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팔레스타인,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난 1년, 제가 만나 대화를 나눠본 난민들의 출신 지역입니다. 출신 지역이나 성별, 언어는 달라도 이들이 가진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삶이 통째로 뿌리뽑혔다는 것입니다.

글쓴이(가운데) 오른쪽은 아프가니스탄 난민 나집. 왼쪽은 팔레스타인 난민 살레.
이란
2026년 2월 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폭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내세웠던 첫 번째 명분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미국은 러시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입니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란의 하메네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란인 스스로 자유와 평화를 되찾으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2월 28일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비롯해 이란의 주요 인사 수십 명을 미사일 공격으로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미국은 이란의 미나브 지역에 있는 한 초등학교를 폭격해 170명가량의 어린이 등을 살해했습니다. 이란인을 향해 자유와 평화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고서는, 정작 그 이란인을 살해한 것입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2월 28일부터 3월 30일까지 1천9백 명 이상의 이란인이 살해되고, 2만 4천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희생자의 나이는 8개월에서 88세에 이르며, 240명의 여성과 210명 이상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포함됩니다.
UNHCR(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격으로 이란에서 3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살던 이란인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농촌 지역 등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은 이란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십 년째 전쟁이 계속된 데다, 2021년 탈리반 정권이 들어서자 많은 아프간인이 인접국인 이란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쟁으로 이란 내 아프간인이 희생되기도 하고, 직업을 잃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란으로 피난을 왔던 아프간 난민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난민이 된다는 것, 특히 전쟁이 지속되는 곳에 살고 있는 난민은 한 번의 이주나 이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이 지속·확산하는 만큼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생존을 위해 계속 이동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레바논
레바논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습니다. 1978년, 1982년, 1993년, 1996년 등 지난 수십 년간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레바논을 공격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7월 12일부터 한 달가량 이어진 전쟁으로, 이때 레바논인 1천2백 명가량이 사망하고, 1백만 명가량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2026년 2월 28일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3월 2일 이스라엘이 레바논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공격으로 3월 말까지 레바논인 1천2백 명 이상이 살해되고, 1백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난민이 된 레바논 어린이 파티마. 유니세프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3월 27일 '격화되는 폭력 사태로 3주 만에 레바논 인구 20%가 터전을 잃었으며, 매일 평균 1만 9천 명의 어린이가 피난길에 오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불과 3주 만에 레바논 어린이 37만 명 이상이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매일 평균 최소 1만 9,000명의 소년과 소녀들이 난민이 된 것입니다. 이 규모를 가늠해 보자면, 24시간마다 아이들을 가득 태운 수백 대의 스쿨버스가 살기 위해 피난길에 오르고 있는 셈입니다…현재 레바논 전역에서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뿌리째 뽑혀 나갔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이미 두 번, 세 번, 심지어 네 번째 피난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UNHCR에 따르면 2026년 3월 2일부터 3월 27일까지 레바논에서 20만 명 이상이 인접국인 시리아로 떠났습니다. 이 가운데 18만 명가량은 시리아인으로, 시리아 내부에서 전쟁이 계속되자 안전한 곳을 찾아 레바논으로 왔던 사람들이 포함됩니다. 2만 8천 명가량은 레바논인으로, 이들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시리아로 떠났습니다.
이렇게 레바논인과 시리아인 모두 전쟁이 시작되면 살기 위해 피난을 떠났다,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다시 전쟁이 벌어지면 또다시 떠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1947년~1949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살던 아랍인을 공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랍인 1만 5천 명가량이 살해되고, 75만 명가량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이들 난민 가운데 20만 명가량이 가자(Gaza) 인근으로 몰리게 되고, 이곳이 나중에 가자지구(Gaza Strip)가 됩니다.
UNRWA(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에 따르면 2023년 8월 현재 가자지구 인구 약 240만 명 가운데 160만 명가량이 난민입니다. 난민의 수가 이렇게 많은 건, 직접 난민이 된 사람과 그의 후손이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발리아, 누세이라트 등 8개 난민촌을 중심으로 생활했습니다.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 UNRWA
2023년 10월 7일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했습니다. PCBS(팔레스타인 중앙통계청)에 따르면 2026년 3월까지 가자지구에서 7만 2천 명 이상이 살해되었고, 1만 명 이상이 실종 상태입니다. 그리고 가자지구 인구 대부분인 200만 명가량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외부를 봉쇄하고 있어서,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되는 동안 이들은 가자지구 내부에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난민이 또다시 난민이 되길 반복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기나 수도도 없이 비바람에 쉽게 날아가 버리는 텐트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파괴된 주택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쟁과 난민
요즘 언론에 보면 이란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에 비해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잘 나오지 않습니다. 이란에 대한 관심도 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국제 유가 상승,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일으키거나 주도한 전쟁으로 이란,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지에 600만 명가량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언급하는 한국 언론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2025년 말부터 2026년 초까지 있었던 이란인의 반정부 시위를 이란 정부가 탄압하던 것에 대해 각종 보도가 쏟아졌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언론이 이스라엘의 잘못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언론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이 더 많이 글을 쓰고, 더 많이 대화를 나눌 때입니다. 전쟁으로 삶을 송두리째 뿌리뽑힌 사람들에 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