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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의 아트 카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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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 2 - 미국 블루컬러 집안의 평범한 그림들, 그리고 이발소 그림 <맨체스터 바이 더 씨>

posted Apr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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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 - 영화에서 튀어나온 그림 이야기
 

2. 미국 블루컬러 집안의 평범한 그림들, 그리고 이발소 그림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면 늘 책꽂이를 꼼꼼히 보는 것이 버릇이었다.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필자의 나이 대략 30대까지는 그랬다. 아마도 그것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가장 빠르고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먹으니 좀 달라졌다. 40대를 넘어서면서 서가의 책들이 그 사람의 정체성과 별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대신 거실이나 방안의 벽에 걸린 것들에 시선이 머물렀다. 놀랍게도 한국 중산층 가정의 벽면은 말 그대로 그냥 ‘벽’이다. 꽉 막혀있다. 얼추 생각해보면 열 가정 중 한 가정 정도가 미술품 또는 그에 준하는 장식이 걸려 있다. 즉 집주인의 마음이나 생각이 묻어 있는 그 어떤 것이 벽에 걸려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의 삶이 본래 그러하다.

헐리웃의 톱스타 맷 데이먼이 제작을 했지만 저예산 영화이며 독립영화의 산실인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2016년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는 미국  보스턴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어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영화 제목 전체가 지명이다)에 사는 블루컬러의 가정집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이 가정집들의 거의 모든 벽면에는 회화나 사진 등 미술품이 걸려 있다. (비단 이 영화만이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가정집은 사회계층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벽면에 미술작품이 걸려 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나오는 그림들은 아주 세심하게 선택되었다. 대부분은 어촌의 풍경을 담은 평범한 그림들이다. ‘평범함’ 그 자체가 세심한 선택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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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이 전부라면 이 책에서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는 유독 그림이 강조되는 장면이 딱 한번 나온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또 다른 그림에 주인공이 이 영화 전체를 통해 유일하게 눈을 맞추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 그림은 평범한 그림이 아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일명 ‘이발소 그림’이다. 그냥 평범한 풍경화 대신에 ‘저질’ 그림이 갑자기 등장하고 카메라는 그 그림을 유독 도드라지게 잡아낸다. 마치 “이 그림 좀 보세요.”라고 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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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할 수 없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간직한 주인공 리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그의 조카 패트릭은 가정을 버리고 떠나간 패트릭의 어머니 질과 그의 약혼자의 집을 찾아간다. 어머니 질은 술에 절어 집안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놓고 어린 아들 앞에서 음부를 드러낸 채 널브러져 자곤 했다. 남편이 심장질환으로 5년의 시한부 인생이 되자 집을 버리고 떠났으며 정신병원까지 들어갔다가 나온다. 그런 어머니가 남편이 죽은 후 아들을 자기가 사는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하였다. 어머니가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일까? 집은 깔끔하고 어머니와 그의 약혼남은 친절하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하다. 느끼한 분위기가 흐르고 왠지 가식적인 느낌이 든다. 바로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이발소 그림이 한 몫을 차지한다. 영화의 다른 장면에 줄곧 나오는 평범한 어촌의 모습을 담은 수수한 그림들과는 달리 숲속 저 멀리서 광채가 흘러나오는 인위적인 풍경화가 전형적인 이발소 그림 터치로 큰 벽을 차지하고 있다. 영화의 다른 그림들은 관객의 시야를 끌어들이기 보다는 자연스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엑스트라 정도지만 이 그림은 화면에 도드라져 시선을 피할 길이 없다. 그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패트릭이 식탁의 중심에 자리 잡은 싸구려 예수상을 유심히 바라본다. 결국 이 만남은 파탄으로 난다. 어머니의 약혼자는 목사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신앙의 힘으로 질에게 새 인생을 찾아준 것일까? 아니면 어머니 질의 삶을 움켜쥐고 성적으로 지배하는 인물일까? 영화가 거기까지 알려주지는 않지만 이 집에 걸린 두 점의 그림은 이들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눈앞에 있다면 그냥 눈길을 피하고만 싶은 두 점의 그림이 말을 대신해준다.

본래 이 영화는 맷 데이먼이 감독을 하려고 케네스 로노건(Kenneth Lonergan)에게 각본을 의뢰했는데 맥 데이먼이 블록버스터 영화를 찍느라 틈을 내지 못하여 결국 감독까지 로노건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로너건은 매우 치밀하고 절제된 연출로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한 상실감과 죄책감을 가진 사람이 삶을 힘겹게 붙잡고 있는 불안정한 모습을 영화에 담아냈다. 극복하지도 않고, 치유하지도 않고, 섣불리 ‘힐링질’하지도 않는다. 카메라의 시각은 단 한 번도 하이앵글이나 로우앵글 없이 등장인물의 눈높이를 위아래 30센티 이상 벗어나지 않는다. (자로 재어 본 것은 아니고 말을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마치 카메라의 시선처럼 주인공의 고통을 위에서 품지도 않고 아래에서 보듬어주지도 않는다는 듯이. 또한 이 영화는 과거의 장면들이 수 없이 교차하지만 보통의 영화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유형의 플래시백 효과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에는 약간 당혹스럽기도 하고 타임라인을 따라가다가 헛디딜 경우도 있다. 다이렉트로 과거의 장면들을 교차 편집한 것은 주인공에게 과거가 결코 과거가 아님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주인공이 감상에 젖어서 과거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인공의 삶 한가운데 과거가 날 것으로 공존한다.

영화는 처음과 끝이 주인공 리와 조카 패트릭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장면으로 구성된다. 그들의 삶 속에 그림으로 늘 걸려 있는 그 바다 말이다. 어쩌면 그 바다가 깊은 상처를 치유할 유일한 길임을 넌지시 말하려는 것이겠다. 영화 속의 바다는 유난히도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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