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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평통사를 통해 내렸어요, 은총

posted Dec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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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진)

 

 

성령이 평통사를 통해 내렸어요, 은총


은총 님을 인터뷰하기로 했는데 모르는 분이라 조금 긴장이 되었어요. 종로 1가에 있는 힘터 사무실서 만나보니 사드반대 집회나 현장에서 자주 만난 낯익은 얼굴이시네요. 오늘은 몸이 너무 피곤다고 하며 사무용의자에 반쯤 드러눕듯이 앉아서 세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체력이 좋아보이시는데요? 
A: 저는 이래봬도(?) 몸이 약해요. 어머니가 저를 임신 했을 때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셨고, 저를 낳고 나서도 젖이 안 나와 잘 먹이지 못해 제 몸이 약해요. 제가 현장을 열심히 다니니까 사람들은 제가 체력이 아주 강한 줄 아는데 사실 저는 숨이 턱에 차도록 활동 하는 거예요. 현장에서도 어떤 때는 큰 대자로 누워버리기도 해요. 그래서 오해받는 일도 있어요.


직업은 요양보호사

A: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경험을 살려 12년 동안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은 루게릭 환자를 돌보다가 성주 소성리 사드반대 현장에서 팔을 다치고 난 뒤 할머니 한 분을 돌보고 있어요. 


Q: 힘든 루게릭 환자 요양을 자원한 까닭이 있나요?
A: 루게릭 환자는 돌보는 일은 힘들어서 퇴근 할 때는 마치 수용소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혼자는 못하고 두세 사람 정도가 격일로 일해요. 루게릭환자간병을 택한 것은 일주일에 두어 번 촛불을 들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지금 전세임대로 사는 데요, 나는 하느님이 하늘을 버리고 험한 이 땅에 내려오셨듯이 나 스스로 가난을 선택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내가 하루 4시간만 일하면 활동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내 자녀들이 지하셋방은 면하게 해주고 싶다는 욕심을 못 내려놓아 하루에 8시간을 일해요. 세월호 때는 일하는 자체도 죄스러웠어요.
 

이런 것을 ‘욕심’이라고 말 하는 이가 있네요.

Q: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서 평화시장 시다 일을 하셨다지요? 
A: 대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흘 만에 모자에 공장에 다니다가 서울로 올라와 언니가 일하는 평화시장 시다 일을 했어요. 그런데 몸이 약해 언니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가 엄마가 하시는 미나리꽝 농사일을 도우며 중학교 검정고시를 치렀어요. 그 후 서울 고려학원에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는데 영어수학 기초가 없어 절망스러웠어요.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가서 전화교환원 일을 준비하다가 다시 상경해서 봉제 공장에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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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무래도 가롯유다 인가보다’ 라고 절망하던 시간

Q: 어떻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나요?
A: 스무 살 때쯤인지 공장에 다닐 때 사장과 싸웠어요. 내가 왜 이렇게 싸우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족에 대한 애착 때문인 것 같았어요. 가난한 가족에게 돈 한 푼이라도 더 갖다 주려고 싸우는구나 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막내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수녀나 비구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언니 소개로 오산리 순복음교회 기도원에서 성령체험을 하게 된 후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Q: 20년 동안 교회를 방황했다고 하던데요?
A: 제게는 갑자기 찾아온 예수예요. 그런데 성서를 읽으며 질문이 많았어요. ‘예수 아니면 천국에 갈 수 없나?’ ‘하느님은 이집트 시민도 하느님이 창조해놓고 왜 어린아이까지 죽였지?’ ‘하느님이 뭐가 공의로워?’ 이런 질문들을 해도 시원한 대답이 없었어요. 그래서 여의도 순복음교회뿐만 아니라 종교교회, 새문안교회, 형제교회 같은 곳을 찾아 다녀보았어요.
처음 예수를 믿으며 십일조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세뇌 당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  20만원 월급을 받으면 십일조 2만원하고, 기숙사비 2만원, 차비 빼고 모두 집으로 보내는 생활을 했어요. 결혼 후에는 아이들 학습지 하나도 벌벌 떨며 아끼면서도 십일조를 하고 헌금생활을 하는데, 담임목사님이 아들을 교회 돈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상했어요. 그래서 이 교회는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Q: 여러 교회를 찾아다니셨다고요?
A: 그래서 국무총리출신 한완상 교수님이 다니시는 유명한 교회를 찾아 가보았어요. 그런데 그날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데 ‘위에서 밑으로 내려주는 것’ 같은 모습으로 보였어요. 내가 아는 예수는 내려오셔서 주었지 위에서 밑으로 내려 주지는 않았거든요. 내 눈에는 왜 그렇게 보였는지, 나는 뭐 그리 잘났다고 그런 게 보이는지 몰라요. 그래서 ‘나는 예수를 아무리 따라 다녀도 구원 받지 못한 가롯유다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아들이 천주교유치원을 다닌 것이 계기가 되어 천주교로 개종을 했는데 천주교 교육을 받으면서도 신부님께 따지곤 했어요.

Q: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집회를 하는 교회를 보고 민중교회를 찾으셨다고요?
A: 동업자가 개신교 신자라서 다시 교회를 나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교회재정의 1/2이 목회자에게 가는 데 부목사나 전도사에게는 조금 밖에 안 가는 것을 보고 또 화가 났어요. 그래서 주안장로교회라는 큰 교회로 옮겨 십일조하며 숙제하듯 예배만 드리러 다녔는데 어느 날 교회에서 순복음중앙교회의 조용기 목사를 불러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집회를 하는 거예요. 국가보안법은 억지로 사람을 간첩 만드는 법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목사들에게 화가 났어요. 그래서 이 교회도 안 되겠다 싶어 <민중> 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어요. 민중이라는 단어를 누구한테 들은 기억도 없는데 그 단어를 검색해서 ‘새벽교회’를 알게 되고 그 교회에 가게 되었어요. 그 교회 목사님의 성서해석이 마음에 와 닿고 가슴이 쌓인 것이 쑥 내려가곤 했죠. 그 교회에서 ‘예수가 외면한 그 한마디’라는 책과 ‘예수는 없다’라는 책으로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나요.

Q: 향린교회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A: 집회 때 마다 휘날리는 <청년예수> 깃발 때문에 향린을 알게 되었고요, 대한문 쌍차 현장에서 향린교회 교우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몇 해 전 사순절 새벽 기도 때 참석하고 향린교인이 되었어요.


그 때 ‘청년예수’만큼은 아니지만 <새민족교회>깃발도 날렸고 쌍차현장이나 사순절새벽기도는 우리 새민족교우들도 함께 했는데…… 정말 아쉽다는 사심을 드러내 보았습니다. 은총 님은 “그러니까 깃발이나 피켓 글자, 디자인이 중요해요~!”라고 일급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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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날갯짓 하나가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으로 촛불을 들다 

Q: 촛불은 언제부터 들었나요?
A: 국가보안법 폐지 집회 때 추운 12월이었는데  어린 아들 딸과  처음 촛불을 들기 시작 했어요. 그리고 막연하게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결혼 전부터 장애인 단체봉사활동을 하고 유니세프 후원도 하고 했는데 그것은 한 사람을 돕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없게 정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정치를 바꾸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2007년 선거부터 선거 때가 되면 거의 미치다시피 활동을 했어요. 정치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Q: 자신이 촛불을 드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언젠가 쌍차 한상균 위원장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노조도 없어요. 나는 늘 비정규직이라 ‘해고’ 소리도 못 듣지요. 나는 외톨이인데도 늘 촛불은 들어요. 왜냐하면 내 후손을 위해, 사회를 위해 촛불을 들어요”라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나무를 함부로 베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무젓가락을 쓰지 않았고요, 검정고시를 마치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조금 떼어서 고아원에 보내고 가자고 하기도 했어요.
엘리야의 구름 한 조각이 소나기를 부르듯이, 내 작은 날갯짓 하나가 나비효과처럼 세상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생각을 해요. 내 DNA에 이런 의식이 각인 된 사람인가 생각되기도 해요. 나는 지금도 하나님께 의문이 들어요. 내게는 엄청 잘사는 천사 같은 40년 지기 친구가 있는데, “저런 사람이 나 같은 의식을 가지면 백배나 영향력을 미칠 텐데, 아니 하나님은 왜 나같이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한테 이런 의식을 주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나요?”


그래서 하나님의 셈법은 다를지 모른다. “돈 보다 그런 의식이 더 좋은 것이다. 내가 너에게 더 좋은 것을 주었는데 너는 왜 그것을 따지느냐?” 라고 하실 수도 있다고 말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빚까지 떠안고 싱글 맘이 된 후 돈이 없어 사과 한 알을 사고, 두 아이에게 아이스크림 쌍쌍바 하나를 사서 나눠주고, 고기도 조금 사서 잘게 잘라 먹이면서 어느 날은 너무 힘이 들어 “하나님 십만 원만 주세요!”라고 울며 기도했던 시절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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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길거리의 앵커다

Q: 일인 시위를 열심히 한다고 들었어요.
A: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안 하는데 중요한 이슈를 알려야 하잖아요. 매스컴의 앵커가 안하니까 ‘내가 길거리의 앵커다’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방송에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품위를 가져야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일인시위’ 하면 내가 떠오른다고 말하기도해요.

Q: 은총 님의 피켓 메시지가 큰 울림을 준다고 하던데요?
A: 언론이나 SNS에 좀 많이 떴어요. 세월호 때 <세상의 중심은 가장 아픈 곳, 지금은 세월호 가족입니다> 라는 문구나 선거 때는 <도와달라고? 도와달라고 할 때는 뭘 했나요?> 사드반대 피켓으로 <NO THAAD NO WAR> <종전해> 같은 것이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피켓은 눈에 확 띄고, 디자인도 좋아야 해요. 그리고 글씨가 커야 되요 그러려면 글자 수를 한자라도 줄여야 해요. 제 피켓도 경험을 거치면서 점점 발전하게 된 거지요.


성령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을 통해 내렸어요

Q: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활동을 열심히 하시지요?
A: 대한민국의 모든 병폐는 남북분단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제대로 진단하고 제대로 암덩이를 도려내야해요. 평통사는 남북정세분석을 정확하고 과학적으로 해요. 연구원들이 근거를 가지고 활동하기 때문이에요. 남북평화를 위해 제대로 활동하는 단체는 평통사라고 생각해요. 2015년부터 평통사를 알게 되었는데 이곳에 마음이 꽂혔어요. 나의 롤 모델은 평통사 상근자들이고요, 평통사 활동을 하는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내게는 성령이 향린교회를 통해 내린 것이 아니라 평통사를 통해 내렸어요. 평통사는 제게 보람, 사랑, 참다운 가치관을 생각하게 해주는 곳이에요. 평통사에는 가난을 선택해서 자녀 갖길 포기하고 활동하는 젊은이들도 있어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하려는 남북정상화나 통일하려는 태도는 지지하지만, 일부 미국의 요구에 NO 할 수 있는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봐요. 그러려면 평화통일 촛불이 박근혜 퇴진 촛불처럼 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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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드반대를 위해 소성리 기독교 대책위 천막 기도소를 지키셨지요? 
A: 2016년 사드 확정 전부터 그러니까 2014년부터 평통사는 사드 반대에 올인하다시피 했어요. 저도 수시로 성주 소성리로 내려갔어요. 소성리에서 손목도 부러지고, 갈비뼈에 금이 가고 해서 한동안 요양보호사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소성리 기독교 대책위 천막 기도소에서 상주하기도 했어요. 박근혜퇴진 촛불집회 때는 사드반대목소리가 묻힐까봐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사드피켓이 눈에 띄도록 하려고 전광판 앞에 서곤 했어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나를 많이 알아봐요.

Q: 자녀들은 엄마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A: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면 하나님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져주어서 아이들을 잘 길러낸 것 같아요. 제 딸이 17살 때 인도에 유학을 갔어요. 저는 닭장에 가두어 둔 것 같은 우리나라교육이 싫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때 교회 목사님이 한국 교육비 정도로 교육시킬 수 있는 인도의 기독교계 학교를 알아보고 오셨어요. 고민 끝에 딸이 그 학교로 가겠다고 결정했어요. 힘든 여건 이라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딸은 착실하고 모범적으로 학교생활을 잘 했어요. 졸업 후 삼성 인도법인에서 일하다가 8월초 귀국 했는데 취직 하지말고 쉬라했죠. 멋지게^^. 쉬는 동안 NGO활동도 해보라고 권했어요.
(마음은 딸이 평통사 일을 하기를 바라지만 딸이 부담스러워 할 까 본인의 선택을 기대하며 이런 마음은 비밀에 부치기로 했어요 ) 속 깊은 아들(지금 화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하네요)과 딸은 제 활동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자신을 내가 하는 활동에 끌어 들이는 것은 반대해요

그런데 인터뷰 후에 소식이 왔는데 딸이 평통사에서 일 년 상근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엄마의 소망 하나가 이루어지네요.
은총 님은 싱글맘이라 ‘하느님이 애들 아빠다’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을 키웠다고 해요. 그래 그런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녀를 아주 훌륭하게 키워내었다는 칭찬을 많이 듣는다고 다른 이가 알려주었습니다.


나도 피켓 대신 살림꾼으로 우아하게 살고 싶어~~

Q: 앞으로 어떻게 활동 할 생각인가요?
A: 내가 죽을 때까지, 힘닿는 데까지 활동을 하고 싶어요.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떠나는 것은 인간관계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인간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평화통일이니까 사사로운 감정은 삭이고 대의를 보며 뚜벅뚜벅 걸어가야겠죠?
나는 열심히 산다는 말이 싫어요. 제 별명이 캔디, 오뚝이, 또순이 같은 것인데요, 그런 별명도 싫어요. 왜냐하면 내가 생각해도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그러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그 기억이 떠올라서 싫어요.
나는 타고 난 살림꾼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자랑이지만, 평통사 부엌이나 소성리 사드반대 현장에서도 제 손길이 닿으면 뭐든 달라진다고 해요. 나도 촛불 들고 피켓 드는 것보다 사람들 불러서 맛난 거 해먹이고 즐겁고 우아하게 살고 싶어요.


은총 님은 인도에서 돌아오는 딸 마중을 위해 등판에 하얀 글자  <NO THAAD > 라고 쓰인 검은 롱 패딩을 걸치고 추운 바람을 가르며 달려갔어요. 그이가 피켓과 촛불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살림만 살아도 되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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