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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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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튼 아일랜드 할매음식점 - Enoteca Maria

posted Feb 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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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튼 아일랜드 할매음식점

Enoteca 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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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Staten Island Ferry", 2024, Feb. Digital Painting

 

팬데믹 이후 뉴욕을 찾는 지인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사람들은 뉴욕에 와서 짧은 기간 무엇을 경험하고 싶어 할까? 우연히 Trafalgar 여행사에서 하는 "New York Explorer"의 5일 일정을 보게 되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브로드웨이 쇼의 비하인드 씬, 9/11 추모관 & 박물관, 그리고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를 타고 Enoteca Maria(이노테카 마리아)? 이게 뭐지? 뻔한 일정에 심드렁하게 보다가 눈이 반짝 뜨인다. 전문적인 셰프가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논나(할매)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전해오는 고유의 레시피로 식사를 준비하는 색다른 음식점이다. 뉴욕 타임스(▶기사 보기)에 소개된 적이 있고, 가성비와 질이 좋은 음식을 선정하는 미슐랭 빕 구르망 리스트에도 있다. 페리에서 내려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니, 지하철이 뉴욕의 다른 보로우와 연결되지 않아 멀게만 느껴졌던 스태튼 아일랜드를 가볼 엄두가 생겼다.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Staten Island Ferry)

 

Enoteca Maria를 마음 한켠에 접어 두었다가 드디어 1월 말 놀랍게도 푸근한 토요일, 친구들과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에 몸을 실었다. 로워 맨해튼의 Whitehall Terminal에서 주말에는 30분 간격으로 페리가 다니는데, 25분 정도 걸린다. 떠날 때 배의 뒤쪽 갑판으로 가면 하얗게 부서지는 뱃길 따라 서서히 멀어지는 로워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즐길 수 있다. 갈매기들이 힘차게 쫓아와 바로 눈앞에서 날아오른다. 1월에 갑판에서 한기를 느끼지 않고 바람을 즐길 수 있다니… 이 뱃길에는 늘 "Let the river run" 노래가 귓가에 힘차게 울리는 것 같다. 칼리 사이먼(Carley Simon)이 갑판 위에서 불렀던 매력적인 모습과 함께. 주말이어서 영화 "Working Girl"에 나오는 장면, 슈트에 운동화를 신고, 배에서 면도하는 뉴욕 출근길의 씬은 펼쳐지진 않지만. 

[▶유튜브 보기]

 

국립 등대 박물관(National Lighthouse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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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teca Maria는 금, 토, 일 오후 2시 반, 5시 반, 7시 반 세 차례 손님을 받는다. 2시 반 예약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St. George Terminal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국립등대 박물관에 들렀다. 페리에서 가까이 볼 수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등대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처음 설치된 1886년부터 1902년까지 16년간 등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불빛이 일몰 이후 배를 안내하기는 충분치 않아 문을 닫았다고 한다. 페리를 타고 오다 뉴저지 쪽으로 보이는 등대가 Robins Reef Lighthouse인데, 등대지기였던 남편의 유지를 따라, Kate Walker란 여성이 33년간 등대를 지켰던 곳이라고 한다. 찬찬히 등대의 역사와 얽힌 스토리를 읽어보아도 흥미로울 것 같다. 

 

Enoteca Maria

[▶동영상 보기]

 

Joe Scaravella 가 2007년 St Charles historic district에 어머니 이름 Maria를 따서 Enoteca Maria를 열었다. 할머니, 어머니를 여의고 힘들었을 때 자신을 위로하고, 그들이 해주신 음식 맛이 그리워 시작했는데, 손님들도 이곳에서 같은 향수를 느끼고 점점 모여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여러 지역에서 온 논나(할매)들이 음식을 했는데 2015년 파키스탄을 필두로 페루, 터키, 아제르바이잔, 아르헨티나, 팔레스타인, 방글라데시, 이집트, 멕시코, 스리랑카, 푸에르토리코,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논나들이 25-30명 정도 일한다고 한다. 논나의 스케줄에 따라 한 달에 한번, 때론 일 년에 한 번 일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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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은 길게 30석 정도 자리가 있었다. 바에서 주인 Joe가 일하고, 유리로 일부 가려져 환히 볼 수 있는 주방에는 논나가 분주하게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음식은 항상 메뉴에 있고, 그날의 특선메뉴로는 아르헨티나와 일본 음식이 있었다. 우리는 비트 샐러드와 아르헨티나 논나 카르멘이 만든 만두, 플랭크 스테이크를 말아서 속을 채운 음식, 그리고 일본 논나 유미의 가지요리, 이탈리 논나 마리아의 브란지노 생선요리를 시켰다. 난꽃으로 장식해 정성스레 차려 왔고, 맛도 좋았다. 샐러드는 음식마다 곁들여 나와 따로 시키지 않아도 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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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gentinas Empanadas de Carne & Bifes Rellenos from Nonna Carmen, Argen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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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st beet Salad, Focaccia Bread from Italian Menu, Eggplant Dengaku from Nonna Yumi,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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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zino al Cartoccio from Nonna Maria, Italy

 

 

음식을 주문받는 사람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생선이 손짓으로 크다고 하면서 더 이상 시키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바디 랭귀지를 보내왔다. 음식을 다 내오고 나서 그날의 특선 요리를 담당한, 카르멘이 손님 테이블을 돌면서 인사를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고향이라고 한다. 한 달에 한번 나오는데 가족에게 음식을 하는 마음으로, "Heart"를 다해 준비한다고 한다. 우리와 사진을 찍고 나서 바로 옆 St. George Theater 입구에 나와 앉아 커피 브레이크를 갖고 있었다. 곧 77세가 된다고 하는데, 논나의 열정과 정성에 박수를 보낸다. 

 

음식점 주인 Joe Scaravella와 잠깐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벽에 걸린 사진이 할머니와 어머니라고 소개한다. 한식을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한국 논나는 아직 없다고 한다. 한국의 고유 음식을 알리는 한국 할머니들도 Enoteca Maria에 합류해, 언젠가 만날 수 있길 희망한다. 쿠킹 클래스를 신청하면 논나와 일대일로 고유의 음식을 만드는 법과 레시피를 가르쳐 준다고 한다. 무료인데 웨이팅 리스트가 길다고 한다. https://www.enotecamaria.com/wp/nonnas-in-training-registration-faq/

 

세계 각국의 할머니들이 보낸 레시피를 " Nonnas of the World Book", Virtual Book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전라남도 담양의 이정순 할머니의 김치 레시피도 찾아볼 수 있어 반가웠다. pp. 34-35. http://nonnasoftheworld.com/

 

나의 할매 식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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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Bon Appetit", 2024, Feb. Digital Painting

 

 

오는 뱃길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 엄마와 할머니의 음식은 무엇일까? 양쪽 할머니를 뵌 적이 없고, 고향이 황해도인 부모님은 두 분 다 맏이어서 명절날 친척들이 우리 집으로 모였다. 전날 고모, 숙모, 외숙모가 집에 와서 음식을 도와주신 기억이 난다. 맷돌에 불린 녹두를 넣고 어처구니를 돌리면, 노란 녹두가 맷돌사이로 흘러 내려와 커다란 다라이에 모여가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숙주, 김치, 버섯 등 야채와 돼지고기를 버무려 파를 얹어 따끈하게 부치면 호호 불며 먹던 아주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처음 뉴욕에 오셔서, 가져오신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팥소를 넣어 지져주시던 찹쌀 부꾸미. 그리고 첫아이 산후조리 오셔서 해주시던 닭조림,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는 음식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전해주지? 녹두빈대떡 말고, 아이들은 내가 만든 궁중 떡볶이를 좋아한다. 떡을 먼저 뜨거운 물에 말랑말랑하게 데치고 다진 마늘과 간장 설탕으로 무친다. 그리고 버섯과 당근, 양파, 고기를 따로 볶아 섞는다. 비결은 오이를 얇게 썰어 소금에 절여서 꽉 짜고 기름에 달달 볶아 떡볶이에 섞는 것이다. 우리집의 고유 레시피라기보다는 "대장금"의 장금이한테서 배웠다.

 

베라자노 브리지(Verrazzano Bridge), 로빈스 리프 등대(Robins Reef Lighthouse), 자유의 여신상, 갈매기, 하얀 물거품, 물길… 들을 다시 스치고 배에 내리니 어둑해진다. 참새가 방앗간 가듯이 지척에 있는 배터리 파크의 씨글래스 카루셀(SeaGlass Carousel)에 들렸다. 네온 칼라가 밤에 더 환상적이다. 목마가 아닌, 바닷속 물고기를 타고 관광객처럼 보낸 뉴욕의 오후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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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_프로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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