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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저 -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posted Nov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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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이상헌 저

생각의힘

2025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766591

 

 

벨기에 영화 <로제타>를 소개하면서 이 책은 시작된다.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젊은 여성 로제타가 공장에서 해고가 되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가운데 자격 요건이 되지 않아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게 된다. 집은 버려진 캠핑장이고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이라 술병만 뒤지고 다니는 절박한 상황에서 그녀에겐 일자리만이 구원이다. 다급한 마음에 유일한 친구를 배신하고 그의 일자리를 빼앗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술에 취해 뒹굴다가 의식을 잃은 것을 발견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가스 밸브를 열었는데 가스가 없다. 가스를 사러 나가지만 가스통이 무거워 들지를 못하던 차에 갑자기 나타나 가스통을 들어준 사람은 바로 그녀가 배신한 친구다. 로제타는 그제야 무너지며 서럽게 운다. 가스통도 들지 못해 죽지 못하는 삶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영화는 그렇게 끝나고 만다. 저자는 말한다. "로제타는 어디에나 있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도, 미국에도, 여기 한국에도 있다. 그리고 젊은 로제타도 있고, 나이 든 로제타도 있다." (p12) 그리고 의문을 던진다. "왜 일자리는 부족할까." 사실 정말로 부족한 것은 '좋은' 일자리다. 최저임금에 겨우 미치는 돈으로 고통과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일은 넘친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좋은' 일자리는 부족한가"라는 것이다.

 

1장과 2장은 경제 이론이 나와서 조금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 수요공급곡선이 나오고 애덤 스미스가 나오고 마르크스가, 케인즈가, 프리드먼이 나온다. 경제학에서 실업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기술된다. 실업이라는 현실에 대한 해석과 접근법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다르게 전개되어 왔고 이는 사람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노동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실업이란 결국 '고용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지만 고용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용의 형태다. 실업의 범주에 들어가는 고용의 형태가 무엇이냐를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돌봄노동이 있다. 이것은 통상적인 고용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지만,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연간 164억 시간에 이르고 이를 시간당 최저임금으로 환산하면 국민총생산의 9%에 달한다고 추계하고 있다(p67). 따라서 이제 '고용'의 의미는 '일(work)'로 확장되어야 하고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만이 지금의 일자리 정책의 방향을 보다 현실에 가깝게 둘 수 있는 길이다.

 

일자리는 월급봉투에 쓰인 숫자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2017년 미얀마 국경 마을에서 총성이 울렸다. 마을은 불타고 수천 명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방글라데시로 넘어갔다. 로힝야족의 이야기다. 이들에 대한 난민지원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으나 방글라데시에서 받아는 주되 고용은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나머지 현금 위주로 많은 돈이 투입되었다. 난민들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낮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다. 난민의 삶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찾기 위해 미국의 연구진과 세계은행이 실험을 했다. 전원에게 동일한 현금 지원을 하되 한 그룹에게는 일을 하도록 요구했다. 여성은 주로 돌봄과 관련한 일이었고 남성은 건설, 장사, 농사가 주였다. 굳이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노동은 손해일 수 있다. 그러나 일은 삶의 질을 높였고 정신 건강, 인지 능력, 위험 대응 능력 등에서도 압도적으로 나은 결과를 보였다. 즉 일 혹은 노동이라는 것은 소득뿐 아니라 광범위한 후생적 이유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p83).

 

일자리를 잃는다는 의미는 소득 상실뿐 아니라 물리적 정신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사망의 확률도 높인다. 전염효과도 강해서 가정을 위태롭게 하고 아이들의 교육과 성장에도 위험을 준다. 그 여파는 공동체와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따라서 일자리의 다층적이고 포괄적인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 노동시장일수록 '좋은' 일자리가 더 적게 공급된다. '좋은' 일자리의 사회적 가치는 '기여적 정의(contributive justice)'를 고려하여 자리매김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회 구성원이 사회 공동의 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 '일할 권리'를 보장하여서 모든 이가 동등한 존중을 받으며 사회적 생산과정에 의미 있는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행위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이다(p105). 나는 이 대목에서 매우 동의한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노동이나 고용에 대한 폭넓은 시각이 가능해지고 또한 포함되지 않는 노동이나 고용까지도 포괄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4장부터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우선 임금과 최저임금, 일하는 대가인 임금은 경제학 책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수요와 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기업은 노동을 최대한 사용하려 하고 노동자는 일한 만큼 제대로 받으려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규합하여, 말하자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교섭력을 키우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많은 연구들에서 노동조합이 존재하고 '효과적으로' 작동할 때 임금은 오르고 사회 전체적으로 불평등도 줄어들며 기업도 혜택을 본다고 증명하고 있다. 힘의 균형은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롭다(p145). '너무 높은 임금 때문에' 기업이 망하고 나라가 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기에서 반대의 측면을 본다면 최저임금의 문제가 있다. 20세기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프리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 노동계급)의 시대라고 가이 스탠딩은 말했다(p153). 실업 상태가 아니라도 고용 형태가 전반적으로 불안하고 위태로운 상황임을 의미한다. 최저임금은 이러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도입 추세가 높지만 일자리를 희생시키지 않고도 저임금 소득층의 전반적인 소득이 늘어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운용을 잘해야 한다는 측면도 있다. 이는 '최저임금' 자체가 애초에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에 대한 쟁점은 항상 뜨겁다. '좋은' 일자리는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서도 안 되고 너무 짧아서도 안 된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왔고 우리나라만 해도 한때 3,000시간에 달하던 연간 노동시간이 2023년 현재 1,872시간까지 단축되었다(p188). 장시간 노동은 건강 측면에서나 생산 측면에서나 비경제적이지만 개별 기업이 각자 움직일 경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법 등으로 규제를 하게 된다. 이 이면에는 단시간 노동과 보이지 않는 노동의 증가라는 그림자가 있다. 노동시간의 주제는 그래서 어렵다. 시간의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일을 잘 나누어 보이는 곳의 일로 드러나게 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기술의 변화에 따른 일자리의 변화도 문제다. 요즘처럼 AI가 급작스럽게 발전하여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는 더 중요한 과제다. 기술이 변화하는 만큼 일하는 사람에 대한 투자와 지원도 중요하다. 그래야 기술 변화가 '모든 일자리의 업그레이드'를 가져온다(p245). 결국 선택의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1,0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사례와 현대의 실증근거 모두 한 가지 사실을 더없이 명백하게 보여준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광범위한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전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되느냐 아니냐는 사회가 내리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선택'의 결과다." (p245)

 

이제는 어디에서나 필수적이지만 민감한 주제가 되어 버린 이주노동에 대해서도 간략히 얘기한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두려움에 관한 주장은 대부분 근거가 없는 내용이고 이로 인한 차별 또한 부당하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은 결국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예를 들어, 산업재해의 위험을 이주노동자에게 전가한다면 전체적인 산업재해가 줄지도 않을뿐더러 그러한 인식이 우리에게 위험으로 온다. 임금을 차별한다면 결국 내국인 저임금 일자리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주노동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면, 같이 일하고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전체 글을 정리하면서 여러 내용을 제언한다. 국가와 사회는 사람들에게 '일할 권리'를 주고 일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 인정하고 장려해야 한다는 것, 일하고 싶은 사람들의 권리가 부정당하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일자리 친화적인 기술정책과 산업정책이 필요하다는 것, 나쁜 일자리를 줄이기 위한 정책 즉 최저임금, 노동시간, 산업안전, 고용 안정 등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 등을 적극적으로 말한다. "좋은 일자리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과정이겠지만, 이러한 사회적 대화야말로 우리가 가진 최고의 '과학'이다."(p309) 결국 성숙한 사회로서의 대화와 조율이 이 일을 가능하게 한다.

 

복잡하고 난해한 현실과 이에 못지않은 해결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오랜 기간 국제노동기구에서 전 세계적인 노동시장을 살펴온 저자의 해박한 분석과 제언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고용에 앞서 노동, 일자리, 사람, 기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나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도 절감하게 한다. 그저 여기에서 몇 줄로 요약한 내용만으로는 이해하기에 충분치 않으리라 예상한다. 꼭 한번 일독해볼 것을 권한다. 무엇보다 '일자리'라는 주제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좋은 관점을 장착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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