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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우면서 단단해서 든든한 사람 - 정재곤

posted Feb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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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군욱)

 

부드러우면서 단단해서 든든한 사람 - 정재곤
 


이달 인터뷰 주인공은 새민족교회 안수집사 정재곤 회원입니다. 저와 정재곤 회원은 청년시절부터 30년이 넘도록 함께 활동한 사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재곤  회원은 말이 좀 느리면서 잘 웃습니다. 하나도 안 웃기는 점잖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우리들끼리 있을 때는 배꼽을 잡도록 웃게 할 때가 많은 사람입니다. 
 
30년 전 새문안 교회가 싫어하던 ‘운동권 청년회’ 문을 두드렸던 교회남자직원


Q: 당시 새문안 청년회는 운동권으로 낙인이 찍혀 일부 교회장로님들이 탐탁찮게 여기던 때인데 어느 주일 청년회 집회 시간에 교회남자 직원이 찾아 왔어요. 마침 제가 맞이했는데 놀라서 경계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 분이 정재곤 이었었지요? 청년회 문을 두드린 계기가 있었나요?

A: 그때 대학 동아리에서 마당극을 하기로 했는데 대본을 구할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평소 청년회활동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청년회에 가면 대본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간 거지요. 대본은 못 구했지만 청년회에 등록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요즘표현으로 하면 썸을 타고 있던 같은 새문안 교회직원 박연미도 함께 청년회에 등록을 하게 되었지요. 청년회에서 <성경의 형성사>를 공부하면서 푹 빠져들게 되었어요. 짧은 시간에 청년회에서 말하는 가치들을 받아들이고, 추천도서를 다 찾아 읽고 공부하던 시절이었어요. 청년회 열심회원이 되어 새문안 청년회가 교회로부터 해체당하고 일 년 동안 마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 총무로, 그 후 2년간 회장을 맡았어요. 새문안 교회에서 버티다가 이근복 목사님을 따라 다함교회로 모이고, 다함교회와 새민족교회가 합해져서 지금 새민족에 이르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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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떻게 새문안교회 직원이 되었나요?

A: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서대문구 천연동 달동네에 살았는데 동네에서 형편 어렵고 어느정도 성적이 되는 학생들은 그 당시 실업계 학교를 많이 지원 했습니다. 저도 자연스레 공고를 지원해서 한양공고 자동차과를 다니고 고3때 정비업체에 취업을 했는데, 힘든 현장 작업에 비해 보람도 떨어지고 미래가 없고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장 내 학력차별도 있고, 대학에 진학한 선배가 부럽기도 해서 산업대에 입학을 했어요. 대학 1학년 때는 음악다방과 학사주점을 즐겨 찾는 생활을 했어요. 군 제대 후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회사와 학교를 병행 할 수가 없어서 새문안교회에서 인쇄실, 보일러실, 숙직업무들을 하면서 안정된 월급을 받았어요. 당시 학생등록금으로는 충분했어요. 복학 후 문학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시를 쓰고 토론을 하며 80년대의 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에도 조금씩 참여하였지만, 직장과 학교생활을 병행하는 형편이라 학생운동에는 적극 참여하지는 못했어요. 새문안 청년회주보, 성문밖교회 주보들을 관심 있게 보았어요.

 


새문안청년회주보1_resize.jpg

 

 

당시 주보는 편집회원들이 손 글씨로 써서 복사를 해서 만든 것입니다. 주보에서 회원들의 채취가 많이 느껴지지요. 새문안 청년회가 해체 되자 주보며. 회의록이며 기록들을 교회에 둘 수 없어 우리 집 창고에 고이 모셔두었다가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곰팡이 핀 그 자료들을 현관 앞에 잔뜩 쌓아두고 있습니다. 정재곤 회원이 그 주보 글들을 읽고 자기 삶을 바꾸는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고 하니 그 곰팡이 뭉치가 사람을 바꾼 것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사업을 망해 보니 상대방을 이해하는 힘이 생기고 겸손도 배워

Q: 지금 어떤 일을 하시는지 소개 해주세요.

A: 자동차부품을 만들어서 현대, 기아차 협력회사에 납품하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원래 전공이 자동차정비였고 대학에서도 기계과를 다녔어요. 졸업 후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인 중소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3년 만에 부도가 났어요. 그때는 정말 어려웠어요. 직원들 월급은 좀 늦어지더라도 꼭 챙겨주지만 내 월급은 못 챙기니 살림이 어려웠지요. 3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사업을 하면서 회사를 망해보며 단련이 되었어요. 어떤 때는 백수생활도 하면서 어려운 사람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잘 나가다가 실패한 사람에 대한 이해도 하게 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힘도 생기고, 겸손을 배우게 되었어요.

Q: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사업을 하면 현실과 이상사이에 어려움은 없나요?

A: 업체가 작다보니 직원들과 갈등이나, 외국인 노동자들과 관계도 별 어려움이 없는 편이예요. 요즈음은 근로기준법이 잘 되어있어요. 90년대만 해도 휴가나 월차 같은 건 인정도 못 받던 시절이었지만 요즈음은 그런 것들을 안 지키면 사업을 할 수가 없어요. 현재는 산업연수생 제도라든가 이런 시스템이 완벽해서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시위 때  잡혀간 동료 직원을 데리러 경찰서에 갔다가 사귀게 된 아내 

Q: 부인 박연미 회원과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A: 새문안 교회에서 일할 때 아내 박연미도 같은 교회 직원이었어요. 우리 둘 다 청년회 활동에 관심을 가지다가 함께 청년회 들어갔어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후 매일 저녁 시위가 벌어졌는데 그때 청년회가 같이 참가 했잖아요? 그날도 집회에 갔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최루탄이 터지 거예요. 모두들 매워서 쩔쩔 매고 있을 때 누군가 박연미에게 랩을 건네주었어요.(그때는 최루탄에 대처하는 방법이 눈 밑에 치약 바르기, 랩으로 얼굴 감싸기 등 비법들이 있었어요.) 받아든 랩을 뜯어 주변에 있는 시위대들에게 나눠주던 박연미는 주동자로 몰려 용산 경찰서에 잡혀갔어요. 한 사흘 정도 조사를 받고 풀려나게 되었는데, 박연미집이 강화도라 데리러 올 가족이 마땅치 않아 제가 인도 받으러 갔어요. 그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사귀게 되었지요.

 

 

박연미+정재곤)_resize.jpg

 


Q: 결혼이 정재곤 회원의 삶 에 큰 의미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A: 제가 가정사가 좀 복잡해서 청년시절 늘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청년회에서 기독교 운동을 만나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제 개인 고민은 치유가 되었어요. 그리고 결혼은 제게는 독립이었어요. 가정사에서 벗어나 독립된 성인으로 설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큰 의미가 있었어요.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면서 행복했어요.
 


사업이 어려울 때나 아내가 투병 할 때 ‘패밀리’가 되어 준 새민족 교우들 덕분에 견딘 시간들 

Q: 박연미회원이 암에 걸려 투병했고 몇 년 전에도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을 했지요?

A: 아내가 유방암에 걸렸을 때 제 사업도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던 때였어요. 두 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찾아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맞게 된 거지요. 회사는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고 주말부부로 살다보니 아픈 아내 투병하는데 온 신경을 쏟지 못했어요. 지금도 그것이 참 미안해요. 그리고 몇 년 전 아내가 여러 가지 활동을 열심히 하느라 건강이 상해서 또 한 번 고생했는데 그때는 다행히 사업이 안정되어 아내 뒷바라지를 좀 더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어요.

박연미 회원이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온 교우들이 특별기도회를 열어 울며 기도를 하고, 항암치료를 할 때는 환자가 입맛도 없고 혼자 밥 먹기 힘들다고 교우들이 당번을 정해서 같이 밥을 먹고, 반찬을 만들어다 주고, 몇몇 열심(?)교우들은 밝은 분위기에서 투병하라고 온 집안 도배를 해주는 등 온 갖 사랑을 쏟았었지요.
두 번째 건강이 상했을 때 교회에도 못 나오고 있는 박연미 회원을 위해 교우들이 반찬을 만들어 와서 한 보따리 싸 보낸 적이 있는데 정재곤 회원이 그 보따리를 받아들고 눈물이 핑 돌아
“다 갚을게, 다 갚을게~”
라고 중얼거리듯 이야기하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Q: 아내 박연미회원은 새민족교회 장로이면서 정의평화기독인연대나 촛불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집회나 연합예배 때 사회를 맡아하는 등 에큐메니칼 활동을 열심히해서 유명하지요. 열심히 활동하는 아내를 둔 남편은 어떤 사람인지, 아내가 더 열심히 활동하는 것에 대해 불편하지는 않은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네요?

A: 아내는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소극적인 사람이었는데 제 손에 이끌려 새문안 청년회에 나가게 되었지요. 결혼 후 사업이 어렵게 되자 맞벌이를 고민했어요. 그런데 제가 말렸어요. 저는 어릴 때 일하시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는데 그때 참 외로웠어요. 그래서 수입이 적더라도 아내가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고 했어요.
저는 회사가 지방에 있고, 회사 일에 올인 해야 했기 때문에 기독인연대 초기에는 참여 했지만 그 후로는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어요. 그래서 아내가 기독교 평신도운동에 역할을 하기를 바랐어요.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되면서 아내는 늘 두 사람 몫의 활동을 한다고 말하곤 해요. 아내는 암 투병 후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어요. 삶이 소중하고, 시간이 소중한 것을 깨달아 더 열심히 의미 있게 적극적으로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더 용감해지는 것이 느껴졌어요. 방통대를 다니면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상담공부를 하며 개인적으로나 에큐메니칼 활동에서 차분하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그런 아내를 보면 흐뭇하고, 존경스럽지요.


그럴 줄 알았어요. 가까이서 두 사람을 본 바로는 아내가 에큐메니칼 활동을 더 열심히 한다고 해서 불편하다거나, 아내가 더 유명(?)해서 남편으로서 자격지심(?) 있다거니 하는 일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을 것이라 짐작했어요. 그런데 아내인 박연미 회원에게 그의 몫까지 두 몫을 하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에 두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느껴지면서 갑자기 많이 반성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Q: 정재곤 회원이나 박연미회원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교우들이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베푼 것은 그만큼 두사람이 새민족교회에서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재곤 회원에게 새민족교회는 어떤 의미인가요?

A: 생각해보면 새민족은 30대부터 현재까지 제 삶의 절반을 넘어서는 추억과 행복 그리고 고통스러운 40대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냈던 공간입니다. 아이들을 낳고 아버지가 되고 또한 아이들도 새민족에서 자라며 행복을 가꾸는 곳입니다. 제 사업의 실패로 경제적인 고통을 감내해야 하던 시절이나, 아내의 투병생활로 어둡고 괴로운 시간을 견뎌야했을 때 새민족 교우들이 보여준 사랑 덕분에 견디어 냈지요. 새민족 교우는 그 후로 제게는 ‘패밀리’가 되었지요. 앞으로도 새민족은 저의 삶과 늘 함께 할 것이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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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하고 포용력 있는 중년의 삶이 되기를 소망

Q: 61년생이시니 이제 50대를 끝내는 나이가 되었는데요, 앞으로 삶에 대해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A: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책읽기를 끊었어요. 실망스럽고 좌절감이 들어 뉴스가 보기 싫어져서 경영서적이나 고전 같은 책들만 읽었는데, 그러다보니 너무 오랫동안 책읽기를 멀리했다는 반성이 들어 다시 책 읽기를 시작하고 있어요. 책읽기를 통해 삶을 성숙시키는 노력과 저의 조그마한 재능인 글쓰기도 좀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에큐메니컬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성숙하고 포용력 있는 중년의 삶이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정재곤 회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날의 꿈이 나를 밀어간다’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청년시절 가졌던 가치관을 져버리지 않고 자신이 선 삶의 자리에서 조용히 꾸준히 실천하며 살아가는 정재곤 회원은 부드러운 성품덕분에 유연하면서도 핵심을 잃지 않는 단단함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는 그와 그의 아내와 그 집 아이들과 오랫동안 같은 꿈을 꾸며 인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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