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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프로그램 참가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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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정오음악회 - 음악이 들리는 길목에 멈추어 서서

posted Jun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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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음악회.jpg

 

아침부터 종종거리며 쌓인 집안일들을 하면서 눈은 계속 시계로 향했다. 오늘 12시 20분 정오를 조금 넘긴 때 사회적협동조합 길목에서 마련한 음악회에 늦지 않게 가기 위해서이다. 몇 주 전부터 교회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면서 '직장인과 동네 이웃을 위한'이라고 쓰인 작은 글씨에 유독 눈길이 가닿았다. 직장인과 동네 이웃은 나란히 쓰이기 쉽지 않은 범주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빽빽한 빌딩 숲 한복판에서 비슷한 옷차림으로 8시간 때로는 그 이상으로 매여서 일하는 사람들과 작은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김치부침개를 부쳐서 나눠 먹을 법한 사람들이 '과'라는 한 글자를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에서 꽤나 친근하게 묶여 있었다.

 

11시 40분 기대되는 마음을 안고 집을 나섰다. 어느새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가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는 결혼하고 두 아이를 키우다가 한 3년 전부터 그림을 시작했다. 미술을 전공한 적도 없는데 붓을 잡고 그리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작은 용기에 그저 감탄만 나왔다. 다음 달에 화실에 있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합동 전시회를 한다는 말을 듣고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한다는 말을 건네는 찰나 어디선가 청량한 바이올린 소리가 하늘로 치솟았다가 내 귀에 내리꽂혔다. 그 선율은 수화기를 타고 친구에게도 들렸다. "우와 이 고급스러운 음악은 어디서 들리는 거야?" 놀란 듯 묻는 친구에게 길목 정오음악회를 간단히 소개해 주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음악이 들리는 곳을 향해 모퉁이를 돌아서 들어설 때 순간 걸음을 멈추었다. 때는 4월! 유난히도 길고 추웠던 겨울을 지나 따스한 햇볕 아래 거뭇거뭇한 나뭇가지를 뚫고 나온 여린 잎들과 살랑이는 봄바람이 비발디 사계 중 봄 1악장의 강렬한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 소리의 곡조와 어우러져 찬란한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음악의 선율들은 주춤주춤 머뭇거리는 봄에게 손짓하며 길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나는 홀린 듯이 걸어가 카페 옆에 놓인 작은 벤치에 앉았다. 세 명의 젊은 음악가들의 손가락에서 음악은 계속 이어지고 그 음률은 공기를 진동시키며 퍼져나갔다. 길목 음악회를 알고 찾아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심코 길을 가던 사람들,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온 사람들, 카페에서 커피 한잔 들고나오는 사람들 모두 발길을 멈추고 저마다 만끽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받아 든 까만 헬멧을 쓴 배달원도 잠깐이지만 음악회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2~3분 머물다 그는 오토바이 소리가 혹시나 방해될까 조심스럽게 오토바이를 끌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간다. 근처 카페 사장님은 카페 문을 활짝 열고 의자도 밖으로 몇 개 꺼냈다. 가게 안 손님들이 밖으로 나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향내 짙은 커피와 즐거운 음악을 즐겼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에 사원증을 목에 건 앳된 젊은이들과 약간 굽은 등을 벽에 기대고 선 아저씨, 그리고 청색 긴 치마를 입고 강아지를 안은 중년여성 등 모두가 정오의 그때 삼삼오오 모여 서 있다. 음악은 콜드플레이(Coldplay)의 <Viva la Vida>가 연주되면서 절정으로 향했다. 스페인어로 "Viva la Vida"는 '인생이여, 만세! 삶이여, 영원하라!'라는 뜻이고, 이 제목은 20세기 멕시코 화가인 프리다 칼로가 그린 그림에서 가져왔다고 한다.(https://ko.wikipedia.org/wiki/Viva_la_Vida) 숱한 고난과 역경에서도 끝까지 삶을 살아내고 그림을 그렸던 그녀를 기억하고 노래하고 싶은 가수의 마음이 느껴지는 곡이다.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오래전 읽었던 책의 제목이다. 구원은 먼 훗날 구름 타고 오는 영웅에게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정오의 한 순간, 음악이 열어주는 시간과 공간에 있던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구원을 누리며 나란히 함께 있었다.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나름 각자의 삶을 살아가겠지만, 그러나 너무나 소중한 자기 음악을 그렇게 함께 나란히 서서 지어가는 것이리라. 그렇게 우리 삶의 연주는 시작되었고, 오늘도 내일도 이어진다. '인생이여! 만세! 삶이여, 영원하라!' "Viva la V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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