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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야단법석": 5대종단의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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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평화고리...

posted Oct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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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협동조합 소식지에 각 종단이 차례로 연재를 결정하고 이미 한 바퀴가 다 돌고 다시 불교 차례가 되어 필자에게 순번이 왔다. 불교 이야기를 풀어야겠지만, 불교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하고, 먼저 평화고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왜 평화고리가 다시 15년의 깊은 잠을 깨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가?

 

평화고리는 30여 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시작한 '젊은 종교 종년 대화 캠프' 수료자들의 자발적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그 시기는 군부독재에서 민주화 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다양한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 내 시민사회가 각자의 방식으로 조직화하고 태동하기 시작한 시기로 여겨진다. 종교(종단)도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역할이 복지, 교육, 민주화에서 환경, 소수자 인권, 외국인 노동자 인권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된다. 시민사회 운동이 다양하게 펼쳐지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 연대도 함께 확장되었다.

 

크리스챤아카데미는 아카데미 운동의 한 분야로 '종교 간 대화'를 채택하고 6대 종단의 어른들이 모여 대화 모임을 하고 오래된 새길 '오래된 새길'이라 함은 먼저 걸어가신 분들의 발자취를 다시 따라간다는 뜻으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이 종교 지도자로 구성되어 근대 종교 간 협력 운동의 시초로 생각되어 붙어 본 표현이다.

을 함께 하기로 하셨다. 강원용 목사님, 월주스님, 김몽은 신부님 등이 주축이 되어 모임이 꾸준히 진행되었다. 어른들의 혜안으로 미래세대를 위한 모임(혹은 대화의 장)의 필요성을 주장하시고, '종교 청년 대화'가 교육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이 캠프의 키워드는 '만남', '이해', '대화', '평화'이었다. '교육하지만, 조직하지 않는다'라는 아카데미 기조에 따라 첫 회 수료자들은 '평화고리' 1기라는 이름으로 그 뜻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진산 김성곤 교도님, 김평만 신부님, 각운 스님, 박명원 교무님이 주축으로 활동하셨다. 이후 11기까지 아카데미에서 캠프를 진행하였고, 평화고리에서 아카데미와는 별개로 직접 캠프를 진행하며 자생력을 가지려고 시도하였다.

 

필자가 처음 평화고리를 접한 것은 96년 2월이었다. 불교학생회 법사 스님의 권유로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가평 '바람과 물 연구소'로 가게 되었고 그 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30년이 지났다. 30이란 물리적 시간을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는 강산이 3번이나 바뀐다는 기간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처음 캠프를 다녀와서 주변 사람들과 '종교 간 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특이한 모임으로 바라보고 대부분 '그래도 불교가 더 낫지?'란 자기 우월성 발언으로 마무리하려 하였다. 5기 조병준 작가가 조선일보에 평화고리에 대한 특별기고를 하고 칼럼으로 실린 것만 봐도 그 시절 '종교 간 대화'는 소수가 관심 있어 하는 특수성을 가진 모임이었다. 처음 10년 정도는 그러했다.

 

밀레니엄이 되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더욱 가속화된다. 사회적 다양성에 관한 관심이 커져 나가며, 포스트 모던이라는 관점이 퍼지고 종교 간 대화파도 많은 사람의 관심 분야로 떠올랐다. 서울교구 신학 대학생 중심으로 오던 가톨릭 참가자들도 여러 수도회 수사, 수녀님들께서 오시고, 동국대학교 석림회 선배에서 동국대 불교학과 일반 학생, 강원에서 수행하시던 학인 스님들, 기독교도 한국 기독교 장로회, 한국 성공회, 성결, 감리교 등 여러 종파에서 참여하며 참가자들의 스펙트럼이 확장되었다.

평화고리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UR 등 여러 종교협력 단체들과 연대를 하면서 젊은 종교 청년의 소임을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각 종단에 평화고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퍼지게 되고, 특히 고리(평화고리 회원을 부르는 명칭)들이 각 종단에서 예비 성직자에서 벗어나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하는 종교인으로 자리 잡으면서 평화고리는 대외적으로, 양적으로 한 단계 발전하는 시간이었다.

 

평화고리가 가진 독창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소수 권력자가 개인 조직으로 만들려는 불건전한 시도도 있었다. 외부 억압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고, 내적으로는 방향성에 대한 고민과 자성의 목소리도 커지면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조직 정체성이 흔들리고, 개인적 욕심이 조직을 흔들었다.

후배 양성을 해주던 아카데미에서 '캠프'가 중단되었다. '마른걸레 짜듯이' 자력으로 종교 간 대화 캠프(3박 4일 코스)를 2년간 진행하고 고리들은 모두 소진 상태로 그냥 그렇게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대외적 활동은 문을 닫고 개별적 소통의 연결고리만 유지되었다.

 

그렇게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각 종단 지도자들이 모인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라는 단체도 만들고, 남북 대화나 국가행사에도 7개 종단 대표들이 참여하는 자리가 당연시되고,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부에는 종교협력 업무를 주요 업무로 자리 잡았다. 종교 간 대화가 특수성에서 보편성으로 자리 잡았다.

KCRP 청년위, 민화협 청년위, 6.15 청년위, 삼소회 등 종교 청년단체의 연대와 다른 성직자들의 교류와 소통은 활발하였다.

그 시기에 필자는 우리 사회에 종교 관용성이 완전히 안착하였다는 개인적인 판단을 하였고, 평화고리가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였다면 다행이다는 자평을 하였다. 평화고리가 더는 필요하지 않은 시절이라고 생각하였다. '굳이 평화고리가 또 필요할까?' 생각하며 그렇게 문을 닫고 지냈다.

 

그러다가 2021년 대구 북구 대현동 모스크 건축 논란 뉴스가 들려왔다. 헉했다. 한국 사회의 종교 포용성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이 시기상조였고, 아니면 앞으로 계속해서 발생할 과제로 생각되었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전 노력이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허무감보다는 위기감이 더 크게 들었다.

그때 만난 분이 원불교 균산 최정풍 교무님이시다. 그분과 대화 중에 젊은 성직자들이 종교 간 대화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걱정과 더불어 평화고리를 다시 시작하라는 질책성 권유를 들었다. 그러시면서 '소태산 마음학교' 서울 사무실을 편하게 쓰시라고 허락해주셨고, 원남동 사무실은 다시 평화고리를 만드는 지대방이자 구심적 역할을 해주었다.

그동안 같이 고민하던 김도형, 고상균 선배 고리들이 함께 준비하고, 새로운 고리들이 참여하면서 다시 평화고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30년을 함께하신 분들을 모시고 30주년 기념행사도 치렀다. 이를 통해 새롭게 모인 평화고리와 기존 선배 고리들이 연결되어 새로운 걸음을 걷고 있다.

'월간 평화고리'란 이름으로 매달 정기 모임을 열고 매번 다른 주제를 가지고 만나서 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

 

지난 시절을 짧은 작문 실력과 좁은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음이 아쉬운 것은 그 시절을 함께 만들고 지켜온 분들이 흘린 눈물과 애정을 다 담지 못함일 것이다. 여타 종교 간 대화 모임이 가지지 못한 평화고리만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이 분명히 있다.

앞으로 평화고리가 어떤 고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할지 모르겠지만, 30년 동안 지켜온 우리가 가진 젊은 독창성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지구촌에서도 아직 평화고리가 해야 할 역할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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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잡일로 주로 불교서 돈 벌고 있는 여러 종교를 애증하는 두 딸래미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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