닌, 꿈꾼 이에게 그것의 느낌을 물어가는 시간이었어요. '꿈꾼 이의 느낌이 바로 그 답이다'일까요?
또한 누군가의 꿈을 들으며 저 역시 비슷한 내적 경험을 비추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무의식은 늘 나 자신을 보고 있고, 그런 의미로 나밖에 모르는데, 의식은 늘 밖을 보고 있고, 그런 의미로 때론 자주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요.
매일 밤, 나밖에 모르는 나의 오랜 친구가 나를 찾아와 준다고 생각하니 왠지 든든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