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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남도 순례길 5 – 홀로 걷다. (생)로병사(老病死)를 만나며

posted Nov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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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남도 순례길 5 – 홀로 걷다. (생)로병사(老病死)를 만나며 

 

 

# 지난 이야기 

2021년 4월, 세월호 7주기 추모 진도 탈핵도보순례를 시작으로 18번 국도 40km, 

6월, 18·2·19번 국도 해남~강진~장흥~보성~벌교~순천~광양~하동~구례 241.1km,

7월, 18번 국도 보성~순천~곡성~구례 104.5km

8월, 마지막 18번 국도 해남~진도 36.7km를 걸었다. 

 

☆ 해남~진도 완주 

/2021년 10월 4일 월 소정삼거리~원문~용암리~장포~진도 제2 대교~녹진시외버스터미널 11km 

 

새벽에 잠을 설치고 눈을 뜨니 아침 8시 반. 월요일이면 월성 핵발전소 인접지역 이주대책위 연대시위 날인데 청명의 알림 문자가 없었다. 후다닥 챙겨서 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 청명과 통화가 됐는데 개천절 대체 공휴일로 시위가 없는 날이란다. 출퇴근하지 않는 자에게 공휴일 개념은 없다. 작가인 나는 하루도 쉬지 않고 글쓰기 노동을 하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4대 보험은 고사하고 주5일제 근무에 기본급여와 휴일수당 같은 걸 받고 싶다. 대체 쉰다는 건 뭘까? 

 

18번 국도 옆 801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일제강점기에 국내 최대 강제 동원되었다는 옥매광산 이정표가 보였다. 같은 거리인 2.5km에 ‘118인 희생광부 추모비’도 있다고 하니 땅끝 해남도 일제강점의 압제를 피해갈 수 없었나 보다. 

원문길에서 농로로 접어들어 한참 동안 키를 넘는 잡초를 헤치며 가다 보니 군데군데 높이 30cm쯤 되는 뻘건 식물들이 있었다. 20년 전 시화호 다큐멘터리 제작할 때 염수와 담수가 만나는 지점에서 자라는 염생식물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DSC06810나무도-외로운가요_resize.jpg

나무도 외로운가요

 

 

선두리에서 18번 국도와 내가 걷는 농로가 아래 위로 만났다. 그리고는 해남우수영 여객선 터미널이 건너편에 있는 바다가 보였다. 백련재에 와서 처음 보는 바다였다. 진도대교를 건넜다. 울돌목 푸르른 바다 위로 건너편에 케이블카들이 지나갔다. 쇠줄에 매달린 상자에 앉아서 가는 것보다 다리 위로 걸어서 섬으로 가는 게 더 멋졌다. 

 

마침내 지난 4월, 관지와 청명과 함께 도착해서 점심밥을 먹었던 진도휴게소까지 갔다. 셋이 왔던 곳에 반년 만에 혼자 도착했다. 봄에 갔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까 하다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려돼 그 아래 녹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캔커피를 사서 빈속에 꿀꺽꿀꺽 마셨다. 3분 후 도착한 13시 40분 버스로 우수영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우수영 성당을 지나쳤다. 스치는데도 건축양식이 단순하면서도 범상치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갔다. 

문이 열려있었다. 사선으로 된 천장과 오크 원목으로 된 의자와 제단. 예수의 일생을 담은 조형물과 단순한 스테인드글라스. 제단 상부에서 내리 들어오는 햇빛. 국화 화분 받침조차도 목공예품인 품격. 공기 중에 인력이 있는 듯 저절로 맨 앞으로 나아가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기도했다. 사랑하는 이들의 평화와 평안과 사랑을 기원했고 내 죄에 용서를 구했다. 소원을 빌 순 없었다. 하찮은 눈물이 일어서서 나가려는 발걸음을 자꾸만 잡았다. 일어서려다 앉고 나가려다 또 들어가게 하는 성당이었다. ‘우연히 만난(逅)’ 우수영 성당은 순례 후 찾아보니, 석 달 전에 고인이 되신 후리(逅理)건축 ‘불편하게 살기-채나눔 건축론’의 이일훈 건축가 작품이었다. 

 

우수영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비포장 농로를 따라 걸어갔는데 돌아가는 명량로는 시원하게 뻗어 있었다. 세 시간 걸어갔다 십 분 만에 돌아왔다. 

이것으로 진도 금골교차로부터 구례 화엄사까지 18번 국도 도보순례를 모두 마쳤다. (지도 상 18번 국도는 277.1km인데 나는 국도를 중심으로 일반도로나 자전거길이나 인도나 농로로 다니고 왕복 걸은 구간도 있어 거리에 다소 차이는 있다.)

 

 

DSC06840우수영-성당_resize.jpg

불편하게 살아야 수도(修道)다, 故 이일훈 건축가를 추모하며

 

 

☆ 도토리 주우러 

/2021년 10월 11일 월 백련재 문학의 집~나범리~평활리~대흥사 11km 

 

백련재 문학의 집에서부터 걸어 나갔다. 

녹우당 길 코스모스는 여전히 피어 있었지만, 왼쪽으로 나 있는 대흥사 자전거길을 따라 걸었다. 풍작인 벼들이 논에 가득한 가을이라 그런지 만물이 평화로워 보였다. 

삼산면 축사 안 소들의 표정이 있는 눈과 눈을 맞추었다. 독일 최초의 소 양로원 ‘호프 부텐란트’ 영화 <낙원>의 방목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런대로 축사가 넓고 깨끗해 보여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길에 배를 깔고 엎드려있는 노란 줄무늬 고양이를 만났다. 근처 토사물로 보아 상한 음식을 먹은 듯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쭈그리고 앉아서 쳐다보자 고양이는 아픈 몸을 질질 끌고 풀숲으로 들어갔다. 

 

 

DSC07334-(2)아픈-고양이_reszie.jpg

아픈 길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길고양이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에 120번에 전화해서 해남군청으로 연결해 고양이 구조를 요청했다. 그리곤 계속 지켜볼 순 없어 걸음을 옮겼다. 검붉은 밭 흙에는 뭔가가 또 심겨 막 자라길 꿈꾸고 있는데 한쪽에서 고양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해남군청에서 전화가 왔다. 신고한 현장에 왔는데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픈 고양이가 그새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여름부터 로드킬을 볼 때마다 신고했는데 확인 전화가 온 건 해남이 처음이었다. 

 

농익은 벼는 노랗게 쓰러져가고 있었고 멀리 파랗고 빨간 창고는 호안 미로의 그림처럼 감각적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굵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우산이 배낭에 준비돼 있었지만 평활리회관 앞 정자에 몸을 피했다. 가을비를 맞는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죽어감과 죽음과 새로 움트는 생명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DSC07346-들판의-미로_resize.jpg

들판의 미로 

 

 

비가 잦아들 즈음, 낌새가 이상해 뒤를 돌아보았다. 

길가에 한 남자 노인이 보행보조 차(실버카)를 세운 채 내 쪽을 향해 서 있었다. 양철 울타리에 가려 주요 부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소변을 보는 중이었다. 노인이란 수치를 모르는 존재인가? 남자란 방뇨가 당연한 구조인가? 마을 앞 찻길까지 굳이 나와서 건너편 정자에 앉아있는 젊은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뭔가를 싸는 심리는 8, 90대 남자의 긴박뇨인가 성욕인가? 일방적인 폭력에 그냥 당할 수만은 없었다. 나는 일어서서 뒤를 돌아 노인을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굵은 기둥 옆으로 그를 찍었다. 그는 서서히 추스르고 보행보조 차를 끌고 되돌아갔다. 만약 그가 젊었다면 나는 대낮인데도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죽음을 자연의 순환으로 묵상하던 나에게 늙어감은 그렇게 추접스럽게 다가왔다. 품위의 유무가 드러나는 순간은 그렇게 급박하거나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가 아닐까. 백번 양보해서 노인은 눈이 잘 안 보였을까? 늙어보지 않은 다음에야 늙음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부디 품위 있는 노인으로 늙고 싶다. 

 

나무 이정표를 보니 ‘땅끝천년숲옛길’ 중 3코스 ‘다산초의교류길’을 걷는 중이었다. 초의선사의 차와 시서화 3절의 재주를 사랑했던 다산 정약용과 다산의 학식과 인품을 사랑했던 초의. 유배지 강진의 다산을 찾아 해남의 초의가 오고 갔을 1800년대의 그 길을 200년 후의 내가 걷고 있었다. 

용전마을 지나 달마산 미황사, 금쇄동, 고산윤선도유적지 갈림길에서 대흥사까지 가는 길은 수월했다. 

 

대흥사에 들어가 차도가 아닌 1.5km 산책로를 택했다. 산책로 끝 구 주차장에는 도토리들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중 두 알을 골랐다. 도토리 두 알을 주우러 11km를 걸어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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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 도토리

 

 

☆ 땅끝천년숲옛길 2코스 미황사역사길(1)

/2021년 10월 18일 월 대흥사~봉동계곡~구산제~현산면주민자치센터 12km+대흥사 입구~일지암 5km=17km

 

화창하다!가 무엇인지 절로 알 수 있는 날씨였다. 

대흥사 마지막 주차장에 주차하고 좁은 찻길을 거슬러 내려갔다. 

‘땅끝천년숲옛길’ 오도재삼거리와 덕흥리로 가는 이정표가 나왔다. 드디어 지난주부터 내 호기심을 발동시키던 길로 들어섰다. 산길이었지만 오도재삼거리 0.5km와 덕흥리 2km라는 짧은 거리가 도전해봐도 되겠다는 의욕을 북돋워 주었다. 

땅끝천년숲옛길은 ‘미황사 창건설화가 있는 땅끝에서 미황사 구간의 총 52km의 옛길을 정비하여 국토순례 및 도보여행을 위한’ 길이다. 산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 천년 전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돌로 잘 다진 후손들의 노력으로 그 길이 잘 복원되어 참으로 고마웠다. 500m를 올라가니 ‘땅끝마을 37km’ ‘오도재’라고 쓰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길’ 이정표가 있었다. 

 

대흥사에서 오도재를 지나면 나오는 덕흥리는 돌담이 아기자기한 마을이었다. 커다란 두 그루 나무가 마을 입구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었다. 조금 내려가다 보니 김장철 인기인 절임배추 농업회사법인 건물이 있었다. 일 년에 한철 북적일 그림이 그려졌다. 아직 해남의 배추는 밭에서 푸르르게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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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림리 길들

 

 

덕흥리에서 4.5km 봉동계곡을 찾아가는데 저수지가 보였다. 봉림저수지를 끼고 가니 길섶 숲 통나무에 버섯 종균을 넣어 재배하는 중년 남자들 몇이 있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굴삭기가 길을 통째로 막고 서 있었다. 그제야 발길을 돌렸다. 거기서 다시 대흥사로 돌아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가다 보니 3.5km 봉동계곡 이정표가 나왔다. 계속 가보았다. 

 

해남땅끝에서 30km 지점에서 임도로 들어갔다. 땅끝천년숲옛길 이정표와 나란히 있는 산자락길 이정표에는 구산제 윗길, 구산제 아랫길, 구산제 뒷길이란 예쁜 이름이 쓰여 있었다. 재를 또 넘으니 구산제가 보였다.

그 옆에 편백림이 있는 봉동계곡이 있었다. 화장실은 폐쇄되었지만 나무탁자와 의자에서 쉴 수 있었다. 물이 없는 계곡은 메말라가는 내 육신과도 같았다. 하필이면 전날 내 몸의 변화가 마음의 문제가 아닌 나이 듦이란 걸 알아챘다. 생로병사는 누구에게나 각자 처음 해보는 것이다. 뭐든 처음 겪을 때는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지금까지 다시 젊어지고 싶은 적이 없었다. 불안하고 빡빡하던 젊은 시절보다 여유로워지고 이해심이 생기는 나이 듦이 좋았다. 삶의 경험이 늘수록 지혜도 조금씩은 더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육신의 노쇠함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언니들로부터 말로만 듣던 증세가 내 몸에도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걸으면서 점점 건강해지고 있어서 체력은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호르몬 감소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주차장으로 통하는 콘크리트 다리 위에서 보니 계곡에 시퍼렇게 세 칸짜리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 마을청년회에서는 정자와 평상과 탁자와 텐트와 주차비를 책정해 놓았다. 여름이면 물을 고이게 해서 피서객들로부터 요금을 징수하는 모양이었다. 계곡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흉물스러운 구조물을 제공하다니. 그 시퍼런 틀 아래 시멘트에 묻혀 숨이 막힌 자갈과 돌들의 신음이 들리는 듯했다. 자본주의가 훼손한 자연의 참상이었다. 서울의 화려한 청계천에서 자연미를 느낄 수 없듯이. 

하지만 그렇게 조성을 해 놓아도, 자연의 역습인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지구 관광은 지금 휴업 중이다. 인간이 이 경고를 알아들어야 자연과 상생할 텐데 자본의 탐욕이 과연 멈출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고압 송전탑 바로 옆에는 축사와 비닐하우스와 인가가 있었다. 전자파에 시달릴 말 못 하는 소들과 알게 모르게 병이 생길 마을 주민들의 고통을 그들 자신은 알고 있을까? 문득 송전탑이 먼저 생겼을까, 집과 축사가 먼저 있던 걸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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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계곡과 숲속 송전탑

 

 

황산리길과 봉동길 중 황산리길로, 현산남초등학교와 주민자치센터 중 자치센터로. 갈림길에서마다 선택해야만 했다. 인생이 그렇듯이. 다섯 시간 만에 화장실에 들렀다가 대흥사 가는 버스를 탔다. 

 

대흥사 입구에서 다시 산책로를 걸었다. 

과연 전설 속 정관존자가 발견한 혈맥 자리답게 대한불교조계종제22교구 본사 대흥사는 계곡도 물이 맑고 흐름도 그치지 않아 심심울창(深深鬱蒼)했다. 가다가 뒤엉킨 나무뿌리 뭉치를 보았다. 인연이든 관계든 마구 뒤섞을 게 아니다. 정연하고 진실하지 않을 바에야 비우고 홀로 걷는 게 낫다. ‘올바르고자 하는 욕망은 천박한 마음의 징조다’라고 알베르 카뮈는 말했지만, 나는 그저 순리를 따르고 싶을 뿐이다. 흘러 흘러 해남까지 왔듯이 내 인생이 여기서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대흥사 목적지는 일지암이었다. 

일지암은 초의선사가 만 사십 세던 1826년부터 선종하신 1866년까지 40년간 계셨던 곳이다. 지난주 금·토 초의문화제를 했지만 지척에 거주하는 나는 망설이다가 끝내 가지 않았다. 북적이는 연중행사와 내 정서가 맞지 않을 거라 미루어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백련재에서 가장 예뻐하던 노랑 아기고양이가 목요일에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는 소식에 슬픔을 가눌 수 없었는데, 사흘만인 일요일 오후에 우연히 장례를 치러 주고서야 기운이 회복되었다. 노랑이도 어쩌다 백련재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먹을 걸 주니 집고양이처럼 되었지, 따지고 보면 길고양이 새끼니 길에서 죽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생(生)에서 늙음(老)과 병(病)을 거치지 않고 너무 일찍 죽음(死)으로 가는 건 애석하고 비통하다. 

 

언제 가도 고요한 일지암에는 지난 8월에 법강스님이 만드시던 수곽이 완성돼 있었다. 어디에 가도 뭔가를 자꾸만 채우는 사찰. 그래도 가보는 사찰마다 진행 중인 거대한 공사에 비하면 손수 만든 수곽은 정성이 돋보인다. 

일지암은 초의선사 때문에 가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금륜이가 보고 싶어 가곤 한다. 

금륜이를 봄으로 그날의 도보순례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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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암 금륜이

 

 

☆ 땅끝천년숲옛길 2코스 미황사역사길(2)과 에루화헌 

/2021년 10월 25일 월 현산면주민센터~매화리~월송리~미황사 9km

 

미황사 가는 길은 세 번째인데도 설렜다. 

현산면주민센터 뒤로 난 길을 걷는데 찻길에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정미소로 들어가는 차들이었다. 짐칸에는 커다란 쌀자루들이 그득했다. 일 년 농사 대풍이니 그보다 더 배부른 일이 있을까. 덩달아 여유로워진 발걸음에 시등마을에서 달마로 매화마을로 가는 어귀에서 웃음이 팡 터졌다. 아주 근사한 담과 소나무가 있는 집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불러만 주시면~ 평양이라도 갑니다’

호출택시 광고였다. 실제로 통일되고 북한에서 해남 택시 한번 불러주면 경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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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공항 이전 반대

 

 

매화리회관 앞에서 잠시 앉아 쉬었는데 ‘결사반대 · 군공항 해남 이전 절대 안돼’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와 같은 내용의 ‘결사반대 · 군공항 이전 밀실논의 해남군민 분노한다’ 현수막을 지난 9월 초 해남 읍내 가는 길에서도 보았었다. 

군사공항을 염두에 두었다는 설이 난무하던 제주 제2공항 건설 중단이 결정된 지 석 달, 보도기사를 찾아보니 광주 군공항 이전이 2017년부터 무안, 신안, 영암, 해남 등 후보지를 놓고 아직도 분분하고 있는 상태였다. 해남군청에 물어보니 해남은 군민들 반대로 설명회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암~ 그래야 시인 고정희와 김남주의 고향 해남이지. 

 

달마로에서 미황사 쪽으로 가기 직전 정류장이 하나 있었다. 

‘호박창고에서 정을 나눠요.’ 남도순례 내내 정류장 사진을 찍어 왔지만 그렇게 재치와 온기가 있는 정류장은 처음이었다. 서정마을에서 좌회전하자 성근 억새 너머 반짝이는 물이 고인 서정제가 나오고 조금 더 오르자 미황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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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창고에서 정을 나눠요

 

 

사찰순례 좀 해 봤다는 이들에게 해남을 얘기하면 조계종 본사인 대흥사보다 말사인 미황사가 더 좋다고들 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절로 소문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입장료가 없다. 어느 교회나 성당에서도 그렇듯이. 그래서인지 입구에서부터 종교시설스러운 편안함이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해 문화재구역 입장료를 받는 사찰은 2000여 개의 조계종 사찰 중 약 3%인 60여 곳이라고 한다.-출처 BBS-)

 

신라 경덕왕 8년(749)에 창건했다는 미황사에는 설화가 있다.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금인)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현 갈두항)에 닿자 의조화상이 이것을 소등에 싣고 오다가 소가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드러누운 산골짜기에 절을 지어 미황사라 했단다. 아름다운 소의 울음이 ‘미(美)’, 금인의 색이 ‘황(黃)’이라 미황사(美黃寺)라 한다고 한다. 

 

일주문에서 윤장대를 돌리며 지나갈 수 있는 천왕문을 지나면 자하루가 있다. 

자하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거대한 누각이다. 자줏빛 노을 자하(紫霞)는 전설에서 신선이 사는 곳의 노을이라는 뜻으로 신선이 사는 궁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서울 청와대 근처에는 자하문(紫霞門)이 있다.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 12암자를 거느리는 대찰이던 미황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고 1601년에 중창, 2008년에 삼창되었다. 보물 제947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에는 시선이 저절로 위로 가는 궁륭형 천장이 있고 대들보에 천불도가 그려 있다.

 

나는 달마선원으로 올라가 오층석탑 너머 바다를 보았다. 일지암에서 보던 바다가 더 가까이 있었다. 

 

미황사에서 갈 수 있는 길은 둘, 달마고도 17.74km와 땅끝천년숲옛길 1코스 땅끝길 15.4km이다. 하지만 시월 마지막 월요일 도보순례는 거기서 끝내야만 했다. 서둘러 갈 곳이 있었다. (두 시 버스를 기다리려다 마침 그곳에 오신 나주 수녀님께 달마고도 입구를 묻다가 함께 오신 분 차를 얻어 타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이틀 전인 토요일 제22회 미황사 괘불재 산사음악회가 있던 날 저녁, 북일면 흥촌리 두륜산 주봉인 투구봉 아래 ‘에루화헌’에서 내가 보고 들었던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나는 그날 그곳에서 매우 신비로운 여인 둘을 만났다. 한 사람은 내 이름을 듣자마자 초롱초롱한 내 글을 읽었다며 나를 꼬오옥 안고 한참을 무언가 가슴으로 말하던 나무.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며 내게 미황사 괘불재에 대해 알려주고는 마지막까지 궂은 설거지 다 하던 송하(頌荷). 

 

서울을 떠나 있던 일 년 넘게, 바랄 수 없던 예술에 대한 목마름을 푹 적셔준 한 시간 반은 작년까지 미황사 괘불재에 모였던 사람들이 폐사에 가까웠던 미황사를 20년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신 금강스님을 보내고 아쉬움에 모인 자리라고 했다. 하지만 불교 내용 하나 없는 시와 노래와 연주와 춤으로 가득했다. 

그날의 시공간이 한국과 인도 사이 그 어딘가의 국적 불명 꿈과 같아서 나는 그 꿈에서 깨지 않도록 다음날 방에 틀어박혀 온종일 나무의 노래 ‘봄날의 새 이파리’ CD 아홉 트랙을 듣고 또 들었다. 나무의 음색과 발음과 호흡으로 들은 곽재구의 노랫말과 한보리의 가락과 악기들의 연주로 나는 산수유와 들국화와 민들레와 찔레꽃이 핀 강에서 마음을 풀어 별을 보다 첫눈을 맞았다. 노래를 듣다 창밖의 날벌레들이 첫눈인 줄 알고 문을 벌컥 연 적도 있었다. (뭔가에 심취하면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날 눈 뜨자마자 현산면에서 미황사까지 9km를 걸었다. 그리고는 미황사에서 부처님 제자의 길을 가기 위해 6년을 지냈던 송하가 해남을 떠나기 전에 다시 만나기 위해 에루화헌으로 갔다. 

잠시 송하를 만나고 보낸 후, 나무와 함께한 시간은 단번에 쓰기에는 너무 ‘되어(힘에 벅차)’ 지난 밤 꼬박 새워 여기까지 써서 마감하고 다음 회로 넘긴다. 

 

 

DSC07998-(2)미황사-오층석탑은-그-바다를-보았는가_resize.jpg

미황사 오층석탑은 그 바다를 보았는가

 

 

그런데 원고를 넘기기 직전, 나는 송하에게서 미황사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그래서 수요일 오후 온라인 강의를 마치자마자 길을 나섰다. 송하는 하루이틀 미황사 부도암에 있을 거라고 했었다. 나는 미황사가 마치 옆집이라도 되듯이 31.1km를 차로 달렸다. 미황사 일주문와 천왕문 사이 바위 밑 나뭇가지들은 대체 무슨 뜻인지, 천왕문 사천왕상은 왜 꽃미남들인지, 송하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중요한 질문이라고…….

 

미황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시 일주문과 천왕문과 자하루와 대웅보전과 응진당을 지나 달마선원 옆 도솔암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700m쯤 가니 부도전이 보였다. 그 옆에 암자가 있었다. 거기 같았다. 저만치서 늑대처럼 커다란 시커멓고 얼룩덜룩한 개가 다가왔다. 약간 움츠러들긴 했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개라면 날 물진 않을 거라 믿었다. 댓돌에 신발들이 있었다. 담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옆집 아이처럼 큰 소리로 불렀다. 

“송하~ 송하~”

 

잠시 후 현공스님이 나오셨다.  

스님이 송하는 몇 시간 전에 떠났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주셨다. 송하를 입력하려면 누군가를 삭제해야 한다. 인간관계도 최소한으로 비우고 있기 때문이다. 

송하를 만나지 못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바람처럼 가다가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인연이라면 또 만나겠지. 

스님께 개 이름을 물었더니 ‘달프(달마산 울프)’라고 하셨다.

미황사로 내려가는데 달프가 따라왔다. 내가 뒤돌아보면 풀을 뜯는 척하고 걸음을 옮기면 또 따라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배웅이나 호위해 주는 것 같았다. 

 

미황사 대웅보전으로 갔다. 

템플스테이 하는 청소년들이 쌓아놓은 황토색 방석들이 저무는 햇살을 받아 작은 탑처럼 보였다. 대웅보전 삼존불상 앞에서 자하루 왼쪽으로 지는 해를 보았다. 자하루 배면 편액에는 만세루(萬歲樓)라고 써있지만, 홍시빛 태양이 서쪽 섬 너머로 지는 하늘에는 역시 자하(紫霞)였다. 

 

 

DSC08124-(2)자하_resize.jpg

자줏빛 노을 紫霞

 

일곱째별-프로필이미지2.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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