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책마당]

a8b4e2

정지아 - <찌니주의보>

posted Sep 15,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짜고 맵고 단 이웃 이야기

『찌니주의보』를 읽고

 

찌니주의보.jpg

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

 

 

"단칼보다는 쓰리 쿠션"

나도 단도직입을 따르다 짜고 매운맛을 봐서일까? 이제는 쓰리 쿠션이 좋다는 작가의 말이 유독 와닿는다.

정지아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빨치산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금기(?) 소재를 유쾌하게, 정감 넘친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낸 매력에 푹 빠져 그녀의 책들은 단편 장편 가릴 거 없이 쫓아다녔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처럼 다 해학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때로는 그 진지함에 섬뜩 베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걱정 마시길. 『찌니 주의보』는 '통통통' 재미있어 아마도 하루, 이틀 안에 다 읽게 될 것이니.....

 

제목의 "주의보"라는 단어부터 눈길이 갔다. 그리고 "찌니"는 뭔 말이지? 궁금했다.

 

"찌니들이 말이여. 레지랴 레지."

시골 마을(수평마을)에 귀촌한 두 여성이 '동성 커플(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평균 연령 76세 어르신들의 수군거림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레지? 내가 모리는 다방 레지가 있간디?" 하는 할아버지부터, "워메, 여자들끼리 워쩌케 그 짓을 한 대?" 궁금증에 휩싸인 할머니까지 '우당탕탕' 소동 그 자체이다.

그 소동들을 읽다 보면, '큭큭큭' 웃음을 주체할 수 없다. 그러나 주제의 묵직함 때문일까.

소설 곳곳에서 여전히 낯선 존재에 대한 외면, 혐오의 갈등과 사건이 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날카로운 갈등 사건에서 이상한 장면이 자꾸 반복된다. 험담을 하고 돌아서서는 김치를 담아 갖다주고, 흉을 보다가도 밥때가 되면 상을 차려 부르기도 한다. 욕하고 모른 척하다가도 검은 비닐봉지에 반찬을 담아 문고리에 걸어두는 이상한 일들이 발생한다.

이 이상한 일들을 하는 평균 76세의 어르신들 -- 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밥"이다.

 

"밥"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밥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찌니 주의보』에서는,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 미움은 정말 그 사람 자체를 향한 것인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 라는 어려운 물음에 대한 답이 마치 밥 안에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은 계몽하지 않는다. 책의 목차처럼 누구나 비밀은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나쁘다,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산다, 그리고 누구나 모르고 산다는 것을 얘기할 뿐이다.

책 속의 인물들은 무엇을 해나가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함께 앉아 밥 한 끼를 먹자고 손을 내밀 뿐이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이 책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가진 삶의 물음에, 마치 드디어 답을 알게 된 딸이 쓰리 쿠션의 미학으로 화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늘 다른 이들 일에 매달려 당하면서도 "사람이니께"라는 말씀으로 수용하신 아버지..... 그의 삶이 주는 무거운 질문에,

중년으로 무르익은 딸 정지아가 "모락모락 고실고실한 진한 밥 냄새"로 화답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염율희.gif

  1. 정지아 - <찌니주의보>

    짜고 맵고 단 이웃 이야기 『찌니주의보』를 읽고 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 "단칼보다는 쓰리 쿠션" 나도 단도직입을 따르다 짜고 매운맛을 봐서일까? 이제는 쓰리 쿠션이 좋다는 작가의 말이 유독 와닿는다. 정지아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아...
    Date2026.09.15 Views14
    Read More
  2. 알린 T. 제로니머스 -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알린 T. 제로니머스 2025, 돌베개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하층 사람들은 일찍 병들어 죽는다. 왜 그럴까? 생활습관이 나빠서? 불량식품을 많이 먹어서? 건강을 관리할 줄 몰라서?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살 돈이 없어서? 아니...
    Date2026.08.14 Views66
    Read More
  3. 최정균 지음 - <보수 본능>

    보수 본능 - 자본주의, 기독교, 음모론, 민족주의, 반페미니즘을 추앙하는 사피엔스의 본성에 대하여 저자 최정균 | 동아시아 | 2025.7.18 왜 가난한 사람들이 기득권층을 지지하는가 왜 한국의 보수는 친미, 반공을 외치는가 왜 보수주의자들이 종교나 음모...
    Date2026.07.13 Views175
    Read More
  4. 아룬다티 로이 저 - <어머니 내게 오시네>

    어머니 내게 오시네 아룬다티 로이 지음 문학동네, 2026 아룬다티 로이는 1997년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책으로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인도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소수자의 삶을 위해 기꺼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온 사회참여적 작가다. 그런 그녀...
    Date2026.06.14 Views293
    Read More
  5. 애나 렘키 저 - <중독을 파는 의사들>

    중독을 파는 의사들 애나 렘키 저, 2025, 오월의봄 의사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어쩌다 못 고치는 병을 만나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라도 한다. 그래서 환자와 가족들로부터 감사와 존경을 받는다. 더러 생명의 은인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한다. 이들로 인...
    Date2026.05.19 Views271
    Read More
  6. 야마모토 케이 저 - <질투라는 감옥>

    질투라는 감옥 : 우리는 왜 타인에게 휘둘리는가 저자 야마모토 케이 | 역자 최주연 | 북모먼트 | 2024.10.16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나만큼은 예외라고 부정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존심 강한 내가 누군가를 질투한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
    Date2026.04.15 Views255
    Read More
  7.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저 -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창비, 2025 최근 방영된 드라마 중에 '프로보노'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전직 판사인 문유석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던 판사가 의도치 않은 상황에 처해 공익변호사가 되면...
    Date2026.03.12 Views312
    Read More
  8. 신디 위걸즈워스 저 - <영성지능>

    영성지능 - 삶을 바꾸는 21가지 기술 검색 신디 위걸즈워스 저 | 마인드랩 | 2025 지천멍~~ 오타가 아니다. 지천명(知天命)이 아닌 지천멍이다. 나이 오십이 넘으면 정말 지천명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체력이 떨어지고 주름이 늘고 몸의 라인이 무너지는 나...
    Date2026.02.12 Views348
    Read More
  9. 이타가키 류타 저 -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이타가키 류타(2024) 도서출판 푸른역사 이 책은 두 인물로 인해 독자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하나는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이다. 책 제목 그대로 김수경은 언어학자로서 북한 김일성대학의 교수를 지냈다. 다른 하나는 저자 ...
    Date2026.01.16 Views359
    Read More
  10. 우석훈 저 - <천만국가 : 노동 희소 사회, 알바,,,>

    천만국가 : 노동 희소 사회, 알바 공화국을 위해 저자 우석훈 | 레디앙 | 2024.11.25 일전에 일본의 '후퇴론'에 대한 책소개 말미에 2024년 3월 길목 월례강좌 "천만국가. 최후의 방어선..-대한민국 저출생 위기"에 이어진 우석훈 박사의 저서를 소개...
    Date2025.12.10 Views40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