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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 11 -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의 ‘파리’

posted Dec 31, 2019

아트 카메오 - 영화에서 튀어나온 그림 이야기

11. <미드나잇 인 파리>, 우디 앨런의 ‘파리’


웬만해선 그가 뉴욕을 떠날 것 같지 않았다. 그의 뉴욕 사랑 또는 애증은 너무나 강력해서 그의 영화의 무대는 늘 뉴욕이었다. 아니 뉴욕은 우디 앨런 영화의 배경이라기보다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애니홀>, <맨하탄>, <한나와 그 자매들>, <맨하탄 살인사건>, <브로드웨이를 쏴라>, <라디오 데이즈> 등 그의 대표작들은 모두 뉴욕의 이야기다.
그러던 그가 연로해지면서 다른 도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이는 영화 제작비에도 관련이 있는 선택이었다). <매치 포인트>(2005)의 런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의 바르셀로나, <블루 재스민>(2013)의 샌프란시스코, <미드나잇 인 파리>(2012)의 파리, <로마 위드 러브>(2012)의 로마, <카페 소사이어티>(2016)의 로스앤젤레스 등. <로마 위드 러브>의 경우처럼 도시에 대한 집착이 영화를 다소 망치기도 하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형언하기 어려운 매력을 뿜어내기도 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비 오는 밤 파리의 센 강변과 뒷골목을 거닐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관광 가이드 혹은 홍보 영화처럼 이 영화의 도입부에는 60개의 컷으로 3분 동안 파리의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첫 대사가 “끝내주네! 저길 봐! 이런 아름다운 도시는 세상에 다시없을 거야. 비 내리는 이 도시가 얼마나 멋진지……”이다. 이런 노골적인 ‘홍보물’에도 저항감이 일지 않는다. 60컷이 흐르는 동안 관객은 어느덧 파리에 녹아들기 때문이다.
주인공 길(오웬 윌슨)이 1920년대의 파리로 갔다왔다하는 설정인 이 영화는 당시 파리의 예술계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파리에 머문 미국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스페인에서 온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그리고 다다이스트 만 레이와 브레송 등. 우디 앨런 감독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는지 다시 20여 년 전 ‘벨 에포크’(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풍요와 평화를 누리던 파리) 시대로 들어가서 화가 로트렉, 고갱, 드가 등을 슬쩍 맛보기 한다. 그러니 이 영화에 얼마나 많은 예술 작품들이 등장하겠는가? 주인공이 다시 현대로 돌아와서 방문하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걸린 그림까지 이 영화에는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다양하고 화려한 미술 작품들이 눈을 현란하게 만든다.
1920년대 인물로 영화 속에 유일하게 가공의 인물로 등장하는 사람이 프랑스 배우 마리옹 꼬띠아르가 연기한 아드리아나이다. 그녀로 인해 피카소의 한 작품이 영화에서 키포인트 역할을 한다. 묘한 매력이 자르르 흐르고 자유분방한 아드리아나는 피카소의 애인이며, 헤밍웨이와 함께 훌쩍 킬리만자로로 떠나는가 하면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여인이다. 피카소가 1928년에 그린 <공을 가진 목욕하는 여인>이 바로 그 여인에 흠뻑 빠져있을 때 피카소가 초상화랍시고 그린 그림이다.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로 입체주의의 문을 열고 그 후 다양하고 극단적인 실험을 계속하던 피카소가 한 여인에게 그것도 성적으로 깊이 빠져서 그리게 된 그림이라고 영화 속에서는 표현된다. 이것은 우디 앨런 자신의 해석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그림을 놓고 영화에서는 두 번의 논쟁 장면이 나온다. 하나는 피카소 자신과 거트루드 스타인의 논쟁인데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며 미술애호가로 당시 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사서 도움을 주기도 한 거트루드 스타인은 이 그림에 대해서 “요염함이 흘러 넘쳐요. 성욕을 느끼게 하죠. 그녀는 아름답지만 이 그림은 아름다움은 약하고 음탕함만이 강조됐어요.”라고 비판한다. 또한 객관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오로지 주관성만이 표현되어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 논쟁은 현대로 돌아와 오랑주리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 그림을 놓고 주인공과 예술에 대해 해박하지만 빈껍데기뿐인 속물적 지식인간에 벌어지는 논쟁이다. 이때 주인공은 다시 한번 거트루드 스타인의 주장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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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여기까지 이야기를 끌고 온 이유는 이 그림에 대해서 더 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거트루드 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도 잘 표현되었듯이 그녀는 당시 파리의 예술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비평가였다. 노련한 캐시 베이츠가 연기한 덕분이기에 그녀의 카리스마는 영화 속에서도 넘쳐흐른다. 그녀가 자신의 살롱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의자 뒤에는 어찌 본다면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미술작품이 한 번도 직접적인 주목받지는 않은 채 걸려 있다. 하지만 카메라는 은근히 이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을 거트루드 스타인의 카리스마를 말없이 뒷받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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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리기 한 해 전인 1906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단순하면서도 힘이 있는 얼굴선과 거칠고 대범한 형태 표현으로 앞으로 전개될 큐비즘을 예고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녀는 현대미술의 수집가이며 후원자로서 아방가르드 회화에 관심이 많았고 애수가 담긴 피카소의 청색시대 그림에 반해 큰돈을 주고 작품을 구입하였다. 피카소는 그녀의 초상을 그리면서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하며 그림을 뭉개버리곤 했다. 마침내 이 초상화가 완성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녀를 닮지 않았다고 말하자 피카소는 “그녀가 결국은 이 그림을 닮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훗날 스타인 역시 “나의 여러 초상화 중에서 언제나 나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그림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결국 이 그림은 피카소가 청색시대와 장미시대를 거쳐 본격적으로 큐비즘에 들어서게 되는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초상화란 본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자기주장을 하거나, 화가가 그 주장에 휘둘리거나 혹은 눈치를 슬금슬금 보게 되면 그만큼 망가지기 시작한다. 피카소가 많은 인물화를 그렸지만 딱히 초상화라고 불릴 만한 그림은 흔치 않다. 이미 천재 화가로서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개척하려고 분투하던 피카소에게 자신을 충분히 이해해주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예술사에서 하나의 강렬한 불꽃이 이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피카소가 단순한 천재화가에서 20세기 현대미술의 출발이자 모든 현대미술의 뿌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저 거트루드 스타인의 카리스마와 혜안이 담긴 눈빛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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