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 '우리'를 꿈꾸는 신학, 세상의 이름을 부르다
- 김예진 전도사
송학대 교회 고등부를 섬기며 생태 신학의 가치를 전하는 김예진 전도사님을 만났습니다. 이론에 머무는 신학이 아닌,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그의 신앙과 사역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Q. 생태문화학교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저는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Th.M)에서 '기독교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는 전도사입니다. 저희 과는 단순히 조직 신학의 이론에 머무는 것을 넘어, 사회와 세상과 맞닿아 있는 여러 이슈에 대해 교회의 역할은 무엇이고 신학의 역할은 무엇인지 실천적인 고민을 깊이 있게 다루는 학문입니다.
신학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이 신입생 시절 만난 '오이코스'라는 동아리였습니다. 헬라어로 '집' 혹은 '가정'을 의미하는 '오이코스(οἶκος)'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넘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과 관계를 포함하는 공동체를 뜻합니다. '창조 세계에 관심을 갖고, 평화와 생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동아리'라는 소개 글에 강하게 이끌렸습니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너무나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들어갔고, 그곳에서 제 삶의 중요한 스승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으로 모시는 김은혜 교수님, 그리고 이번 생태문화학교를 주최한 '기독교환경교육센터 살림'의 대표이신 유미호 센터장님이 바로 그분들이십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만난 생태 신학은 제가 막연하게 생각하던 하나님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언어처럼 느껴졌습니다. 창조 세계 안에서 설명되는 하나님과 '상생', '연결', '상호존중', '돌봄'과 같은 가치들은 제게 무척 따뜻하게 다가왔죠. 그때부터 생태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책을 읽고 학습하며, 환경적인 실천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그러다 올해 '녹색교회'로 지정된 송학대 교회에 부임하여 고등부 아이들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과 사역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현장에 오게 된 것이죠. 하지만 꽤 오랜 시간 생태 신학에 관심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교육을 위한 구체적인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갈증을 느끼던 찰나에, '살림'에서 생태문화학교 3기 안내가 나온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커리큘럼을 살펴보니, 지금 저의 고민을 해결해 줄 다양하고 구체적인 콘텐츠를 배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곧바로 신청했습니다.
Q. 생태문화학교 과정에서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하나만 꼽기는 어렵지만, 이론적인 접근을 넘어 구체적인 삶의 영역으로 신학을 확장할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이전까지는 환경 문제를 신학적, 이론적으로만 다뤄왔다면, 이번에는 음식 문화와 농사, 재생에너지 정책, 마을 공동체 돌봄 등 매우 실천적인 주제들을 접할 수 있었죠. 특히 어떤 기술로 농사를 지어야 하고, 어떤 정책이 지속가능하며, 재생에너지가 어떤 속도와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건강한 전환이 가능한지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현장에서 이미 길을 걷고 있는 전문가들을 통해 배울 수 있어 의미가 깊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생태 감수성'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수강생 대부분 어린 시절 흙을 만지고 농사를 지어본 기억을 갖고 계셨지만, 도시에서만 자란 저와 제 친구는 흙을 만져보거나 직접 키운 작물을 먹어본 경험이 전무했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 몸으로 체득한 경험의 부재가 감수성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감했죠.
과거 환경 운동의 일환으로 의무감에 채식을 꽤 오래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교육을 통해 그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된 것도 큰 수확입니다. 내가 먹고 버린 것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 순환하는 '문화'로서의 생태를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단순히 '채식을 실천하자'라는 행위를 넘어, 그것이 곧 삶이 되고 문화가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순환적인 구조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인지, 반대로 지금 제 삶이 얼마나 인위적인지를 깊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 또래의 젊은이들이 이 교육을 더 많이 듣고 함께 으쌰으쌰 하며 실천하는 문화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습니다.
Q. 송학대 교회 고등부를 섬기며 최근 여름 수련회를 마쳤다고요?
네, 고등학교 1, 2, 3학년 학생들을 맡고 있습니다. 올해 부임하여 고등부 사역 방향을 고민하던 시기에 생태문화학교를 들은 것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최근 8월 1일부터 2박 3일간 '너의 이름은.'이라는 주제로 여름 수련회를 마쳤습니다. 유명한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을 빌려왔는데, 그저 재미를 위한 차용을 넘어 깊은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고립되고, 사람들은 홀로 살아갑니다. 타인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는 시대, 이름뿐만 아니라 안부를 묻고 마음 상태에 관심을 갖는 일이 사라진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나의 성공과 나의 안위만을 구하는 오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수련회에서는 먼저 나의 진짜 이름을 찾고, 그다음 너의 이름을 불러주며, 더 나아가 세상의 이름 잃은 존재들을 함께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이름 없는 존재란, 멸종 위기의 동물이 될 수도 있고, 사회에서 부품처럼 불리는 노동자가 될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찾아 불러주는 존재로 거듭나자는 취지였습니다.
수련회는 첫째 날, 하나님 앞에서 진짜 나의 이름을 찾고 스스로를 알아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우리가 서로 연대하고 연합해야만 할 수 있는 공동체 활동들을 많이 했고, '이름 없는 마을'의 이름을 회복시켜주는 미션 게임을 하며 저녁에는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Q.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생태 환경 교육을 하고 있나요?
생태문화학교에서 배운 것을 열심히 현장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고등부 아이들과 함께 교회 안에 '송고가든'이라는 이름의 작은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새싹이 돋아나는 전 과정을 지켜보았죠. 물론 생각처럼 잘 자라지 않아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이 좌절하는 과정까지도 자연에서 배우는 것임을 나눴습니다. 심는다고 무조건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돌봐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씨앗을 뿌리고 한참이 지나도 정원에 아무것도 자라지 않아 속상했을 무렵 고등부 아이들과 나눴던 사순절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기 전, 그 고요하고 침묵하는 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그 밤에 사실은 땅속에서 부활 생명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는 말씀이었죠.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부활절 바로 전날인 성토요일에 저희가 심은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난 겁니다. 아무 일도 없이 죽어 있는 줄 알았던 땅속에서 생명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거죠. 그 경이로운 순간을 아이들과 함께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생활 속 실천도 나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주일에는 '용기내 프로젝트'를 열어 집에서 텀블러나 용기를 가져온 사람에게만 소프트아이스크림과 함께 토핑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각자의 그릇을 들고 와서 아이스크림을 받아 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지구의 날에는 저녁 8시부터 10분간 다 함께 소등하고 기도한 것을 인증하기도 하고, 매월 새로운 캠페인 주제를 정해 3월은 '씨앗 심기', 4월은 '전기 절약', 5월은 '용기 내 챌린지', 6월은 '탄소빙고', 7~8월은 '플라스틱 없는 여름' 등 다양한 캠페인을 함께 하며 실천하고 있습니다.
Q. 요즘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단연 "나 뭐 먹고 살지?"입니다. 어떤 전공을 해서, 어떤 직업을 가져야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지를 가장 현실적으로 고민합니다. 제 학창 시절에는 일단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였고, '뭐 먹고 살지'에 대한 고민은 그 이후의 일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은 그 고민을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하더라고요.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수련회 때 아이들에게 강조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엇을 먹고살지'에서 시작된 꿈은, 설령 이룬다고 해도 행복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먹고사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된다면, 성취의 순간은 허무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루지 못한다면 더더욱 자신을 괴롭히며 끊임없이 세상의 기준을 쫓아가게 되겠죠.
저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바꿔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보면 어떻겠냐고요. 아이들은 스스로가 아직 어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세상에는 여러분을 필요로 하는 존재와 자리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고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으면 합니다. '나 뭐 먹고 살지'가 아니라 '하나님,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면, 직업을 넘어 무궁무진한 꿈과 다양한 실천을 상상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Q.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갖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바로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이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이름만 보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그곳에서 어떤 의미도 찾지 못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자존감은 낮았고, '내가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만 깊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왜 내게 멋들어진 꿈을 주지 않으실까?'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때 제 인생을 바꾼 것이 바로 앞서 말한 그 질문의 전환이었습니다. 스스로를 굉장히 가치 없다고 느끼던 제가, 한순간에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로 느껴지게 된 것입니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는 일을 할 수 있겠구나. 자존감도 낮고 아무것도 아닌 나를 항상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 나를 살리시는 이 복음을, 나처럼 이 메시지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이 생각을 한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반 대학을 그만두고 다시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제게 계속해서 '더불어 살고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마음을 주고 계십니다.
Q. 온전한 신앙인으로 거듭난 때는 언제인가요?
저는 모태신앙이었고 어릴 때부터 자발적으로 열심히 교회를 다녔지만, 돌이켜보면 저 자신만을 위한 닫힌 신앙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특별히 사랑하시고,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식의 우월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참 어리숙한 신앙 고백이지만, 그때는 스스로 질문할 능력이 없는 수동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세상은 왜 이럴까요? 왜 이런 고통이 존재하나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개인주의적이었던 신앙의 시선이 점차 확장되는 경험이었습니다. 내 옆의 사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나아가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나의 하나님'이었다면, 지금은 '온 우주 생명 존재들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집 강아지의 하나님이시기도 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모든 존재의 하나님이신 거죠.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넘어 온 세상으로 확장될 때, 역설적으로 제 안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채워지는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Q. 목회자로서의 철학과 펼치고자 하는 비전은 어떤 것일까요?
거창한 목표보다는, 지금까지처럼 한 걸음씩 인도해주시는 대로 뚜벅뚜벅 걸어가려 합니다. 다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희생적이고 대가 없는 사랑을 경험하기 어려운 이 각박한 시대에, 그런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세상은 내가 무언가 좋은 것을 줘야 그 대가가 돌아오는, 철저히 주고받는 공짜 없는 곳이잖아요. 그 속에서 세상의 셈법으로는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는 공동체가 있다면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습니다. "저기는 뭔데 저렇게 서로 사랑하지? 왜 저렇게 미련하고 바보같이 굴지? 나도 한번 저 사랑을 받아보고, 나도 한번 저 사랑을 해보고 싶은데…" 이런 마음이 들어 전도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는, 그런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Q. 시무하고 있는 송학대 교회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송학대 교회는 제가 간절히 기도하며 오고 싶었던 곳입니다. 교회의 규모와 상관없이, 지역사회를 향한 사랑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가 본인들끼리만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송학대 교회는 지역 안의 소외된 이웃을 향해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늘 열려 있는 교회입니다. 예를 들어 주변의 '성로원' 보육시설이나 '베이비 박스' 같은 기관과 오랫동안 연결되어 봉사해왔고, 담임목사님께서는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의 이야기까지 기억하고 아끼십니다. 이처럼 대가 없는 사랑의 사역을 이미 많이 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특히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훌륭한 여성 부목사님들이 많다는 점도 제게는 큰 동력이 됩니다.
Q. 사회선교 분야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타 종교, 타 교단과의 대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과거 해외 교환학생 시절, 다양한 인종과 배경,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게 하나님 나라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벽을 세우고 '너는 너고 나는 나'라며 서로를 분리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죠.
당시 '환경 정의(Eco-Justice)' 수업을 들었는데, 다양한 교단과 종교를 가진 학생들이 한자리에서 공부하고, 뜻이 같으면 함께 산에 올라 쓰레기를 주우며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서 "어떻게 이게 가능해요? 시작할 때 어떤 신에게 기도하나요?"라고 물었더니, "크리스천이 기도 순서를 맡으면 기독교식으로 하고, 각자 자신의 신에게 기도하면 된다.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열려 있는 태도에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또 다른 경험도 있습니다. 비싼 기숙사를 나와 유색인종 친구들이 모여 사는 협동조합(Coop) 셰어하우스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경계심이 컸지만, 저는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에서보다 더 큰 환대를 경험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살이 쪘다", "옷을 왜 그렇게 입냐", "전도사가 귀를 왜 그렇게 많이 뚫었냐" 등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받았지만, 그곳에서는 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괜찮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곳에는 성소수자, 다른 종교인, 정신적인 아픔이 있는 친구 등 다양한 이들이 어울려 살았는데, 제가 우울한 날에는 그들이 먼저 다가와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도 낙태죄나 노숙인 문제 같은 사회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각자의 SNS 또는 거리에서 목소리를 내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말뿐인 윤리, 글로만 외치는 정의의 삶을 살지는 않았나 스스로 많이 반성했습니다.
Q. 사회적 협동조합 '길목'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신가요?
솔직히 생태문화학교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향린 교회나 길목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같은 교단이 아니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번에 향린 교회 공간에서 강의를 듣고, 많은 교인 분들과 교류하며 향린 교회가 지닌 고유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특히 국악으로 찬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 서구의 것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기보다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는 모습이 제가 존경하는 함석헌 선생님의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