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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그림, 아들의 이야기 2. 이 그림은 ‘없다’

posted Oct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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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그림, 아들의 이야기

2. 이 그림은 ‘없다’

 

 

음악과 문학에서는 작품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은 디지털과 복제의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화가의 미술 작품은 종종 완전히 영원히 사라진다.

아들의 기억 속에 아스라이 남아있는 그림 한 점이 있다. 중학생 때까지도 그 그림은 비좁은 집의 벽 어느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인지 보이지 않았고 그 그림은 기억 속 어딘가에 깊이 파묻혀버렸다. 1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들은 아버지의 작품과 생애를 정리하면서 그 작품이 떠올랐다. 그것은 그냥 그림이 아니라 시화였다.

한국전쟁 막바지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된 아버지는 대구에서 몸을 추스르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아마도 1953년의 일이었을 것이다. 폐결핵이었다. 마산 가포리의 결핵요양원에서 지내게 된 아버지는 그곳에서 6살 아래인 시인 이열을 만났다. 시인 이열은 195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1962년 2월 함께 시화전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의 첫 개인전은 시화전이 된 것이다. 당시 아버지는 현대미술가협회와 결합하여 추상회화운동인 앵포르멜 운동에 앞장서 있을 때였다.

 

20편의 시와 그림이 잿빛 벽면에 어울려 아담한 분위기. “전쟁은 갔는데 포화에 묻혔던 산하는 아직 맑지 못합니다. 이처럼 색채와 언어에도 상흔이 그냥 남아 있습니다.” 두 작가의 말대로 여기 보여준 작품들은 모두 전쟁을 주제로 한 것이다. 주옥같은 언어 속에 몸부림치는 정열을 용케 담았고, 선을 버린 색채와 큰 터치로 단숨에 그린 그림은 “잿더미의 공간을 메우는 구도”라는 말도 그럴듯하다.

 

시화전을 소개하는 경향신문의 기사 일부이다. 이 시화전의 작품들이 어떠했던 것일지를 쉬 상상하게 된다. 전시회에 걸렸던 작품 하나가 남아서 집에 걸려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아들의 기억 깊은 곳에 그 작품이 안타까이 매달려 있다. 멀찌감치 잡은 사진 한 장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이 시화에 대한 기억을 인위적으로라도 되살리고자 아들은 시화 하나를 다소 조잡하게 만들었다. 아버지가 남긴 추상회화 중 단지 사진으로만 존재하는 작품에 시인 이열의 대표작인 <고요하다>의 일부를 발췌해서 꾸민 것이다. 위에 그림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시화전의 출발은 두 작가가 화단과 문단에서 각각 자리를 잡은 이후에 비로소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거기서 근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마산요양원에서 비록 어설프지만 작은 열매를 맺으며 시작되었다.

 

어느 날 외삼촌으로부터 안부는 없이 조그마한 소포 하나를 받았는데 열어보니 책이었다. 말하자면 프린트로 찍은 시집인데 그 시집 표지와 페이지마다 외삼촌이 그린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시집의 저자는 이열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아마 가포리 결핵요양소에서 비슷한 입장을 서로 나누며 요양원 내부에서 시집을 발간했던 모양이다. 시도 어렵고 외삼촌의 그림 또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소중하게 간직해오다가 이사를 자주 하던 와중에 분실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조카가 회상한 글의 일부이다. 이렇게 아버지의 추상회화는 전쟁과 함께 전쟁 속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된 화단의 본격적인 앵포르멜 운동보다 훨씬 앞선 것이다. 전쟁의 기억에 대한 개념화된 추상으로서의 앵포르멜이 아니라 아버지의 앵포르멜은 온몸으로 겪은 전쟁 그 자체였다. 수없이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낙동강 전선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그 전쟁 체험.

전쟁은 아버지에게 언어가 끝나는 곳, 그리고 구체적인 형상이 종결되는 곳이었다. 아버지에게 추상회화는 전후 새로운 미술세대가 외국의 사조를 받아들이며 시작했던 실험적인 전위운동 차원이라기보다는, 전쟁과 죽음의 문턱에서 갑자기 다가온 언어와 형상의 상실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리라. 아버지의 앵포르멜 작품 중에 <폐허지대>라는 노골적인 제목이 붙은 작품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세 작품이 확인되며 그중 한 작품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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廢墟地帶2, 1961, oil on canvas 1000x803

 

*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시인 이열은 그 후에도 계속 폐결핵으로 고생하면서 투병의 삶을 이어가다가 1985년 작고했다. 마산에서 인연을 맺었던 함석헌은 시인 이열에 대해 “그는 일생을 폐결핵과 싸워온 사람이요, 나의 가까운 친구다. 그의 시는 내적, 외적 갖은 어려움과 싸우는 동안에 뱉어내는 빨간 피로 쓰인 것이다. 나는 이날까지 말로만 하는 고난의 역사와 인생을, 그는 날마다 방울방울 흐르는 피로 무늬 놓으며 지고 있구나.”고 그의 투병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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