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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댁 단풍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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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댁 단풍편지 5 - 주인마담을 섬기는 집사되다

posted Jun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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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권(動物權) 지지자이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또한 반려동물을 키워보거나 키워봤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 적도 없다. 끝까지 책임을 지고 보살필 각오가 없는 한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읍에 내려오자 이러한 내 원칙을 지킬 수 없는 운명에 직면하게 되었다.

정읍에서 집 공사로 내려왔을 때 뒷마당 콘크리트 바닥에 선명하게 동물 발자국이 각인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게 무슨 발자국인가 하고 의문을 가졌었다. 겨울에 폭설로 일주일간 눈 속에 갇혔을 때도 하얀 눈 내린 앞마당에 선명하게 지나간 동물발자국을 보고 또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며칠 지나 현관 앞 데크에 앉아서 창 너머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앉아있는 노랑 고양이를 발견했을 때 드디어 범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는 손님들 오신다고 황토방 아궁이에서 토종닭 백숙을 끓이는데 바로 그 노랑 고양이가 나타나 가마솥에 뛰어들 기세이다. 저리 가라고 소리쳐도 가지 않고 버티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손님들과 닭백숙을 먹는데, 현관 앞에 버티고 앉아 고양이 울음을 울고 있어서, 애묘인인 손님이 닭고기를 발라 주었더니 열심히 먹게 되었다. 그 이후, 이 노랑 고양이는 아침 식사 때는 꼭 우리 집 현관 앞 데크에 출현하시어 당당하게 앉아서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데크 바닥에 늘어지게 엎드려 편하게 낮잠을 주무시는 것도 발견하기도 했다.

손님 치른 다음날 아침에 집밖에 놔둔 쓰레기통이 뒤집어지고 그 안에 닭뼈를 버린 비닐  봉지가 찢겨져 있고 닭뼈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다음부터 닭뼈를 버릴 때도 마당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나중에 한꺼번에 버리려고 신경을 쓰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나도 고양이의 존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어, 앞집 할머니 집에 가서 물어봤더니 며칠 전에 할머니 집 창고에서 어미고양이가 낳은 새끼 고양이가 네 마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 우리 집 마당에 네 마리 새끼 고양이- 두 마리는 노랑, 두 마리는 삼색이 -가 어미인 노랑 고양이와 뛰어놀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삼색이 어른 고양이와 어미고양이가 나란히 다니는 걸 보고 제가 애비 고양이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양이 가족은 홀로 또는 같이 모여 뒷마당 장작더미나 나무 가지 더미 속에서 놀기도 하고 앞마당 잔디밭이나 꽃밭 풀 속을 거닐다가 배수구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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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삼색이 애비고양이나 새끼 고양이들은 내가 다가가면 경계를 하고 도망가거나 피하는데, 이 노랑이 어미고양이는 오히려 나에게 다가와서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야옹~ 하고 말하는 듯하다. “이제 너를 나의 집사로 임명한다.”

고양이는 개처럼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고양이의 집사가 되어 봉사해야 된다는 말을 들었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자기가 관장하는 지역의 거주동물이자 주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읍집의 진짜 주인은 이 고양이 가족이라는 사실, 그리고 내가 지켜왔던 반려동물에 대한 원칙과 상관없이 나는 그들의 집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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