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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14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초상화는 누구를 닮아야 하는가?

posted Mar 26, 2020

아트 카메오 - 영화에서 튀어나온 그림 이야기

14.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초상화는 누구를 닮아야 하는가?


이 영화에는 안 나오는 것이 있다. 한 여인의 자살을 몰고 올 만큼 여인들의 삶을 지배하는 가부장적 문화의 실제 주체인 남성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짙게 드리워진 힘으로만 표현된다. 켈트족의 주 거주지였던 프랑스 북서부 브레타뉴 반도의 외곽에 자리 잡은 작고 외딴 섬이 이 영화의 무대이다. 때는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하기 20년 전쯤이다. 의아한 것은 영화 전체를 통해 어떠한 형태의 장식이든 장신구든 십자가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수녀원에서 지내다가 돌아왔음에도 그러하다. 대신에 ‘마녀’와 ‘마녀들의 집회’가 등장한다.
영화의 중반에 등장하는 ‘마녀들의 집회’는 주인공 엘로이즈와 마리안느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표현하게 되는 줄거리의 변곡점을 이룬다. 물론 실제로 마녀는 등장하지 않는다. 중세 말부터 계속되어 온 남성들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소위 ‘마녀’가 있을 뿐이다. 영화는 그 소위 ‘마녀’가 무엇이었던가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한다. 거기에는 가부장 문화에 짓눌려서 사는 여성들 사이의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연대감이 있을 뿐이다. 여성들의 성적 만족을 도와주는 마약 비슷한 연고제가 등장하기도 한다. 마녀의 우두머리는 마을에서 여성들에게 몰래 의술을 베푸는 현자에 가깝다.
이 영화에는 또 한 가지 등장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배경음악이 전혀 없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음악은 실제 영화 속에서 부르거나 연주되는 것일 뿐 배경음악이 아니다. 그렇기에 ‘마녀’들의 함께 부르는 주문과 같은 노래와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위해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부분을 연주해 주는 서툰 쳄발로 소리는 그토록 강렬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배경음악이 전혀 나오지 않는 영화 속에서 나름의 흐름과 리듬감을 부여하기 위해 감독 셀린 시아마는 등장인물들의 발자국 소리 하나하나에 까지 연출을 하였다고 한다.
제72회 칸영화제에서 <기생충>과 마지막까지 황금종려상을 두고 경쟁했던 영화였으나 각본상에 만족해야 했던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은 <워터 릴리스> <톰보이> <걸후드>를 통해 탄탄한 각본과 연출력을 선보인 셀린 시아마 감독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다. 화면 하나하나가 베르메르의 그림처럼 정교하고 부드럽고 완벽한 구도를 가진 영화. 도그마나 환상이 없는 페미니즘, 평등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회적 리얼리즘, 자신의 영화는 “여성의 시선에 대한 선언”이라고 표현하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음악, 미술, 그리고 완벽한 각본으로 솔기 없이 짜인 천의무봉과 같은 영화이다.
물론 이 영화의 핵은 그림이다. 밀라노에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초상화를 그려서 보내주는 것이 이 영화의 표면적인 줄거리이다. 초상화의 모델로 서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엘로이즈. 몰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그녀를 흘끔흘끔 쳐다보며 기억을 담아서 초상화를 그리는 마리안느. 그녀들 사이에 은밀히 싹트는 감정의 아슬아슬한 흐름은 첫 번째로 완성한 초상화를 보고 내뱉는 엘로이즈의 한 마디로 결절점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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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것인가요?”
엘로이즈는 그림이 자신의 모습을 닮았는지 아닌 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모델을 서주지 않았으니 닮게 그리기 힘든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녀의 관심은 그녀를 바라보는 초상화가 마리안느의 ‘시선’에 있을 뿐이다. 그것은 두 여인 간에 싹트는 미묘한 감정은 완전히 제거되고 단지 밀라노에 사는 이름 모를 남성의 시선만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것인가요?”라는 말은 이 영화가 담고자 하는 ‘시선’을 한껏 전면으로 끌어낸다. “이 그림은 저를 닮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도 닮지 않았다.”고 엘로이즈는 비판한다. 그림에는 그림의 대상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시선’이 담겨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만 그림의 주체와 객체를 뒤바꿔 버리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안느는 완성된 그림을 뭉개 버린다. 그리고 이제는 초상화 모델을 기꺼이 서는 엘로이즈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다시 그린다.
부엌의 세간살이 이외엔 벽에 걸린 것이라곤 딸을 시집보내려는 백작 부인의 초상화 뿐인 무채색의 휑뎅그렁한 집안의 분위기는 새롭게 완성되어 가는 초상화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부각시킨다. ‘마녀들의 집회’에서 마리안느가 불타오르는 엘로이즈를 목격한 이후 두 여인은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런 가운데 완성된 두 번째 초상화는 첫 번째 것과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엘로이즈의 모습은 다소곳한 여인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남성의 시선으로 본다면 ‘시건방진’ 표정에 가깝다. 그러나 그 그림의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그 그림은 밀라노의 남자에게 보내질 것이고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몇 일간의 불꽃같은 사랑은 끝이 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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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마녀들의 집회에서 기묘한 하모니를 이루며 반복되는 노래의 가사가 라틴어로 “Fugere non possum” 즉 “우리는 도피할 수 없다.”인 것처럼 운명이 여전히 그녀들의 삶을 지배한다. 이 노래는 셀린 시아마 감독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18세기 노래 중에서 유사한 것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자신이 직접 작곡을 했다.
완벽한 각본으로 이름을 날린 셀린 시아마 감독의 작품답게 이 영화는 아주 세밀한 부분에까지 정교한 언어가 배어 있다. 또 한 명의 여성인 하녀 소피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하여 ‘마녀의 우두머리’의 시술로 낙태하는 장면, 그것을 외면하려는 마리안느, 그 장면은 기억에 단단히 박고자 그림으로 그려달라는 엘로이즈의 모습은 왜 이다지 가슴에 박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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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위계질서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엘로이즈의 엄마가 몇 일간 집을 비운 사이에 세 명의 여인들이 보여주는 포근한 연대감. 그것을 한 장면에 담아 하녀 소피는 취미생활로 수를 놓고, 마리안느는 포도주를 준비하고 엘로이즈는 요리를 만드는 모습은 왜 이리도 포근한 감동을 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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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현실의 권력관계를 캔버스에 틀 지우는 것인가? 아니면 자유로운 영혼의 시선으로 현실을 해방시키는 힘인가? 미술 작품에 한정해서 바라본다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미술의 소중한 영역을 건드린다. 나만을 위한 기억의 저장소로서의 그림.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기억하기 위해 작은 스케치 그림을 그리고, 엘로이즈도 마리안느의 나체 자화상을 자신의 책 28페이지에 그려달라고 해서 보관한다. 또한 하녀 소피는 이제는 시들었지만 싱싱하던 때의 꽃을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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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동안의 사랑을 나누고 영원히 헤어진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책의 28페이지로 다시 해후한다. 7~8년이 지난 후 마리안느는 자신의 그림이 걸린 전시장에서 엘로이즈가 그녀의 딸과 함께 있는 또 다른 초상화를 만나게 되는데 그 그림에서 엘로이즈는 마리안느가 그려준 그림이 있는 28쪽을 가리키고 있다. 약간은 신파지만 왜 그렇게 진한 감동이 밀려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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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아심이 인다. 오늘날의 책에서는 폈을 때 오른쪽 면이 홀수 페이지이고, 왼쪽 면이 짝수이다. 이 영화에서는 오른쪽 면에 28페이지가 있다. 이것은 18세기에 출판된 책에 대한 고증의 결과일까? 아니면 감독 셀린 시아마가 의도적으로 홀와 짝을 뒤바꾼 것일까? “당신이 나를 보고 있을 때, 나도 당신을 보고 있다.”는 영화의 대사처럼 시선의 반전을 위한 의도적 설정일까? 주체와 객체의 반전, 여성과 남성의 반전, 위계문화와 평등한 연대문화의 반전. 그렇게 감독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을 위한 2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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