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내게 오시네
아룬다티 로이 지음
문학동네, 2026
아룬다티 로이는 1997년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책으로 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인도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소수자의 삶을 위해 기꺼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온 사회참여적 작가다. 그런 그녀가 쓴 첫 번째 자전적 에세이가 이 책 <어머니 내게 오시네>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룬다티 로이의 평생에 걸친 애증과 연민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그녀의 어머니 메리 로이에게 바치는 글이다. "이 책 속에서 나의 엄마, 나의 마피아는 살아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나의 안식처이자 폭풍이었다." (p20)
이 책의 시작과 끝에 어머니 메리 로이의 죽음이 있다. 어머니가 죽자 아룬다티 로이는 '무너졌고 심장이 산산조각났다.' 그 모습에 오빠 LKC는 날카롭게 말한다. "난 네 반응을 이해할 수 없어. 엄마는 누구보다도 너에게 제일 모질었잖아." 오빠는 어머니가 관 속에 누워 있을 때조차도 슬픈 척 하지 않았고 유쾌한 태도로 조문객들을 맞이했다. (p73) 그녀는 그런 오빠를 이해하면서도 자신은 '이미 오래전에 그 일을 잊었다'고, '내 삶은 결코 비극적이라고 할 수 없었고, 유쾌하고 즐거울 때가 많았다'고, '지옥의 온갖 변주들을 목도하고 글로 써왔기에 오히려 자신은 굉장히 운이 좋은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p13)
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녀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그녀를 받아들이고, 무엇이 그녀를 아프게 했는지, 그녀가 왜 그런 행동들을 했는지를 이해하고, 다음에는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을지 예측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하나의 미로가 되었다... (중략)... 엄마에 대한 내 경험에 완전히 물들지 않은 렌즈를 통해 엄마를 바라보자 한 여성으로서의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작가로, 소설가로 만들었다. (p19)
아룬다티 로이의 어머니 메리 로이의 인생은 20세기의 인도에서 살아내야 했던 여성으로서의 삶 그 자체였다. 제국 곤충학자였던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휘둘렀고 그런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처음 청혼한 남자와 결혼했다. 그러다 남편의 알코올 중독으로 헤어지고, 1962년 인도와 중국 사이에 터진 전쟁에서 홀로 버티기 어려워지자 두 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아버지 소유의 별장에 숨어 들어가 살게 된다. 허나 어머니와 오빠 아이작은 딸은 아버지 재산에 대한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쫓아내려고 하고 이에 끝끝내 대항하여 법적 투쟁 끝에 케랄라에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유일하게 가지고 있던 교육학 학사 학위와 선교사의 도움을 발판 삼아 학교를 세웠고 놀라운 추진력과 진보적인 이념으로 이를 크게 성장시켜 지금도 남아 있는 케랄라 코타얌 팔리쿠담 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그녀는 '독특한 학교의 주인이자 교장,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고 (p48) 존경받는 교육자가 되었다.
당시의 인도는 카스트 제도와 힌두교의 구습 등으로 기독교도이자 여성이며 혼자 두 아이를 키우던 메리 로이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아니, 잔혹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세상의 공격을 당당하고 용감하게, 굽힘없이 헤쳐나갔다. 개인이 안되면 법으로, 설득이 안되면 투쟁으로, 아무리 긴 시간이 걸려도 해냈다. 남녀공학이 방종과 성적 문란의 소굴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엄격한 규율과 감시로 안심시켰지만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놀고 공부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p56) 남학생을 사려 깊고 예의바른 남자로 길러냄으로써 그들을 사회가 남자에게 요구하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여학생들에게는 용기를 북돋아주고 날개를 달아주었으며 해방시켰다. (p57) 추천한 학생이 입학을 못하게 되자 분노한 행정관이 자신의 학교에서 무대에 올리기로 한 오페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말도 안되는 이유로 금지시키자 결코 물러서지 않고 법정으로 갔고 수년 후 결국 승소하여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이 공연하게 된 일화에서도 그녀의 투지를 엿볼 수 있다.
메리 로이는 자신이 견뎌야 했던 싸움의 스트레스와 일상적인 수모를 아룬다티 로이와 오빠에게 극심하게 풀어대곤 했다. 가끔은 비이성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종종 몰아갔다. 평생을 자식에 대해 냉혹했고 잔인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남자라는 존재에 대한 분노를 아들에게 집중시켜서 두꺼운 나무 자가 부러질 때까지 때리기도 하고 "넌 못생겼고 멍청해. 내가 너라면 차라리 죽어버렸을 거야." (p62) 라는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퍼붓곤 했다. 오빠에게는 물리적 학대와 괴롭힘을 주었다면 아룬다티 로이에게는 정서적 분노와 경멸을 쏘아댔다. 새로 들인 전화기에 매혹되어 버튼을 눌렀다가 통화가 끊어지자 딸에게 "개 같은 년" 이라 차갑게 쏘아대고 (p65) 그녀의 말투를 따라하며 비아냥거려서 딸의 가슴에 어디론가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아무래도 로이 여사가 제자들에게 빛을 비추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려면, 우리 – 나와 오빠 – 가 그녀의 어둠을 흡수해야만 했던 것 같다." (p74)
아룬다티 로이는 열여덟 살에 집을 나와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녀가 성장하며 하나하나 이루어나가는 일들을 읽노라면 소설 속 이야기에 빠져드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건축학교에 입학해서 결혼해 살다가 우연히 만난 영화감독 프라디프와 유대와 사랑을 맺게 되고 영화배우가 되었다가 영화감독이 되었다가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마치 운명처럼 흘러간다. 그러다가 만난 말, "작가가 되어볼 생각은 해본 적 없어?"
어릴 적에 내가 되고 싶었던 건 오로지 작가뿐이었다. 독서만큼 세상을 잊게 만드는 건 없었다. 독서만큼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독서만큼 나를 채우는 것도 없었으며, 독서만큼 나를 비우는 것도 없었다. (p177)
첫 작품 <작은 것들의 신>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부커상을 받은 후 경제적으로나 신분적으로나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음에도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의 정치적 상황 – 특히 이슬람교도나 소수자 등에 대한 탄압 – 에 분노하여 본능이 인도하는 가장 위험한 곳으로 가서 일하게 된다. 정치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고 그래서 모욕과 분노가 쏟아졌지만 굴하지 않았다. 법정에도 수차례 섰고 잠시 감옥에도 있었지만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분노와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자유로운 여자, 자유로운 글쓰기, 어머니 메리가 내게 가르쳐준 그대로였다." (p314) 지난한 세월 끝에 아룬다티 로이는 자신의 인생이 향하는 바가 사실은 지옥같았던 어머니와의 삶과 그녀의 교육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의 역할은 달랐다. 나는 글쓰기에 헌신한 사람이었다. 나는 작가일 뿐 지도자나 활동가가 아니었다. 따라서 '추종자들'이나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에 짓눌릴 순 없었다. 나는 인기가 없을 권리를 지녀야 했다. 수용 가능성의 경계를 시험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야 했다. 어디에도 끼지 않고 홀로 서 있을 용기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간디가 어떤 면에서는 선지자라 할 수 있으며 존경할 점도 많다고 생각했지만 간디주의자는 아니었다. 나는 비평가였다. 회의주의자였다. 아주 점잖게 표현하자면 그랬다. (p319)
어머니 메리 로이는 늘 딸에게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거친 말과 훼방을 일삼기도 했지만) 딸이 참여하는 활동에 대해 "물러서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p335) 카슈미르에 대해 다른 인도인과 마찬가지로 잘 몰랐고 똑같은 선전을 주입받았지만 그 선전을 믿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를 원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가 그들에게 억지로 들이대는 거지? 너무 추잡하잖아." (p359) 인도에 대한 자신의 견해도 밝힌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이 나라에 진짜 필요한 건 혁명인 것 같다."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p397)
계급과 봉건의 위계가 지속되어 온 인도라는 척박하고 비극적인 환경에서 살아내야 했던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 서로의 복잡한 감정들, 꼬이고 엉킨 분노들이 난무하는 이야기 속에서도 저 밑바닥에서부터 깊이 연결된 듯한 그들의 관계는, 다른 자전적 에세이에서는 찾기 어려운 날것의 감동을 준다. 둘의 인생 서사에서 인도의 현대사를 처절히 느끼게 되고 어찌 보면 특수한 인연에 대해, 서로를 적수로 여기고 평생을 싸워왔던 그 모녀의 기막힌 인연을 곱씹게 된다.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이면서도 소설적인 재미까지 주는,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그날 밤 내가 받은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한 사람은 너다. 그동안 우리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이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평생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은 끝에 마침내 그녀의 장벽을 뚫은 것이다. 가슴 가득 행복감이 밀려드는 동시에 어린 시절의 그 차가운 나방이 내려앉았다. 나는 그녀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엄마는 저에게 세상에서 제일 특별하고 멋진 여성이에요. 마음 깊이 사랑해요. (p428)
이 책의 원래 제목인 'Mother Mary Comes To Me' 는 비틀즈의 노래 <렛 잇 비>의 첫 소절에 있는 말로 원래 'Mother Mary'는 폴 매카트니의 어머니 메리 매카트니와 성모마리아를 동시에 의미한다고 한다. 아룬다티 로이의 어머니 이름도 메리인데 재미있게도 이 책 제일 앞 안 표지에 이런 헌정사가 쓰여 있다. "렛 잇 비"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메리 로이를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