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을 사람 하나
곁에 두고 싶다
온 지천이 겨울 채비를 서두르는 이때쯤이면
나도 긴 겨울,
동굴 속에 은밀히 감춰두고
들여다 볼 그리움 하나 마련하고 싶다
한 여름 지난 뜨거운 사랑에
아직도 메케한 연기
그조차도 아껴
내 숲 그늘 태우고 싶다
작은 불씨 하나도 곧 소중해질
겨울이 오기 전에
<가을엔> 전문

오늘 예배당 모습이다.
여든 넘으신 권사님의 꽃꽂이 솜씨.
미역 작업이 끝나고도 다시 가시리 작업으로 바쁘신데
그래도 성전 청소와 꽃꽂이는 언제나 담당이다.
나름 신께 드리는 마음의 표현이니 지켜볼 뿐이다.
저 하얀 꽃은 뭔고, 한참 들여다보니 부추꽃이다.
나라면 꽃꽂이 용도로 쓸 생각을 못했을 터인데
이 분은 예쁜 꽃이라면 지나치는 법이 없으시다.
처음, 이곳에 와서 거들어 드리겠다고 했다가 거절을 당하고는 한동안은 그냥 구경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턴가 토요일이면 수반을 꽃꽂이 하시는 곳에 갖다 놓았다.
어깨가 불편하시니 이거라도,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내 할 일은 여기까지, 하면서 한동안 잘(?) 지내다가
물을 쓰려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니
주전자에 물을 채워 갖다 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시든 꽃을 치우고 수반과 오아시스를 깨끗이 씻어 놓아
꽃꽂이만 하실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꽃꽂이하시는 곁에서 말동무라도 해 드리려고 얼쩡거렸는데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채고
이제는 교회 마당 청소와 풀 뽑는 일을 한다.
또 권사님은 새벽마다 울며 기도를 하시기에 화장지가 꼭 필요한데
처음엔 그게 연결이 안 되어서 무심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화장지가 떨어질 만하면 슬며시 갖다 놓는다.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은 꽤 걸렸어도 피차 말은 없었다.
그저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한 걸음씩 자연스럽게 그 필요에 내가 다가가고 있다.
예전의 나라면, 네 일 내 일을 구분 짓기도 하고
도와달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못 본 체하기도 했고
또 안 보여서 지나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
사람이 사람 곁에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새삼 배우고 있다.
부탁을 하지 않아도
고맙다는 인사가 없이도
그냥 무심한 듯 따뜻해지는 일상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