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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의 아트 카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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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 1 – 퇴물이 된 제임스 본드와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posted Feb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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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카메오 - 영화에서 튀어나온 명화 이야기


1. 퇴물이 된 제임스 본드와 터너의 <전함 테메레르>
 

 

그림앞두사람_resize.jpg

 

“이 그림은 항상 울적함을 느끼게 하죠.
한때의 위대한 전함이 창피하게도 해체되기 위해 질질 끌려가고 있으니…
시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죠?”


2012년 개봉된 <007 스카이폴>에서는 첨단 과학무기를 개발해 제임스 본드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Q가 백발의 노인에서 새파란 젊은이로 바뀌었다. 영국박물관에서 이루어진 본드와의 첫 접선에서 Q가 던지는 위 첫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다. 육체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이제 확실히 한물 간 제임스 본드를 영국의 ‘국민 화가’ 윌리엄 터너의 대표작인 <해체를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에 빗대어 내뱉는 대사이다. 그리고 이렇게 한물간 본드에 대한 애처로운 집착은 이 영화 전편을 통해서 깊게 배어있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그래비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등에게 수여되어온 영국아카데미 영국영화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신뢰성 있는 영화평론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007은 그냥 스트레스 풀려고 보는 액션 블록버스터 아니던가? 하지만 감독이 1999년 영화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로 일약 탑클래스 반열에 오른 샘 멘데스(Sam Mendes)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분야에서 더 큰 활약을 보이는 샘 멘데스 감독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짜릿짜릿한 눈의 즐거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품격을 영화 속 곳곳에 심어 두었다.

이 장면을 본 이후 필자는 뛰어난 영화감독들이 영화 속에서 어떻게 미술작품을 활용하는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007 스카이폴>의 터너 작품처럼 ‘주인공과 분명하게 눈을 맞추고 대사를 주고받는’ 단역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있고, 배우가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그래서 관객도 눈치 채지 못하고 스쳐지나가지만 또렷한 인상을 심어주는 엑스트라 미술작품도 있었다. 그렇다.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감독들은 종종 영화 속에 그림을 등장시키는데 그냥 허투루 가져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예술작품이 주는 메시지나 인상, 또는 뭐라 말하기 힘든 아우라를 찰나에 뿜어내곤 한다.

감독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그리고 그 의도가 어떻게 영화 속에 효과적으로 스며들어가 있는지를 추적하다 보면 영화를 이해하는 깊이와 즐기는 기쁨을 배가시켜 주기도 하며 덤으로 해당 미술작품을 새로운 시각에서 그리고 다시 한 번 몰입하여 감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에 미술작품이 등장한다고 무작정 끌어들여서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미술이나 화가 자체를 다룬 영화는 제외하였다. 그거야 당연하지 않은가? 화가를 다룬 영화에 미술 작품이 등장하는 것은. 그런 경우 미술 작품은 거의 주연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책제목 ‘아트 카메오’처럼 미술 작품이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경우에만 다루었다. 아무리 유명한 미술작품을 영화에 등장시켰더라도 영화감독에게 충분한 문제의식이 없다고 느껴지는 경우는 제외하였다. 단 몇 초 동안 스크린에 번쩍이다가 사라지더라도 그것을 통해 작가가 관객과 분명하고 유의미한 소통을 하려고 하는 경우에만 콕 짚어내려고 하였다.

통상 이런 류의 글을 보면 영화의 줄거리로 반 이상을 채워버리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여기서는 꼭 필요한 만큼까지만 영화의 내용을 소개할 것이다. 그로 인해 영화를 보지 못한 독자들의 경우 감 잡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독자들이 가능한 영화를 찾아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하겠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영국의 국민화가 터너는 영국 영화에 비슷한 풍의 그림으로 수 없이 등장한다. 역사적인 해양 강국답게 바다를 소재로 한 그림이 많다. 프랑스 인상주의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주로 바다와 하늘, 그리고 영국의 흐릿한 날씨가 품어내는 분위기를 화폭에 담은 터너의 작품 중에서도 이 작품은 최고작의 하나로 꼽힌다. 여전히 품위를 유지하고 있는 전함 테메레르가 힘겹게 붉은 연기를 뿜어내는 작은 배에 끌려오고 있고 수평선에는 점함의 운명을 표현하듯 해가 넘어가고 있다. 마치 자신의 힘과 역사를 마지막까지 과시하듯 하늘은 스러져 가는 태양의 잔여물로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다.

 

 

영화속그림_resize.jpg

윌리엄 터너 <해체를 위해 마지막 정박지로 예인되는 전함 테메레르>

 

 

물론 영화에서는 이렇게 퇴물이 된 제임스 본드가 화려하게 부활하여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그런데 실제로 영화로 보고나면 이 그림에서 표현된 전함 테메레르는 본드가 아니라 영국 첩보기관의 수장인 일명 M으로 뒤바뀐다. 영국의 최고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 주디 덴치가 연기한 M은 이 영화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본드는 M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는 역할로 그림에서 붉은 연기를 토해내는 작은 배에 해당한다.

 

 

Amedeo_Modigliani,_1919,_Woman_with_a_Fan,_oil_on_canvas_resize.jpg

모딜리아니 <부채를 든 루냐 체코프스카의 초상>

 

 

이 영화에는 또 하나의 명화가 등장한다. 모딜리아니의 <부채를 든 여인>(정식 제목은 ‘부채를 든 루냐 체코프스카의 초상’)인데 암살이 진행되는 범죄현장에 ‘작물’인 듯이 등장한다. 그런데 서양인의 관점에서 약간은 이국적인 이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이때부터 등장하는 목이 유난히 길고 비극적인 본드걸과 이미지가 절묘하게 상통한다. 긴 목, 축 늘어진 어깨, 거기에 더해진 눈동자가 없는 눈의 표현은 모딜리아니의 전형적인 여성 초상화의 특징이다. 36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화가 모딜리아니 특유의 화풍이 고스란히 담긴 이 작품은 실제로 영화가 만들어지기 2년 전에 피카소 등의 작품과 함께 파리의 시립현대미술관에서 도난을 당한다. ‘작물’을 범죄조직의 암살 현장에 거래 현장에 등장시킨 샘 멘데스 감독의 재치도 보는 이에게 살짝 미소를 짓게 하지만 더욱 인상을 남기는 것은 도난당한 다섯 작품 중 감독이 선택한 이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007시리즈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본드걸의 모습이나 운명과 화학적으로 결합된다는 점이다.
 

 

그림과여인_resize.jpg

 

 

<007 스카이폴>이나 그 후 다시 한 번 샘 멘데스가 메가폰을 잡은 <007 스펙터>의 장면들을 보면 화면 하나하나에 정성과 깊이가 담겨 있다. 특히 도시 전경의 모습을 잡아내는 카메라는 탁월하다. <007 스펙터>에서는 제임스 본드가 굳이 모로코의 탕헤르를 찾아가는데 어쩌면 이것은 액션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본> 시리즈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재정비한 007시리즈가 <본> 시리즈에 대해 표현한 오마주란 생각이 든다. 2007년 영화 <본 얼티메이텀>에서는 탕헤르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액션 영화에 영원히 기억에 남을 압권이다. 2015년 <007 스펙터>는 그 탕헤르의 전경을 나른하고 아름답게 잡아낸다.

노원-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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