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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계룡산 순례길

posted Oct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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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일곱째별
발행호수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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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뜬별 | 계룡산 순례길 

 

 

의사의 권유로 자정 전에는 잠들려고 애를 쓰는데 스트레칭을 하고도 한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몇 번의 꿈을 꾸다 전화가 왔다. 아침의 전화는 거의 한 사람이다. 내용은 일정 조정이었다. 그러나 조정이 안 되고 끝내 취소가 되어버렸다. 마음이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며칠만에 된장국과 밥을 해서 먹었다. 그리고 전날 생각했던 곳에 가기로 했다. 

계룡산국립공원 동학사.

산길로 들어서기 전에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샀다. 요즘 건강을 위해 삼가고 있었지만, 순간 에너지 생성을 위해 한 캔을 들이켰다. 닫힌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등산화를 갈아신고 스틱을 꺼냈다. 배낭은 아무리 비워도 쓸데없이 무거웠지만 멀리 갈 생각이 아니었기에 그냥 멨다. 

동학사는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탐방로 입구에서 동학사까지도 1.4km로 꽤 걸었다. 사람들 복장이 대부분 단출했다. 짧은 옷에 휴대폰 정도만 손에 쥐고 산책하듯 다녔다. 

 

동학사 

주 도로가 아닌 동학계곡 옛길로 올라갔다. 관음암과 미타암을 지나면 동학사가 있다. 동학사는 소문대로 좋았다. 동학삼사(東鶴三祠)는 숙모전, 삼은각, 동계사이다. 도착했을 때 숙모전은 막 문을 닫았고, 그 옆 삼은각으로 가보았다. 삼은각은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를 모신 사당이었다. 

단심가와 선죽교의 정몽주는 워낙 유명한 인물이고, 목은 이색은 서천군 기산면 영모리에 있는 문헌서원이 한산이씨 명조 선현 8위를 제향하는 서원인데 그 제향인물 중에 그가 있다. 그곳에서도 이곳에서도 목은 이색을 만난다. 야은 길재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인데 금오산인이라고도 한다. 

삼은각에서 나와 대웅전으로 가서 사찰 외벽 탱화도 보고 예쁘게 단장해 놓은 정원의 수련과 금잔화와 이름 모를 꽃을 보았다. 나중에 내게도 정원이 생기면 그렇게 돌맹이로 오종종 가장자리를 쌓은 꽃밭을 만들어야지 생각하여 미소를 지었다. 

 

동학사에서 조금 올라가면 탐방로 안내도가 나온다. 

이미 한 시 반. 

애초에 정식 등반할 생각이 없었기에 0.9km만 가면 있는 은선폭포만 보고 오려고 했다. 배낭엔 초코바와 크런치바와 홍삼 사탕 두 개와 1리터도 안 되는 자전거용 물통의 물. 그리고 수첩과 방석과 점퍼와 수저 등. 

장갑 낀 손에 스틱만 쥔 채 준비운동도 없이 무모하게 등반을 시작했다. 그런데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다가 뒤에 바위산이 보이자 갑자기 고소공포증이 생기며 어지러웠다. 그래서 발로 밟고 올라가던 계단에 주저앉았다. 구토증세가 나타났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평지에서 걷는 것도 힘들 판에 등반이라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조금 안정을 하니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곡예 같은 등반을 했다. 내 거친 숨소리에 하산하는 사람들이 “이제 시작인데”라고 하며 지나갔다. 

 

은선폭포

그래도 오르다보니 은선폭포에 다다랐다.

신선이 숨어있다는 은선폭포는 물이 말라 졸졸 흐르는 정도였다. 새벽이라도 운무를 볼 순 없을 성싶었다. 그래도 눈앞에 장벽처럼 펼쳐진 산세와 그 능선따라 솟아난 소나무로 경관이 근사했다. 그 앞 아늑한 곳에서 한참 쉬어도 좋았다. 

거기서 내려오려다가 혹시나 해서 1.1km 더 가면 있다는 관음봉까지 가볼까 했다. 돌로 된 길은 가파르고 험했다. 어느정도 가다가 이어폰을 끼고 내려오는 남자에게 얼마나 더 가야 관음봉이 있냐고 물었다. 한참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내려가야지 내려가야지 하면서 계속 오르고 있었다. 한참 가다가 여자 세 명이 내려왔다. 나는 다시 물어봤다. 10분은 더 올라가야 한다고, 일단 돌길이 끝나야 한다고 했다. 그중 한 명이 금방이에요, 라며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다른 이들은 사실을 말해야지, 라며 뭐라 했지만 내겐 그 사람이 고마웠다. 

 

산티아고에서도 그랬었다. 유럽 남자가 힘겨워하는 내게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있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말을 듣고도 한참을 더 걸어갔지만 말이다. 그게 순례자의 힘내라는 배려임을 안다. 

 

금방이라는 하얀 거짓말을 듣고 올라갔다. 마침내 0.1km만 올라가면 관음봉이 있다는 표지판이 나왔다. 나무의자나 표지판에 배낭을 두고 100m만 올라갔다 올까 망설였다. 그러나 내 짐은 늘 지니고 다녀야 안심이 되니 그냥 배낭을 멘 채 올라갔다. 잘 한 선택이었다.     

 

 

DSC00917은선폭포_resize.jpg

계룡 제7경 은선폭포(운무)

 

 

관음봉 

올라가 본 관음봉은 괜히 이정표에 있는 지점이 아니었다. 사방이 한 눈에 보이는 아주 높은 바위였다. 그 아래는 정자가 있었다. 나는 그 정자에서 마지막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긴 의자에 누워있던 여자가 내 배낭의 몸자보를 보더니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어디 소속돼서 다니시는 거예요?”

“아니요. 혼자 다녀요.”

전에 같으면 '핵 발전소 없이 안전하게 살자'는 몸자보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투기 이후 무력감에 빠져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청주에서 오신 그분은 계룡산엔 사람이 많아 여자 혼자 다녀도 무섭지 않아서 자주 온다고 했다. 그리고는 내가 올라온 쪽이 보통 하산하는 길이라고 했다. 전망도 없고 빠르긴 하다고. 그래서 그렇게 가파른 거였다. 그분이 보통 시작하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리로 내려가도 동학사가 나온다고 했다. 남매탑 쪽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믿을만한 최측근에게 현재 내 위치를 알렸다. 

만약의 사태 즉 조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나는 내가 민폐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누구에게도 피해 끼치지 않기 위해 나는 어떻게든 무사히 내려갈 것이다. 

 

세 시 반이었다. 

당시 나는 거리를 재보지도 않았다. 대충 올라온 길보다 더 멀다는 것만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관음봉에서 삼불봉까지는 1.9km. 거기서 0.3km를 더 가야 남매탑이 나온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1.7km 더 내려가야 동학사가 나온다. 도합 3.9km. 산에서 그 거리는 결코 짧지 않다. 4.4km를 올라왔는데 그만큼에 1.5km를 더 가야 했다. 산길만 그렇고 세진정에서부터 국립공원사무소까지는 별도였다. 그런데 나는 출발할 때 지도조차 보지 않았다. 어차피 갈 거 거리를 보면 뭐하나 싶었고 계산할 여유도 없었다. 

깎아지른 계단이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는데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심하게 뛰었다. 열량이 필요한가 해서 계단에 앉아 너츠초코바를 한 입 먹었다. 목이 메어 질식할 것 같았다. 얼른 홍삼 사탕을 입에 넣었다. 그리곤 한 발 한 발 다시 발을 떼었다. 오른쪽 어깨가 불편하니 왼쪽 난간을 잡고 올라갔다. 내려갈 때는 더욱 힘들었다. 

해는 서쪽에서 뜨겁게 직사광선을 발사하고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다 방석 꺼낼 기운도 없어 털썩털썩 주저앉기 시작했다. 올라왔으니 내려가야 한다. 

 

나는 등산을 즐기지 않는다. 경치를 즐기기 위해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게 아니다. 등반 시작하는 순간부터 내려올 걱정이다. 그런데 왜 몸도 성치 않은데 이 험한 계룡산에 오른 것일까. 그리고 어느 정도 올라갔으면 내려가지 왜 한 바퀴를 돌고 있는가. 이건 등반이 아니라 매우 위험한 모험이었다. 

 

 

DSC00919--관음봉_resize.jpg

계룡 제4경 관음봉 한운(閑雲)

 

 

삼불봉

관음봉에서 이정표인 삼불봉과 금잔디고개 갈림길까지는 1.4km, 거기서 삼불봉 고개까지는 0.5km, 또 거기서 남매탑까지는 0.3km. 다리는 벌써 풀려서 간신히 팔에 의지해서 디디고 물도 없이 2.2km. 그 거리면 은선폭포에서 왔던 길로 갔으면 하산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훨씬 더 먼 길을 택한 것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저 발길이 가는 곳으로 향했을 뿐. 거리 계산 같은 건 정확히 할 겨를도 없었다. 목은 마르고 다리는 풀리고 내 머릿속엔 오직 내려가면 시원한 열무국수를 먹어야지 밖에 없었다. 

기진맥진 삼불봉 앞에서는 올라갈 생각은 아예 없이 남매탑으로 가는 우회도로를 택했다. 

내 머릿속에는 청주에서 오신 분이 알려준 남매탑뿐이었다. 거기서부터는 오르막은 거의 없었다. 마침내 탑이 두 개 보였다. 아슬아슬 내려갔다. 

 

남매탑

한눈에 보기에도 세월의 고고한 기품이 역력한 탑이 둘이나 있었다. 

탑을 슬쩍 보고 그냥 내려갈까 하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목이 너무 말랐기 때문이다. 조금만 내려가면 상원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규모가 제법 있는 걸로 보아 사람이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가는 지친 객에게 물 좀 달라고 하면 거절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단을 내려갔다. 

 

쪼로록 쪼로로록

 

물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을 돌아보니 산에서 물이 얇은 관으로 내려오고 아래 석곽에 물이 고여있었다. 

돌벽에 붙은 팻말엔 <천년 약수, 석간수, 능라수>라고 있었다.

빈 물병의 뚜껑을 열고 약수를 받았다. 병에 물이 반 넘게 차자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벌컥벌컥 마셨다. 달았다! 거기엔 음용 가능 여부 수질 검사표도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 높고 깊은 산 속이라면…….

 

남원 귀정사에도 수돗물이 없다.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신다. 그곳에서 몇 달 지내면서도 물을 마실 때는 늘 끓여 마셨다. 산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이렇게 날로, 그것도 벌컥벌컥 마시는 건 처음이었다. 마시고 또 마시고 아마 1리터는 족히 마신 듯하다. 하루 음용량도 그 정도는 안 될 터. 내 몸은 산의 물로 가득 찼다. 잠시 후 땀샘으로 노폐물이 삐지직 빠져나오는 게 느껴졌다. 자연에게 감사했다. 물을 주는 산에게 고마웠다. 

 

물을 마시며 암자 옆에 붙은 남매탑의 전설을 읽었다.

신라 선덕여왕 시절 당나라 승려 상원대사가 이곳에 움막을 짓고 수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뇌성벽력이 치고 비가 오던 날 밤에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입을 벌렸다. 대사는 염불을 외고 있었는데 호랑이가 신음을 하기에 목구멍을 보니 인골(人骨)이 박혀있었다. 이에 대사는 호랑이 목에서 가시를 빼주었다. 

여러 날 후 어느 밤, 호랑이는 웬 여인을 물어다 두고 갔다. 알고보니 그 여인은 경상도 상주읍 김화공의 따님이었다. 스님은 여인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하였으나 한겨울이라 이듬해 봄까지 기다려 집에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이미 여인은 스님의 불심과 도덕심과 온화하고 준수한 풍모에 연모의 마음을 갖게 된 후라 부부의 예를 갖추어달라고 하였다. 여인의 아버지인 김화공 또한 딸의 생명의 은인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하였다. 결국 스님과 여인은 부부 대신 의남매로 지내기로 하고 평생 남매의 정으로 지내며 불심에 힘쓰다가 함께 입적하였다. 그 사리탑으로 세운 것이 남매탑이라고 한다. 

전설은 여인이 혼롓날 호랑이에게 잡혀 와, 다시 갔을 땐 받아 들여지지 못했다는 설도 있지만 중요한 건 호랑이가 자신을 구해준 스님에게 은혜 갚고자 여인을 데려왔고, 둘은 부부가 될 수 없어 남매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평생 사모하면서도 부부의 정을 누릴 수 없이 남매로만 살 정도로 수도의 길은 매정하게 고결한 것인가. 남들과 다른 길을 가기에 수도자겠지.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과 칠층석탑인 이 탑들은 고려시대 불탑이지만 백제계 양식을 띈 탑으로 보물 제1284, 1285호였다. 

 

 

DSC00942-남매탑_resize.jpg

상원암 남매탑

 

 

갈증이 해소되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원암에 사람이 사는 게 확실했다. 암자 앞에 좁고 긴 텃밭을 일구어 배추를 조로록 심어놓은 게 보였다. 그 앞으로 펼쳐진 암벽으로 층층이 펼쳐진 계룡산자락이 아직 고도가 높음을 알려주었다. 지친 순례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선사해준 상원암과 약수에 감사를 진심으로 담아 인사하고 발길을 돌렸다.      

 

거기서 1.7km만 내려가면 동학사라고 쓰여진 이정표를 보고 나는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여긴 산. 그리고 내리막길은 온통 돌로 가득했다. 평평한 흙에서도 그 정도 거리면 30분은 걸린다. 그런데 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단단하고도 울퉁불퉁한 돌길은 스틱으로 짚기에도 걷기에도 매우 힘들었다. 

게다가 시각은 이미 다섯 시 반. 

하늘에 푸른 기가 남아있어도 산에선 어둠이 일찍 내린다. 여름이면 여덟 시까지도 훤하지만 지금은 초가을. 서서히 어두워지는 산길을 아무도 없이 혼자 내려왔다. 보통 이 길로 상행한다니 이 시간대에 사람이 있을 리 없다. 

 

한참을 내려왔다. 

돌 하나 발 하나 조심조심 내려오다가 한순간 깜짝 놀랐다. 돌길 아래 누군가 시커먼 사람이 엎드려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기겁하고 다시 보니 썩은 나무 둥치였다. 헛것이 보일 정도로 심약해졌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한 발 한 발 디뎠다. 돌길에서 넘어졌다가는 크게 다칠 게 뻔했으니 최대한 조심스레 발을 옮겨놓아야 했다. 왼쪽 두 번째 발톱이 아프기 시작했다. 벌써 두 번이나 발톱이 빠진 발가락이었다. 

 

나는 왜 이런 짓을 할까?

비가 오기 전날이라 계룡산을 생각했고, 잠깐 다녀오려고 했는데 지도를 보았고, 은선폭포까지만 가려고 했는데 관음봉까지 갔고, 그 길로 내려오려고 했는데 다른 길로도 출발지점으로 갈 수 있다니 그 길로 향했고, 물도 없고 체력도 부족한데 왜 이런 위험을 자초할까?

사람들은 휴식하거나 재미있으려고 캠핑이나 여행을 할 텐데 나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생각이 복잡하고 답도 해결책도 보이지 않을 때 길을 나선다.

 

걷는 건 위험하진 않다. 하지만 등산은 위험하다. 특히 이렇게 별 준비 없이 혼자 할 때는. 하지만 누군가와 약속하는 건 쉽지 않다.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극소수인데 그 사람과 연락하고 시간까지 맞춰야 하는 건 서로의 생활을 조정해야 하고 때론 그런 게 상대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는 지레짐작에 나는 혼자 다닌다. 

 

산길은 점점 어두워졌다. 

여섯 시 반이 돼서야 가까스로 산에서 벗어났다. 

다섯 시간 걸렸다.

미타암과 관음암 쪽으로 내려가야 입구가 나와서 0.2km 올라가야 하는 동학사를 다시 보지는 못했다. 

 

동학사 2코스 동학사주차장~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고개~연천봉~관음봉~삼불봉~남매탑~동학사~동학사주차장

거리 : 11.8 ㎞ 

소요시간 : 07시간 00분    

관음봉고개~연천봉 0.7×2=1.4km를 빼면 

그럼 내가 간 코스는 10.4km

그러나 내 도보계에는 12km가 찍혀있었다. 

계룡 8경 중 네 군데를 다녀왔다. 

 

저녁 일곱 시. 

음식 거리 끝에 주차해 놓은 차를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꽉 조인 등산화를 벗고 가벼운 등산화로 갈아 신고 스틱도 접어 넣고 차에 올랐다. 음식 거리에는 하산 내내 내가 고대하던 열무국수집이 없었다. 늦은 아침 먹고 물배만 채웠는데…….

집으로 곧장 가도 힘이 드는데 근처 대형마트로 향했다. 정수기 필터와 주인집 강아지 밥그릇을 사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만에 온 대형마트인지 폐점 직전 알뜰세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주스와 연두부와 과일푸딩과 단호박 찜과 우유와 달걀과 포도를 샀다. 주 1회 장보기를 유기농매장이 아닌 곳에서 하는데 그 맛이 색달랐다. 

왜냐하면 얼마 전 대형 택배회사에서 연료처럼 타들어가는 노동자 다큐멘터리를 본 후 웬만하면 택배로 물건 사는 일을 자제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었다. 중소상인을 위해 대형마트에는 거의 가지 않던 내게 보지도 않고 물건을 구매해서 택배로 받는 인터넷 쇼핑보다는 그래도 물건을 보고 사는 방법이 훨씬 더 낫다는 심리가 구매를 편하게 만든 것이다. 

 

집에 돌아와 찬물로 샤워를 했다. 벌써 9월인데 젊어도 이만저만 젊은 게 아니다. 양말을 두 개나 겹쳐 신었는데도 둘째 발톱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불긋푸릇 멍이 들어있었다. 또 빠질지 그냥저냥 나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등산은 극한도전 또는 극기훈련이었다.

계룡산이 그리도 좋아 자주 온다는 산사람들과 달리 나는 단지 무사 하산이 목적이었다. 너무 늦게 준비 없이 혼자 가서 즉흥적으로 무리한 산행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상쾌하다. 아주 힘든 일을 달성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무사함에 대한 안도감.

자정이 넘기지 않으려고 글을 쓰다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전날처럼 잠들기 전 스트레칭을 했다. 쓸데없이 이것저것 유튜브로 좋은 말씀이나 잔잔한 음악을 틀지 않고도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조반을 먹고 빗소리를 들으며 글쓰는 시간이 참 좋다.

 

일곱째별-프로필이미지_2023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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