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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신임 길목 편집위원장 - 이규성 조합원

posted Apr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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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식지 '길목인'에서 현재 <로로, 이 영화를 봤네>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3월호에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 영화를 소개했어요.

 

길목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로 파나히 감독 영화를 시작한 거죠. 그분 같은 경우는 이란에서 거의 독재 비슷한 통제가 많지만 이 사람은 절대 해외로 안 나가고 이란에서만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란 자체에서는 인정을 거의 못 받습니다. 보통 성공한 작가들은 해외에서 많이 활동을 하죠. 소수 민족에 대한 배려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이란의 소수 민족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소수민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나라에 머물면서 정상적으로 영화를 만든 건 3편밖에 없어요. 그 후 7편 정도 더 만들었는데 집에 갇혀서 찍기도 하고, 몰래 찍기 위해서 변두리에 가서 찍기도 하고, 택시 안에서만 찍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란의 문제, 특히 여성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슬람권에서는 가장 금기시되는 게 여성 문제잖아요. 여성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렸기 때문에 정치적인 탄압을 받고 있는데도 여전히 여성과 소수 민족, 이런 쪽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Q: <하얀 풍선>에서 소수 민족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소수민족으로 크루드 족이 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넘어온 그쪽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특히 <하얀 풍선> 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아동 영화인 줄 알았어요. 근데 그렇게 거의 끝나 가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왜냐면 그 아이의 어려움을 돕는 청년이 있는데 이 친구도 풍선 팔면서 사는 그런 형편인데 한 아이가 어려움에 처한 걸 보고 도와줍니다. 기꺼이 자기 돈을 조금 내서라도 뭘 사와가지고 도와줘요. 그런데 그 아이가 이 청년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안 해요. 그리고 그냥 떠나버려요. 이 청년이 혼자서 종일 팔고 남은 풍선이 하얀 풍선이에요. 그러니까 하얀 풍선을 하나 들고 앉아 있는 게 끝 장면입니다. 영화는 아이의 곤란한 상황에 초점을 맞춰서 다룬 게 아니고 소수민족은 그런 아이의 천진함 속에서도 배제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친구로 그려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하얀 풍선이 동심을 표현한 게 아니라 그 사회에서 외롭게 남겨진 소수민족의 삶 이런 것들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Q: 이번 4월호에서는 어떤 작품을 다루게 됩니까?

 

스웨덴의 '로이 안데르손' 감독으로 아주 특이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입니다. 일반적인 스토리가 있는 영화가 아니고 뭐랄까, 미술 작품을 감상했을 때 우리가 접하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그러니까 보통 영화라고 하면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하는데 그 감독은 특별한 스토리텔링이 없어요. 근데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떤 예술적인, 또는 정서적인 감동이 있습니다.

 

Q: 길목에서 영화 모임을 하고 있군요.

 

홍영진 장로님께서 오랫동안 이끌어 오셨는데 이어받아 다시 새롭게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고 토론하고 그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게 제가 링크를 보내주면 보고 와서 토론하는 그런 방식입니다.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영화들이나 굉장히 예술적으로 뛰어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그런 감독들의 영화를 보려 합니다.

 

Q: 개인적으로는 어떤 영화감독을 좋아하세요?

 

다양하게 좋아합니다만 한국에서는 홍상수 감독이나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영화 만드는 솜씨로는 박찬욱 감독이 아주 좋습니다. 홍상수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보기가 되게 힘들어요. 영화제에서만 볼 수가 있는데 거의 1년에 두 편씩은 꼭 만들어요. 최근에도 만든 게 있는데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볼 수가 없어요. 이창동 감독님도 여전히 활동을 하셔서 제 생각엔 지금쯤은 하나 정도 나올 때라고 생각이 듭니다. 원래 다작하시는 분은 아니고, 문학을 했던 분이라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들이 있으니까 작품을 하긴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외국 감독으로는 일단은 뭐랄까요, 영적이고 기독교적인 바탕 위에서 영화를 만드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라고 있어요. 러시아 감독이죠.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것은 거의 없을 것 같고 다른 방식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감독은 영화를 좀 아는 사람은 다 알 정도인데요, 지금 아마도 돌아가셨을 거예요.

 

Q: 영화에 대한 관심이 보통을 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원래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좋아해서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영화 서클에 들어갔어요. '얄라성 영화 연구회'라는 동아리인데요, 요즘 넷플릭스에서 '폭삭 속았수다' 거기에 이 서클의 얘기가 나옵니다. 지금 후배들도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요. 종교 서클 말고는 가장 오래된 서클이고 지금 서울대에서 가장 규모가 커졌대요. 거기에 제가 2대 회장이었어요. 근데 요즘에 드라마에 나와가지고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더군요. 제가 이렇게 다시 영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글도 쓰고 이렇게 된 이유가 사실 그 '얄라성 영화 연구회'하면서 꽤 책을 많이 본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는 다른 일 하느라고 이제 싹 잊어버렸었는데 얼마 전에 영화 책을 몇 권 사 갖고 딱 보니까 다 아는 얘기더라고요. 내가 영화에 대해 많이 공부했었구나, 라는 생각과 이제라도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 책만 한 30권 정도를 한꺼번에 샀어요. 하하

 

고2, 고3 때 한참 공부해야 되는데 아버지가 오늘 좋은 영화 한다, 하고 나를 불러요. 그러면 같이 보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난리셨지요. 공부하는 애를 불러다가 영화를 보라고 그러느냐고요. 그때는 영화라면 '명화극장' 정도였는데요. 제가 영화를 좋아하게 되고 영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이런 것들이 다 그때 아버지의 영향이 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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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년에는 부산 영화제도 다녀왔다고요?

 

영화제는 처음 가 봤습니다. 이제는 영화제도 좀 가야겠다는 마음에 갔어요. 2박 3일 동안 여러 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예술 영화를 많이 하는데 거의 매진이에요.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거는 별로 없어요. 남은 좌석은 좋지 않은 위치에 있고 예약하는 것도 금방 차버리더군요. 영화제를 하면 일단 이미 유명한 감독들의 영화들이 세팅돼 있고, 그다음에 검증은 확실히 안 됐지만 이 영화제를 통해서 검증돼야 될 감독들의 작품이 있고, 또 신인 감독들의 작품도 있습니다. 검증된 유명한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었습니다. <증인>, <하베스트>, <회색 벌들>, <4월> 등 6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Q: 이전에도 영화에 대한 연재를 했었어요.

 

<노원의 아트카메오>입니다. 영화 속에서 감독들이 어떻게 미술작품을 활용하는가를 주목했다고 했어요. 제 아버지가 화가였잖아요. 어쨌든 그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어쩌다가 보니까 영화 속에서 미술 작품이 많이 사용이 되는데 그런 것들이 너무 쉽게 지나치고 별로 인정도 못 받는 것 같았어요. 영화 음악은 주목받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리고 크레디트 맨 마지막에 미술 작품이 나오는데도 아무도 이게 뭐다라는 걸 가르쳐 주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아는 작품도 있고, 모르는데 감독이 의도적으로 조금 부각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저 작품이 뭘까 하고 모니터 상에서 캡처해서 찾아보죠. 사실은 관객의 입장에서도 미술품을 지나친 것 같아도 잠재적으로는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림이 뭐다라는 거를 자기가 인지하거나 그러진 않더라도 영화가 그걸 통해서 어떤 느낌을 전달하는 거죠.

 

Q: 미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버님 이양노 화백 이야길 빼놓을 수가 없군요. 2020년도쯤, 소식지에 처음 글을 연재한 것도 <아버지의 그림, 아들의 이야기>로 시작했지요.

 

아버지는 한국전쟁을 통해서 추상 미술을 했습니다. '앵포르멜'이 50년대 말 60년대로 들어서면서 이제 시작이 되고 있었죠. 그때 프랑스나 이런 쪽에서 들어오는 조류 때문에 기존의 위협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젊은 화가들이 많이 시작을 했죠. 근데 아버지는 그전에 한국전쟁을 겪고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폐결핵으로 마산 요양원에 계셨습니다. 그때 만났던 '이열'이란 시인이 있었는데 시화 형식으로 그림을 그린 게 있어요. 근데 하나도 안 남아 있어요. 얘기를 들어보면 그게 추상이었대요. 그러니까 아버지는 그때부터 사실은 추상을 한 거예요. 그때 추상을 했다는 거는 한국 전쟁이나 이런 걸 겪고 나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추상이지만 실제로는 앵포르멜의 초기 추상은 약간 구상적인 요소가 있어요. 그러면서 현실이 굉장히 암울하게 왜곡돼 있는 거를 많이 묘사를 했어요.

 

아버지가 인민군 의용군이었기에 홍대 1기생이었지만 학교 졸업을 못 했습니다. 졸업을 못하니까 일자리를 얻기가 힘들고 전업 작가로 살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저희를 한참 키워야 될 때는 그림을 못 그리셨대요. 그래도 다시 그림으로 승부를 보아야겠다고 다시 시작했는데 그때는 다시 구상을 했죠. 인물화를 많이 그리셨습니다. 인물화 쪽으로는 국내에서 굉장히 인정을 많이 받고 있지요. 의뢰해 오는 초상화를 많이 그리셨던 것 같습니다. 후에는 인물화를 중심으로 역사 기록화라고도 볼 수 있는 그림들을 그리셨지요. 인물들을 배치하여 다양하게 구성한 큰 역사화 작품들이 있는데 대부분 우리나라 중요한 미술관에 한 작품씩 거의 다 들어가 있다고 봅니다.

 

Q: 향린교회가 명동에 있을 때 향우실에 걸려 있던 아버님의 그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유작들은 어떻게 보존되고 있나요?

 

한 5분의 3 정도는 팔리거나 주요 미술관에 거의 들어가 있고 나머지는 저희 누나 집에 거기 방 하나를 다 차지해서 보관하고 있어요. 아버지 작품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보관해야 하지만 아무래도 경제적인 현실 문제가 있습니다. 2006년도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는데 2016년도에 10주기 회고 전시회를 열었었습니다.

 

Q: 학교에서는 어떤 공부를 했습니까?

 

저는 역사학 공부를 했어요. 누나도 미술을 했고 동생도 미술 했는데 아버님께서 제게 직접적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하진 않으셨던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밥 벌어먹기 힘드니까 그러셨겠죠. 어쨌든 소질은 있었던지 학교에 그림 그려 가면 선생이 너 이거 누가 해줬어? 막 이러는 겁니다. 소질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은근히 원하시긴 했는데 아버지가 살아오시면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말씀은 안 하셨어요.

 

Q: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해왔나요?

 

아주 굉장히 다양한 일을 했죠. 학교 졸업하고는 사실은 운동을 좀 했었지요. 그 당시에는 전두환 말기니까 사회가 정말 형편없었죠. 노동운동이라고 현장 가서 노동자들을 만나서 교육시키고 뭐 이런 일을 한 건데, 뻑 하면 다 잡아갔습니다. 계속 수배를 당하다가 87년도가 돼서야 조금 풀렸죠. 이제 잡혀갈 가능성이 없어졌던 거죠. 그리고서 88년에 유학을 갔어요. 유학 2년 정도 미국사 공부 했는데 계속 공부할 건 아닌 것 같아서 돌아왔습니다.

 

'새누리 신문'이라고 옛날 기독교권에서 나온 신문이 있습니다. NCC 쪽의 목사님들이 힘을 합쳐 신문을 만든 겁니다. 거기서 기자로 일하다가 뒤늦게 옛날에 있었던 사건으로 인해서 감방에 갔어요. 그때는 이슈가 통일 운동이었죠. 북한에 임수경 왔다 갔다 하고, 문익환 목사님 왔다 갔다 하고 그럴 때 통일 운동이 굉장히 이슈가 되고 그로 인해 많이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직접적인 일은 아니지만 관련되어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한울 출판사'에 있었죠.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이었지요. 그때 인터넷이 한참 뜰 때예요. 그래서 저도 개인적으로 공부를 좀 했죠. 아마 한국에서 출판사로서는 최초로 홈페이지를 '한울'이 만들었어요. 제가 만들었지요. 근데 2천 년도쯤 해서 그 당시에 학교 후배나 친구들이 인터넷 한참 뜨고 그러니까 우리도 인터넷 쪽 사업을 좀 해보자고 으싸으싸 해서 회사를 하나 만들었어요. 그런데 사업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없다보니 실패했죠. 그때 사이트 만들고 프로그래밍이나 이런 걸 많이 배웠어요. 그 후로도 그런 쪽 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 소프트웨어 개발 이런 쪽 일을 다양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지요. 교회 홈페이지도 제가 만든 겁니다.

 

Q: 전업으로 글 쓰기를 생각해 보신 적은 없나요?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로 밥벌이를 할 만큼 잘하진 못합니다. 하하. 지금은 주로 관심을 갖는 게 영화 쪽이니까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른 쪽은 제가 새롭게 한다 해도 그렇게 깊이 있게 들어갈 수가 없고, 영화와 관련해서 다른 사람들이 캐치하지 못하는 그런 부분들을 조금 관심 있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Q: 필명으로 '노원'을 쓰기도 하고 후에는 '로로'라고 바꿨어요.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노원구에 '노원문고'라는 큰 책방이 있어요. 거기 사장이 돈을 벌어서 복합 문화 공간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거기에는 서점도 들어가고, 영화관도 들어가고, 음악공연장도 들어가고, 미술 갤러리도 있습니다. '더숲'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이지요. 지금은 명칭이 바뀌었지만 거기에 제가 한 2년 정도 일했고 1년은 관장으로도 일했습니다. 그때 그 지역 사람들한테 홍보도 해야 하니까 페이스북에 ' 노원'이란 이름으로 한 거예요. 그러다 '로로'로 된 거는 '로로브레인'이라는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사용했지요. 15년 넘게 운영했어요. 나중엔 혼자서 일하는 개인사업체로 되었지요. 그래서 '로로'가 된 거죠.

 

Q: 현재 소식지 '길목인'의 편집장입니다. 편집하면서 어려움이나 문제점도 있겠지요.

 

일단 불편한 점은 편집하고 발송도 저 혼자 다 하잖아요. 결정해야 하고 실행하는 것도 혼자이다 보니 자꾸 늦게 발행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좋은 글들이 많은데, 조금 더 많은 구독자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구독자를 좀 넓히는 방안을 좀 고민하고 있습니다.

 

Q: 안병무도서관에서 '한강 읽기' 모임도 하고 있네요.

 

저는 행정적인 일을 하고 있고 이끔이는 고대연 님입니다. 대학교 때부터 원래 문학을 했었고 직장생활을 하지만 문학의 꿈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분입니다. 18명 정도 회원들이 있는데 보통 12 정도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한강 작가의 전 작품을 다 다뤄 보자라는 것이죠. 읽고 토론하고 독후감 식으로 발표합니다. 한 달에 한 번 하니까 큰 부담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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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병무 도서관 지킴이도 하고 있지요?

 

저는 홈페이지를 만들 때 개입해서 현재는 전문위원으로 들어가 있고 가끔 땜빵으로 지킴이도 하고 있습니다. 홍영진 장로님이 도서관장을 하셨고 그다음에 김창희 장로님이 하시잖아요. 제 생각에는 지킴이를 조금 더 보강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화, 목, 토, 일요일에 열고 있는데 일주일 내내 풀로 열어야 제 기능을 한다고 봅니다. 지킴이는 회원 가입시키는 일하고, 책 빌려주고, 반납받고, 책 구입부터 책 정리하는 일반 도서관 업무와 똑 같이 한다고 보면 됩니다.

 

Q: 신앙은 아무래도 부모님 영향이 컸겠지요?

 

아버지가 향린교회 다니신 게 70년대 후반입니다. 그전에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 기독교인이 아니셨어요. 이명희 장로님, 그분도 미술 하시는 분인데 그분이랑 친구예요. 그분이 향린미술학원이라고 할리우드 극장이 있는 곳에 만들었어요. 그게 꽤 잘 돼가지고 그 당시에 홍대나 서울대 간 미술인들이 다 거기 출신이 많습니다. 아버님이 거기서 같이 가르치는 일을 하셨지요. 그래서 향린에 나오게 된 거죠.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인 거 같아요. 교회로 이끌어 주신 건 아버님이십니다. 저는 친구 따라서 교회를 가끔 가긴 했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우리 다 함께 향린으로 나가자 해서 78년도쯤에 등록을 한 거 같습니다. 아마도 향린의 오래된 교인 몇 명 중에 들을 거예요. 그때부터 이제 교회 생활을 한 거죠. 1, 2학년 때만 해도 굉장히 열심히 했죠. 목사 될 생각까지 했었죠. 그때 어린이 교사 하면서 정원진 목사가 우리 나중에 목사 되자 했는데 정원진 목사는 진짜로 목사가 됐어요.

 

저는 그 후에 학생운동하고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 하면서 교회에 나가지 못했어요. 또 유학 갈 때 빠지고, 노동운동한다고 빠지고, 감방 간다고 빠지고,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또 좀 멀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한 때는 9년 동안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도기순 장로님께서 계속 전화를 주셨어요. 교회 나오라는 소리도 안 하십니다. 그냥 어떻게 잘 지내냐 이러시는 거예요.

 

제가 교회에다가 죄를 많이 졌습니다. 제가 원래 40년사 역사를 제가 쓰기로 했어요. 그래서 준비를 많이 했어요. 이제 집필에 들어가야 되는 그 순간에 딱 안기부에 끌려간 거예요. 그러니까 못 썼죠. 그래서 그때 곽건용 목사님과 홍근수목사님 두 분이서 부랴부랴 해서 향린 40년사가 나오게 됐지요.

 

그로부터 20년이 흘러서 60년사를 또 저보고 쓰라는 겁니다. 그래서 또 쓰겠다고 그랬죠. 그때 한문덕 목사님과 김창희 장로님, 정수미 집사님 등이 팀이 돼 가지고 논의하며 쓰기로 했는데 문제는 그때 제가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 때였어요. 너무 힘들어서 진행이 안 되더라고요. 결국은 계속 시간만 끌다가 두 손을 들었죠. 그 죄로 인해서 또 교회를 못 나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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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정을 잘 아는 분이 홍영진 장로님이에요. 홍영진 장로님께서 저를 챙겨주신 겁니다. 교회에 안 나와도 계속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면서 많은 이야길 나누었지요. 그러다가 제가 형편이 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니까 다시 나오게 된 거죠. 그러고보면 유난스러운 교회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학 공부를 많이 했어요. 지금도 신학 서적을 많이 봅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신앙은 부족하지만 영성, 영적인 거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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