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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회적경제 역사로 본 사회적협동조합 길목

posted Sep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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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회적경제 역사로 본 길목협동조합

 

 

사회적경제의 태동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성장과정을 보게 되면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위기가 극심해질 때 민중들 스스로가 상생, 호혜, 연대의 가치로 위기를 극복한 것을 볼 수 있다.

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멈추기 위한 대안으로서 사회적경제가 주목을 받고는 있으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로 인한 세계적 재앙 앞에서 사회적경제가 또다시 어떤 역할로 이 위기를 극복할지는 우리의 과제이자 길목의 과제가 될 것이다.

지금부터 ① 사회적경제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9세기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활발했던 협동조합 운동, ② 복지국가와 협동조합의 정체성 위기, ③ 신자유주의 폐해 속에서 재평가되는 사회적경제, ④ 양극화 극복을 위한 사회정책으로서의 사회적경제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통해 길목의 사회적 가치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지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1. 19세기 산업혁명 당시의 협동조합 운동

 

사회적경제는 유럽 봉건제 생산양식의 붕괴와 함께 협동조합 운동으로 등장을 했다. 산업혁명 이전의 시장은 단순한 상품교환의 장이었으나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하면서 시장은 그 기능이 다양해지고 새로운 양태로 변모되었다.

자본주의가 본원적으로 이윤발생과 자본축적을 위한 상품생산체제이다 보니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노동력은 자본가에 의해 지불노동으로 전환되어 상품 생산요소로 투입되면서 노동력도 상품으로 거래되게 되었다.

자본주의 이후 시장은 노동시장, 상품시장, 자원시장, 금융시장 등 다양한 재화가 거래되는 시장으로 분화되었고 노동력의 상품화는 인간이 자본에 종속되는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19세기 이전인 16세기부터 공유지에서 영주와 함께 살던 농노들이 자유라는 미명 하에 그들의 터전에서 쫒겨나는 인클로져운동이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화폐를 많이 가진 사람들의 신분이 사회적으로 더 인정받는 것을 본 영주들은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면서 양을 키우거나 목초지를 만들기 위해 40명 정도가 생활하던 터전을 양치기 한 명과 한 마리의 개만 남기고 모두 강제퇴거를 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이 생긴 것이다.

더욱이 교구단위로 이뤄지던 빈민구제사업은 종교개혁을 통해 교구의 권한이 축소되면서 빈곤에 대한 책임이 국가로 전가되었다. 쫒겨난 농민들은 일자리가 있는 도시로 밀려날 수밖에 없으면서 갑자기 농부에서 부랑자 아니면 임금 노동자로 사회적 신분이 바뀌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요즘의 둥지내몰림 현상(gentrification)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도시로 쫓겨 온 도시노동자들의 삶은 참혹 그 자체였다. 그 당시 주요 산업은 양모와 면화를 재료로 하는 방적산업과 증기기관차의 끝없는 질주를 위한 광업이었다. 특히 영국의 식민지에서 가져오는 면화로 인해 계절상품이었던 모직물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4계절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공장제 산업은 더욱 활발해지게 되었다. 공장주들은 제한된 공간에서 더욱 더 많은 방적기를 가동하고 좁은 갱도의 광산에 들어가서 더 많은 철광과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서 싼 임금과 통제가 쉬운 아동과 여성을 선호하였다. 만 7세부터 14세 이전 아동들의 아동노동은 공공연한 일이었고 하루 평균 노동시간이 17시간이었으며 여성과 아동은 새벽 3시부터 밤 10시까지 19시간 노동을 하였다. 그 당시 평균 사망 연령은 맨체스터 17세, 리버플 15세, 배시날 그린지역은 16세이었다고 한다(지역별 계층별 사망연령의 비교, 1842).

한편 그 당시 영국의 구빈비용이 국민총생산의 2%를 차지하고 예산의 20%가 지출될 정도였다고 하니 빈곤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알 수 있다.

그때 국가는 무엇을 했을까?

1601년 구빈법, 1834년의 신구빈법을 통해 빈곤을 법으로 통제하였다. 빈민을 구제 가치가 있는 빈민, 구제 가치가 없는 빈민, 요보호 아동으로 구분하여 근로원이나 구빈원에 보내거나 아동노동을 합법화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보면 그 당시 구빈원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알 수 있다. 국가는 빈곤을 범죄로 인식하여 개인의 자유의지를 허용하지 않고 박애를 굴욕적 돌봄으로 왜곡시켰다. 그리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면서 동정을 금지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에 대해 신랄한 공격을 하며 어떤 장애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며 개인적 검약을 강요했다. 국가의 빈곤을 위한 통치는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만 할 뿐이었다.

이때 빈민들과 노동자 당사자들은 실업, 질병, 노령, 갑작스러운 죽음 등과 같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부양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상호원조라는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시도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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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대 로버트 오언(1771~1858)의 ‘뉴라나크방적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환경, 노동조건에 획기적이고 놀라운 실험이 시도되었다. 로버트 오언은 학교를 다닌 적이 거의 없지만 젊은 시절부터 옷감장사를 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 당시 옷감장사는 지금의 AI나 IoT와 같은 첨단산업 종사자로 이해하면 된다. 오웬의 방적공장에서는 10세 이하의 노동자들은 일을 시키지 않고 공장 안에 만들어 놓은 유치원에서 다니도록 하고 18세까지는 하루에 절반을 일하고 절반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하였다. 성인 노동자들은 관행처럼 여겨지던 하루 17시간 노동시간을 10시간 반으로 줄 줄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생필품을 헐값에 살 수 있도록 구판장을 회사 안에 만들고 주택을 마련하여 제공하였다.

뉴라나크는 전형적인 협동조합은 아니었지만 협동조합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노동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노동통합의 뿌리가 자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실험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고 정신만은 지금까지 살아있다.

그런 면에서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은 세계 최초의 성공한 협동조합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악덕 공장주의 횡포에서 벗어나 보려던 1844년 10월, 노동자들의 파업이 무산되자 28명의 노동자가 다시 모여 12월 21일 어스름한 저녁 그들의 생필품을 자체 조달하기 위한 상점을 열게 되었다. 수입이 한정된 노동자 가족들이 생필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생활문제였기 때문에 소비의 조직화를 통한 생산의 변화, 거래의 도덕적 개혁은 로치데일의 성공 요인으로 남는다.

그리고 가장 큰 성과는 처음으로 이용고 배당 원칙으로 잉여금을 배당했다는 것이다. 뉴라나크에도 있었듯이 협동조합 방식의 생필품 구판장은 매우 많은 지역에서 운영되었지만 연말의 잉여금 분배를 둘러싸고 예외 없이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로치데일에서는 가게에서 물건을 많이 구입한 조합원에게 잉여금을 더 많이 분배하는 「이용고 배당」을 실현했다. 지금이야 협동조합의 이용고 배당은 기본원칙이지만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로치데일형 소비자협동조합이 주로 발전한 영국과는 달리 19세기 중엽 독일은 도시나 농촌을 불문하고 신용협동조합이 협동조합운동의 주류를 이루었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였던 독일은 19세기 중엽의 산업혁명 이후에도 도시에는 수공업자나 상인이, 농촌에는 소농 경영자 등 이른바 중산계급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다. 그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대자본과의 경쟁 속에서 자금수요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고리대 자본으로 인해 몰락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1850년대 이후 독일 각지에서 자생적인 신용협동조합운동이 나타나게 되는데 도시의 슐체와 농촌의 라이파이젠 신용협동조합이 독일을 대표하는 근대적 협동조합 운동으로 등장하였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19세기 초부터 중엽까지 독일의 주요 산업은 농업이었다. 공업의 발전은 느렸고 수공업이 활발했다. 그러나 독일은 1848년 3월 혁명 이후 급속하게 전개된 자본주의체제로 인해 도시의 수공업자들과 농촌 소농들의 빈곤화가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독일 수공업자들의 처지에 주목하면서 수공업자들의 가난과 어려움을 해결하고 구제하기 위해 슐체의 신용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되었다.

슐체(1808~1883)는 부유한 사람들로부터 기부를 받아 제분소와 빵공장을 빌려 빈민에게 빵을 적정한 가격이나 무상으로 배급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델리치 사람들은 기아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수공업자나 자영업자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자조와 협동의 정신이 결합된 협동조합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1849년 델리치에서 보험조합의 성격을 띤 질병사망공제조합을 설립하였다. 조합원들은 가입비와 매달 출자금을 납부하고 조합원을 경제상태에 따라 세 개의 계층으로 구분하여 보험 혜택을 주었다. 이는 민주적이거나 협동조합적인 성격은 부족했고 자선의 성격이 강하였다. 1850년에는 수공업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자본을 제공하는 대부조합을 설립하였다. 이 조합도 자선의 성격이 강하고 조합원에게 부여하는 의무가 없어 자조성과 연대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 후 1852년 대부조합을 재편하여 기부금이나 차입금에 대한 의존을 폐지하고 자기자금에 의해 운영되는 것을 원칙하는 대부조합의 개혁을 실천하며 신용협동조합이 출발하였다. 조합원의 출자로 자본을 조달하고 비조합원에게는 대출을 해주지 않으며 연대책임제도를 운영하여 근대적인 신용협동조합의 모델이 되었다.

또한 우리나라 신용협동조합의 모델이 된 라이파이젠 신용협동조합은 독일 농촌지역에서 시작되었다. 라이파이젠(1818~1888)은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농촌활동가였는 데 농민들이 매우 성실하게 농사를 지음에도 늘 가난하게 사는 이유가 수확을 하기까지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 생활하고 수확물을 거의 원금과 이자로 갚는 것이 매년 되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며 농민들을 설득하여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좀 여유가 있는 대농들에게는 많이, 중농과 빈농들에게는 조금씩 돈을 갹출하여 가난한 농민들부터 순위를 정해 놓고 고리대금업자들이 받는 이자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봄에 돈을 빌려주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농민들은 고리대금업자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출구를 찾게 되면서 유럽농촌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그 후 농민들이 중간업자에게 수확물을 넘기지 않고 직접 구판장을 운영하여 훨씬 많은 이익이 보장되는 농업협동조합이, 배를 가진 선주들이 잡아 온 물고기를 직접 팔기 위한 구판장을 만들면서 수산업 협동조합이, 산을 가진 산주인들이 모인 임업협동조합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남부지역과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에서는 노동자들의 공장접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노동자생산협동조합과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주택, 보건협동조합과 같은 서비스 협동조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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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지국가와 협동조합의 정체성 위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보장을 지향하며 복지국가가 탄생했다. 복지국가는 최저소득의 보장, 사회적 위험의 감소, 적정 수준과 보편주의적 혜택을 목적으로 하면서 국가의 책임이 강화되었다.

1945년 유럽에서 시작된 케인지언 복지국가는 정부지출 확대를 통한 재정확대로 민간의 유효수요를 늘리고 이를 국채 발행 등의 공공부문의 공급으로 충당하는 국가 체계이다. 또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를 강조하며 대공황으로 비롯된 개인의 빈곤과 실업은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최종책임이 국가에 있으므로 국가의 소득재분배정책을 통해 개인의 빈곤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50, 60년 대를 거치면서 유럽 복지국가들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평균 7%를 상회하는 자본주의 황금기(Gold Age)를 보내게 되자 사회적경제의 기능은 국가의 역할에 편입 흡수되면서 거대 자본과의 경쟁에서 위기를 맞게 되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서는 1937년 제정된 협동조합 원칙을 수정하여 1966년 협동조합이 기업과 경쟁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에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규모를 키우는 연합체에 대해서는 협동조합의 민주적 운영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조합원에 대한 이용고 배당을 줄이고 대신 사업준비금을 강화하도록 함으로써 기업과 맞설 수 있는 물적 기반과 협동조합의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해 주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협동조합도 대기업과 손색없는 규모로 성장하기도 하고 몇몇 국가에서는 대기업을 능가하는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조합원의 이용이 늘어나면서 협동조합의 결사체적 성격이 약화되고 조합원의 참여 없는 직원 중심의 운영이 일반화되는 등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시장시스템을 보완하는 한 부분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198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7차 ICA총회에서 캐나다 협동조합중앙회 총장 출신의 레이들로 박사는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협동조합이 거대화되고 일반화되면서 협동조합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가치 내지 정신이 점차 희미해지고 결국 조합원 이기주의로 흐르고 있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협동조합이 정의가 실현되는 새로운 세계와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식량문제의 해결과 기아의 극복 둘째, 인간적이고 생산적인 안정된 일자리 마련 셋째,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사회보호자로서의 협동조합 넷째, 협동조합 지역사회의 건설을 제안하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협동조합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3. 신자유주의 폐해 속에서 재평가되는 사회적경제

 

1970년대 환율체계의 붕괴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으로 그동안 안정되었던 세계경제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환율체계의 붕괴는 여러 국가마다 미래 예측을 어렵게 하였고 유류파동은 생산 물가를 급속도로 인상 시키면서 복지국가는 역할이 축소되었다. 경제성장률 저하, 인플레이션, 실업률의 급증으로 세계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자 이를 위한 타개책으로 1980년대 초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선언하면서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서비스 민영화, 각종 규제완화 등의 시장확대정책 시행으로 자본에 의한 노동지배력 강화가 시작되었다.

1990년대 이후 지구적 금융자본주의로 변신한 시장자본주의는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다양한 국제기구들에 의한 금융 지배를 통해 새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였다. ‘금융 세계화’를 통해 자본축적방식이 실물경제에 자본을 투자하지 않는 방법으로 이윤을 축적하게 되면서 금융지배력을 가진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이자와 부채’로 돌아가는 금융지배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가 되었다. 사회적 부의 절대 총량은 증가했지만 대량실업과 소득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에서 국가의 역할은 한없이 작아졌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경제위기와 빈곤 등의 사회문제가 취약계층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 복지국가가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통적 복지국가 이념 기반이었던 사회민주주의로 돌아가지는 않고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장점들은 취하고 단점들은 폐기 혹은 시정하려는 제3의 길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경제에 주목하게 되었다.

화폐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사람 중심의 경제, 따뜻한 경제, 착한 경제로 불리는 사회적경제의 재해석으로 사회적경제는 여러 나라에서 주목을 받으며 제도화의 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이는 협동조합운동이 갖는 보편성과 공동체의 욕구가 공동의 이익으로 체득될 수 있는 모든 지점에서 협동조합이 조직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급속하게 진행된 도시화와 산업화 문제로 두레나 계 등의 우리나라 고유의 상부상조 전통이 단절되었다. 일본에게 우리나라 국민은 압박과 통치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20년대에 농민협동조합과 도시빈곤층 중심의 두레조합형태로 사회적경제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해방이 되자마자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최빈국이 되었다. 민간영역에서 자발적으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호혜와 상생, 연대의 운동을 통해 1960년대에 신협, 1980년대에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등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도시빈민 지역공동체 같은 민간조직들이 자생하기 시작했다.

IMF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노동시장 유연화, 공공서비스 민영화와 구조조정 등의 규제 완화로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내몰리면서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그 당시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생산 가능한 사람들은 모두 일자리를 갖는 것이 필요했다. 고용위기와 돌봄의 사회화, 성차별 등이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되면서 사회서비스 정책이 대표적인 일자리창출정책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서비스 일자리창출정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사회적경제가 노동통합정책으로 조명되며 국가의 주요 정책아젠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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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양극화 극복을 위한 사회정책으로서의 사회적경제

 

2007년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대기업 규모인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 복합체에서는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탈리아에서는 논첼로협동조합, 카라박프로젝트, 카디아이 등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협동조합 방식의 사회적기업들이 사회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면서도 지역사회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또한 캐나다의 퀘벡시(인구 약800만명)는 주민의 70%가 조합원이며 협동조합이 퀘벡주 내의 총생산의 8%, 연간 매출이 약 17조원인 것 등을 보면서 사회적경제가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각되자 현 정부에서는 모든 부처에서 사회적경제정책을 추진하여 사회적경제는 주요 국정과제로서의 정책적 위상을 갖게 되었다.

UN은 협동조합이 경제발전과 사회적 책임, 둘 다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협동조합’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양극화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서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하였다. 이는 협동조합의 인지도를 높이고 설립이나 발전을 촉진하며 이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도록 권고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도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2020년 현재 세계의 협동조합 조합원수는 인구의 12%로 약 10억명이며 협동조합이 창출한 일자리수는 2.8억 개로서 세계 취업인구의 10%를 고용하고 있다(ICA). 협동조합 조합원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으로 총 2억 56백만 명의 조합원이 약 3만 개의 협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다. 다음으로는 인도가 9,370만 명 일본이 7,700만 명이다. 유럽에서는 이탈리아가 총 2,250만 명으로 가장 많은 조합원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총 21,000개의 협동조합은 약 1백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이는 총 취업인구의 3.5%에 해당한다. 케냐에서는 약 25만 명이 협동조합의 직원이거나 수입의 대부분을 협동조합을 통해 얻고 있다.

콜럼비아의 협동조합운동은 137,888명을 직접 고용하고 있으며, 559,118개의 일자리는 노동자협동조합이 제공하고 있다. 덴마크 생협과 핀란드 생협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31%(2015), 45.9%(2016)이다. 뉴질랜드는 전체 낙농시장 및 관련 상품 수출의 95%가 협동조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아이쿱생협, 2017).

영국에는 약 7만 개의 사회적기업이 약 백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였고, 240억 파운드 규모의 경제적 기여를 하고 있다.(The Social Enterprise UK, 2019)

 

지금까지 사회적경제 태동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적경제 발달과정을 살펴보았다. 몇 명의 선구자들에 의해 협동조합운동으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각기 처지와 상황에 맞게 사회적경제로 영역이 확대되어 성장 중이다.

태동기의 사회적경제 핵심전략이 구빈이었다면 지금은 양극화 해결이다.

산업혁명 이후 극심한 빈곤이 사회문제가 될 때에 복지국가-물론 이 시기에는 복지 국가의 개념도 없었지만-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상호원조를 시도한 협동조합이었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양극화를 극복하는 복지국가 부활의 견인차 역할을 한 영역도 사회적경제였다. 한때는 국가와 사회적경제의 파트너십(연대)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사회적경제는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를 견인하는 중심축이 되고 있다.

사람이 존재의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적경제를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5. 사회적협동조합 길목의 사회적 가치와 정체성

 

사회적경제의 역사 속에서 길목의 사회적 책임과 정체성을 찾아보기 위해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해 보았다.

 

1) 세대갈등과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글루의 역할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최악의 경제적 양극화, 좌우 이념 갈등, 동서로 쪼개진 정치적 갈등, 세대간 갈등, 젠더 갈등, 거기다 남과 북의 분단갈등까지 극심한 사회적 혼란이 우리 모두에게 내재화되어 있을 정도이다. 이런 경우 종교가 통합의 기능을 해야 하지만 기독교는 그것도 쉽지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사회적협동조합 길목이 사회적경제조직으로서의 정체성과 기능을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보인다. 협동조합은 그들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우리의 조직이다. 사회적협동조합 길목이 우리의 무엇을 충족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하길 바란다. 길목의 사회적 가치가 쪼개진 조각(길목의 조합원이 주목하는 사회문제)을 붙일 수 있는 글루가 될 수 있을 때 길목의 정체성과 확장성은 분명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2) 향린의 정신이 체화된 사회적기업가 정신 공유

사회적경제 활동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회적기업가정신 (social entrepreneurship)이다. 이를 위해 개인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이타심, 공감능력, 긍휼(compassion)이다. 기독인에게는 이미 체화된 덕목이기도 하다. 길목이 사회적기업가 정신에 주목하며 이를 조합원과 공유하며 나아가서는 향린정신과도 연계하여 사회적기업가 정신이 주 사업의 아이템이 될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사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알리고 이를 양육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3) 길목의 사회적 가치 명료화와 이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비즈니스모델 필요

사회적경제 역사가 주는 의미를 보면 그 시대의 민감한 사회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의지 속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길목이 해결 하고자하는 사회문제(우리의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진솔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사회적경제는 BOP(Bottom of Pyramid)를 위한 사업전략들을 개발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상담도 될 수 있고 통일교육도 될 수 있고 청년사업 지원이 될 수도 있다. 협동조합은 상상이 현실이 되는 조직이니 다 가능할 수 있다. 단 영업활동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최저임금의 정규직 유급근로자를 고용하며 운영할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복지조직하고 확연히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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