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The Gift) : 대가 없이 주고받는 일은 왜 중요한가
저자 루이스 하이드 | 역자 전병근 | 도서출판 유유 | 2022.08.14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시장경제가 차지하는 영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시장경제의 중심에 있는 '돈'은 정량화, 추상화의 척도로서 반론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돈을 더 내면 보다 안전하고 교통이 편리한 곳에서 살 수 있고, 보다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으며, 길게 줄 설 필요 없이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깔끔하다. 과거에 돈을 내지 않았던 영역에서 상품화가 빠르게 진전하고는 있지만, 사람의 살림살이에서 시장경제 이전의 거래 방식 다시 말해 '선물경제'의 테두리는 여전히 넓다. 100년 전 발표된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이래 '선물경제'에 대한 연구는 자본주의, 상품경제,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하였다. 길목협동조합의 운영원리에도 두말할 나위 없이 선물경제의 요소가 녹아 있다. 선물경제를 다룬 다양한 저서들 가운데 미국의 시인 루이스 하이드가 저술한 600쪽 넘는 벽돌책 "선물(The Gift) : 대가 없이 주고받는 일은 왜 중요한가"를 소개한다.
"예술작품은 우리 존재의 어떤 부분에 호소하는데, (...) 그것은 우리가 일궈낸 성취라기보다는 선물이다 -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 영구히 지속된다." (27쪽)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의 말을 인용하면서 책은 시작한다. 개인의 타고난 재능(gift)에 비롯된 예술작품, 지식 등은 시장에서 마음대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가 없이 돌려주어야 하는 선물(gift)이며, 공동체 환원의 순환고리를 통해 그 가치가 크게 증식한다는 아이디어가 책의 주된 흐름이다.
책의 주제이자 제목인 선물(gift)에는 몇 가지 의미들이 있다. 선물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선물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선물은 우리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선사되는 것이다. 우리가 재능이나 직관, 영감을 선물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의지를 토대로 노력을 통해 재능이 좀 더 완벽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그저 노력만 한다고 재능을 낳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가는 창작 과정에서 자신의 창작물이 품고 있는 '선물'적인 측면을 느낀다. 또한 예술작품은 우리가 작품 감상을 위해 얼마를 지불하건 상관없이 우리 존재(being)의 어떤 부분에 호소하는데, 조지프 콘래드의 말처럼 그것은 우리가 일궈낸 성취라기보다는 '선물'이다.
물론 예술작품은 사고팔 수 있다. 예술작품은 시장경제와 선물경제라는 두 가지 '경제'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런데, 예술작품은 시장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예술은 선물이 없는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술작품이 품고 있는 선물적인 특성이 우리가 예술을 상업화하는 데 일정한 제약을 부과한다.
저자는 책의 1부에서 인류 역사에서 지속되어 온 선물경제와 시장경제 사이의 공존과 긴장 관계를 꼼꼼히 추적하면서 우리 선조들이 선물 순환의 힘에 기대어 삶을 풍부하게 영위해 왔음을 증명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동서고금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Just So stories)의 공통된 요점은 재산이 선물로 순환할 때 집단이 형성되고 응집해 유지될 수 있으며, 선물 교환이 중단되거나 선물이 상품으로 바뀌면 집단은 깨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요소들을 부정하는 혁명가/아나키스트는 아니다. 선물경제와 시장경제를 각각 둘러싼 서로 연계된 생각들을 정리해 내고, 인류사에서 고리대금업 내지는 이자 수취에 대한 입장의 변화 과정을 추적하는 저자의 노력이 독창적일 따름이다.
"한편에는 상상력, 통합적 사고, 선물교환, 사용가치, 선물-증식이 있으며 모두 에로스 또는 관계, 묶기, '하나로 변하기'라는 공통 요소로 연결된다. 다른 한편에는 분석적 또는 변증법적 사고, 자기 성찰, 논리, 시장교환, 교환가치, 대출에 대한 이자가 있으며 모두 로고스 또는 부분들로 분화되는 성질을 공유한다. 이 두 가지 축, 그러니까 합침과 쪼갬 가운데 어느 쪽도 다른 쪽보다 더 중요하거나 강력하지 않다. 다만, 각각 자기 영역이 있고 더 우세해지는 때가 있을 뿐이다."(343쪽)
책의 2부에서는 미국 근대 시문학의 두 거장인 월터 휘트먼과 에즈라 파운드의 삶과 작품세계에서 드러나는 선물 순환의 힘을 탐구한다. 영문학에 문외한인 독자 입장에서 두 거장의 심오한 작품 세계를 따라가기에 벅찼지만, 두 거장이 작품 창작과 구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작용한 선물의 힘을 즐겁게 체감할 수 있었다. 두 거장은 당대의 거물이자 많은 애독자를 거느렸지만, 자신의 예술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따금 부업에 종사했고, 보잘것없는 후원을 받고서 행복했으며, 사실상 늙어서까지 가난했다. 에즈라 파운드의 경우처럼 시장경제와 고리대금업/이자 수취를 거부하는 근본주의적 입장이 파시즘 옹호로 귀결되는 과정을 살펴본 점도 부수적인 성과였다.
'예술작품은 선물'이라는 명제가 맞다면, 예술의 노동에 종사하는 예술가는 시장교환이 지배하는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먹여 살릴 것인가? 생전의 빈센트 반 고흐처럼 자신의 생산물이 상품으로 적절히 설명되지 않는 사람들은 하찮다든가 쓸모없다는 불온한 느낌에 계속 시달릴 것이다. 예술가, 창작자, 연구자들의 구체적인 살림살이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시장경제와 선물경제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조화롭게 해소할 것인가?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 물음에 대답하되, 실용적 해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해법이란 대부분 자기 시대의 것이고 시대가 변하면서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603쪽) 결국, 선물경제의 에로스와 시장경제의 로고스가 공존하는 중간지대에서 구체적 맥락에 따라 현명한 균형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