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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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시끄럽다.
솔직히 지난 선거 이후, 내공 약한 심신 보호 차원에서 엘지 트윈스 관련 소식 이외의 뉴스를 전혀 보고 있지 않은 관계로 요즘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조금 둔감해져 있다. 하여 올림픽 공원에 사람들이 그리 모인다는 것이나 월드컵이 시작되었다는 것과 같은 사실을 전해 들을 때마다 많이 놀라는 중이긴 하다. 그럼에도 역사를 뒤로 돌리려는 자들이 여전히 기세등등하고, 이에 대한 심판자를 자임하는 세력 역시 내지르는 소리에 비해 그에 따른 행동은 널리 미치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다. 이를 모두 비판하며 대안적 진보성에 천착하는 이들의 언어는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으며, 따분하고, 구태의연하며, 무엇보다 대중에게 들리지 않는다.
세상도, 또 글을 쓰려니 다시 내 마음도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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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던 어느 날 아침, 기도랍시고 몇 개의 십자가와 초 앞에 앉아있던 내게 문득 교회 좀 다닌 사람들이라면 대개 어디선가 들어 보았음직한 성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고린도전서 1:22-23a)
초기 예수 신앙 공동체가 있었던 지역 중 하나인 코린트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지협에 위치해 있었다. 육지를 따라 진행하는 항해라 해도 고대에 뱃길은 위험천만했을 뿐 아니라,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완전히 돌아가야 하니 시간도 너무 많이 걸렸던 바, 코린트는 지협 이쪽저쪽의 항구도시, 레카이온과 켄크레아에 배가 정박하면 짐과 배를 육지로 끌어올리고, 통나무 등을 놓고 이동하는 내륙 통로 '디오코스(Diolkos)'를 통해 인근 지역 운송을 사실상 독점했다. 이는 로마군의 파상공세로 완전히 파괴되었던 코린트를 재건하는 물적 토대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흥 부자, 로마 내 권력층, 퇴역 고급 군인들의 도시로 새롭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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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처럼 으리으리한 사람들만 있었다면 어디 한순간이라도 유지가 될 수 있었을까? 항만에서, 또 물류와 배를 끌어당기는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상인, 수많은 노예를 포함한 다양한 계층이 코린트를 생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예수 신앙 공동체 역시 작지만 매우 다양한 계층과 인종이 참여하고 있었다. 다양성은 힘이 되기도 하지만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했을 터, 고린도 교회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 식자(識者)와 배우지 못한 사람, 유대인과 그리스인 간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대 사람은 기적을,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우리는 고난 당한 예수를...' 그러한 때에 이 말은 현상을 넘어, 또 현란하고 화려한 주제들 너머에 있는 어떤 가치를 향해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자는 호소가 아니었을까?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 자칫 중심을 잃고 좌고우면하며 흔들리지 않고 살아감에 있어 소중한 경구가 아닐까 싶다.
비록 세상은 시끄럽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