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김희헌의 인문의 종교]

d4d7d5

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8 - 근본주의 망령

posted Sep 25, 2018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인문(人紋)의 종교-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hitlerCompo.jpg

 


근본주의 망령

 


해마다 9월이면 개신교 교단들의 총회가 열린다. 안타깝게도 진취적 정신보다 퇴행적 정책을 도입하는 곳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지난 한 세대를 지나오는 동안 한국교회가 더욱 보수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주일 장로교단들의 총회에서 비상식적인 결정들이 연달아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 뜨거운 주제는 성소수자들을 포용하는 목회를 하는 임보라 목사를 이단으로 매도한 것이었다. ‘동성애 반대’라는 슬로건에 갈수록 집착하는 보수교회의 이면에는 길을 잃은 종교가 가진 두려움과 그것을 먹고 사는 근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생각과는 다르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근본주의 자체가 쉽게 극복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본주의 사상은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본능적인 감각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잡한 세계를 단순한 교리에 담아냄으로써 신봉자들로 하여금 미래의 불안을 해소하게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다. 현상적인 모습이 조악한 배타성과 획일성을 띠고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교리는 무오성(無誤性)의 신념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논쟁과 설득을 통해서 변경시킬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가 태동한 19세기 말은 종교적 세계관이 철학이나 과학과의 대화에서 실패한지 수 세대가 흐르고 있던 때였다. 몰락의 두려움과 확실성에 대한 갈망이 서로 얽힌 복합정서를 타고 근본주의라는 지성의 반동이 일어났다. 근본주의가 반지성주의적 퇴행을 통해 교리적 무오성에 집착한 이유는 ‘확신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성의 긍지로부터 솟아오른 것이 아니라, 반지성의 자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스스로를 가두게 만든 것은 과학적 지성과의 대결에서 얻은 패배감과 공포 때문이었다. 그런 까닭에 근본주의는 지성의 모험을 배타성이라는 감옥에 가두고, 사상적 열패감을 행위의 공격성을 통해 보상 받으려는 경향을 지닌다.

한국 개신교회 대부분이 이런 도착적인 종교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게다가 냉전시대와 군부독재시대라는 일상화 된 나치즘의 시기를 지나오는 동안 교회는 저항이나 극복보다는 용인이나 가담을 선택했다. 특히 지난 한 세대 가까이 신자유주의적 약탈이 벌어지는 동안 교회는 체제 안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순화시킴으로써 기득권 체제에 봉사하는 역할을 했다. 번영의 신학이 지배와 소유의 욕망을 고취하며 사람들을 종교적 문맹에 빠뜨려왔기 때문에, 이제 교회의 가장 큰 적은 외부적인 도전이나 위협이 아니라 내부적인 부패와 무지가 되었다.

문제는 신앙인들이 희망을 잃어갈수록 근본주의가 더욱 큰 마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배타성으로 채워진 근본주의적 목소리는 열정으로 해석되고, 그 분리주의적 태도는 거룩한 사명을 향한 것이라고 오인됨으로써,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을 떨쳐낼 가장 빠른 길이 바로 근본주의적 가르침에 있다는 환상이 유포된다. 특히 무오성(無誤性)의 신념은 생에 지친 사람들에게 복잡한 노동을 요구하지 않으며 손쉬운 확신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그 확신은 현실과 계속해서 충돌하며, 그 사이에 생겨나는 부조화는 근본주의적 신념이 신기루에 기초한 환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어떻게 인간의 정신이 무오(無誤)할 수 있겠는가? 무오성의 관념은 ‘달’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혼동한 것으로서, 신학자 폴 틸리히의 서술에 따르면, 그 관념은 유한(손가락)을 무한(달)으로 드높이려는 신학적 ‘마성화’(demonization)의 산물일 뿐이다. 마성화는 관계의 실패를 관념의 확실성으로써 보상받으려는 세력들에게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섬돌향린compo.jpg

 


지지난 겨울의 촛불혁명 이후 한반도에는 미래를 향한 꿈들이 분출되고 있다. 이 거듭남의 시대에 한국교회가 과거의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어두운 시대에 빛났던 한국교회 일각의 진보적 분투는 근본주의가 육체가 된 교계에서는 힘을 많이 잃었다. 복음의 부름 앞에 떳떳한 신앙공동체가 다시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편협한 교리에 갇히지 않는 종교 생태계가 조성되기 전까지 우리는 근본주의 망령이 출몰하는 세계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희헌목사-프로필이미지.gif

 


  1. 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17 - 마르크스 동상 곁에서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17 : 마르크스 동상 곁에서 난생 처음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일행보다 늦게 출발한 이유로 유서 깊은 도시를 둘러볼 시간은 네댓 시간밖에 없었다. 공항 근처 호텔에 짐을 풀고 곧장 붉은 광장으로 향했다. 성 바질 성당과 ...
    Date2019.06.28 Views300
    Read More
  2. 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16 - 종교적 신념에 대하여

    (출처:불교방송BTN 유투브 영상캡쳐)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16 : 종교적 신념에 대하여 지난 5월 12일 경북 영천의 한 사찰에서 보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태도로 인해 종교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에 황 씨는 당 대표 ...
    Date2019.05.28 Views281
    Read More
  3. 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15 - 이웃종교에 대하여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15 : 이웃종교에 대하여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며 길거리에 연등이 걸리고 있다. 이즈음에는 오래 전 부목사로 일하던 수유동 지역 한 교회에서 겪은 경험이 껄끄럽게 떠오른다. 머지않은 곳에 위치한 화계사에서는 해...
    Date2019.04.28 Views239
    Read More
  4. 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14 - 계시의 하부구조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14 : 계시의 하부구조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이 땅의 봄은 아프게 다가온다. 해마다 봄은 제주의 4월을 찾더니 피 흘린 진실을 차츰 드러냈다. 그러는 동안, 억울한 죽음을 향한 정부의 사과가 있었고, 금년에는 ...
    Date2019.03.28 Views297
    Read More
  5. 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13 - 두 이야기의 합류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13 : 두 이야기의 합류 삼일운동 백주년을 맞아 기품 있는 옛 정신을 잇고자 하는 열망이 크다. 특히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가운데 절반을 차지한 개신교 진영은 과거의 정신적 지도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고심...
    Date2019.02.27 Views298
    Read More
  6. 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12 - 범재신론(Panentheism)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12 : 범재신론 (Panentheism) 종교가 인간의 활동이라면 결국 그 진정한 힘은 사유의 능력에 있다. 종교의 흥망성쇠는 그 세계관에 좌우된다는 말이다. 19세기 후반 서구 문명이 무신론으로 물들어간 이유는 기독교 신학이 ...
    Date2019.01.28 Views421
    Read More
  7. 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11 - 진리와 조화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11 - 진리와 조화 앙리 베르그송의 말대로 만일 세계가 ‘창조적 전진’을 하는 살아있는 세계라면, 이 변화무쌍한 세계에 대한 진리인식은 개방적 사고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근대과학이 오해했던 것처럼 단지 운...
    Date2018.12.29 Views234
    Read More
  8. 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10 - 평화를 향한 철학적 모험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10 - 평화를 향한 철학적 모험 새로운 사상이 기존의 사유체계를 실제로 대체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간혹 나타난 천재는 자기 시대를 외롭게 보내곤 한다. 알프레드 N. 화이트헤드(1861~1947)가 그 중 한 명이...
    Date2018.11.28 Views209
    Read More
  9. 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9 - 생태문명과 신

    인문(人紋)의 종교,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9 생태문명과 신 지난 10월 11일 서울시가 국제 컨퍼런스를 열었다. ‘문명전환과 도시의 실험’이라는 주제를 가진 대회의 첫 강사는 93세의 신학자 존 캅(John B. Cobb, Jr.) 교수였다. 그...
    Date2018.10.29 Views221
    Read More
  10. 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8 - 근본주의 망령

    인문(人紋)의 종교-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근본주의 망령 해마다 9월이면 개신교 교단들의 총회가 열린다. 안타깝게도 진취적 정신보다 퇴행적 정책을 도입하는 곳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지난 한 세대를 지나오는 동안 한국교회가 더...
    Date2018.09.25 Views184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